떨어질 수 없는 평행선
<욱아일기>는 아이를 키우기 시작하는 때부터 생각했던 제목이다. 처음엔 마음처럼 되지 않는 ‘아이’에게 욱하게 되어 욱아일기라 지었다. 그러나 곰곰이 생각해 보니 결국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나’에게 욱하는 것들이었다. 돌이켜보면 그런 ‘욱!’하는 순간들이 꽤나 많았다. 꼭 육아를 하지 않더라도 유년 시절부터 내 속에는 ‘욱’이 많았다. ‘화’와는 조금 달랐다. ‘화’는 내지른다는 느낌이 있지만 ‘욱’은 혼자 버럭 하고는 이내 속으로 삭이기 때문이다. 앞으로 쓰고자 하는 글은 화 한 번 제대로 내지 못한 나의 욱들을 모아 만든 글이다.
나는 생각한다, 엄마와 나는 늘 평행선이라고. 가치관이나 생각이 안 맞아도 이토록 안 맞을 수가 없다. 엄마 입장에서는 당신 속으로 낳은 자식이 이렇게나 다르다고 생각하실 거다. 그러나 내 입장에서는 당신 속으로 낳은 자식을 좀 더 이해해 줄 수는 없었나 싶다. 아, 단 하나. 쇠줄 같은 고집은 닮았다. 둘 다 각자의 생각을 굽힐 마음은 추호도 없으니 말이다.
내 꿈은 늘 ‘밥벌이가 되느냐, 되지 않느냐.’에 막혔다. 장래희망이 밥 ‘벌어’ 먹는 일이면 좋은 희망이고, 밥 ‘빌어’ 먹는 일이면 아주 나쁜 희망이 된다.
중학교 때 일이다. 미술 선생님이 부르셨다.
“예고 진학은 어떠니? 네 그림 실력이 너무 아깝다. 예고에 진학하면 선생님이 물심양면 뒤를 봐줄게. 집에 가서 부모님과 상의해 봐.”
어릴 때부터 그림 그리는 것에 자부심이 있었고, 당연히 내 꿈은 늘 '화가'였다. 그런데 미술 선생님이 예고 진학 권유와 더불어 뒤까지 봐주시겠다니… 터질 것 같은 마음을 안고 한달음에 집으로 달려가 엄마에게 이 모든 말을 전했다. 이 정도면 엄마 역시도 '고민'이란 걸 조금은 하실 줄 알았다. 하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1초도 걸리지 않았다.
“미술? 흥, 그거 밥 빌어먹는 거야. 우리 집은 그런 거 밀어줄 돈 없다. 미술로 성공? 유학 갔다 와도 성공을 보장 못 하는데? 쓸데없는 짓거리 하지 말고, 미술 같은 건 꿈도 꾸지 마라."
정말 바늘로 찔러도 틈 하나 없을 것 같은 대답이었다. 아니, 왜 본인의 생각 외엔 고민조차 하지 않는 걸까. 내가 보기엔 우리 집 형편이 그리 찢어지게 가난한 것도 아니었다. 그리고 그땐 선생님의 인정을 받았다는 사실이 무엇보다 기뻤다. 엄마에게도 인정의 대답을 기대했다. 이를테면 “미술 선생님이 그렇게까지 말씀하셨단 말이야? 우리 딸 정말 대단한데?” 류의 말들 말이다. 드라마를 너무 많이 봤던 탓일까? 아니면 그때까지 우리 집안의 분위기를 덜 파악했던 걸까? 그렇게 첫 번째 꿈은 바로 차단당했다.
일반고 진학 후 나는 두 번째 장래희망으로 ‘작가’를 꿈꿨다. 우선 재료비나 배우는 값이 드는 일이 아니라 이 꿈은 품고 있기에 걸림돌 될 것이 없었다. 문제는 대학 진학을 앞두고 있을 때였다. 당연히 ‘국문학과’들을 썼다. 그때 엄마는 또 말했다.
“작가? 흥, 그거 밥 빌어먹는 거다. 작가는 아무나 되는 줄 알아? 정 글이 쓰고 싶으면 회사 다니면서 취미로 글 써. 작가는 무슨… 평생 빌빌 거리고 싶어?”
