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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달블루 Feb 14. 2022

초분 (금오도)

Geumodo

기억이 흐린 어떤 한 사건을 두고 자꾸자꾸 곱씹을 때가 있다.

사건을 사건으로 규정지을 때 사건은 죽음을 맞는다. 그래서 그 사건을 곱씹는 행위, 기억하는 행위 자체가 그 사건에 대해 애도를 표하는 기분을 들게 한다. 나의 잘못된 과거, 혹은 서툰 과거, 그로 인해 발생한 그때의 그 사건. 기억.


유언은 사람이 '죽기 전에 하는 말'이다. 죽기 전에 하는 모든 말은 유언이 된다. 삶 자체가 유언 일지도 모른다. 거스를 수 없는 기억을 나의 삶과 죽음으로부터 분리시키는 행위가 사건을 사건화 하는 것이다. 사건화 하는 것은 가혹한 행위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일어난 일을 정지시키는 것이니까. 어디로부터? 지금으로부터 단절. 


난 죽어도 지금이 싫다. 지금은 멈춰있는 것 지나가지 않는 것. 지금이라고 묶어 일컫는 모든 것. 지금의 상황. 지금의 현실. 지금 당장 해야 하는 모든 것. 당연하게도 ‘지금’은 빨아도 빨아도 지워지지 않는 흰 티셔쓰에 미운 얼룩. 


두려움과 지루함은 같이 오지 않지만 순서를 지킨다. 그 사이사이에 단절을 만들어줄 어떠한 사건들. 죽음들.


사람들의 소리가 내 음악을 방해했다. 음악을 꺼야 하는지 그런 고민을 하고 있었다. 안과 밖을 나누 자면 안은 싫었고, 밖은 좋았다. 밖에 나가 밤바다를 보았다. 듣고 싶은 소음만 들렸다. 


밤바다의 매력은 ‘끝없음’을 느끼는 것이 아니라 ‘끝’을 인지하지 못하는 것에 있다. 힘차게 뜬 눈에 비해 가시거리의 평범한 직감마저 절망되는 순간을 기억한다. 취한 눈이 안간힘을 쓰고 이 밤의 기억을 붙잡으려 애를 쓴다. 어떤 듣기 좋은 소음이 내게 안온한 기분을 느끼게 하는지. 나는 소리도 잊었고 기억도 잊었지만 마음을 기억한다. 끝을 인지할 필요가 없는 이 밤바다의 어떤 마음을.



어디선가 시끄럽게 조잘거리는 부표의 불빛. 여기가 어디라는 건지 잘 안 들렸지만, 계속해서 부표의 불빛들은 내게 고함을 질렀다. 포기하라고. 무엇을 포기해야 했을까.


난 그 날밤에 14번의 아해였을까. 왜 그렇게 두려웠을까. 무엇이 그렇게 두렵고 달콤하고 짭짤했을까. 반복하고 있다던 어떤 이야기. 인간의 욕망은 반복되었고 실수도 반복되었고 절망도 희망도 반복되었으며 사람은 태어날 때부터 나쁘다고, 자기 자신도 아직도 나쁘다고 말하는 설화 전설 신화. 얼마나 벗어나고 싶었기에 그런 슬픈 이야기를!. 그런 바보 같은 이야기를!... 그런 아픈 이야기를!.....





조잘거리는 부표의 불 빛에게 쌍욕을 퍼부으니 조용해지더라. 다시 한번 모두에게 묻고 있었다. ‘끝’을 삼킨 질척한 밤바다에게 물었다.  내가 왜!..


다정한 손을 붙잡고 밤바다에 묻혀 죽은 듯이 잠들고 싶었다. 뽀글뽀글 공기를 수면 위로 보내며 내 몸을 가라앉혀 시원하고 청량한 심해에서 또 홀로 사랑에 빠지고 싶었다. 끝을 인지할 필요가 없던, 밤바다 보다 슬프고 그리운 살결에서, 외로운 향기를 맡으며, 다 포기한 듯 쿨쿨. 




여수에서 배를 타고 금오도에 들어갔다. 금오도에 들어가는 배는 끼익 끼익 쇳소리를 내고 그르렁 거리는 엔진 소리를 낸다. 아주아주 낡고 녹슨 배가 안개가 자욱한 바다를 가른다. 솜씨 좋고 자상한 어부 할아버지가 기계였다면 이런 식으로 따뜻하고 힘차게 덜컹거리고 있을 것 같다. 짙은 안개 넘어 금오도의 실루엣이 보인다.  


 


금오도는 내가 자주 방문하는 곳이다. 단 한 번도 이곳에서의 일을 사건화 하지 않았고 나의 현실에서의 삶과 과거를 이어주는 희망의 장소로 여겨왔다. 나는 계속해서 금오도와 연을 맺어야 하는 운명을 갖고 있다. 먼 미래에 언젠가는 금오도에서 안락한 노후를 보낼 운명이기 때문이다. (해수면이 상승하지 않는다면..)


