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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땡복 Feb 17. 2023

왜 내 요구보다 연봉을 많이 주죠?

"땡복씨, 돈 많이 벌고 싶죠?"

[경남사람 서울 상경기]


면접 날짜를 잡고 20만km를 달린 차의 기름을 3/4 정도 채웠다. 돈이 없었던 이유도 있지만 다시 내려오지 않겠다는 나름의 각오가 담긴 주유였다.


서울까지 4시간, 원래 첫 데이트 직전이 가장 떨린다 했던가.

부푼 꿈을 안고 올라간 강남은 차가 많고 화려했다. 경남 사람은 윗 지방으로 갈 때 '올라간다'는 표현을 쓴다. 이 표현을 배울 때부터 내 동경이 시작됐을까?




일단 충격적인 건 주차비였다. '서울은 차만 세워놔도 한 시간에 빅맥을 하나씩 받나?' 집 근처에선 말 그대로 '아무 데나' 세우기 때문에 난생처음 보는 개념이 신기하고 억울했다.

면접 전 정장을 점검하고 마침내 스타벅스 옆 5층 건물 입구에 발을 내디디는 순간 '띵동' 소리가 울렸다.

그렇다. 낮임에도 아무나 들어갈 수 없는 보안시스템을 갖춘 강남의 회사는 내가 사장 얼굴을 보기도 전에 날 감격케 했던 것이다.


사무실에 들어가자 저렴한 믹스커피가 아닌 커피머신이 내뿜는 원두 냄새가 가득했다. 오픈형 사무실엔 개개인마다 TV만 한 모니터를 4개씩 가지고 있었고 중앙엔 번쩍번쩍한 푸른 탁구대가 솟아있었다.

이해를 돕기 위한 사진. 당연히 그 사무실 사진을 쓸 순 없다. 내 기준 멋진 사무실은 이렇다.

"어서 오세요, 땡복씨죠?"


멍하니 사무실에 매료된 날 누군가 불렀다. 맞다, 나 면접 보러 왔다.

왼편 '미디어룸'이 면접실이었다. 4평 남짓한 공간에 나보다 세네 살쯤 많아 보이는 남자가 앉았는데, 그는 본인을 '대표'라 소개하며 날 위아래로 빠르게 훑었다.


면접 자체는 길지 않았다. 특이한 점이 있었다면 내가 대표의 눈을 피하지 않고 계속 바라봤다는 것 정도.

이윽고 이력서의 내용이 사실과 다르지 않음을 확인한 대표가 입을 열었다. "땡복씨, 돈 많이 벌고 싶죠?"

자원봉사센터에 온 것은 아니니 그렇다고 긍정했다.

대표는 "우리 같은 스타트업엔 땡복씨처럼 눈이 살아있는 사람이 필요합니다. 저만 잘 따라오시면 땡복씨는 2년 안에 연봉 2배 이상 받을 수 있을 거라 확신합니다"라는 충격적인 말을 던졌다.


지금 와서 생각하면 연봉이 100만원이 아닌 이상 2년 안에 2배가 오르는 것이 당연히 수상쩍다 생각했어야 하나, 그땐 내 눈을 봐준 대표가 그렇게 고마울 수 없었다.


"얼마 받고 싶어요?"


드디어 나온 그 질문. '마케터로서의 첫 직장이니 2500은 너무 적고 3000은 너무 많은 것 같은데...',

'아니다, 경남에선 2200 주는 곳도 많으니 그냥 2500으로 할까...'

짧은 시간의 내적 갈등을 끝내고 난 "이..이천 팔백..만원 받고 싶스..읍니다"란 대답을 뱉었다.


그러나 그 뒤 이어진 대표의 말은 내게 더한 충격을 주었다.

"땡복씨를 믿고 베팅합니다. 2880으로 하죠"


그 순간 난 적잖은 은혜를 받았다. 그래픽카드 숫자도 아닌데 숫자가 막 왔다 갔다 해도 되나 싶었다. 무엇보다도 경남에서 제대로 된 직장을 구하지 못한 나를 믿고 베팅한다는 대표가 너무나도 고마웠다.




면접이 끝난 후 근로계약서를 후딱 쓰고 보안 시스템을 거쳐 건물을 빠져나왔다. 궁상맞게도, 내겐 그 당연한 근로계약서마저 날 벅차오르게 했다.

여자친구(현 아내)에게 전화를 걸어 드디어 날 인정해 주는 사람이 있으며 경남보다 훨씬 괜찮은 조건에서 일하게 됐다고 신나서 자랑했다.


그렇다. 나 땡복은 드디어 대한민국의 중심, 서울 강남에서 일하는 당당한 서울사람 된 것이다.

이해를 돕기 위한 서울 사진. 서울 사진이란 말이 신기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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