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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현해 Apr 24. 2024

[골프를] 작대기로 쪼매난 공치는 게 무슨 재미라고

7개월 1주 차 골퍼의 일기

왜 골프를?

  대학교 마지막 학기에 교양과목으로 골프를 처음 접할 뻔(!)했어요. 시간표가 안 맞아 결국 듣지 못했지만 언젠가는 꼭 배우고 싶었습니다. 당시만 해도 골프가 부와 성공의 이미지였거든요. 피니쉬 자세가 좀 우아한 것 같기도 하고?

  저는 운동을 좋아해서 즐긴다기보다는 건강이나 몸매를 위해서 '해야 한다'는 의무감이 강한 편이었어요. 학교 체육은 영 꽝이었지만 헬스, 수영, 요가, 필라테스 같은 건 그나마 저랑 좀 맞는 편이었고요. 그런데 골프는 한쪽으로 스윙을 하는 편향 운동이니까 몸에 안 좋을 것 같더라고요. 그래도 워낙 운동신경이 둔해서 구기종목을 즐겨본 적이 없는데 적어도 골프공이 제 몸을 향해 날아올 일은 없으니 덜 겁났습니다. 그리고 멈춰 있는 공을 치는 거니까 어쩌면 할 만하지 않을까 생각했죠. 물론 그게 얼마나 큰 오산이었는지 이제는 잘 압니다.


넘겨짚는 건 위험해

  골프는 돈이 많이 들 거라고 생각했는데 꼭 그렇지도 않더라고요. 연습장 이용료가 포함된 걸 따져보면 레슨비도 그렇게 비싸지 않고, 골프채 풀세트도 당근에서 30만 원에 구입했습니다. 제가 중도 포기 할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연습용으로 만만한 걸 골라 산 건데 이제 슬슬 장비 욕심 내는 게 무색하게 제 클럽으로도 남편이나 프로님 모두 뻥뻥 잘만 날려요.

  3개월 먼저 시작한 남편이 재밌다고 할 때만 해도 같은 자세로 서서 계속 공을 치는 게 뭔 재미가 있겠나 했는데 웬걸요. 똑딱이만 해도 그게 뭣이라꼬 재미가 있더라고요? 구기종목보다는 필라테스류의 밸런스 근력운동 같고, 운동보다는 놀이에 가깝다는 생각으로 해서 그런지도 모르겠습니다. 몸통 회전이 제대로 됐을 땐 내 몸이 꽉 비틀어 짠 수건인 양 힘든데 그건 또 그 나름대로 기분이 좋습니다. 격하게 운동하고 나서 알 배겼을 때의 묘한 쾌감 있잖아요.


의외의 소득

  남편은 군대에서 눈 치우다 삐끗한 뒤로 가끔 허리가 아프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골프를 배운 뒤로는 오히려 요통이 사라졌대요. 배에 힘 딱 주고 큰 근육을 잘 써서 그런지...?

  어느 날, 욕실에서 씻고 있던 남편이 불렀습니다.

  "내 등에 언제 이렇게 큰 점이 생겼지?"

  "결혼했을 때부터 이미 있었는데?"

  등 한복판에 있는 수박씨만 한 점이 갑자기 보인다나요. 스트레칭 열심히 하더니 유연해졌더라고요. 

(드라이버 비거리 욕심내다 갈비뼈에 금이 간 것도 의도치 않은 첫 경험)

  동네 단골 마트 캐셔 이모님이 라운딩 가셨다가 뒤통수에 골프공을 맞아서 몇 바늘 꿰매신 일이 있었는데 그게 얼마나 끔찍한 사고였는지, 김국진 씨가 방송을 접다시피 하고 골프에 매진했는지도 십분 이해하게 되었고요. 아는 만큼 보인다더니!

  그리고 동네 친구가 생겼습니다. 소개받은 연습장이 마침 집 근처라 거기에서 만난 언니들이랑 친해졌어요. 잘 치는 사람들과 함께 하는 스크린 게임은 그 나름의 재미와 배울 점이 있고, 실력이 비슷한 언니들이랑 가볍게 맥주 마시면서 치는 건 실내 소풍 같은 또 다른 재미가 있어요. 도토리 키재기가 약간의 자극제가 되기도 하고 서로 응원도 해주고요.


