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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달블루 Jan 25. 2022

초대

Volendam

 아무것도 안 할 수는 없다. 좀 더 이른 시간에 알람을 맞춰 두었다. 예전부터 가보고 싶던 네덜란드 전통 훈제 장어(Paling) 집을 가기로 한다. 


가끔 여기서 한국인을 만나게 될 때가 있다. 어색한 공기 속에 네덜란드에는 왜 왔냐는 시답잖은 질문을 받는다. 대답할 게 없다. 나는 선착순(광클)으로 뽑는 네덜란드 워홀 제도에 아무 생각 없이 임했다가 덜컥 되어 버렸기에,, 하지만 아무 답도 하지 않기에는 예의가 없으니 대외적인 명분을 만들었다. 


“이 나라의 전통 훈제 장어 요리랑 전통술 예네바르를 좋아합니다.” 묻는 말에 정확히 대답한 것은 아니지만 다들 대충 넘어가 준다. 하지만 이 대답이 누군가에게는 꽤나 궁금한 토픽으로 변할 때가 있다. "네덜란드 훈제 장어가 유명해요? 예네바르가 뭐예요?" 등의 질문을 연달아 받게 되면 난처해진다. 누군가 나에게 궁금한 게 있다는 것은 감사한 일이지만, 나같이 아무 생각이 없이 내뱉은 말에 호기심을 갖고 달려들면 무슨 거짓말이라도 해줘야 할 것 같다... "아, 제가 훈제 장어랑 예네바르 사업을 한국에서 좀 해볼까 생각하거든요." 100% 거짓말은 아니고, 99% 정도 거짓말이랄까. 정말 마음속 깊은 곳에서 정말 찰나에 그 생각을 해본 적은 있으니까. 대충 상황을 무마한다. 


나의 99% 거짓된 생각의 연장선으로, 나는 실제로 뭔가 해야 할 것만 같았다. 이 나라 전통술 예네바르는 한국인에게 잘 알려져 있지는 않지만 이 쪽에서 엄청 유명한 술이다. 돈 없는 양주 애호가들에겐 엄청 각광받는 주류이기도 하고 술이 갖고 있는 역사 스토리도 흥미진진하다. 훈제 장어도 마찬가지다. 장어라면 남자들이 그렇게 달려들어 술안주로 먹지 않나. 기름기 줄줄 거리는 이 특이한 생선을 누군들 안 좋아할까. 나는 장어를 참 많이 좋아한다. 내뱉어 버린 거짓말에 대한 부채감으로 볼렌담에 위치한 장어집을 가기로 했다. 정말 괜찮으면 한국에서 네덜란드식 훈제 장어 요리를 팔 생각이다. 


볼렌담을 간다. 암스테르담에서 1시간 조금 넘게 메트로와 버스를 타면 도착할 수 있다. 날씨가 엄청 흐리다. 바람이 엄청 불어 앞으로 갈 수가 없다. 배는 어떻게 가고 있는지.

                        

그 유명한 네덜란드식 훈제 장어 집에 도착했다. 이 가게는 5대째 내려오는 훈제 장어 장인의 집이다. 시중에서도 흔히 먹을 수 있는 훈제 장어지만 거의 항상 비린맛이 난다. 이 가게에서는 어떤 훈제 장어가 있길래 그리도 유명할까 궁금했다. 

가게 안에 들어가면 식당이 있고 그 너머에는 작업장이 있다. 나는 작업장을 구경키로 했고 사장 할아버지가 나와서는 이것저것 설명해 주었다. 지금은 한창 도라데(돔)을 훈제 중이다. 25시간 동안 훈제를 해야 하고 지방이 타면 장어가 드럼 스틱이 된다며, 불에 타지 않게 조절하는 방법 등을 간단하게 알려주었다. 더 안쪽에는 6명 정도의 일꾼들이 훈제가 된 장어에서 뼈를 발리고 있었다. 


나는 당차게 뻥을 쳤다. "우리 아버지가 한국에서 가장 큰 장어 집을 운영하신다. 나는 장어 좋아한다. 아버지가 가업을 이으라는데 고민이 참 많다. 나는 어째야 할까?" (나는 왜 항상 이딴 식일까, 그래도 이 또한 100% 거짓말은 아니다.) 


