뿌예지고 싶은, 그러나 선명한
매년 벚꽃이 흐드러질 때면 아버님을 떠나보냈던 아침 풍경이 떠오른다.
깜깜한 장례식장 안에만 있다가 눈부신 햇살을 며칠 만에 보던 그때, 하늘엔 만개한 벚꽃 잎들이 꽃비를 내리고 있었다. 내 가슴속은 슬픔으로 가득 찼는데, 눈에 담긴 풍경은 아름다음으로 그득 차 있었다. 내 마음과는 다르게 바깥은 너무나도 따뜻하고 푸근했다. 이런 따스한 봄날에 아버님은 왜 차가운 관속으로 들어가셨는가. 머릿속엔 대답 없는 물음이 가득한데 하늘은 천진난만하게 해맑았다.
그 뒤로 벚꽃이 흐드러질 때면 아버님 가시던 길이 함께 떠오른다. 누구보다 나에게 봄은 처절하다. 아름답던 벚꽃은 자신의 따사로움을 자랑한 뒤 낙화한다. 떨어지는 것은 모두 아픔이다. 현실에서 마음처럼 되지 않는 것들은 모두 추락하고야 마니 말이다. 이를 지켜보는 일은 여전히 지옥이고, 고통이고, 비애이다. 하지만 떨어지고픈 마음을 부여잡고 다시 박차고 올라가 살려한다. 살아서 아버님의 아픔을 기억하려 한다. 봄마다 아름다운 벚꽃 잎 속에 아버님을 향한 그리움을 꾹꾹 담아놓았기 때문이라고 하자. 어김없이 찾아오는 찬란한 봄날, 매년 이렇게 떨어지는 벚꽃 잎을 보며 아버님을 그리워하고 있다.
시아버지, 자살.
몇 해 전 시아버지를 자살로 잃었다. 이 말을 꺼내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다. 왜냐하면 남편과 시댁 식구들이 바쁘게 살며 겨우 떨쳐내고 있는데, 이 말을 다시 꺼내면 그 노력들을 망치는 짓 같아서이다.
사실 이 두 개의 단어를 꺼내는 순간, 가족 모두의 치부가 드러나는 것 같아 어디 가서 말도 못 했다. 죄도 아닌데 꼭 죄인처럼 함구하게 되는 이 일을, 나라도 당당히 드러내고 싶다. 이 모든 일은 당신의 치부도, 우리의 치부도 아니라며 말이다. (사실 이렇게라도 말하며 당당해지고 싶은 마음이 더 크기도 하다.)
그렇지만 나의 이 글은 가족들에게 독이 될까, 치유가 될까? 글을 쓰는 내내 의문이다. 지금도 남편에게 이런 글을 썼다고 고백하지 못하는 모습을 보니 더욱 그렇다. 그렇지만 시아버지란 존재가 내 가족의 이야기가 되기도 하기에 조금은 용기 내 본다.
그 당시는 코로나가 막 생기기 시작해, 사람들이 한 달 가까이를 밖으로 나가지 못할 때였다. 그리고 난 하루 종일 18개월 아이와 함께 코로나로 한 달 내내 집안에만 지내며 우울증까지 생겨 약도 복용 중이었다. 지옥 같은 하루를 겨우 끝내가던 중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왔다. 일요일 저녁 8시였다.
“ㅇㅇㅇ 씨 큰 며느님 되십니까? 시아버지 되는 분께서 xx대학병원 응급실에 계십니다. 빨리 오셔야겠습니다.”
듣자마자 보이스 피싱 의심이 들어 얼른 남편을 바꿔주었다. 그런데 생각보다 너무 심각하게 전화를 받는 것이었다. 전화를 끊더니 나보고 얼른 옷을 입으라 한다. 병원에 가봐야겠단다. 시아버지께서 5층 건물에서 뛰어내리셨단다. 난 이때부터 정신이 몽롱해졌다. 진짠지 가짠지 구분을 하고 싶은데, 상황은 너무 급박하게 돌아갔다.
가는 내내 아무 말이나 해댔다. 말은 호기롭게 하는데 이상하게도 다리 위에 둔 두 손은 자꾸만 떨렸다. 다리도 조금씩 떨렸다. 그저 누군가의 짓궂은 장난이기만을 바랐다. 이런 내 옆에서 남편은 담담히
“5층이면… 가망성은 없겠네.”
라고 힘없이 한마디를 내뱉었다. 나는 그런 남편에게 길길이 화를 냈다. 평소 감정적인 나에 비해 이성적인 남편이라 좋았는데, 이 순간만큼은 너무나도 싫었다. 왜 벌써 단념을 하고 있단 말인가. 이럴 땐 이성적인 것도 비인간적으로 보였다.
그 와중에 내 입은 쉴 새 없이 떠들어 댔다. 조용히 있으면 이 일이 기정사실이 될 것 같아서였다.
도착한 병원에는 시댁 식구들이 모두 와 있었다. 그때까지도 ‘지금 여기 꿈속인가? 요새 우울증 약을 먹었더니 정신이 이상해 진건가?’ 라며 상황 파악이 안 되었다. 그런데 모두의 표정이 좋지 않았다. 응급실 바닥엔 피가 흥건했다. 많은 의료진들이 커튼 안 침상에만 매달려 있는 게 보였다.
