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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개미 May 21. 2024

36살 보컬 강의 3달 수강 후기

보컬 수업이 나에게 가르쳐 준 것

 2024년이 되었을 때 나는 그 어떤 해보다 다른 심정이었다. 경제적으로 불안한 프리랜서의 삶을 살고 있었지만 다행히 작년에 미리 벌어둔 돈이 아직 남아있었고 마침 일이 끊겨 한가한 시간도 있었다. 성인이 되고 나서 처음 맞은 겨울 방학처럼 느껴졌다. 일 없이 집에서 보내는 시간들이 종종 있긴 했지만 이번 해처럼 자유로운 느낌은 없었다. 나는 언제나 일을 하거나 기다리느라 편하게 쉬어본 적이 없었다. 하지만 2023년에 나는 치열하게 일을 했고 덕분에 통장에는 몇 달동안 일이 없이 놀아도 될만한 돈이 꽂혀있었다. 그래서 새해가 되었을 때 가슴에 불꽃이 타오르고 있었다. 뭐든 다 이룰 수 있을 것만 같은 기분이랄까.

 

 1월 한 달 동안 뭘 하면 좋을까? 고민을 했을 때 떠오르는 건 음악 학원이었다. 나는 평소에 코인 노래방에서 혼자 노래를 부르는 것을 좋아했다. 영화를 보고, 책을 보는 일 외에 활동적인 취미랄게 없는 내게 그나마 노래는 나의 몸을 사용하는 격렬한 스포츠였다. 하지만 언제나 혼자서 목을 긁어대며 악을 써대는 바람에 누구에게 노래 잘한다는 소리 한 번 들어본 적이 없었다. 일주일에 두 세번씩 코인 노래방에 다녔을 때에도 노래는 전혀 늘지 않았다. 


'노래 한 번 잘 부를 수 있다면 소원이 없겠다'


 보컬 학원에서 노래를 배우는 내 모습을 상상하니 오랜만에 심장이 뛰었다. 한편으로는 걱정도 들었다. 

너무 비싸지는 않을까?

선생님이 나이 많은 학생을 어려워하거나 제대로 가르치지 못하면 어쩌지?

그나저나 이 나이에 노래 잘해서 대체 뭘하지? 

어디에 써먹지도 못할 것을 위해서 힘들게 번 돈을 써도 괜찮을까?

만약 내가 보컬 학원을 다니게 된다고 해도 길면 6개월 정도 다닐텐데 그 정도로 어디가서 노래 잘 한다는 소리를 들을 수나 있을까? 

 

평소 걱정이 많은 나는 보컬 학원을 다니지 않을 이유를 끌어다 모으고 있었다. 나이 36살에 무언갈 취미로 배운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생계 이외의 일은 선뜻 손이 가지 않는다. 용기를 얻고 싶어 아내에게 이런 고민을 털어놓으니 아내는 적극적으로 나의 마음을 지지해주었다. 


'정말 하고 싶은 일이면 그 정도 돈은 써도 돼. 제발 스스로를 위해서 돈을 써봐요' 

이때부터 슬슬 예감했던 것 같다. 이건 보컬 수업이 아니라 인생 수업이 될 것 같다고.


아내가 용기를 준 덕분에 나는 집 근처 음악 학원에 방문했다. 처음 학원 입구에 들어설 때 낯설고 어지러운 기분에 다리가 휘청거렸다. 그저 노래를 배우고 싶다는 순수한 마음으로 찾아온 것인데 보이지 않는 어디에선가 사람들이 나를 손가락질 할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사실 그런 사람은 없다. 그건 그저 내 한계를 결정 짓는 내 마음일 뿐이었다. 나도 내가 이토록 소심한 사람이라는 것을 절절히 깨닫게 된 순간이기도 했다.


원장님과 면담할 때도 어딘가 주눅이 들어 등에서는 계속해서 식은 땀이 줄줄 흘렀다. 


"왜 보컬 수업을 듣고 싶으세요?"

"원래 노래를 좋아해서 코인 노래방에 자주 가는데 제대로 배워봐야겠다고 생각한 적은 없어서 새해가 된 기념으로 와봤습니다."

"평소에 어떤 노래를 들으세요?"

