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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echan Sep 21. 2023

Found -다시 찾은 우리 (넷플릭스 다큐)

피, 물, 사랑, 그중에 제일은 사랑이라


세상에 찌들어가며 인류애가 조금씩 떨어져감을 느낄 때 나는 이 다큐를 다시금 찾아보곤 한다. 이 다큐는 중국 1 가구 1자녀 정책 시절 각자 저마다의 사정으로 해외로 입양되었던 세 아이의 이야기와 그들이 친부를 찾아 떠나는 여정을 다룬다.


다큐의 원제는 'Found' (찾았다)이다. 하지만 이 다큐 속 세 아이 모두 친부를 찾지 못했다. 그렇게 생각하면 Finding, 또는 To Find가 맞는 표현 아닐까?라고 잠시 생각했던 마음은 다큐를 다 본 다음 Found라는 제목에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나 자신의 과거를 다 알지는 못하지만 살면서 모두가 그 사실을 알지는 못할 수도 있다는 사실, 그것을 동화로 남겨둘 수 있다는 용기, 그 용기를 통해 마주할 수 있게 되는 자신의 내면, 그 내면을 볼 수 있게끔 자신을 지켜준 모든 이들의 돌봄, 그 모든 것을 가능케 해 주며 굳건히 박혀있던 사랑이라는 보석을 찾은 것 아닐까.


이 다큐를 몇 번을 보아도 나는 늘 질문을 던진다.

수십 명의 고아 아기들을 수십 년간 돌보았으나 한 명 한 명을 기억하고 있고, 그 아이를 십몇년이 지난 후에 다시 보면서 눈물을 흘리는 보모들의 눈물은 대체 무엇일까? "우리 보모들은 냉정하지 않아요"라고 말하며 눈물을 흘렸던 한 보모의 잔잔한 억울함 속 생명들을 지켜낼 수 있었던 그 숭고함은 무엇이었을까?

입양한 아이를 싱글맘 가정에서 자라게 했던 미안함 때문에 눈물을 주체하지 못했던 어머니의 눈물은 대체 어떤 것일까? 자신의 잘못이 아님에도 아이를 찾아주지 못해 미안하다며 친부모와 같이 눈물 흘리는 루이 선생의 눈물은 어떤 것일까?

왜 어떤 이들은 그렇게 까지 미안하지 않아도 되는데 더 주지 못해 미안해할까. 그 마음은 어떤 것일까.

몇 번을 보아도 감히 다 헤아리지 못하지만 몇 번을 보아도 이 눈물들의 합쳐진 힘은 나를 겸허함의 감정으로 구원해 주는 듯하다.


이번에 유독 눈에 들어온 장면은 클로이가 친부로 추정되었던 분들을 (비록 아니었지만) 만나고 나서 버스 안에서의 장면이다.

사진을 보면 클로이는 세이디의 품에 안겨있고 세이디는 가만히 생각하고 있다.

그리고 그 옆에 리우 선생님과 릴리가 가만히 가만히 바라봐주고 한 좌석 아래에 양 어머니 역시 그녀를 그냥 바라봐준다. 유독 양 어머니의 표정이 감동이었던 이유는 딸의 눈물에 공감하는 것과 동시에 무언가 이해하려고 하는 듯 한 표정이었다. 비슷한 환경에서 태어나지 않았던 어머니로써는 공감함과 동시에 딸의 감정을 조금이라도 더 헤아리려고 하는 표정이었고 (물론 어디까지나 짐작일 뿐이지만) 그 표정 속에서 나는 인간의 위대함, 어머니의 위대함, 그리고 그 너머에 있는 어떠한 포장이 필요 없는 사랑 그 자체를 느낄 수 있었다.

약속이나 했듯이 네 명은 침묵 속 따스한 눈빛으로 클로이를 공감해 주고 그 공감 속 클로이는 안전한 눈물을 흘릴 수 있다. 눈물을 흘릴 수 있는 환경이 안전한 것만큼 따뜻한 공기가 또 있을까?

그리고 문득 던져본다. 언제 마지막으로 누군가의 슬픔에 공감하며 그저 바라볼 수밖에 없었던가. 언제 마지막으로 나는 더 주지 못한 미안함을 느꼈던가. 과연 누군가가 나라는 공기로 인해 안전한 눈물을 흘릴 수 있을까? 왜, 언제부턴가 나는 옆에 있는 존재들에게 헤아림을 조금씩 멈추었을까.


'가족은 만들어가는 것'이라는 말이 있다. 나는 그것이 곧 '사랑은 만들어가는 것'라고 번역하고 싶다.

완벽한 사랑을 찾았다는 말은 호모 사피엔스에게는 허락될 수 없는 말이다. 하지만 꿈꿀 수 있다. 중국을 다녀온 후 세이디, 클로이, 그리고 릴리에게 수고했다며 따뜻한 포옹을 건네는 사람들, 그리고 앞으로 늘 연결하며 서로 사랑할 세 아이들, 그리고 루이 선생님까지 모두가 앞으로 좋은 사랑을 만들어 갈 것이다. 꼭 생물학적으로 연결되어 있지 않아도 말이다.


피는 물보다 진하다고 한다. 하지만 동시에 물은 피보다 맑다. 태평양 바다 건너 그들을 입양했던 양부모들의 사랑, 그리고 연결된 모든 이들의 사랑이 친부들의 사랑보다 더 깊지 않다 함부로 말할 수 없다. 그래서 물이 피보다 낫다라고도 쉽게 얘기할 수 없는 것처럼 피가 물보다 낫다고 쉽게 얘기할 수도 없다. 하지만 물과 피를 연결시켜 주고 물과 피보다 나은 것이 있다. 그것은 사랑이다. 물과 피는 주어지는 것이지만 사랑은 만들어가는 것이기에.


'그런즉 믿음 소망 사랑 이 세 가지는 항상 있을 것인데 그중에 제일은 사랑이라'라는 성경구절이 있다. 이 다큐를 보고 나는 이렇게 인용하고 싶다.


그런즉 피, 물, 사랑, 이 세 가지는 항상 있을 것인데 그중에 제일은 사랑이라 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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