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행 KTX 역방향 좌석 후기
동대구역 플랫폼에서 작별하는 커플을 보았다. 남자의 손을 놓지 못하는 여자의 어깨가 가늘게 떨렸다. 그 모습을 보자 아무 예고 없이 ‘그때’가 밀려왔다. 서울행 KTX 좌석에 몸을 묻자, 덜컹이는 소음과 함께 정지했던 시간들이 거꾸로 재생되기 시작했다.
1~2주에 한 번. 길게는 두 달에 한 번. 동대구역에서 혹은 수원역에서 그와 헤어졌다. 매번 마지막인 것처럼 손을 흔들었다. 눈물이 글썽한 눈으로 멀어지는 기차를 끝까지 바라보던 얼굴. 그 얼굴이 그리운 것은 아니다. 다만 그때의 감정이, 그 애달픈 마음이 고스란히 되살아났다. 세포 하나하나에 각인된 것처럼 선명하게.
기차는 서울을 향해 역방향으로 달렸다. 창밖의 풍경은 내가 나아가는 방향과 반대로 사라졌다. 건물과 나무와 이름 모를 간이역들이 빠른 속도로 과거가 되었다. 나는 정방향의 시간 속에서 역방향의 공간에 앉아 있었다. 그 부조화가 꼭 시간을 거스르는 것처럼 느껴졌다.
추억은 과거가 되어야만 비로소 완성된다. 미래를 추억할 수는 없다. 그러므로 추억은 언제나 역방향이다. 지나온 길이고, 돌아선 뒷모습이다. 손 쓸 수 없이 멀어진 것들만이 아련함이라는 빛을 얻는다.
언젠가 동대구역에서 검은 원피스를 입고 아이처럼 울던 여자가 있었다. 무슨 사연이었을까. 잠깐 스친 타인의 눈물이었지만, 나는 그녀가 자리를 뜬 후에도 오랫동안 그 울음을 생각했다. 눈물에는 중독성이 있다. 어떤 기억은 전염성이 강하다. 나는 기어이 내 안의 낡은 기억 한 조각을 꺼내어 그 여자와 함께 울었다.
대학 시절, 그가 편입을 하면서 우리 연애는 장거리가 되었다. 기차역은 언제나 우리의 시작과 끝이었다. 다시 만날 날을 기약하면서도, 돌아서는 순간에는 심장이 툭 떨어지는 것 같았다. 그 찢어지는 마음. 사랑하는 사람 때문에 눈물을 흘리던 기억이 이제는 너무 오래되었다.
기차는 어둠 속을 역행한다. 터널을 지날 때마다 창에 비친 내 얼굴 위로 잔상들이 겹쳐졌다. 울며 헤어지던 스무 살의 나. 그 애틋한 고통마저 이제는 희미한 풍경 같다. 그 고통마저 아련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