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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나순이 Nov 13. 2024

우리 예쁜이

오늘 아기는 하루종일 잠을 거의 안 자다시피 했다. 안고 있으면 자는데 바닥에 눕히면 바로 깬다. 깨더라도 누워서 알아서 잘 놀면 문제가 없는데 일단 안아줄 때까지 운다. 안고 있으면 또 금방 잠든다. 한참 안고 있다가 이제는 내려놔도 되겠지 싶어서 내려놓으면, 깬다. 도대체 왜 바닥에서 잠을 안 자려고 하는 걸까. 안으면 얼굴이랑 배랑 다리랑 여기저기가 압박되고 등은 구부정해지고 목은 꺾이고, 자꾸 움직이고 소리 내고, 여러 가지로 불편할 것 같은데, 사람 품이 도대체 뭐가 편하다고 안은 자세에서는 뭘 해도 안 깨고 그렇게 잘 잘까. 아니면 아기 입장에서는 그런 게 오히려 편한건가. 역방쿠에 눕혀놓으면 그나마 조금 자는데, 이것마저도 얼마 지나지 않아서 깬다. 물론 평소에는 역방쿠에서 잘 자는데 오늘은 이마저도 길게 안 자더라. 진짜 많이 잘 때는 4시간 동안 안 깨고 잔 적도 있었는데, 오늘은 쿠션 위에서 한 시간은 잤나 모르겠다. 아기를 워낙에 안고 있었더니 어깨랑 팔이 너무 아프다. 자다가 깨보면 팔에서 쥐가 난다. 발바닥도 아프다. 뒤통수가 태어날 때와 비교하니 많이 납작해진 것 같아서 좀 더 안아줘야지 싶다가도 팔이 너무 아프고, 아기를 안고 있어서 다른 집안일은 아무것도 할 수가 없어서 어떻게든 눕혀보려고 하지만, 안아서 자는 거 확인하고 자리 눕히면 머지않아서 깨고, 다시 안고 재워서 다시 눕히면 또 깨고를 무한 반복… 오늘 아기 보면서 틈틈이 주방 정리를 했다. 한시간이면 금방 하는 건데 어째 하루종일 한 것 같네. 젖병 열탕 소독은 어제 하고 오늘은 못 했고 내일 꼭 해야겠다. 어찌어찌 하루가 다 갔다.


4시에 아기 분유 먹이고 안고 집 안을 돌아다녔다. 5시에 남편이 퇴근하고 집에 왔다. 남편과 같이 저녁 식사를 했다. 밥을 먹을 동안 아기를 소프트의자에 앉혀놨는데 다행히 얌전하게 잘 앉아있는다. 의자에 앉혀두면 얌전하게 앉아있을 때도 있고 그렇지 않을 때도 있다. 밥을 다 먹을 때까지 가만히 앉아있었다. 눈 마주치면 종종 웃기도 했다. 남편은 저녁식사를 마치고 미용실에 갔다. 조금 있으니 아기가 의자에 더 앉아있고 싶지 않은지 몸을 움직이며 불편한 기색을 보이고 울려고 한다. 의자에서 들어 올리는데 어째 엉덩이가 따뜻하고 묵직하고 냄새가 난다. 아 대변을 눴구나. 어쩐지 아까 자꾸 웃더라. 언제부터인가 아기는 배변활동을 하고 나면 꼭 웃는다. 감정표현을 하는 게 신기하다. 물티슈만으로는 수습이 안 될 정도로 누기도 했고 또 목욕을 시킬 때도 돼서 대야에 물을 받아와서 아기를 씻겼다. 목욕을 끝내고 나니 배고파하길래 분유를 타서 먹였다. 아기는 분유를 먹자마자 그대로 잠들었다. 아기가 잠들자마자 남편이 이발을 하고 돌아왔다. 남편은 잠이 온다며 아기가 잘 때 다 같이 한숨 자자고 했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아기가 금방 깼다. 남편에게 더 자라고 하고 아기를 방으로 데리고 들어와서 계속 안고 있었는데 아기가 계속 칭얼대길래 왜 그런가 싶었더니 뭔가 배고파하는 느낌이다. 결국 흐에흐에 응애하고 울어버린다. 배고픈 게 확실하다. 분유를 먹은 지 아직 한 시간 밖에 안 지났지만 일단 120을 타와서 먹였는데 80 먹고, 먹던 도중에 잠들어 버렸다. 안고 있어도 트림을 안 하길래 그냥 역방쿠 위에 올려뒀다. 잘 잔다. 드디어 나에게 대망의 자유 시간이 왔다. 일기를 쓰고 싶어서 일기를 쓴다. 지금도 잘 잔다. 아 나도 이제 잠이 오네. 이것만 쓰고 눈 좀 붙여야겠다.


오늘 목욕시키면서 실수로 대천문을 손가락으로 살짝 누르고, 뒤통수를 욕조에 쿵 박게 해서 너무 신경 쓰인다. 혼자서 아기 목욕 시키는 건 너무 힘들다.

남편이 회사에서 유부녀들과 아기 얘기를 나누는데, 우리 아기가 60일쯤 되니 밤에 통잠을 자기 시작했다는 이야기를 하니 다들 신기해했다고 한다. 어떻게 100일도 안 된 아기가 벌써부터 밤에 그렇게 자냐고, 본인들 아기는 그때까지도 계속 밤에 한두 시간마다 깼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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