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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담 Feb 24. 2024

타인은 지옥이다? 그런 고시원은 이제 그만 잊어라.

고시원이 늘 바람 잘날 없을 것이라고 상상하겠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이상한 고시원 에피소드만 쓰는 무명작가 주제에 이런 말을 하는 것이 우습긴 하지만, 그게 사실이다. 무엇이든 본인이 겪어보지 않은 세상은 신기하게만 느껴지고, 글을 쓰는 사람은 독자의 흥미를 끌어야 하니 관심 끌만한 특별한 에피소드만 쓰는 경향이 없지 않아 있음을 인정한다.



내가 이렇게 운을 띄우는 이유는 요즘 우리 고시원이 신기하리만큼 조용하기 때문이다. 고시원이 잠잠해지면 일거리가 줄어들고 신경 쓸 것이 없어지기 때문에 원장에게는 사실상 잘된 일이지만, 고시원 스토리로 글을 쓰는 작가에게는 애석한 일이기도 하다. 가끔은 제발 특별한 사건을 일으켜서 재미난 에피소드를 쓰고 싶은 욕심이 생기기도 한다.



이런 내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말썽을 부리는 사람도 없고, 민원을 넣는 사람도 없다. 오히려 입소문이 났는지 어디 하나 광고를 돌리지 않는데도 친구한테 너무 좋다는 이야기를 들었다며 대기를 걸겠다는 학생들이 줄을 서고 있다. 알고 보니 고시원이 천직이었던 것인지 고시원은 늘 평온하게 돌아가고 있다.



어느덧 사계절이 흘렀다. 벌써 고시원에서 겨울을 두 번이나 맞이했고 이제 곧 두 번째 봄 여름을 맞을 것이다. 그 사이 나는 육아 휴직을 마치고 복직을 했다. 고시원 사업을 알아보고, 세팅하고, 안정화하기까지 서로 합심하며 많은 것을 이루어냈지만 나의 복직은 오래전부터 예정된 일이었다. 복직을 하면 적응하는데 온 힘을 쏟아야 하며 하루 8시간은 꼬박 속박된 몸이므로, 다른 것에 신경 쓸 여력이 없다. 이제는 다시 몸을 숨기고 우직하게 출근하여 자리를 굳건히 지키는 신분으로 돌아가야 할 때가 된 것이었다. 나의 복직으로 인해 남편은 비로소 진정한 원장님으로 홀로서기를 하게 되었는데,  걱정과 달리 그는 아주 능숙하게 운영을 잘하고 있다.(입소문이 난 것만 봐도 그렇다)



내가 복직을 하고 나서 또 한 번 분명하게 재확인한 사실은, 우리가 고시원 사업을 함으로써 월급과 버금가는 수입을 얻었으며 아이들과 함께할 더 많은 시간을 확보했다는 사실이다. 나는 일이 많으나 적으나 늘 사무실에 앉아 있고 퇴근 시간만을 기다려야 한다. 하지만 남편은 특별한 사건이 없는 한 늘 아이들 등하원을 도맡아 하고, 내가 퇴근하고 집에 올 때까지 온전히 아이들을 돌보고 있다. 이렇게 아이들과 시간을 많이 보내다 보니 두 아이는 엄마는 돈 벌어오는 사람으로 알고, 아빠는 늘 자신들을 돌보아주는 세상에서 가장 멋진 슈퍼맨으로 여기고 있다. 이 얼마나 환상적인 일인가!



처음에는 모든 것이 마냥 두렵고 신기하기만 했다. 키보드만 두들기던 직장인 부부가 고시원이라는 것을 시작했으니 아는 것도 하나 없고 모르는 것 투성이었다. 돈은 제대로 벌 수 있을지, 정말 시간의 자유를 확보할 수 있을지 그 어느 것도 확실하게 느껴지는 것은 없었다. 게다가 인터넷이나 단톡방에 들어가면 고시원 사는 사람들은 죄다 생활이 어렵거나 책임감이라고는 1도 없는 흉흉한 사람들이라는 기묘한 이야기만 떠돌았으니 엄청나게 겁을 먹었더랬다.



