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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은 Feb 03. 2022

그렇다면 당신은 어떤 명절을 바라나요?

52일 채식주의자 10

1년 365일 엄격한 채식 식단을 실천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그래서 생각했다. 일주일에 딱 하루만 채식 지향의 음식을 해 먹으며 건강한 생활 습관을 만들어 가자. 당장 실행할 수 있고, 오래 지속가능한 실천만이 삶을 바꿀 수 있다 믿기 때문이다. 지난 화요일은 <52일 채식주의자>의 아홉 번째 그린 데이였다.


명절이 돌아오면 뭐라도 트리거가 되서 감정이 폭발한다. 이제는 이게 명절증후군이라는 것을 알고 있지만 나는 매번 속수무책으로 당하고 만다. 식구들 앞에서 벌컥 화를 내고 입을 꾹 다문 채 온 식구를 불편하게 만든다. 이런 내 행동이 못 견디게 싫지만 평소에는 그냥 넘어가는 불만들이 한꺼번에 터져나와 꾹 참고 있다가는 이대로 못 살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이 모든 사단의 원흉이 남편인 것만 같고, 양가 부모님, 아이들까지 모두 나를 힘들게 하는 존재인 것처럼 느껴진다. 보다 근본적으로는 이 모든 게 다 허울 좋은 가족 제도, 가족 관계 때문인 것 같아서 결국은 가족이 해체되야 이 고통이 끝난다는 극단적인 결론에 이른다. 막상 명절 날이 되어 어떻게라도 마음을 추스리고 예정된 스케줄을 소화하고 나면 스르르 마음이 풀어진다. 어쨌거나 보면 반가운 게 사실이고, 웃고 즐기는 동안 마음은 이미 누그러져 있다.이렇게 또 한 번을 넘긴다.


이번에도 가족은 무사히 살아남았구나.   


나는 이게 '명절증후군'이라는 사실을 안다. 명절이면 우울하고, 작은 일에도 감정이 날카로워지는 이유 말이다. 명절마다 이런 사이클이 반복되니 명절을 쇠지 않는 게 답이라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명절에 관해서는 나에게 아무런 결정권이 없다. 결혼한 여자에게 명절이란 남이 연주하는 장단에 그저 춤을 춰야 하는 벌칙같은 것이다. 혹여 힘들어 인상을 쓰거나 흥을 깨기라도 하면 잔치 분위기를 망친 나쁜 년이 된다.


명절 며칠 전 시댁 스케줄이 결정되면, 친정 스케줄을 조율한다. 명절에 대한 양가의 가풍이 다른 것은 중간에 낀 내가 다 커버해야 한다. 우리 집은 이런데 너희 집은 왜 이러냐 따지는 것도 별 소용이 없다. 며느리인 나는 시댁의 가풍을 따르고 존중하지만, 사위인 남편은 처갓댁의 가풍이 있는지 없는지도 모르고 산다. 그렇게 명절 3일 내내 시댁과 친정을 종종걸음으로 왔다 갔다 하면 명절이 끝나 있다.


나는 솔직히 잘 모르겠다. 명절 풍습이 조금씩 바뀌고 있다는데 무엇이 얼마나 어떻게 바뀌고 있다는 것인지 잘 느껴지지 않는다. 주어진 3일 안에 미션을 클리어 하듯 시댁에서 차례를 지내고, 가족들을 만나고, 식사를 함께 하고, 선물이나 용돈을 전달하며, 오붓한 대화나 신나는 게임을 해야 한다는 것이 내가 아는 명절의 어제고 오늘이다. 양가 부모님 모두 근처에 사시고, 이런 저런 일로 자주 보며 산다. 그런데도 명절에 당연히 모여야 하고, 명절을 보내는 방식 역시 예전과 하나 달라진 게 없다. 명절이면 호텔에 가고, 여행을 가는 사람들은 도대체 누구인지, 진짜 있기나 한 것인지.


그런데 누구 하나 이런 명절을 바꾸자는, 아니면 이제 좀 그만 하자는 말을 꺼내지 않는다. 다들 나처럼 명절이 싫은데도 참고 있는 것인지, 아니면 정말 아무런 불만이 없는 것인지 나는 항상 궁금했다. 매번 똑같은 음식으로 차례상을 차리고 그 음식을 나눠 먹는 게 정말 즐겁고 좋은지 나는 정말 궁금했다. 그리고 이번 명절에 문득 한 사람 한 사람을 유심히 지켜 보며 알게 되었다.


