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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아 Dec 09. 2021

나를 돌보는 소비

코로나 그리고 캠핑

나를 돌보는 소비     


나에게 요즘 엄청난 일이 일어났다.

벌레, 질색이고, 땡볕에 있는 거, 짜증 나고, “집 나가면 개고생”을 입버릇처럼 말하던, 호텔 조식 뷔페를 사랑하는 내가 캠핑에 빠져버렸다. 왜 이런 변화가 일어난 거지? 나 자신을 되짚어 보고자 한다.   

   



2021년 1월 1일, 배달의민족으로 저녁을 주문하고 집에서 여유롭게 기다리던 평화로운 시간, 전화벨이 울렸다. 맙소사, 우리 병원에 확진자가 나왔으니 전수검사 하러 지금 당장 오라는 상사의 전화였다. 다음 날 최초 확진자가 나온 병동만 부분 코호트격리가 들어갔다. 그 후부터 언제 끝날지 모른다는 불안감과 함께 일의 강도와 양도 높아져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으며 일을 했다.  

    

한 달 후 코호트격리가 해제되었다. 그래도 안심할 순 없었다. 언제 또 이러한 일이 일어날 수 있다는 불안감이 생겼다. 이름도 생소했던 “코로나19” 때문에 외식도, 여행도, 외출도, 만남도, 병원이라는 직장까지. 나를 둘러싼 평범했던 모든 것들이 날카로운 칼이 되어 나의 자유를 좀먹어갔다. 이대로 가다간 사람이 미칠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5월 초, 엄마의 환갑 생신 기념으로 카라반에서 1박을 했다. 여행을 갈 수 없어 꿩 대신 닭으로 간 캠핑이었는데 거기서 흔히들 말하는 덕통 사고를 당해버렸다. 내 사이트 안에선 마스크를 벗고 자유롭게 있으면서도 가족들과 오붓한 시간을 가져서 감회가 새로웠다. 새장을 벗어난 새처럼 잠시나마 느낀 자유가 정말 짜릿했다. 그래서였을까? 캠핑에 눈을 돌리게 된 것은.     

 

솔직히 말해서 캠핑은 마냥 편한 취미활동은 아니다. 매스컴에서 보여주는 힐링만 생각하고 시작했다가 접는 사람들이 많은데는 이유가 있다. 일단 준비물이 많다. 기본적인 캠핑 장비는 물론이고, 먹거리, 옷가지 등 챙길 것이 넘친다. 짐을 챙겨서 예약한 사이트에 도착하면 아무것도 없다. 나무판으로 짠 데크 또는 자갈이 깔린 땅만 있다. 내가 열심히 잠자리를 구축해야만 캠핑이 시작된다. 땀 빼가며 텐트를 치고 주변 정리를 하면 배가 고프다. 식사 준비도 스스로 해야 한다. 장작을 올려 불을 지피고 고기를 구워야 하며 심지어는 상추 씻으러 멀리 떨어져 있는 개수대까지 가야 한다. 식사 후에도 설거지하러 또 가야 한다. 처음부터 끝까지 셀프시스템인 셈이다.      


아이러니하게도 나에게는 이러한 모든 것이 좋았다. 캠핑 가기 전 주부터 식사메뉴 구성과 준비물을 챙기면서 오는 설렘. 아무것도 없었던 곳에 그동안 모은 캠핑 장비들로 아지트를 만들면서 느끼는 뿌듯함과 성취감. 자연 속에서 내가 사랑하는 사람과 시간을 보내는 여유. 세끼를 준비하는 것만으로도 하루가 가는 단순함. 그리고 “코로나19”에서 벗어나 사이트 안에서만큼은 자유롭게 현재에만 집중할 수 있다는 점이 좋았다. 번거로울 수 있는 소일거리들이 ‘지금’에만 몰입할 수 있게 해주었다. 그런 몰입들이 모여 우리에게 추억을 선사해주었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장비를 모으고 캠핑장 예약하는 소비를 하고 있다.     



누군가는 소비를 “돈지랄”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나 또한 그리 생각했었다. 생활비와 적금만으로도 월급이 항상 빠듯했으며 나를 돌보는 일에 소홀했었다. 그러다 코로나로 인해 일과 일상에서 받는 스트레스가 한계에 부딪히면서 생각이 바뀌었다. 긴 호흡으로 살아가야 하는 인생살이 속에서 나의 가난한 영혼을 돌보는 일에 돈이 쓰일 때도 있어야 하지 않을까. 소비가 꼭 나쁜 쪽으로만 있는 것이 아니며 긍정적인 면도 있다는 걸 깨달았다. 너덜너덜한 나의 마음을 고칠 수 있는 의사는 스스로 밖에 없다. 그러니 ‘나중에 하지 뭐’라고 미루다가 병원에서 의사 선생님께 돈지랄 해야 하는 순간에 닥쳐서 후회하지 말고 앞으로도 나를 돌보는 소비를 지속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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