5대째 내려온 저 흰머리 아저씨는 내게 관심을 보인 다. 옆에 사모님으로 추정되는 아주 머니는 뼈를 막 바른 장어 한 마리를 내 입에 넣어 주셨다. 한국하고 맛이 어떻게 다르냐고 묻는다. 굉장히 깊고 심도 있게 음미하는 냥 입을 오므렸다 폈다를 반복하고 미간을 좁혔다. 내 무거운 안경을 한 번 스윽 올려준 뒤 이제야 심오한 맛 평가를 다 마친 듯 웃으며 말했다. "베리 딜리셔스"


할아버지와 사모님은 활짝 웃는다. 나는 한국의 장어와는 조금 다른 맛이라고 설명했고 나 또한 한국 장어를 선보이고 싶다고 말했다. 내가 건방지게 쳐버린 뻥 덕에 장어로 하나가 되었다. 좀 더 장어에 대한 정보를 물었다. 우선 어디서 잡히는 장어냐고 물었다. 원래는 댐의 안쪽에 있는 에이설 호에서 직접 잡아 훈제하던 것이 정통이라고 한다. 하지만 댐 안 쪽의 장어는 씨가 말랐다.  어부의 도시로 유명했던 볼렌담이 지금은 명맥을 유지하지 못한 채 관광도시의 성격만 강하게 띠고 있는데 물고기들이 다 잡혀버려서 그렇다. 큰 바다 같이 생긴 곳이 사실은 갇혀있는 바다 혹은 호수라고 하니 슬퍼 보이기도 했다. 날씨도 안 좋았고. 

볼렌담

미국 동부 Sargasso 해안에서 장어가 새끼 때 부화한다. 그리고선 북대서양 방면으로 5000km를 헤엄쳐 에이설 호에 들어온다. 그 장어들은 성장해 다시 Sargasso 바다로 넘어가 알을 낳고 죽는다. 이 유럽 장어들의 인생들이 굉장히 미스터리 한 스토리를 갖는데, 하나는 항해법이요 하나는 항해 기간이다. 이 미스터리하고 과학적인 이야기는 인터넷을 뒤지면 나오니 생략하고. 현재는 Sargasso에서 북대서양으로 넘어오는 생선들을 중간에 포획하는 방식으로 장어를 잡는다고 한다. 성년이 되지 않은 장어들을 잡아 네덜란드 양식장에서 마저 키우고 그걸 훈제시키는 것이다. 볼렌담 전통, 100%의 자연산 장어는 이미 전 세계 어디에서도 맛볼 수 없으나 98%로의 전통 훈제 장어는 세계에 서 유일하게 이곳 Smit Bokkum에서 맛볼 수 있다. 원래는 이 볼렌담에 훈제 장어집이 즐비했으나 몇십 년 내에 모두 망해버렸다. 혼자 살아남은 이 가게가 안 소중할래야 안 소중할 수 있을까. 젊은 사람들은 또 이 일을 하고 싶어 하지 않는다고 한다. 사장 할아버지도 자신의 아들이 이 일을 할지 잘 모르겠다고 하니,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지 않겠나. 


할아버지와 얘기를 끝내고 음식을 추천해 달라고 하니 훈제 플레이트를 추천해 주었다. 함께 할 음료도 추천해달라고 하니 옆에 있던 아줌마 직원이 굉장히 자랑스럽고 자신 있게 “우리 로컬 맥주 팔아!”라고 했다. 할아버지가 인상을 찌푸리더니 “아니 아니, 샤도네를 마셔야지 이 양반아,,, 쯧”라고 했다. 아줌마의 머쓱한 표정에 미안하고 고마웠다. 

할아버지가 장어 수프를 서비스로 주셨다. 샴페인 잔에 뜨끈뜨끈한 더치식 장어 수프를 담아주었다. 유럽에선 수프가 미적지근한데 샴페인 잔에 뜨겁게 수프를 내주니 너무 좋았다. 속이 확 풀리는 기 분도 들고 해장하는 기분도 들고. 수프가 Tea로서 존재하는 느낌 같달까. 재료들을 모두 갈아서 만든 이 장어 수프는 향은 장어탕 이요 식감은 뜨거운 미숫가루? 한참을 맛있게 잘 즐기고 군대 간 동생 생각에 홀로 에스프레소 마끼아또를 시켰다. 내 동생이 피렌체 가이드하던 시절 허세롭게 시키던 메뉴다. 커피를 홀짝이며 비 오는 거리를 보고 있는데 할아버지가 내 앞에 자연스레 앉는다. 다리를 꼬며, 한쪽 팔을 다른 쪽 의자 뒷 받이에 올리며 조금은 거만하고 자신감 있게. 