그때까지 난 장래희망에 ‘하고 싶은 것인지'만 생각했지, '밥벌이'랑은 결부시켜 본 적이 한 번도 없었다. 하고 싶은 것을 하는데에 ‘돈'이란 단어도 들어가야 하는지 몰랐다. 그렇게 두 번째 꿈은 '돈을 잘 벌 수 있는 일인가?'에 대한 대답을 하지 못한 채 또 무산되었다.
그 뒤 진학한 과는 ‘밥벌이가 잘 될’ 치위생과였다. 그때부터 의욕 자체가 사라졌다. 과 공부가 싫어 시험을 째는 바람에 유급을 맞아 3년제를 4년 동안 꾸역꾸역 다녔다. 졸업 후 취업한 치과 역시 의욕이 있을 리 만무했다. 어느 치과도 내가 있을 곳이 아니란 생각이 들었고, 정이 들지 않았다. 게다가 어딜 가든 여초 사회에 있는 여자들의 기싸움, 예민함 등으로 항상 서슬 퍼런 분위기였다. 몇 달을 일하다 그만두고, 그만두고를 반복했다. 결국은 치과를 아예 그만두었다. 집에서 쉬는 날이 길어지니 엄마의 폭언이 쏟아졌다.
“도대체 내가 너 뭐가 모자라게 키워서 이러고 있는 건데? 사지육신 멀쩡해가지고 왜 일을 못하겠냔 말이다! 왜 남들 다 다니는 직장 하나 못 다니고 맨날 빌빌거리고 살아? 옆집에 ㅇㅇ(지적장애자이다)도 공장 다니면서 제 엄마한테 용돈까지 준단다. 내가 용돈을 달랬어? 그냥 니 밥벌이는 네가 하란 말이야! “
귀를 닫아도 가슴을 갈기갈기 난도질해 대는 폭언 때문에 결국 집을 뛰쳐나갔다. 그리고 엄마의 말을 계속 곱씹었다. 매번 한량 취급을 받고 있었지만 그 당시 누구보다도 괴로운 건 바로 나였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늘 쫓기는 마음이었다. 그러나 이내 ‘인생은 돈을 벌어야만 유효한 걸까?’ 란 생각에 헛웃음만 나왔다. 왜냐하면 이 날 엄마의 폭언으로 나의 질문에 대한 답을 이미 들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엄마와 나는 영원히 만날 수 없는 평행선일 수밖에 없음을 깨달았다.
얼마 전, 6살 배기 딸이 나중에 커서 화가가 되고 싶다고 했다. 단 한 번도 딸에게 화가가 돼라 한 적도 없는데 얘는 왜 또 나랑 똑같은 말을 할까? 역시나 핏줄은 무섭다는 걸 깨달은 동시에 엄마의 신념도 무섭다는 것을 다시금 알았다. 엄마에게 말했다. 당신의 손녀가 화가가 되고 싶다 했다고. 난 적어도 엄마가 6살짜리가 말하는 꿈에는, 자식이 아닌 손주가 말하는 꿈에는 지지하는 말을 할 줄 알았다. 이번에도 엄마는 단숨에 대답했다.
“화가? 에그그… 그거 밥 빌어먹는 건데…”
그런데 이상한 것은 이런 엄마에게 늘 인정받고 싶어 했던 내 모습이다. 작가가 되고 싶어도 ‘돈 잘 버는’ 작가가, 사업이 하고 싶어도 ‘돈 잘 버는’ 사업가가 되고 싶었다. 일생에 한 번은 엄마의 인정하는 말이 듣고 싶었다. 아니, 듣고 싶다고 생각한 적은 없었는데 내 행동을 보니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제는 엄마와 서로 의미 없는 소모를 하지 않고, 영원히 만날 수 없음을 인정하려 한다. 빌어먹는 것과 벌어먹는 것의 간극에서 벗어나고자 한다. 각자의 고집을 닮아 우린 영원히 만날 수 없을 것이다. 교차하거나 접점을 이룰 순 없어도 옆에 나란히는 서 있겠지. 평행선, 어쩌면 나란해서 결코 멀어질 수는 없다는 것에 애써 위로해 보기로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