그 때 자신을 형사라고 소개하는 사람이 우리에게 다가와 가족 중 한 명이 환자의 얼굴을 확인하라 했다. 남편이 대표로 응급처치 중인 아버님 쪽으로 갔다. 끄덕이는 뒷모습이 보였다. 그러자 형사는 아버님의 소지품과 함께 유서인 것 같다며 종이를 건네주었다. 정갈하게 접힌 종이를 펴기 전까지만 해도 아버님의 필체가 아니길 바랐지만, - 평소 강직한 성격을 보여주듯 힘 있게 써 내려간 아버님의 필체가- 야속하게도 맞았다.
유서엔 모두에게 미안하다는 내용이 가득했다.
그리고 가족 한 명 한 명 이름이 적혀 있었다.
첫 손주인 내 아이의 이름 뒤엔 사랑한다고 적혀 있었다.
마지막은 아버님 친구분에게 이 모든 일의 뒤를 부탁한다는 내용이었다.
뭔가 정황은 딱딱 맞아떨어져 가는데 내 머리는 자꾸 아닐 거란 생각만 했다.
한참을 심폐소생술과 에크모까지 돌리다 한 의사가 나와 말했다. 피범벅인 신발을 신은 채로
“환자분이 수술실에 들어가야 할 것 같습니다. 그러나 상황은 좋지 않습니다. 피를 너무 많이 흘리셨고, 저희한테 왔을 때는 시간이 이미 꽤 지나 있었습니다.”
그렇게 수술절차를 밟고 수술 중 사망 동의서까지 쓴 다음 수술실로 향할 때, 그때 아버님의 얼굴을 처음 보았다. 얼굴이 많이 바뀌어 있었다. 특히 턱 한쪽이 많이 부어 있었다. 너무 이질적인 이목구비에 더더욱 내 정신은 아득해져 갔다. 아버님을 데려가는 침상 밑으로 피가 또 줄줄 흘러내렸다. 아버님의 옆구리 쪽에서 피가 콸콸 쏟아지고 있었다. 수술실로 들어간 그 길은 핏자국으로 선명해졌다.
동시에 그 뒤를 쫄래쫄래 따라가며 대걸레로 피를 닦아내는 청소 아주머니가 말했다.
“에이씨. 방금 바닥 다 닦았구만 피를 왜 이리 질질 흘리면서 가!! 하여간 지네가 안 닦는다고 이렇게 흘리면서 다닌다니까! 으휴!!!”
아버님에겐 생명이던 그 피가 청소원에게는 한낱 얼룩에 지나지 않았다. 신경질적으로 대걸레를 훔치며 지나가자 선명한 핏자국 길이 조금씩 사라져 갔다. 그 길이 아버님의 마지막 길이었다는 것을 알려주듯…
남편은 초점 없는 눈으로 중얼거렸다.
“가망이 없겠어. 이미 돌아가신 지 꽤 됐구만..”
남편은 그냥 포기한 상태였다. 아버지의 얼굴이 이미 잿빛인, 핏기 하나 없다며 말이다. 남편의 이런 말에 나는 너무 화가 치밀었다.
“아! 제발 재수 없는 소리는 좀 하지 말라니까? 그런 말 할 시간 있으면 아버지 살아나시라고 기도나 해!!”
지금 생각해 보니 그때 나의 이 말은 배려 없이 피를 훔쳐대던 청소원 아주머니의 신경질적인 말과 다를 바가 없었다.
수술 준비시간보다 수술 들어간 시간이 더 얼마 안 되어 수술방을 나온 집도의는 우리에게 말했다.
“죄송합니다. 저희가 최선을 다했지만 돌아가셨습니다. 사망 시각은….”
‘아니, 수술한 지 10분은 지났나? 개복은 하고 말하는 건가? 뭐 들어가자마자 나와서 사망시각을 말하는 거야?’
왜인지 모르게 자꾸 매 순간순간마다 화가 났다. 왜냐하면 자기네끼리 이상한 연극을 하는데, 그 연극 내용이 너무 짓궂어서 화를 내야만 할 것 같아서였다.
그런데 남편은 알고 있었다는 듯 의사의 말에 끄덕이기만 했다. 이전까지 침착함을 잃지 않았던 어머님은 그제야 바닥에 주저앉아 소리 내어 엉엉 우셨다. 서방님과 동서는 고개를 떨구고 울고 있었다. 이때 나는 어떻게 있었는지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자꾸만 화가 나다가 생각이 멈추고, 화가 나다가 생각이 멈추고를 반복하고 있었다. 그러면서 속으로 중얼거렸다.
‘하나님, 오늘 장난이 너무 짓궂으셨지만, 이거 다 현실이 아니라 하고, 모두를 제자리에 돌려놔 주세요. 그러면 저 하나님께 원망 안 할게요. 진짜예요. 너무너무 놀랐지만 진짜만 아니면 돼요.’
시간이 흐른 지금도 '아버님이 뛰어내리시기 전, 단 1분 전만이라도 내가 아버님을 발견하였다면'이라는 상상을 자주 한다. 평소에 과거로 되돌아가고 싶다 생각을 일절 하지 않는 편인데, 그 일 이후론 과거로 되돌아가고 싶단 생각을 정말 자주, 아주 간절히 한다. 사실 이 글도 개연성도, 재미도 없는 소설이었으면 한다. 내 상상이길 여전히 바란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아버님을 선명히 기억하려고 써 내려간 글인데 머릿속은 안개가 더 끼고 말았다.
아니, 사실은 기억들이 너무 선명해서 뿌연 안개를 잔뜩 끼게 만들고 싶은 걸까?
여기까지가 아버님의 사망선고 시각의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