가족들은 나처럼 명절을 싫어하지 않는다.


특히 명절에 대한 결정권을 가진 사람들은 전통적인 방식으로 명절을 보내는 것에 큰 불만이 없다. 그들에게 명절은 자신들이 가진 권위와 누리고 있는 복을 확인하는 시간이다. 그저 반갑게 본인 집에 찾아온 가족들을 맞이하고, 한 상 가득 차려진 밥상을 흐뭇하게 바라볼 뿐이다. 명절 노동을 주도하는 (시)어머니, 맏며느리, 맏딸 역시 명절 노동에 힘들어 하면서도 명절 자체에는 큰 불만을 하지 않는다. 스스로에게 결정권과 재량권이 주어지는 노동에는 불만이 덜 생기고, 일도 조금 덜 힘들게 느껴지는 법이다.


이번 설에 혼자 차례상을 준비한 친정 언니에게 아버지와 둘이 지내는 차례는 너무 힘들지 않냐며 차례를 없애는 게 어떻겠냐고 넌지시 물었다. 언니는 차례 준비를 끝내고 나니 팔이 안 올라가더라며 앓는 소리를 하면서도, 혼자 할 수 있는 만큼만 슬슬하는 거라 괜찮다며 끝내 안 하겠단 소리를 하지 않았다. 장남인 남편 역시 시댁에서 제사와 차례를 물려주시면 언제든지 받을 준비가 되어 있다. 내가 싫다고 하면 혼자라도 할 사람이란 걸 알기에 시댁 명절의 미래에도 별 말을 않는다. K-장남인 남편과, K-장녀인 언니에게 나는 이제 이런 명절은 그만 쇠고 싶어, 라는 말을 언제쯤 어떻게 꺼낼 수 있을까.


아이들은 여전히 명절을 좋아한다.


얼마전 아이들과 함께 점심을 먹다가 명절마다 엄마가 좀 아파서 어쩌면 몇 년 안에 명절을 그만 쇨지도 모른다는 말을 슬쩍 꺼내봤다. 아이들은 순간 멍하더니 표정이 조금 어두워졌다. 며칠 전부터 둘째는 이번 설에도 외할아버지 댁에서 '윷놀이'를 하는지 궁금해 하던 차였다. 심심하고 긴 겨울방학의 끝, 명절에 가족들을 만나 놀 생각에 부풀어 있는 아이들에게 예상치도 못한 얘기를 꺼내놓으니 살짝 놀란 눈치였다. 명절도 선택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아이들은 생각조차 못했을 것이다. 아이들은 명절이 싫은 엄마, 명절마다 기분이 다운되는 엄마를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어딜 가도 예쁨만 받고, 어른들께 용돈도 받고, 게임도 할 수 있는 명절이 엄마는 왜  싫다고 하는 건지 아직 이해할 수가 없을 것이다. 중딩 큰애는 대뜸 "그럼 나중에 우리도 명절에 안 찾아와도 돼요?"라며 까칠하게 반문했다. 둘째는 "엄마 나 초등생이야, 동심을 지켜주세요"라며 분위기를 바꾸려 애썼다. 이날 점심을 먹으며 나눴던 대화와 명절마다 터뜨리는 엄마의 폭발을 아이들은 나중에 어떻게 기억할까. 엄마 때문에 명절이 하나도 즐겁지 않았어 라고 원망할까봐 두렵기도 하다. 세상 누구도 아이들에게 명절을, 명절의 즐거움을 빼앗존재가 되고 싶진 않을 것이다. 엄마라면 더욱 그렇다.


