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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정연 Mar 24. 2022

이방인들의 유형

이민가방에 의지해 살아 온 삶의 기술은 이번에도 빛을 발했다. 짐 싸는데 30분 푸는데 30분. 조금만 더 노력한다면 법정 스님이 말씀하신 무소유의 삶이 그리 멀지 않을 것 같다. 파푸가 아쉬운 얼굴을 가득하고 마중을 나왔다. 


“진짜 떠나는 거에요. 마담?”

떠돌이 삶을 살아 온 나는 이별이 익숙한데 아직 어린 파푸는 나처럼 무덤덤하지 않았다. 무거운 가방을 내려 주며 눈물까지 글썽였다. 매일 이것저것 부탁만 해서 나는 미안한 마음이 더 큰데 정이 많은 파푸는 떠나는 마지막 날까지도 도움을 자처했다. 


“고마워 파푸. 아예 떠나는 것도 아니고 어차피 10분 거리잖아. 또 보면 되지.” 


“예스 마담.” 

파푸는 충직하면서도 정중히 대답했다. 나는 그의 고용인도 아니고 상사도 아니기에 격식을 갖출 필요가 없는데 그의 태도는 늘 깍듯했다. 고맙긴 하지만 마음에 깊게 베인 계급 차이인거 같아서 나는 여전히 불편했다.  

새로운 직장에서 구해 준 아파트는 도하의 바다 산책로 코니쉬 (corniche) 5분 거리에 있고 전통시장 수크(souq)와는 3분 거리에 있어서 편이점이 많았다. 더운 기후 때문에 차가 없으면 이동이 불가능한 도하에서는 길거리에 사람 구경하는 게 쉽지 않았다. 오랜만에 한국의 유흥가처럼 북적 거리는 거리를 보니 반갑고 사람 사는 분위기가 느껴져 덩달아 신이 났다. 국적과 환경은 달라도 전통시장의 분주함은 활력을 느끼게 한다. 하마드가 알려 준 아파트에는 직장 동료 아부(Abu)가 기다리고 있었다. 그는 방문 앞까지 직접 안내 해 주며 짐도 날라 주었다. 내가 운전할 차량은 다음주부터 가능한데 그때까지 아부가 파푸처럼 나의 뒤치닥을 해주기로 했다. 


오랜 타국 생활의 유일한 장점은 오지 한가운데서도 살아 남을 수 있는 생존능력이다. 환영 받지 못하는 이방인이라도 살아야 한다는 생존 목적은 스스로 해결하는 독립성을 길러 준다. 하지만 도하에서는 남들보다 조금 나은 나의 생존능력이 전혀 소용 없었다. 우편 주소는 분명 있지만 네비게이션에서 검색이 안되고 사람들은 위치를 알려줄 때도 쓰지 않는다. 위치를 물어보면 “신호등 3개를 지나서 우회전을 하면 5층짜리 빌딩이 나오는데 거기서 다시 왼쪽으로 돌아서 ...”라는 구구절절한 묘사로 답한다. 방향감각 제로에 기억력도 거의 제로인 내가 그 모든 지시를 알아 듣는 것은 불가능했다. 불필요한 외출은 아예 생각도 하지 않았고 생필품 사러 가는 것조차 파푸나 아부에게 의지를 해야했다. 그들이 없었다면 나는 도하에서 하루도 살아 남을 수 없었다.       

외국 근로자가 빨리 현지에 적응할수록 회사에 도움이 되기 때문에 여느 나라 여느 회사에서 통역 직원을 붙여 주는 것은 통례적인 일이다. 그리고 개인 생활까지 도와주는 도우미나 운전기사는 임원이나 특별히 스카웃한 인재에게만 주는 혜택이다. 나처럼 직급이 낮은 직원까지 이런 혜택을 주는 이유는 내가 특출나서가 아니다. 오로지 신흥 시장, 카타르의 특수성 덕분이다. 현대 도시의 기능을 온전히 갖추지 못한 환경, 그런 불편을 감수하면서 일할 근무자의 부족, 상대적으로 저렴한 인건비등 외적 요인이 원인이다. 이런 특혜를 아는 눈치 빠른 엘리트들 중에는 신흥국만을 돌아 다니며 황제 생활을 하기도 하지만 모험스러운 생활만큼 위험도 크다. 발도 빠른 그들은 중동도 개발 붐이 끝났다며 내가 도착하기도 전에 이미 아프리카나 동유럽으로 떠나 버렸고 정보가 느린 나는 끝물에 도착했다. 프로 인디아나존스들이 모험을 끝내고 떠난 중동에서 내가 찾을 수 있는 황금 성배는 남아 있을지 확신이 서지 않았지만 시작은 여정을 끝내야 결말을 알 수 있을 터였다.   




설레는 마음으로 출근한 첫 날 하마드는 일일이 직원을 소개 시켜 줬다. 대부분이 레바논 요르단 남자들이었고 여자는 총무를 보는 필리핀 직원 캐시(Cathy)와 나 단 둘이었다. 소개가 끝난 후 하마드는 그 중 제일 키가 큰 직원 아흐메드를 불러 미팅을 시작했다.

         

"곧 카타르 월드컵 유치 준비로 월드컵 위원회 방문 행사와 각 종 스포츠 행사가 많아. 난 여러분 둘이서 이 모든 입찰에 참여하고 새로운 고객을 유치하기를 원해. 여기 아흐메드는 친형이 제일 큰 은행에 간부이고 도하에 산지도 오래되어 인맥이 탄탄해. 외향적 성격이라 외부 영업에는 적임자야. 정연씨는 한국인이고 여기 온지 얼마 되지 않았지만 영어실력도 나쁘지 않고 서류 작업을 뒷받침 해준다면 아흐메드가 영업 하는데 큰 도움이 될거야. 둘이 호흡을 잘 맞춰봐. 둘이서 도하 시장을 맡아 준다면 나는 두바이 시장을 개척하고 싶어. 크고 화려한 행사는 그래도 두바이가 큰손이지 카타르는 늘 흉내내기 밖에 못해. 너무 시장이 작아." 

하마드는 앉자마자 사업의 비전을 설명했다. 그가 두바이 진출을 계획하고 있다면 나도 덩달아 따라 갈 수 있는 특급행이었다. 


"하마드 사장님 말에 공감합니다. 큰 국제기구와 국제기업 분점은 모두 두바이에 있어요. 

장기적으로 살아 남을려면 꼭 두바이에도 진출 해야합니다."

아흐메드도 그의 욕망을 숨기지 않았다. 

도하에서 만났지만 두바이 진출이라는 공통 목적지에 우리는 한번에 일심동체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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