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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비가 되지 못한 시골 한량 이야기 - 1

엄마, 나 혹시 돌잡이 때 클럽 봉 잡았어?

by 소한량

나는 요즘 세상에 흔치 않은 서당 출신이다. 서당개 삼년이면 풍월을 읊는다 했던가. 딱 3년 정도 생활했기에 어설픈 풍월을 읊어보고자 한다. 산 속 깊은 곳에 위치했던 서당에서 사자소학, 명심보감, 논어 등을 배우며 나는 다짐했다. ‘아, 나는 선비가 되겠다.’ 한창 사춘기 시기일 15-16살 소녀가 하기에는 꽤나 독특한 다짐이었지만 어느 순간 나는 철학에 대해 사유하는 선비가 되고자 마음을 먹었다.


그 다음부터는 그저 그 목표를 향해만 달렸다. 철학을 하기 위해서는 대학에 가야할 것 같아서, 중졸 검정고시를 본 후 또 다른 시골에 있는 일반 고등학교에 진학했다. 거기서도 항상 꿈은 철학을 공부하는 사람이었다. 몇몇 선생님들께서 그럼 돈은 어떻게 벌거냐고 물어보셨을 때, 뻥튀기(우리 지역에서는 박상이라고 그랬다.)를 팔아볼까, 해녀 훈련을 받아볼까 생각은 해봤으나, 그것은 생계수단으로 삼고 싶은 직업이었고, 결국 꿈이라 할 수 있는 것은 철학자에 가까웠다.


그렇게 꿋꿋이, 철학바보로 지내다 결국 철학과에 진학했다. 너무나도 예상됐던 미래였다. 하나 예상하지 못한 것이 있었다면, 그것은 산 속에서 농사를 짓거나, 논밭에 둘러쌓인 시골 생활만 하다가 서울 시내에 있는 학교로 진학을 하게 된 것이다. 그러한 환경적 변화는 내가 유혹에 강한 사람이 아닌, 내 주변에 전혀 유혹거리가 없어 그를 실험받을 기회가 없었다는 것을 알게 해주었다. 철학 서적을 읽다가 갑자기 양파 농사가 너무 지어보고 싶어서 그에 정신팔릴 일은 없었으니까.


서울은 그냥 화려했다. 나가면 소 울음소리 밖에 안들리다가, 멋있고 예쁘게 꾸민 사람들이 즐비해있으니 눈이 즐겁더라. 그 때부터였을까, 자취방과 강의실에서만 시간을 보내다가 점점 자취방과 우리 학교는 위치해있지도 않은 강남에서만 시간을 보내게 된 것이...? 새벽의 강남은 화려함의 정점이였다. 솔직히 소 거름퍼다가 강남 클럽 가서 데킬라 얻어마시면 얼마나 도파민이 터졌겠는가... 그래, 인정한다. 나는 매우 유혹에 약했다.

다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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