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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awn Sep 09. 2023

네가 아니었으면 진작 발을 뺐을거야.

셀프코칭 다이어리

오랜만에 사업파트너인 B과 짧은 화상회의를 마치고 난 뒤, 메시지가 쏟아졌다. 너무 실망스럽다고. 네가 아니었으면, 나는 진작에 발을 뺐을 거라고. 우리는 너무도 많은 시간을 투여했는데, 우리 의견 하나 묻지를 않았다고. 네 잘 못은 아니지만 우리를 동등한 파트너로 보지 않았다고. 


머리가 어지러웠다. 얼굴을 보고 말하지. 시간이 없어 빨리 종료된 회의였는데 끝나자마자 이렇게 폭탄이 떨어지다니. 


작년에 나는 오랜 친구 P에게 B를 소개받았다. 알고 보니 내가 오래전 몸담았던 직장에서 주최한 프로그램에 내가 그만둔 바로 다음 해에 B가 참가를 했고, 그래서 공통으로 아는 사람도 몇 있는 사이였다. 우리는 수없이 많은 회의를 했고, 여러 사업 아이디어를 나눴다. B의 동료들도 소개받아 다 같이 출장도 다니고 서로 관계를 다지는 시간을 보내왔다. 하지만 우리가 좋은 파트너십을 만든 것과는 반대로 큰 자금이 없어 사업은 크게 진척이 되지 않고 있었다. 


그러다가 원래 알고 있던 업계의 선배가 본인의 회사에서 그 아이템으로 함께 해보지 않겠냐는 제안을 해왔다. 나는 우리의 사업에 돌파구가 될 것 같아 승낙했고, 지원사업에 그 회사의 이름으로 지원해야 했지만 크게 개의치 않았다. 선배도 나의 고군분투를 도울 겸 또 회사의 실적도 가져올 겸 사업이 성공하게 되면 따라오는 가치들을 생각한 선한 의도로 제안을 준 일이었다. 그래서 나는 이게 모두에게 윈-윈이 될 줄 알았다.  



어디로 흘러가는 걸까

지원하는 프로그램의 요강을 맞춰 가며 이런저런 것들이 추가되고, 제약이 생겼다. 회사의 원래 파트너가 들어오고, 컨소시엄으로 새로운 파트너가 또 들어왔다. 그 과정에서 회사의 원래 파트너와 나의 파트너 간 약간의 긴장이 생겼다. 회사의 기존 파트너는 주도권 문제에 민감했고, 나의 파트너 팀은 '평등'이라는 가치가 중요한 회사였다. 가치와 이해관계가 충돌했다. 사업은 모든 이들의 의견과 이익을 추가하는 과정에서 나와 파트너가 애초에 가지고 있던 아이템과는 점점 멀어져 갔다. 그럼에도 과정 안에서 필요한 것들을 요청하면 파트너는 최대한 이 일을 우선순위에 두고 빠르게 요청한 것들을 보내왔다. 



기한 내에 맞추기 위해 


여러 이해관계자들과 충분한 토의와 조율의 과정을 거치면 좋았겠지만 그러지 못했다. 일단 급한 불을 끄고, 날짜에 맞추기 위해 달렸다. 그것만으로도 쉽지 않았으니까. 일상의 다른 일들을 내려놓고 마감기한을 맞추기 위해 노력했다. 선배도 마찬가지였다. 오히려 나보다 더 많이 시간을 투자하고 애썼음을 안다. 그렇게 만들어낸 결과물을 마감기한에 잘 맞춰냈고, 현재는 결과를 기다리고 있다.   


하지만 그렇게 만들어낸 결과물이 파트너를 좌절시켰다. 그렇다고 다른 누구에게 큰 이익이 돌아간 것도 아니다. 작은 파이를 여럿으로 나누다 보니 결국 누구도 만족하지 못하는 결과가 나왔다. 그 안에는 파이 조각이 작다는 문제만이 아니라 어떤 파이를 만들지 충분히 논의를 거치지 않았고, 어떤 파이를 만들고 있는지 과정을 충분히 설명하지 않았다는 점이 있다. 레몬파이를 한 판을 만들고 그중 4조각을 받을 거라 기대했는데, 초콜릿 파이 한 조각이 배달된 것 같은 상황인 걸까. 





우리가 잘 되기 위해서였는데...


나는 이 사업을 기한 내 맞춰내기 위해 달리며 평소에는 잘 먹지 않는 음식들을 섭취했다. 탄산음료와 믹스커피와 당이 들어간 과자 같은 것들. 평소 술을 거의 마시지 않는 내가 와인도 두 어병쯤 마셨음을 고백한다. 잠자는 시간은 늘 부족했고, 자정 넘는 시간까지 책상 앞에 앉아 모니터를 보고 있느라 거북목이 되고 어깨는 뻣뻣하게 굳었다. 평소 참여하던 스터디 모임들은 아예 신경 쓸 수도 없어 손을 놓았고, 정해진 다른 스케줄을 해내기에도 바빴다.


그러니 아마도 처음에는 억울한 마음이 조금 올라왔던 것 같다. 제안을 받아들였던 것은 우리가 잘 되기 위함이었으니까. 그렇다고 개인적으로 내가 무슨 이익을 따로 챙긴 것도 아니었다. 그러니 나는 좋은 결과를 내기 위해 열심히 했는데 비난을 받는 것 같았다. 그런데 나의 좋은 의도라는 것은 여기서 꺼내기에는 적당하지 않다.  


늘어나는 이해관계자와 수많은 커뮤니케이션 사이에서 접점을 찾아 뾰족하게 만들지 못했다. 조금씩 무언가가 변하는 것이 감지되었지만 일단 봉합을 택했다. 펼쳐놓으면 도저히 시간을 맞출 수 없을 테니까. 안 그래도 시간이 턱없이 부족하니까. 시간에 맞춰 내고 원하는 결과물을 얻는 것. 그게 결국 우리가 잘 되는 일이라 믿었나 보다. 하지만 그 모든 과정에서 파트너는 배제되었다고 느끼고 존중받지 못한다고 생각했다. 그가 이 상황에 화를 내는 것은 당연하다. 그리고 나는 책임이 있다. 



사진: Unsplash의 David Kno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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