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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awn Aug 12. 2023

나는 주는 것에 기뻐하나 보다.

셀프코칭 다이어리

일주일 전, 미국에 사는 친구와 영상통화를 하는 중에 친구의 첫째 아이가 화면에 보였다. 간단하게 인사를 하며, 무얼 좋아하는지 물었는데 귀여운 학용품을 좋아한다고 했다. 그래서 한국에서 선물을 보내주겠다고 약속했다.      


친구는 절대 그러지 말라며 손사래를 쳤지만 아이와 약속했으니 보내겠다고 하고, 주소를 받았다. 일하는 곳 근처에서 아이가 좋아할 만한 선물을 샀다. 캐릭터가 그려진 티셔츠, 가방에 달 수 있는 작은 인형, 캐릭터 스티커, 펜과 같은 소소하지만 귀여운 선물이었다.      


일주일쯤 지난 후 친구가 보낸 동영상에는 한국에서 온 박스 하나에 아이들의 흥분된 모습이 담겨 있었다. 친구에게는 초등학생부터 세 살짜리 막내까지 세 명의 아이가 있다. 이 아이들이 박스 하나를 앞에 두고 모여서 서로 풀어보려 흥분한 순간들이 영상에 담겨 있었다. 


 “Wait, wait, slow down!”


박스를 들고 있는 첫째가 달려오는 동생들을 향해 다급하게 외치지만 본인도 무언가 흥분 상태다. 박스를 열고 봉지에 있는 선물을 전부 바닥에 쏟아내고 서로 자기 몫을 챙기며 “This is mine.”이라고 외친다. 나머지 두 아이는 너무 어리다고 생각해 주로 첫째의 선물만 챙겨 보냈는데 셋이 나누고 나니 선물이 몇 개 되지 않아 보인다.

      

친구는 그 또한 정말 고맙다고 연신 고마움을 표현한다. 아이들이 오늘 하루 행복해졌다고, 첫째 생각을 하고 산 티셔츠라 품이 너무 커서 원피스처럼 입고 있는 둘째 아이의 사진을 보내온다. 선물을 적게 보내 미안하다고 했더니 아이들은 한국이라는 잘 모르는 나라에서 온 선물 자체만으로도 너무 좋아하니 걱정 말란다. 나는 몇 번이고 동영상을 돌려보며 아이들의 기뻐하는 순간을 본다.     


생각해 보니 지난 한 주 꽤 많은 선물을 했구나 싶다. 7월 말 교외에 잠깐 놀러 갔다가 화분 공방에 들르게 되었다. 작은 화분을 보며 다육이를 좋아하는 친구가 떠올라 화분을 사 왔고, 화분 공방의 작가님이 주신 리톱스라는 다육이를 집에 와서 정성껏 심었다. 그리고 지난주에는 친구의 회사 점심시간에 맞춰 다육이 화분을 배달했다. 점심 한 끼 같이 하기로 약속하고 만난 거라 예상치 못한 선물에 놀라던 친구는 오후에 회사 책상 위에 올려둔 노란 화분의 사진을 보내왔다.      


이모의 생일에는 전화로 이모 집 근처 꽃집에서 꽃다발을 주문했다. 꽃시장 휴가철이라 꽃집들도 휴무인 집이 많았고, 미리 예약을 하지 않으면 주문을 하기 어렵다는 곳도 있었다. 마침 주문이 되는 곳은 배달이 어렵다고 해서 사촌동생이 퇴근길에 픽업을 해서 이모에게 생신 꽃다발을 전달할 수 있었다.    

  

협업하는 프로젝트로 자주 들르게 되는 한 기관의 사무실에 갈 때도, 빈손으로 가기가 쉽지 않다. 지하철 매대에서 파는 델리만주, 역 환승하며 마주치는 도넛 가게에서 간식거리를 사간다. 선생님들은 뭘 좀 사 오지 말라고 하지만 함께 나눠먹을 수 있는 작고 소소한 무언가를 사게 되는 것 같다.   

   

어제는 지난 3, 4개월간 강의를 나갔던 기관에서 하는 마지막 강의가 있었다. 항상 세심하게 챙겨주시고 배려해 주시는 기관 담당 선생님들에게 감사함을 전하고 싶어 간식으로 드시라고 와플을 사갔다. 태풍으로 비가 오는 날이라 배낭을 메고 우산을 들었는데도 와플 상자를 한 손에 들고 가는 발걸음은 가벼웠다.  

    

복날을 맞아 동생에게는 치킨 쿠폰을 보냈고, 가지고 있는 커피쿠폰으로 함께 일하는 동료들과 점심 후 차 한잔을 하기도 한다. 큰 선물은 아니지만 소소하게 마음을 나누는 것들이다.      




"이번 생은 그냥 이렇게 살아. 괜찮아."

얼마 전 유튜브 영상으로 배우 차승원의 인터뷰를 보게 되었다. 일과 운동하는 것 외에는 자신의 욕망을 채우는 것보다 대부분의 시간을 집에서 가족들을 위해 쓴다고 했다. 아이를 픽업하거나 가족들을 챙기고 돌보는데 자신의 시간과 에너지를 쓰면서도 그런 생활방식이 힘들다거나 싫다기보다는 그로 인해 안정감을 얻는다고 했다. 옆에서 그렇게 해도 괜찮냐고 했더니 “이번 생은 그냥 이렇게 살아. 괜찮아.”라고 담담히 말했다. 

     

주변 사람들을 챙기는 나의 모습을 보며 주위 친구들이 그렇게 하지 말라고, 너만 손해 보는 것 아니냐는 걱정 어린 핀잔의 말들도 많이 들었다. 아니면 요즘에는 다들 어느 정도 관계에 거리를 두며 각자 인생을 살기 바쁜데 상대에게 관심을 가지고 챙기는 내가 과한 걸까 싶은 생각이 든 적도 있다. 


그럼에도 내 눈에 상대가 무엇이 필요할지, 어떤 것을 좋아할지 잘 보이기에 바로 행동으로 옮겨지는 것이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든다. 그리고 무엇보다 타인에게 주는 것을 기뻐하는 것은 나다. 나도 이번 생은 그냥 이렇게 살아도 괜찮은 걸까? 


나는 주는 것에 기뻐하나 보다. 



사진: Unsplash의 Hermes River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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