과연 정말 그럴까?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내가 겪어본 바로는 그렇지 않다. 고시원을 운영하는 지역도 천차만별이고, 고시원에서 사는 사람도 천차만별이다. 물론 비교적 어려운 사람들이 찾는 경우가 많긴 하지만 공영 방송 다큐에 단골 소재로 나오는 것처럼 모두가 그렇게 힘들고 어렵고 궁상맞게 사는 것은 아니라는 말이다. 정확히 말하면 그런 사람도 있고 아닌 사람도 있다. 우리 인생이 어디 그렇게 간단하던가. 세상에는 정말 다양한 종류의 사람들의 있고 제 각각 다른 인생을 살지 않던가.



특히 우리 고시원은 입지상 생활이 어려운 주거 취약층보다는, 정말 어쩔 수 없이 시험이나 직장 문제로 임시 거주하는 사람이 훨씬 많다. 하지만 반대로 직장인과 수험생보다는 고시원을 유일한 '집'으로 생각하는 분들의 비중이 훨씬 높은 고시원도 있다. 실제로 내가 가본 곳들 중에는 정말 고시원은 또 하나의 생존 공간이구나, 하는 느낌을 주는 고시원들이 있었다. 많은 빨랫감들이 걸려 있고, 주방은 늘 붐비고, 일터로 나가는 사람 보다 고시원에 머무는 사람이 더 많은 고시원 말이다.



직접 겪어보지 않은 사람들은 그저 한쪽 말만 듣고 고시원은 무조건 힘들고 어려운 사람들이 사는 곳, 어두침침하고 무서운 곳, 삶을 포기한 무책임한 사람들이 사는 곳으로 오해하기도 한다. 하지만 우리 주변의 자수성가 성공 스토리를 가진 반전 주인공들 중에도 고시원에 한 번쯤 살아본 경험을 가진 사람들이 알게 모르게 많다. (나도 몰랐던 사실인데, 고시원을 한다고 하면 그제야 이런 경험담을 늘어놓는 사람들이 꽤 많다.)

그리고 적어도 내가 겪어본 사람들 중에는 누구보다 성실하고, 열심히 살며, 꿈을 가지고 사는 사람들도 많이 있었다.



무튼 지인들의 과거 경험담을 들을 때마다, 현직 고시원 원장으로서 그들이 경험한 고시원은 어떤 곳이었고, 어떤 원장이 있었는지를 물어보지 않을 수 없다. 과거에는 딱히 공용시설이라고 할 것도 없었고, 있어도 이용하기에는 너무 열악한 상황이었다는 말. 그리고 방 크기는 지금이나 예나 비슷하지만 모든 것이 낡고 더럽고 칙칙했다는 말, 고시원 원장은 대부분 아버지 연배쯤 되는 나이가 많으신 분 들이었다는 것이 공통적인 묘사이다.




그렇다면 2024년 지금은 어떨까? 일단 젊은 고시원 원장이 눈에 띄게 많아졌다. 코로나와 함께 역대급 유동성의 시대를 지나며 갈 곳을 잃은 돈들이 경제적 자유를 외치며 부동산 투자에서 고시원 사업까지 다양한 곳으로 흘러 들어왔기 때문이다. 젊은 고시원 원장이 많아지면서 많은 고시원들이 2030 친구들을 타깃으로 한, 트렌디한 감각으로 탈바꿈하게 되었다. 노인의 옷에서 젊은이의 옷으로 스타일 변신을 하게 된 것이다.



어두침침한 방들은 깔끔하고 모던하게 바뀌었다. 대학가 근처의 고시원들은 인테리어 마저 MZ 스럽고 컬러풀한 카페처럼 변했다. 스터디 카페와 공용공간을 제공하기도 하고 각종 가구 대여 서비스를 하기도 한다. 방이 좁은 것만 감안하다면 정말 가성비 있게 편안히 지낼 수 있는 공간으로 변모한 것 같다.