"음... 글쎄요. 대부분의 음악을 다 좋아하긴 하지만 아무래도 김범수나 윤종신 같은 발라드를 주로 듣고 배우고 싶습니다."


 간단한 질문에도 나는 변명을 늘어놓듯이 길게 설명을 붙였다. 원장님은 면담이 끝나고 녹음 스튜디오를 보여주었다. 그리고 피아노 앞에 앉더니 음정 테스트를 시작했다. 흔히 영화나 드라마에서 보던 '아아아아아~'소리를 내며 음정을 점점 높이는 테스트 같은 것이었는데, 점점 고음으로 갈수록 목소리가 흔들렸고 그럴 수록 등에는 땀이 폭포수처럼 흘러내렸다. 녹음실에서 큰 소리를 내는 것 자체가 어색하고 부끄러웠지만 수염이 덮수룩한 원장님이 강렬한 눈빛으로 '더! 더!'를 외치니 눈을 꼭 감고 계속해서 고음을 쥐어짰다. 테스트를 마친 원장님은 고음이 생각보다 잘 난다고 칭찬을 해주었다. 당연히 노래를 배우겠다고 찾아온 학생에게 실력이 별로니 돌아가라고 할리는 없겠지만 역시나 칭찬을 듣고 나니 기분이 좋아지고 찾아오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고 말았다. 결국 나는 한 달치 수업료를 지불하고 나왔다. 다른 경우라면 '당했다'는 기분에 울적해졌을텐데 이 경우는 반대였다. 집으로 걸어오는 길이 상쾌했다. 학원에 가기 전에는 이 나이에 보컬 수업을 듣는게 어딘지 부끄웠지만 돌아오는 길에 나는 이제라도 배울 수 있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하게 됐다. '무언갈 배우기에 늦은 나이란 없다'라는 말을 믿지만 그걸 실천하는 건 다른 차원이었다. 나에게 이런 시간과 비용을 지불할 능력이 있다는 것 자체를 감사하게 생각하고 축복으로 여기게 되었다.


 한 달 보컬 수업료는 25만원이고 일주일에 한 번, 한시간. 그렇게 총 3달 동안 수업을 들었다. 그리고 어제 마지막 수업을 마쳤다. 그동안 노래가 늘었는가? 다른 사람들이 느낄 정도는 절대 아니다. 하지만 나 스스로는 아주 늘었다고 생각한다. 운전으로 예를 들자면 다른 사람이 운전하는 차 뒷자석에 앉아 잠만 퍼질러 잤던 내가 이제는 조수석에 앉아서 내비게이션을 볼 줄 알게 되는 수준이 됐다. 아직 운전대를 잡고 내가 원하는 곳을 마음대로 돌아다닐 정도는 아니지만 내가 가는 길을 볼 줄 알게 되었다는 것만으로도 꽤 만족스러운 경험이었다. 이제는 노래 듣는 방식이 달라지고 노래를 부를 때 마음 가짐이 달라졌다. 노래를 정말 섬세하고 오묘한 기술이다. 


처음에는 간단한 호흡법을 배우고 노래를 불렀다. 음정을 정확히 내라는 이야기는 한 번도 들은 적이 없었다. 호흡을 내는 법을 익히는데 거의 3달을 온전히 쓴 것 같다. 별의 별 방식을 동원해서 소리를 내보게 되는데 그것들이 조금씩 쌓이면서 내가 평소에 목소리를 어떻게 내고 있는지 이해하게 되었다. 


 흔히 복식으로 노래를 하라는 이야기를 많이 듣게 되는데 실제로 경험을 해보니 '복식'이라는 말은 목소리를 내는데 오히려 방해요소처럼 느껴졌다. 배의 힘에 너무 신경을 많이 쓰게 되면 놓치는 것들이 많았다. 나의 보컬 선생님은 '호흡'을 엄청 강조하는 분이었는데 결과적으로는 '복식'이든 '호흡'이든 모두 '소리를 내는 원리'를 몸으로 깨닫는 과정이었다. 나는 운전을 하는 것과 노래를 하는 것에는 공통점이 있다고 생각한다. 자전거를 타는 것도 마찬가지다. 말로 들어서는 전혀 운전을 하거나 자전거를 탈 수 없다. 직접 핸들을 조작하고 페달을 밟으면서 감각적으로 익히는 것이다. '복식'도 '호흡'도 다 이렇게 저렇게 불러보면서 느껴봐야 한다. '복식'과 '호흡'외에도 '성대'나 '비강', '발음', '박자', '혀의 위치' 등등 내가 어떻게 소리를 내고 있는지 나만의 감각으로 느끼는게 중요하다. 이 모든게 나에게 맞는 방식으로 굳어질 때까지 노래를 불러봐야 익숙해지고 자연스러워진다.  


