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치의 일주일
2024년을 회고하며 새해를 맞이하기
새해를 맞이하는 준비는 한 해를 회고하는 것으로 했다. 거창한 새해 계획이나 다짐이 있는 것은 아니었지만, 무슨 일인지 역동적이었던 지난 한 해를 정리하고 싶다는 마음이 컸다. 친구와 한 시간 정도 줌에서 만나 미리 준비한 질문을 서로 주고받다가 생각보다 시간이 많이 걸려 혼자 나머지 질문에 답을 적어내려 갔다.
올 한 해 당신은 인생에서 무엇을 배웠나요?
마지막 질문은 한 해 무엇을 배웠는가였다. 나는 꽤 여러 가지를 적었는데 많은 부분들은 긴 여행에서 깨달은 것들이었다. 지금의 나로서 충분하다는 것. 무언가 증명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 깊은 울림으로 찾아온 순간이 있었다. 또 나이와 국적, 배경과 상관없이 우리 모두는 각자의 어려움이 있다는 것. 그래서 남의 신발을 신어보지 않고 그 사람을 평가하고 판단할 수 없다는 것. 인간은 강하지만 또 약한 존재라는 것. 삶은 유한하고, 나에게 주어진 혹은 찾아온 이 모든 것들은 귀하다는 것. 사람 대 사람으로 존재와 만나는 법에 대해 조금은 더 알게 되었다고 적었다.
새로운 도전 앞에서 배운 것
얼마 전 한 친구가 00재단의 한 프로그램에 지원을 해보라는 제안을 했다. 이름만 들어도 아는 유명한 곳에 지원을 하라는 말에 나는 이렇게 대답을 했다.
"내가? 너처럼 한 기관의 대표도 아닌데?"
그래도 소개해 준 친구에게 알겠다고, 찾아보겠다고 말을 하고 며칠이 지났다. 친구에게 다시 연락이 왔다.
"쓸 생각이 있어? 지원마감이 이제 정말 며칠 안 남았어."
알겠다고 하고 그제야 제대로 지원요강을 열어보았다. 지원자격에는 나이와 출신국가 등에 대한 제한이 있는데 내가 지원하지 못할 이유는 따로 없었다. 그제야 정말 본격적으로 쓰기 시작했다. 그런데 자기소개서는 어떻게 쓰겠는데 추천서가 문제였다. 이틀 만에 누구에게 부탁할 것인가.
나에게 이 프로그램에 지원을 해보라고 한 친구에게 추천서를 써줄 수 있겠냐고 물어봤다. 지금은 친구가 되었지만 사실 일을 하며 알게 된 사이다. 또 하나의 추천서는 함께 일했던 동료에게 부탁을 할까 하다가 얼마 전 함께 스웨덴에서 앰버서더 프로그램에 참여한 E에게 부탁을 했다. 지난번 다른 프로그램에 나를 추천하고 싶다고 말했던 적이 있어서다. 그 당시에 나는 '내가 그 상에 적합한가?'라는 생각이 들어 E의 제안을 고사했는데 마침 그때의 기억이 떠오른 것이다.
그렇게 추천서와 내가 써야 하는 부분에 인터뷰 영상까지 녹화해 시간에 맞춰 제출해야 하는 모든 것을 끝냈다. 친구에게 제출을 잘했다고 이야기하며 소감을 나누는데 친구가 한 마디를 한다.
"그런데.. 너 이력서 좀 수정해야겠더라. 그 안에 너라는 사람을 다 담지 못한 것 같아."
그러면서 주최 측에 보냈다는 추천서의 일부를 공유해 줬다. 하나는 강점, 또 하나는 조금 더 보완하면 좋은 점이다. 강점을 보면서 나는 참 많은 생각이 들었다. 그 글에서 주니어 때의 내 모습을 볼 수 있어서였다. 당시에 나는 무척이나 압박감을 받고 있었다. 꽤나 큰 국제행사를 개최하는 운영팀으로 일했는데 스스로 무척이나 부족한 게 많아 보였던 탓이다. 사수에게 못한다는 소리를 듣지는 않을까 위축되는 마음이 있었다. 그런데 추천서에 적혀 있는 나의 모습을 보며 새로운 관점으로 그때의 나와 다시 마주할 수 있었다.
"Everyone feels heard and valued.(모든 사람이 존중받고 중요하다고 느끼게 해 준다.)"
친구의 글에서 가장 마음에 와닿은 문장이다. 시간이 흘러 코치가 될 줄을 그때의 나는 알았을까? 코치가 무엇인지도 몰랐을 때다. 그때의 나는 그랬구나. 한 사람 한 사람의 말에 귀 기울이며 존중했구나. 다양한 국가의 사람들을 초대해 숙박까지 함께 하는 행사를 하다 보니 이런저런 요구사항도 많았다. 당시에는 할랄이나 채식메뉴가 낯설었는데 그런 요구 사항이나, 라마단 기간에 모스크에 가고 싶다는 것, 그 밖에도 사소하게 무엇이 필요하다거나 불편하다는 이야기도 있었다. 모든 문제를 다 해결해주지는 못했지만 나는 열심히 듣고, 할 수 있는 선에서 최선을 다해 도와주려고 했던 것 같다. 그런 마음들이 전해져서인지 외국 참가자들이 한국을 떠난 후에도 연락을 하고 지내는 경우가 많았다.
이번 지원을 하며 몇 가지를 배웠다. 하나, 내가 나를 어떤 잣대로 평가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선발되거나, 안되거나 결과는 장담할 수 없지만 도전을 하기 전부터 짐작으로 안될 것이라고 포기할 이유는 없다는 것이다. 둘, 필요할 때는 도움을 청해야 한다는 것. 사회생활을 막 시작했을 때의 나는 추천서 한 장 부탁하는 것도 어려워했다. 하지만 도움을 구하면 기꺼이 도와주겠다는 사람이 있고, 혹시나 안된다고 하더라도 큰일이 일어나지 않는다. 셋, 과거 어떤 지점의 나는 지금 내 모습이 되기 위한 씨앗이었을 수 있다는 것. 내가 생각하고 보는 관점이 전부가 아닐 수도 있다는 것이다. 타인의 말에 경청하고, 존중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었던 내가 지금 코칭을 하고 있는 것처럼 말이다.
귀한 말을 새기면서
스웨덴에서 만났던 J와 새해인사를 나누는데 나에게 이런 말을 해주었다.
" I love your curious presence and immediately felt deeply connected and peaceful in your company. (호기심 가득한 존재로서의 네가 좋아. 너와 함께 있으면 즉시 깊이 연결된 느낌과 평온함을 느껴.)"
호기심, 깊은 연결감과 평온함.
J가 전해준 귀한 단어를 담는다. 올 한 해도 그런 존재로 머무르고 싶어서.
*1월 첫째 주를 회고하는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