나에 대해서도 새롭게 알아가는 중

  저는 제가 승부욕 없는 사람인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오히려 승부욕이 많아서 일부러 피하는 거였나 봐요. 게임 스코어보다 저와의 싸움에 진심입니다. 누구랑 겨루는 것도 아닌데 안 되는 동작 때문에 혼자 답답하고 분해서 울지를 않나, 레슨 받을 때 매번 지적받는 게 비슷하길래 스스로 훈련 지까지 쓰지를 않나. 5개월 차에 한 달을 꼬박꼬박 썼더니 제법 효과가 있더라고요. 학창 시절에 오답 노트를 왜 만들라는지 이해를 못 했는데 딱 이런 용도였군요!

  무릎이 까질세라 모래 운동장에서 전력질주를 해 본 기억이 없고, 손톱이 깨질세라 대학교 때 볼링 치는 친구들을 구경만 한 적도 있었는데 지금은 아주 딴판입니다. 안 쓰던 근육을 늘리느라 옆구리가 뻐근하고 손에 하도 힘을 줘서 아침엔 주먹을 쥐었다 펴기가 어려운 날도 많았어요. 아픈 건 질색이었는데 통증과 친해진 덕분에 클럭, 파스, 괄사랑도 부쩍 가까워졌습니다. 그런데 아직도 힘 빼느라 용을 써요.


열정 불쏘시개

  운동은 말할 것도 없고 제가 지금껏 이 정도로 열심히 한 게 있었나 싶습니다. 수능 공부도, 취업 준비도 이렇게 하지 않았던 것 같아요. 우스갯소리로 요즘 골프 치고 수업하고 먹고 자는 것, 이렇게 네 가지밖에 안 하는 것 같다고 했어요. 그런데 실상은 밥을 먹으면서도 신랑이랑 골프 얘기를 하고, 이미지 트레이닝을 너무 했는지 꿈에서도 공을 쳐댔고요. 보행신호나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면서는 스윙 연습하지 않으려고 신경 씁니다. 일부러 자제한 게 아닌데도 수업할 때 골프 생각 안 나는 건 그나마  천만다행이지 뭐예요. 

  다시 글을 쓰기 시작한 것도 골프 덕분입니다. 골프에 할애하는 시간이 많긴 하지만 한 가지에 몰두함으로써 오히려 제가 쓸 수 있는 에너지의 총량이 늘었달까요? 너무 골프에 몰두하는 것에 대한 반성의 의미로 다른 가시적인 결과물을 만들어내고 싶어서 그런 것도 있고요.

팝아트 전시를 보러 가서 이 작품을 보고 골프를 떠올린 울 신랑도 징글징글


공칠 때 말곤 고개를 돌려

  뭔가를 배울 때면 수업할 때의 제 모습을 되돌아보게 됩니다. 분명히 들었던 건데 까먹고, 알면서도 놓치더라고요. 저한테는 익숙할지라도 아이들한테는 어려울 수 있는데 원고지 사용법을 매번 묻는다고 닦달했던 제 모습을 반성했어요. 성인을 가르치는 건 언뜻 쉬울 것 같지만 프로님을 보면 전혀 그렇지도 않겠더라고요. 연세가 많으셔도 그렇지 학생이 선생한테 반말을 찍찍 해대는 분들도 있고요, 유튜브에서 본 거나 지인이 알려준 거랑 다르다고 따지는 분들도 있고요, 열심히 하지는 않으면서 실력이 안 는다고 앓는 소리를 하는 경우는 다반사고요. 제 일은 수월한 편인 것 같습니다. 나의 학생들아, 사랑한다♡

  평소에 일회용품을 안 쓰려고 노력하는데 골프장이 환경을 많이 해친다고 하더라고요. 물도 엄청 쓰고요. 초록초록한 잔디 위에서 즐기기 위해 산 깎고 농약 치는 건 좀 위선적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필드에 나가 본 분들은 눈호강 한다고 좋아하시던데 전 아직도 그게 옳은지는 모르겠어요. 고속도로 지날 때 터널 덕에 편리하지만 마음은 불편한 것보다도 조금 더 찔린달까요? 어차피 아직 실력이 안 되니까 스크린만 치면서 좀 더 고민해 보려고요.


추신. 사람을 향해 골프채 휘두르는 무식한 짓은 TV에서만 볼 수 있는 온전한 허구이길 간절히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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