명절이 불편한 이유는 가부장제의 권위 체계가, 가족 관계 속에 숨겨진 불평등이 극명하게 드러나는 날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여성에게 집중되는 명절 노동을 반복하는 과정에서 여성이 같은 여성을 비난하고 적대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이 순환을 끊기 위한 노력은 누군가의 심기를 건드리는 것이 되고, 가족의 분란을 일으키는 것이 된다. 결국 명절을 고수하는 것도, 이런 명절을 바꾸거나 끝내는 것도 그 누군가의 속 깊고 너그러운 결정에 달려 있을 것이다. 그저 그 때가 이를 때까지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란 이 상황을 불만없이 따르고 받아들이는 것 뿐이다. 그러니 명절이 즐거울 리가. 그러니 아플 수밖에.


생각은 늘 여기까지 이르렀다.

하지만 어느 쪽으로도 더 나아가지 못했다.

싸울 용기도, 바꿀 의지도 내겐 부족했다.


설날 아침 글쓰기 프로젝트의 글감으로 "명절 대신 축제처럼 명절을 보내는 아이디어"를 생각해 보라는 주제가 주어졌다. 명절이 싫다 말만 했지 어떤 식으로 바뀌면 좋겠다, 명절 행사 대신 뭘 하며 보내고 싶다는 생각을 구체적으로 해 본 적이 없다. 언제나 뭔가에 불만이 생기면 그게 없어져 버렸으면 좋겠다 바라지 어떤 식으로 바뀌면 좋겠다, 이를 위해 뭘 해 봐야겠다 생각을 하며 산 것 같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이미 하고 있었고, 내 선을 넘은 일은 아무리 노력해도 안 바뀐다는 무력감이 나를 지배하고 있었다. 명절증후군 역시 내 깊은 우울감과 무력감의 다른 모습이란 것을 받아들여야만 한다.


내가 바라는 명절의 모습은 이렇다.


차례는 아침 일찍 나와 남편이 간단히 과일과 떡국만 준비해 지낸다.  
네 식구가 함께 떡국을 먹는다.


명절 파티를 열 것이다.

양가 가족들과 친구들을 초대할 것이다.

파티는 점심에 시작해 저녁까지 계속될 것이다.

기본적인 음식과 음료는 케이터링을 하자.  

당연히 대접만 받는 사람도, 당연히 대접만 하는 사람도 없는 모두가 평등한 파티가 될 것이다.

소개는 각자 알아서 아메리칸 식으로 한다.

삼삼오오 끼리끼리 먹고 즐기며 자유롭게 수다를 나눌 것이다.

이벤트 한 개쯤은 진행해도 좋을 것이다.

장기를 뽐내거나 게임을 하는 것보다는 랜덤하게 번호 뽑기를 해서 상품을 주는 것 정도가 좋겠다.

모두에게 행운이 돌아가도록 선물은 많이 준비할 것이다.  

빈 손으로 와서 모두 선물 하나씩 들고 돌아가는 명절 파티, 괜찮지 않나?


The 9th Green Day


아침으로 고구마를 에어프라이어에 돌려 먹었다. 네 식구가 한 개씩만 먹어도 금방 사라질 줄 알았던 고구마는 오후까지 남아 있었다. 첫째는 고구마 반 개를 먹었고, 둘째는 아예 입에도 대지 않았다. 밤고구마 취향이 아니란다. 에어 프라이어에 돌린 고구마는 달고 맛있다. 오며 가며 내가 한 개씩 다 집어 먹었다. 고구마는 대표적인 다이어트 음식이니 많이 먹어도 괜찮을 것이다.


점심에는 연근 강정, 깻잎 나물, 연두부에 시래기국을 먹었다. 아이들은 이 식단이 며칠 전과 똑같다며 불평을 했다. 내가 봐도 어느 반찬 하나 아이들에게 어필하는 게 없긴 하다. 하지만 오늘은 화요일이니 간단히 먹고 정리하자고, 대신 내일의 식탁을 기대하라고 아이들을 달랬다. 이러다가 채식 데이가 제대로 못 먹는 날, 다음 날 맛있는 거 먹는 날이 될까봐 두렵다.  

저녁엔 콩나물 밥을 해서 먹었다. 점심도 저녁도 간단한 식사였다. 방학이 2-3주 차에 접어 드니 한 끼 한 끼 차리는 게 버거워진다. 배달 음식 시키지 않고, 간단히라도 내 손으로 차린 밥상이라는 데에 의의를 둔다. 채식 데이를 나보다도 엄격하게 지키고, 그 의미를 상기하는 아이들은 저녁 밥상에 별 불만이 없었다. 다행이다.


