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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현해 May 22. 2024

방귀 뀐 놈과 더 크게 성낸 놈

굳이 잘잘못을 따져야 할까마는

돼지는 자고 있는 토끼의 두 귀를 묶었어요. 

그랬더니 왕리본 머리띠를 한 것 마냥 귀엽지 뭐예요? 

그래서 사진도 한 장 찍어두었죠. 

토끼가 일어나자마자 돼지는 깔깔대며 그 사진을 보여주었어요.


토끼는 몹시 언짢았어요. 

귀에도 살이 쪘는지 모양이 예전 같지 않고 둥그런 풍선 같아 보여서 신경 쓰이던 참이었거든요. 

자고 일어났는데 몸이 찌뿌둥한 것도 자는 동안 귀가 묶여 있었기 때문인가 싶고요.


"웃기냐? 네가 뭔데 이런 사진을 찍어? 앞으로 절대 내 몸에 손대지 마!" 

토끼는 돼지가 들고 있는 사진을 홱 빼앗아 내동댕이쳤어요.


"토끼야, 화났어? 그러지 마~ 난 그냥 장난으로 해본 건데 귀엽길래..."

"장난칠 게 있고, 안 칠 게 있지. 돼지 넌 그런 것도 구분 못할 정도로 멍청하냐? 너 혼자 재밌으면 그게 장난이야? 넌 내가 그렇게 만만해?"

"마음 상하게 무슨 말을 또 그렇게 해?"

"마음 상해? 내 기분 더럽게 만들어 놓고 미안하단 말도 없이 네 마음 상하는 걸 운운하냐?"

"아니, 미안해. 미안한데 난 우리 사이에 이 정도 장난은 칠 수 있다고 생각했어."

"미안하면 싹싹 빌고 끝내. 뭘 또 네 생각을 늘어놓으면서 변명하냐?"

"변명이 아니라 내가 왜 그랬는지 설명하는 거잖아. 그래야 너도 내 입장을 이해할 거 아냐."


"이해는 무슨 이해? 딱 생각하면 모르냐? 내가 너한테 이렇게 하면 넌 기분이 좋아, 안 좋아?"

토끼는 돼지 콧구멍에 손가락을 쑥 집어넣고 코를 마구 잡아당겼어요.

"아야! 아프잖아!!"

"아프라고 그러는 거야. 넌 이렇게 해야 알아듣잖아. 안 그래도 요즘 귀가 둥그레져서 맘에 안 들어 죽겠구만 왜 하필 귀로 장난을 치냐고!"

"네 귀가 왜? 뭐가 둥그레졌다는 거야? 네가 말한 적도 없는데 귀가 맘에 안 드는지 내가 어떻게 알았겠어?"

"그래서 네가 눈치가 없다는 거야!"


돼지는 억울해서 미치고 팔짝 뛸 노릇이었어요.

'토끼 귀가 도대체 어디가 둥그레졌다는 거지? 길쭉하고 예쁘기만 한데~'

돼지는 그만 왈칵 울음이 터지고 말았어요.

'내가 그렇게 잘못한 건가?'

'내가 눈치 없이 굴어서 그동안 토끼는 불만이 많았나 보네.'

'아니. 그래도 그렇지 갑자기 저렇게 불같이 화낼 건 뭐람!'

'토끼랑 다시 예전처럼 지낼 수 있을까?'


돼지의 눈물을 보자 토끼는 정신이 번뜩 들었죠.

'내가 무슨 짓을 한 거지?'

'귀 묶고 사진 찍은 게 무슨 대수라고.'

'사실 몸이 찌뿌둥한 것도 새벽에 늦게 자서 그런 것 같은데...'


결국 토끼는 돼지에게 싹싹 빌었답니다.




사건은 별뜻 없는 돼지의 장난으로부터 시작되었어요.

돼지는 이미 엎어진 물을 어떻게 주워 담으면 좋을까요?

토끼는 자기의 기분과 상관없이 웃어넘겼어야 할까요?

순간 너무 기분이 나빠 주체할 수 없어도 '적당히' 화를 내는 게 '옳은' 건가요?

왜 마지막엔 토끼가 죄인이 되고 말았을까요?

미숙하지 않게 자기의 감정을 표현하기란 어찌나 어려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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