하지만 이로 인한 반작용도 분명 발생하고 있다. 고시원의 존재와 사업 시스템 등을 잘 알 수 없었던 과거와 달리 이제 많은 것들이 공개되어 있고, 접근 가능하기에 누구나 한 번쯤 쉽게 도전해 볼 만한 사업으로 여겨지면서 너도 나도 고시원을 하겠다고 난리를 치는 현상이 생겼다. 그러자 고시원 권리금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계속해서 치솟고 있는 실정이다.



실례로, 나의 경우만 보아도 과거 고시원을 인수할 때와 비교해 볼 때 권리금이 최소 5천에서~1억 가까이 올랐다. 시도 때도 없이 부동산에서 매도 의사를 묻는 전화가 걸려오고, 고시원을 인수하겠다는 사람들이 줄을 서 있다. 가끔은 지금이 고점인가? 싶어 이제 그만 팔고 나와야 하나 하는 생각이 들 때도 있다. 과연 이런 쏠림 현상은 언제까지 지속될 것인지 나도 잘 모르겠다.



또 사정이 이렇다 보니, 연세가 좀 있으신 분들이 운영하는 고시원은 상대적으로 경쟁력을 잃어가고 있는 느낌이다. 젊은 친구들의 인테리어 감각과 운영 센스를 따라가기 어렵기 때문이다. 푸근한 아빠 혹은 할아버지 느낌으로 '인정'만을 강조하며 영업을 하기에는 역부족일 것이다. 더욱이 고시원 홍보는 대부분은 인터넷 마케팅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네이버 검색창에 00동 고시원 하고 검색했을 때 1페이지에 뜨는 각종 현란한 사진과 고객의 마음을 훔치는 블로그 정도는 기본 중의 기본이라는 말이다. 어르신들이 이런 부분을 따라가기에는 아마도 많은 어려움이 있을 것이다.



과거에는 은퇴한 분들이 고시원을 많이 운영했다고 한다. 그도 그럴 것이 서두에도 말한 것처럼 막상 운영을 해보니 어느 정도 안정화가 되면 크게 손 갈 것이 없다. 365일 출근할 필요도 없고 일주일에 한두 번 정도 나와서 어질러진 분리수거와 음식물 쓰레기 정도만 처리하면 되기 때문이다. (물론 장마철엔 누수, 겨울철엔 결로 가끔은 진상 고객이 있긴 하지만, 이 정도 이슈는 어느 업종에 가나 늘 있지 않나 싶다) 게다가 우리처럼 입실자의 결을 잘 맞춰 놓으면 대부분의 입퇴실 일정과 생활 패턴이 파악 되기 때문에 훨씬 수월하다. 솔직히 말하면 젊은 친구들은 투잡으로 하기에 좋고, 은퇴하신 분들은 메인잡으로 하시기에 좋은데 정작 고시원 사업이 절실하고 필요한 분들이 점점 설 자리를 잃어가는 것 같아 안타까운 마음이 들기도 한다.



어디 그뿐이랴. 몇 백만 원에서 몇 천만 원에 이르는 컨설팅 비용을 요구하며 고시원 사업 컨설팅을 해준다는 사람들이 눈에 띄게 늘어났다. 고시원이라는 이미지와 편견에서 오는 막연한 두려움, 그리고 치솟은 권리금으로 인해 적지 않은 돈을 투자해야 하는 사람들의 불안감 같은 것들이 맞물리면서 컨설팅 시장은 타오르고 있다. 컨설팅을 받아서 제대로 사업을 하게 되고 본인이 만족한다면야 물론 상관없겠지만, 맨 땅에 헤딩해 가며 스스로 창업을 하고 운영을 해본 입장에서 본다면 그렇게까지 고가의 컨설팅을 받는 것이 큰 의미가 있어 보이진 않는다.(어디까지나 개인적인 의견이니 참고만 하길 바란다)



사실 나도 고시원에 관련된 이야기를 블로그에 연재하며, 고시원 창업 강의를 해달라는 의뢰를 참으로 많이 받았다. 하지만 고작 1개의 고시원을 운영한 햇병아리 원장에게 그런 자격이 있는지? 스스로가 납득이 되지 않아 유료 강의는 하지 않기로 했다. 다만 무턱대고 고가의 강의와 컨설팅에 돈을 쓰는 예비 창업자들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마음에 무료 강의를 한 두 번 정도 연 것이 고작이다. 가끔 구독자 분들께서 고시원 창업 강의를 해주었으면 좋겠다는 댓글을 종종 주시기도 하는데, 죄송하게도 앞으로도 그럴 일은 없을 것 같다. 다만 이러한 에세이나 블로그 등을 통해 간접적으로나마 고시원의 원장의 실상과 어려움 그리고 보람 등을 전할 수 있을 것 같다.