혼자 술 먹으러 작은 포차나 식당에 가면 서비스 안주를 내오는 사장님이 있다. 그때 사장은 장사는 신물 이난 표정, 그나마 재밌어 보이는 손님하고 수다나 떨고픈, 그 심심함을 달래고 싶으면서도 서비스 안주와 자신의 요리실력을 생색내고픈 모습을 하곤 한다. 그 전형적인 행태가 한국 사장님들의 모습인 줄 알았는데 내 앞에 백인 할아버지가 그러고 있으니 신기하고 재밌었다. “저 훈제하는 과정 직접 보고 싶어요.”라고 말하니 거만한 듯 씩 웃더니 담주 금요일 아침 5시 까지 오라고 한다. 





한 주가 지나고 2월 14일 금요일 발렌타인데이가 되었다. 약속은 15일 아침 이지만 이른 새벽 5시에 만나기로 했기에 전날 미리 가 있기로 했다. 볼렌담에서 가장 값싼 호텔에 도착했다. 후딱 하룻밤을 잤다. 이 그지같은 발렌타인 데이를 빨리 넘기고 싶었다. 티비에서 '첫키스만 50번째' 영화를 틀어줬고 나는 외로운 호텔 방에서 50번의 키스를 관람하다 잠들었다. 


어둑어둑한 새벽. 알람이 울리고 나는 부랴부랴 장어집으로 걸어갔다. 공장쪽 문을 두드렸다. 3명의 할아버지가 있었는데 다 똑 같이 생겼다. 진짜 똑같이 생기고 똑같이 유럽 만화에서 튀어나온듯한 할방구의 모습을 하고 있다. 셋다 똑같은 작업안경을 쓰고 있었다. 셋다 똑같이 구부정한 자세로 왔다갔다 하고 있다. 문을 두드린 나를 보는 표정 또한 똑같았다. 그러더니 저 안쪽에 있는 사장한테 외친다. ‘코리아! 코리아!’ 생각외의 반응 이었다. 장어장인이 내가 오늘 방문할 거라는 사실을 잊지는 않았을까 걱정했었다. 하지만 나를 본 적도 없는 일꾼들이 나를 보고는 사장에게 "코리아! 코리아!" 라고 해주다니. 오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셋다 똑같이 외치는 코레아 코레아 코레아 의 하모니 속에서 장인 할아버지가 등장한 다. 지금 막 짚에 불을 넣었다고 한다. 어두 컴컴한 새벽공기를 뚫고 굴뚝에선 소나무 톱밥타는 냄새가 널렁여 간다. 인상깊은 장 면이다. 이 새벽의 공기와 훈제연기의 냄새 가 대조되는 공기의 느낌을 화면에 담고 싶었다. 아름답고도 낭만스런 장면을 감상했다. 


할아버지와 3시간 가량 축구 얘기를 하며 노동을 도왔다. 짚톱밥을 갈아주고 문을 열어주고 하는 단순하고도 누구나 할수있는 일만 도왔다. 좀 더 도와보겠다고 오지랖을 부리는 것 조차 죄스러워 가만히 귀신처럼 옆을 지켰다. 사실 오늘의 내 컨셉이 있었다. '한국에서 온 이 아시아 청년은 아무말도 하지않고 뭐가 그리 궁금한지 몇시간을 가만히 내 옆에 있었다.' 라고 얘기되길 바라며 심오하고 진지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아 힙스터로 전락하는 내 모습을 보아라.. 장어 뿐만 아니라 도라데(돔)와 베스, 오리가슴도 훈제되고 있다. 짚으로 뚝뚝 떨궈지는 물고기들의 지방. 그 지방이 떨궈질때 마다 반짝 거리는 짚속 불의 모습은 마치 금같았다. 노오란색의 반짝반짝 하는 금. 


날씨도 좋다. 새벽 항구에 부끄럽게 올라오는 햇빛이 너무 예쁘다. 훈제작업이 끝나니 9시정도가 되었다. 아침식사를 하자며 장어 2마리 돔 한마리 베스 한마리 오리가슴 몇조각을 들고 책상에 펼친다. 장인 할아버지는 손으로 생선의 뼈를 발리고 나와 나눠먹자고 권한다. 서로 손에 침을 묻혀가며 물고기의 살들을 파먹고 있다. 정말 황홀한 아침식사였다. 우리나라의 찌개문화가 서로의 침을 음미 한다며 한국적인 식문화를 이야기한 칼럼을 읽은적이 있다. 근데 그거 한국에만 있는게 아니었다. 얻어먹은 생선들을 식당메뉴로 환산하면 15만원 정도의 값이 나온다. 이 경험은 돈주고도 못산다! 돈을 초월하는 경험, 흔히들 여행의 진가로 얘기되는 순간을 경험하고 있다. 아침식사를 마치고 커피를 한 잔 얻어 먹는다. 슬슬 식당직원들이 출근한다.




귀한 초대를 받은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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