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다 보면 존경보다는 존중이 더 어렵다
나 만큼 나를 기억하는 사람이 있을까?
물론 생각보다 인간은 스스로도 스스로를 온전히 이해하지 못하는 존재이기도 하지만, 그렇다고 나 보다 나를 잘 안다 거나, 나보다 나의 역사를 잘 기억하는 사람 역시 존재하지 않는다. 그렇기에 적어도 우리 스스로에게 스스로는 어떠한 삶을 살았든, 소중하다. 소설 스토너는 그래서 유독 좋다. 스토너라는 인물이 훌륭해서 이 소설이 좋은 것이 아니라, 지극히 평범한 한 남성의 한 생애에 깊이 귀 기울이니 이리 숭고하고 이리 묵직할 수 없다. 훌륭함의 잣대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무언가가 이 소설에는 있다.
소설 스토너가 유독 깊은 인상을 남기고 또 나이가 들수록 이 소설이 좋아질 이유는 인간이 생각보다 보잘것없다는 깨달음, 삶이 별로라고 할 수는 없지만 생각보다 그 정도로 별거 있다고 할 수도 없다는 깨달음을 부분적으로 느끼고 계속해서 느껴갈 것임을 짐작할 수 있기에 가 아닐까 싶다. 그리고 스토너는 ‘더 보잘것없음을 경험할 수도 있어’라고 인생 선배지만 아무런 권의 의식 없이 담백하게 고백해 준다. 후대에게 좋게 포장되고 싶어 하는 마음 없이 그저 한 명의 인간의 삶을 모두 보여주며 ‘나는 나 스스로 나의 운명을 이렇게 짊어지고 갔어, 이게 정답은 아니지만 나에겐 최선이었어’라고 말해주는 소설 스토너를 명확하게 하나의 감정으로 표현하기는 어렵지만 그 안에는 수많은 감정들이 깔끔한 육수처럼 맑게 우러나있다.
그래서 소설 스토너를 읽고 나면 온전한 나를 마주할 수 있게 된다.
최선을 다한 순간, 최선을 다 하지 않았던 순간, 스스로만 알고 있는 은밀한 비밀, 비겁했던 순간 등이 살짝씩, 때로는 선명하게 떠올려진다.
그러나 그렇게 마주한 내가, 부족했고 어리석었으나 밉지는 않아 진다. 나 스스로를 존경할 수는 없으나 존중할 수는 있겠다는 감정이었다.
아마 사람들은 스토너를 '존경'하지는 않겠지만 소설을 다 읽고 나면 이 사람의 공과 사를 떠나 자신에게 주어진 한계 속에서 삶을 끝까지 살아낸 자를 향한 깊은 존중심을 느끼게 된다. 그러하기에 스토너라는 사람에게 늦었지만 진심을 다해 말해주고 싶다.
'살다 보니 존경보다는 존중이 더 어렵더군요. 누군가를 마음 다해 존중할 수 있게 해 준 당신의 담담함에 소소한 감사를 표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