글을 쓰다 보니 두 명의 고시원 원장이 떠오른다. 한 명은 20대의 나이에 고시원이라는 업종에 뛰어들어 무섭게 성장세를 보이며 확장을 하던 친구이다. 블로그에서 유튜브에서 사업 확장의 과정을 세세하게 다루고 있었는데, 정말 대단하다는 생각을 하며 팬심으로 지켜보던 친구이다. 얼마 전 그 친구의 개인 계정에 올라온 글을 보니 모든 고시원 사업을 정리하고 새로운 시작을 하려고 한다는 글이 있었다. 한 편의 글이었지만 그동안 얼마나 마음고생이 심했을까, 젊은 친구가 겪지 않아도 될 세상의 험한 꼴을 많이도 겪었겠구나 싶어 짠한 마음이 들었다.



또 한 명의 원장은 블로그로  알게 된 인연인데, 육아 휴직 중 친구와 동업으로 시작한 고시원을 시작으로 퇴사까지 하고 고시원을 어엿한 하나의 브랜드로 만들어 서울 곳곳에 지점을 내고 있는 분이다. 그것에 더해 고시원 사업 컨설팅을 위한 동행 서비스까지 론칭하고 정말 어엿한 사업가가 되신 분이다. 고시원이라는 업종에 사업이라는 이름을 붙이고자 한다면 적어도 이 정도까지는 돼야 하지 않을까 하는 것이 개인적인 생각이다. 그 외에도 고시원 바닥에서 사업적으로 두드러지게 활약하며 큰 소득을 올리고 계신 재야의 고수 분들이 꽤 있다.



세상은 빠르게 변하고 있다. 2024년의 고시원은 더 이상 과거의 고시원과 같지 않다. 운영하는 사람도 달라졌고 고시원에 사는 사람들도 달라졌다. 하지만 또 한편으로는 여전히 어렵고 취약한 환경에 놓여 있는 사람들을 상대해야 하는 3D 업종인 것 또한 변하지 않는 사실이다. 다만 과거에 비해서는 좀 더 수월해졌고, 단순 자영업이 아닌 사업으로 확장할 수 있는 기회도 많이 열려 있지 않나 하는 것이 나의 개인적인 생각이다.



- 잎사귀가 아닌 가지를 꺾어라

같은 돈을 들이고 같은 시간을 쓰고 같은 노력을 하는데 어떤 사람은 매장 하나를 겨우 갖게 되지만 어떤 사람은 수백 개의 매장을 갖는다. 그 차이는 자본의 차이가 아니라 생각의 차이다. 나는 이왕 사업을 하려면 그 나뭇가지 하나는 차지하라고 가르친다. 사업을 시작하면 이 사업이 어디까지 성장할 수 있는지를 먼저 상상해보고 사업의 종착점을 그려 보게 한다. 하루 매출 백만 원짜리 떡볶이 집을 상상하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이 매장을 전국의 매운 떡볶이 시장 전체를 장악할 수 있을까'를 고민해야 한다.

김승호 회장 <사장학개론> 중에서



떡볶이를 파는 사람인지

떡볶이 매장을 파는 사람인지?


요리사인지, 외식 사업가인지?


피부과 의사인지,

의사 라이선스를 가진 뷰티 사업가인지?


자신의 정체성은 모름지기 사장이 정하는 것이라는 김승호 회장의 말이 떠오른다. 결국 고시원이라는 공간과 그 속에 사는 사람들을 어떻게 바라보고 만들어갈 것인가는 각자의 관점과 노력에 달렸다고 본다.



추신: 고시원 사업을 꿈꾸고 있는 사람들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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