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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함께 Dec 01. 2024

노인과 바다

- 독서일기 & 교사일기

노인은 며칠 동안 아무것도 먹지 못한 고기가 불쌍해졌다. 하지만 불쌍하다는 생각이 들면서도 고기를 죽이겠다는 결심은 조금도 변하지 않았다. 이 고기 한 마리라면 몇 사람이 먹을 수 있을까 하고 노인은 생각해 보았다. 그런데 사람들이 이 고기를 먹을 자격이 있을까? 아니다. 자격이 없다. 고기의 행동이나 당당한 위엄으로 보아서는 먹을 자격이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 '노인과 바다' 중에서




고기에 대한 안쓰러운 마음, 함께하고 싶은 마음, 죽이고 싶은 마음, 존경하는 마음까지 모두 공존하는 노인의 마음이 얼마나 복잡하고 외로웠을까.​


2년 동안 공들여 지도하고 있는 금쪽이가 있다. 1학년 때는 망나니 같았는데 2학년 때 나와 담임쌤의 합작으로 아이가 학교에 마음 붙일 어른이 있다는 걸 느끼게 하는 데 성공했다. 작년 담임쌤이 올해 제주도로 발령받은 후 아이는 나에게로 향해있는 끊어질 듯 말듯한 마음의 끈을 붙잡고 있다.


학교에 미인정 결석하기 일쑤인 아이는 내가 써준 금쪽이 이야기를 좋아해 주었다. 가끔 학교에서 밥을 먹을 때면 급식을 하지 않는 내게 급식에서 나온 맛있는 디저트를 종종 갖다주었다. 6교시쯤 학교에 와서는 교무실에 들러 '저 왔어요~'하는 눈빛으로 나와 눈을 마주치고 사복 입은 게 민망해서 잽싸게 교실로 도망갔다.


나는 자주 아이에게 전화를 해서 오늘은 왜 학교에 안 왔는지 물어보거나 아픈 곳은 없는지, 밥은 먹었는지 챙겨주곤 했다. 아프다고 징징대면 잘 먹고 잘 자야 안 아픈 거라고 엄마처럼 잔소리를 했다. 여전히 등교하지 않았던 빼빼로데이날 오후쯤 전화해서 "나는 누드 빼빼로가 좋아~ 얼른 사들고 학교와~" 하고 말했다. 결석일수가 너무 많아서 학교에 아예 빠져버리면 졸업을 못할 수도 있으니 점심시간에라도 와서 밥 먹고 오후 수업은 참여하라고 어르고 달랬다. 그럼 아이는 이틀 정도 등교하고 또 결석을 한다.


아이는 지난주 금요일에도 결석을 했다. 오늘도 안 왔는데 전화도 안 받는다는 담임 선생님의 한숨 섞인 한마디에 전화를 걸었다. 두 번째 전화에 자다 깬 목소리로 전화를 받은 아이에게 고등학교 지원서 써야 하니 얼른 학교에 오라고 재촉하고 끊었다. 아이는 1시간쯤 뒤, 부스스한 모습으로 교무실에 왔다. 빨리 오라고 재촉하던 내 말에 급하게 나오느라 아무것도 못 먹고 온 아이에게 빵 한 조각을 쥐여주고 지원서를 내어주었다.


그 녀석을 무사히 졸업시키는 것이 올해의 가장 큰 목표라곤 했지만, 아이가 졸업을 하고 나면 나는 노인이 고기를 잡은 것처럼 마음이 복잡해질 것 같다. 이 팽팽한 신경전이 계속되더라도 나는 아이가 줄을 끊어버리지 않고 졸업이라는 섬에 무사히 당도했으면 좋겠다.


#노인과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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