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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현해 Apr 03. 2024

어른으로 살기 참 어렵다

잔소리는 쉽다

지우개가 무슨 죄라고...


"도대체 애들은 왜 렇게 지우개를 꼬집어 뜯을까?"

중2 수업 때 초딩들의 만행을 일렀더니 남학생 한 명이 수줍게 웃으며 대답합니다.

"해보면 손톱에 지우개 박히는 느낌이 좀 좋아요."

아~ 그래? 그렇게 이유까지 있다고 하면 인정! (... 해야 하지만 여전히 이해하기 어렵습니다ㅜ)

저는 연필 끄트머리를 물어뜯는 일도, 책에 낙서를 하는 일도 없었거든요. 저로선 고이 쓰던 지우개 허리에 살짝 금이 가면서 결국 반동강 나 버리는 것도 속이 상했는데 지금 교실에 있는 공용 지우개에는 바람 잘 날이 없습니다. 깨진 유리창의 법칙... 작은 점이라도 하나 찍혔다간 일주일 사이에 부러진 연필심이 통째로 박히는 것도 대수롭지 않죠.

어휴, 차라리 신경을 끄자.


집에서 출발해 대공원을 한 바퀴 돌고, 연결된 야트막한 산까지 올라갔다오면 한 시간 반 가량의 산책 코스가 완성됩니다. 날씨가 좋은 계절엔 종종 그렇게 걷는데 소풍이나 졸업사진 촬영을 온 학생들로 북적이는 날이 있습니다.

친구들과 떠드는 모습이 풋풋하니 예쁘기도 하고, 어설프게 어른을 흉내 낸 차림새가 귀여워 보이기도 해요. 당시에는 절대 믿을 수 없었지만 '단정하게 교복 입은 모습이 제일 예쁘다'는 어른들의 말씀이 진리라는 걸 이제야 깨닫습니다.

나이 듦을 실감하더라도 아이들을 보며 항상 웃음 지을 수 있으면 좋으련만 눈살 찌푸릴 일도 빠지지 않습니다. 옆에 누가 지나가든 말든 고래고래 욕지거리를 하고, 먹던 아이스크림을 던지며 장난을 치고, 몇 발짝 가면 쓰레기통이 버젓이 있는데도 화단 쪽으로 남은 음료수와 컵을 휙 버리는 모습들이죠.


신경을 안 쓰는 척, 속으로만 흉봤습니다.

또 볼 사이 아니라며 겁 없이 대들면 본전도 못 찾을 테니 좀 비겁하기로 했어요. "죄송합니다." 하면서 잘못을 깨닫고 반성할 거였으면 애초에 그러지를 않았겠죠. 설마 몰라서 그랬겠어요?

알면서도 어기는 나쁜데 우리 사회는 그런 별로 신경 쓰지도 않잖아요. 오히려 더 많은 지식을 알아야 한다는 걸 강조할 뿐이죠. 시험 잘 치고 돈 많이 벌고 높은 지위에 올라 비도덕적이더라도 남 위에 군림하는 게 성공한 삶이라는 듯이.

공중도덕은 말로 가르치는 게 아닙니다. 거울삼아 보고 배울 있도록 어른들이 올바른 모습을 보여줘야죠.

<한블리>를 보면 "저 사람 왜 저래!"가 절로 나오곤 합니다. '나 하나쯤 뭐 어때?' 하며 저지르는 어른들의 잘못이 아이들의 부주의함으로 인해 생기는 사고보다 무섭고 부끄러워요.


"지우개 괴롭히다가 들키면 이제 쌤 꺼 안 빌려줄 거야!"

좀 치사하지만 으름장을 놓은 덕분에 그나마 훼손 속도가 더뎌졌습니다.

좋은 본보기가 되고 싶었지만 제가 물건을 깨끗하게 쓰든 말든 아이들은 관심이 없더라고요. 

역시 잔소리가 쉽고, 협박은 즉효를 보입니다.


얘들아, 쌤한테 지우개 살 돈이 없어서 그러는 건 아니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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