The 10th Green Day


이번 주는 제목을 바꿔야 한다. 채식을 못했기 때문이다. 12월 둘째의 생일과 1월 이모 생일을 함께 축하하잔 의미로 점심 외식을 했다. 엄마까지 여자들만 다 모인 날. 완전한 육식 데이였다.


오랜 만에 아웃백 스테이크에 가고 싶다는 둘째의 뜻에 따라 아웃백을 찾았다. 할머니, 이모, 엄마, 중딩, 초딩 연령대가 다양해 뭘 얼마나 시켜야 할지 감이 오질 않았다. 패밀리 레스토랑에서 척척 주문했던 시절이 있었는데, 요즘엔 메뉴판을 봐도 뭘 얼마나 시켜야 할 지 감이 잘 안 온다. 그냥 주문 받는 직원에게 적당히 먹을 만큼 추천 해달라 부탁한 후 그대로 따라 시켰다. 요즘 아웃백에선 토마 스테이크를 밀고 있단다. 스테이크를 테이블에 올리기 전에 사진을 찍겠느냐 물어보길래 그럼 찍겠다 하고 사진을 찍었다. 저 한 조각(?)이 거의 20만원이었다. 이외에도 파스타 등을 추가해서 결국 시킨 걸 다 못 먹고 포장해 들고 왔다. 남은 음식으로 저녁까지 해결했다. 결국 하루 종일 채식하지 못한 날.   


아이들과 함께 한 요리 시간


야채와 햄을 썰어서 양배추와 포두부에 싸 먹었다. 양배추는 인기가 별로 없었지만, 포두부는 인기 만점이었다. 꼭꼭 말아서 월남쌈 소스에 찍어 먹었다. 야채 중에는 샐러리가 인기가 없었다.


치즈 3종에 만원 행사를 한다고 추천 하길래 한 번 사 봤다. 까나페 과자, 딸기와 휩 크림 외에는 특별히 준비할 것도 없었다. 딸기만 씻어 주고 나머지 재료를 식탁에 꺼내 놓으니 요리 준비 끝. 뒤로는 아이들이 알아서 척척척. 이미 유치원 초등학교에서 한 두 번 실습해 본 거라 아이들은 어렵지 않게 자기 카나페를 만들어 먹었다. 만들고 먹고, 만들고 먹고, 만들고 먹고. 한참을 그렇게 카나페를 만들어 먹으며 놀았다. 둘째가 오늘 정말 행복하다고 했다.  역시, 행복은 이렇게 소소한 것이었다.


열  번째 채식 데이에 해먹으려고 준비해 둔 김밥 재료. 결국 하루 이틀 뒤 평일에 우린 김밥을 말았다. 채식 데이 용이라 김밥용 햄이 없었다. 햄 없는 김밥은 앙꼬 없는 찐빵이지 했더니, 애들이 앙꼬가 뭐냔다. 햄을 사올 것인가, 그냥 이대로 말 것인가 한참 고민하다 이번엔 그냥 햄 없는 김밥을 싸기로 했다. 대신 계란을 평소보다 많이 만들어 햄의 빈자리를 채우기로 했다. 고기를 좋아하는 첫째는 허전하다고 했고, 고기를 원래 별로 안 먹는 둘째는 뭐가 빠진지 잘 모르겠단. 이제 김밥 재료만 있으면 싸 먹는 건 스스로 할 수 있겠다며 아이들이 자신했다. 오케이, 좋았어.


The 11th Green Day


열한 번째 채식 데이 역시 실패였다. 이날은 설날 당일이라 사진도 못 찍었다. 점심으로 사골 국물에 쇠고기 가득 들어간 떡국을 먹었고, 저녁에는 호주산 쇠고기와 샐러드를 곁들인 저녁 식사를 했다. 다음 날엔 한우와 떡국을 또 먹었다. 언제부터 한국 명절이 고기 구워 먹는 날이 되었는지 모르겠다. 내년에는 반드시 고기 없는 명절 식사를 해 보리라 다짐한다. 나 또한 부모님 선물로 절대 고기를 준비하는 게으른 선택을 하지 않을 것이다.    



이미지 출처 pexe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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