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단 직장이 생겼으니 거주지를 고민해야 하는데, 경기도=서울이란 희한한 인식이 박힌 지방사람은 경기도 끝자락도 나름 괜찮다고 생각해 동부권 모처 친구집에 몸을 의탁했다.
(땡복이 말하는 동부권이란? = 여주, 양평, 하남, 이천, 화성 등 경기도의 동쪽)
특히 이런 현상은 경남에서만 오래 거주하신 어르신들에게서 더 도드라지는데, 으레 경기도에서 왔다 하면 "서울 사람이네, 63빌딩 보고 사나?"란 말을 어렵지 않게 들을 수 있을 터. 기회가 된다면 부산 토박이 지인에게 시험해보시라.
이해를 돕기 위한 해 뜨는 63빌딩 사진. 나 아직 63빌딩 가본 적 없다.
일단 대망의 첫 출근 준비. 장교 출신의 장점이자 단점 중 하나는 10분 전 대기다. 9시 출근이니 8시 45분께엔 보안시스템을 뚫고 사무실에 미리 앉아 좋은 인상을 심어주고 싶었다.
ENTJ 성향의 땡복은 곧바로 시간을 역산했다.
오전 08시 30분엔 직장이 있는 역에 내려야 하고▶가는 데에 1시간 30분이 걸리니 07시엔 기차(여자친구는 항상 전철, 지하철 모두를 기차라 부르는 날 타박하곤 했다)를 타야 하고▶집에선 06시 30분에 나가야 한다. 일단 군인 정신으로 06시에 기상해서 씻고 나가면 되겠다는 나름의 계산이 섰다.
허나 경남사람 땡복은 지하철엔 '시간표'란 게 있는 걸 까맣게 잊어버렸고, 여긴 6시 10분 기차를 못 타면 30분을 더 기다려야 해 어쩌다 보니 내 기상시간은 5시 30분이 되어버렸다.
한 겨울 혹한기 훈련 수준의 이른 기상. 막상 닥친 쉽지 않은 일정에 '서울 사람은 다 이렇게 사나, 참 열심히들 산다. 그러니 수도권이 이렇게 발전했겠지?'란 근거 없는 생각까지 해버렸다.
출근 당일. 난 기차(전철이나 지하철이다)를 타고 출근하는 동안 무려 3개의 지자체를 지나는 환상적인 경험을 할 수 있었다. 내게 경기도는 작은 유럽이랄까. 출근하는 각양각색의 사람을 보는 재미 또한 무척 좋았다.
그렇게 우여곡절 끝에 도착한 사무실. 일단 '무료 아메리카노'를 한 잔 내린다. 선반 아래 있는 커피과자는 눈치상 먹진 못했으나 보는 것만으로도 든든했다.
이름마저도 멋진 '스타트업'. 6명 정도 되는 정예직원이 모두 반갑게 인사하고 업무를 시작할 준비를 마쳤다.
그런데 이상한 점이 있지 않은가? 그렇다. 난 이곳에서 무얼 하는지 명확히 모르고 입사했다. 그저 마케팅이란 단어에 뭉뚱그려진 무언가가 명시됐을 뿐이다.
오픈형 사무실에서 대표를 비롯한 직원 일동은 9시가 되자마자 카카오톡 창을 20개 넘게 띄우곤 1인 20역을 하기 시작했다. 현실은 뷰티인사이드가 아니다. 그들이 하는 행동을 5분 정도 지켜보자 내 심장은 부산에서처럼 다시 첨벙거렸다.
그렇다. 여긴 전화로 정성스레 보이스피싱을 하는 게 아닌 카카오톡으로 피싱하는 좀 더 발전된 실내 낚시터였다. 난 피싱업무를 피해 433km를 운전해 색다른 피싱을 하는 곳으로 온 초보 낚시꾼이었던 것이다.
뷰티인사이드도 아닌데 한 정신에 몸이 여러 개인 충격적인 경험. 물론 이해를 돕기 위한 충격적인 이미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