 노래를 부르는 것은 운전이나 자전거보다 훨씬 더 섬세한 감각을 요구한다. 운전이 아닌 그저 핸들을 잡고 돌리는 행위는 어린 아이도 쉽게 할 수 있다. 하지만 내 목소리를 내가 원하는 만큼의 음정과 세기로 부르는 일은 의외로 해내기가 어렵다. 내가 이런 말을 할 자격이 있는 실력과 이론을 겸비한 사람은 아니지만 아무튼 보컬 강의 3달을 경험한 자로서는 이제 이러한 것들이 조금씩 나만의 방식으로 익숙해지고 내가 어떤 습관을 가지고 있었는지 깨닫게 되자 전보다 노래하는게 덜 부담스럽고 편해졌다. 악쓰지 않고 노래를 부를 수 있는 것만으로 크게 발전했다고 믿는다.


 보컬 수업을 들으면서 가장 미스터리한 것은 선생님 앞에서 마이크를 들면 평소 연습때와 다르게 호흡하고 다른 소리가 난다는 것이다. 선생님 스피커에서 나는 큰 반주에 내가 압도 되는 것인지 아니면 그냥 이 공간에 들어오면 과도하게 긴장하는 건지 모르겠다. 노래를 하는 조건은 계속 변한다. 내 방에서 작게 노래할 때, 노래방에서 에코 빵빵한 마이크에 노래할 때 사람은 나도 모르게 무의식적으로 다르게 소리를 내게 된다. 음악 학원의 방음이 되는 작은 방에서 노래하는 것은 또 달랐다. 어떤 환경에서도 일정한 나의 목소리를 내려면 그만큼의 훈련이 필요하다. 노래를 훈련하는 건 수업 시간만으로 부족한 일종의 수행처럼 느껴졌다. 내 경우에는 3개월은 노래 실력을 혁신적으로 끌어올리기에는 부족한 시간이었다.


 노래는 내 마음이 약간만 흔들려도 듣는 사람에게 전달이 된다. 팝을 부르다가 발음이 자신 없어서 약간이라도 망설이면 보컬 선생님은 알아차리고 자신있게 부르라고 주의를 준다. 이토록 내가 자신감이 없는 사람이었다는 것도 뼈저리게 깨달았고, 자신이 없는 분야도 계속 두드리다보면 조금씩 익숙해지며 인생에 몇 없는 성취감과 보람을 안겨준 다는 사실도 처음 알았다. 아주 오랫동안 멀리서 구경만 했던 노래라는 분야에 올라선 것만으로도 나는 매우 기쁘다. 쓰기 전에는 아깝기만 한 학원비 75만원이 지금은 전혀 아깝지 않다. 그 돈을 쓰지 않았다면 나는 평생 노래 부르는 사람을 구경하는 구경꾼으로만 살았을 것이다. 나는 앞으로도 꾸준히 노래 실력을 늘리도록 노력하려고 한다. 다른 이유보다도 내가 너무 재밌기 때문에 이것을 멈추기가 매우 힘들다. 기타도 배우고 피아노도 배워서 작곡이라는 분야까지 나아가고 싶다. 그게 40이건 50이건 상관없다고 생각한다. 오히려 나이가 많을 수록 멋있고 의미가 있다. 나도 한때 꿈이 있었지라고 이야기하는 노인이 되고 싶지 않다. 대단히 이룬 건 없어도 해볼 건 다 해보고 살았노라고 후회없이 얘기하고 싶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버킷리스트 하나를 이루었다. 그리고 노래를 통해 삶과 자신감을 배웠다. 아무도 듣지 못한 나의 노래는 계속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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