금오도에는 비렁길이 있다. 전남 방언으로 벼랑을 뜻하는 비렁. 비렁길은 5개의 코스로 이어진다. 1번 코스부터 5번 코스까지 숫자를 붙인 것은 이유가 있다. 각 코스 사이사이에 작은 마을이 기준점으로 존재하기 때문이다. 마을들은 하나의 사건으로 불린다. 1번과 2번을 나누고 2번과 3번을 나누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비렁길이라고 하는 길에 숫자를 남길 수 있었다. 그 사건들을 거치지 않고서는 연속된 숫자의 길을 걸을 수가 없으니 말이다. 숫자가 생긴 이후로는 인기 많은 3번 코스가 생기고, 인기 없는 1번 코스가 생겼다. 


인기 없는 1번 코스는 5개의 코스 중 가장 긴 코스이다. 게다가 1번 코스에는 샛길이 하나 나 있는데, 그 길로 들면 등반을 시작한 시작점으로 다시 돌아올 수 있는 유일한 코스다. 그러니 1번과 2번 코스 사이에 마을을 사건화 하지 않을 수 있으며, 다시 돌아올 수 있다는 회기의 의미가 담겨있다. 1번 코스는 숫자 1의 의미만큼이나 단수에서 복수로 향하지 않고 또다시 단수인 1로 돌아올 수 있는 유일한 길이다. 


나의 아버지 집은 1번 코스가 시작하는 지점에 위치해 있다. 아버지 집에 들를 때마다 금오도의 구석구석을 쑤시고 돌아다녔지만, 샛길이 있어 다시 돌아올 수 있는 1번 코스의 숏코스를 가장 좋아한다. 1번 코스의 운명인 2번 코스의 시작점으로 다다르지 않고 안락한 아버지의 집으로 다시 돌아올 수 있기 때문이다. 


3번 코스의 익스트림한 절경만큼은 아니지만 1번 코스의 풍경 또한 정말 아름답다. 오히려 편안하고 안락한 뷰가 펼쳐진달까. 


금오도를 탐방한 지 5년 째인 지금까지 금오도에서 단 한 곳 안 가본 곳이 있었다. 바로 1번 코스의 샛길로 빠지는 갈림길로부터 2번 코스의 시작점까지의 사잇길이다. 그러니깐 금오도의 옥녀봉, 각각의 마을들, 안도의 구석구석, 비렁길 2번 3번 4번 5번 구석구석을 다 다녔지만 1번 코스는 항상 반만 돌고 샛길로 빠져서는 돌아왔던 것이다. 단 한 번도 가보지 않은 약 1km의 1코스의 나머지 구간이 작게는 회기를 의미했지만 섬을 한 바퀴 돌지 않았던 거시적인 관점에서는 계속해서 하나의 사건을 남겨두고 회피했던 모양이다. 


이번에는 작심하고 1번 코스의 나머지를 돌아보기로 했다. 그곳에서 초분을 보게 되었다. 


 

남도지방의 섬들에서 이뤄지는 장례문화는 복장의 형태를 띠는데, 우리가 일반적으로 익숙한 장례문화는 장례를 한 번 치루지만 복장 형태의 장례문화는 장례를 2번 이상 치르는 것이다. 초분은 복장문화의 흔적이다. 사람이 죽으면 그 시신을 땅에 묻지 않고 이엉을 덮어 1번의 장례를 치른다. 2-3년 초분에서 시신을 썩힌 후 씻골(탈골)이라고 하는 의식을 지낸 후 땅에 묻어주는 2번째 장례를 치른다. 초분을 하는 이유는 씻골을 원활하게 하기 위해서 인데, 씻골이란 썩은 살을 뼈에서부터 발라내는 작업을 하는 것이다. 그래서 두 번째 장례를 할 때는 뼈만을 땅에 묻어주는 것이다. 


편안한 마음이 들었다. 초분 안에서 쉬고 있는 시신은 충분한 휴식을 취하고 있을 것 같았다. 살들이 썩고 있을 충분한 시간. 사후세계라는 또 하나의 변화를 맞기 전에 하나의 긴 휴식. 징그러운 건지 사랑스러운 건지 모를 사랑하는 사람의 썩어가는 살을 뼈로부터 발라내 주는 상주의 모호한 마음. 살이 잘 안 발려지면 허공에 다리뼈 하나는 훙훙 털어대려나. 그런 유머러스한 상상조차도 사랑스럽고 기특해서 마음이 좋았다. 


내가 죽는다 생각하니 초분 위에서 쉬고 싶었다. 나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내 썩어가는 살을 뼈에서부터 발라내 주길 바랬다. 삶과 죽음 사이의 시간을 하나의 장례로 단절시키는 것이 아닌, 충분한 휴식을 배려하고 사랑하는 사람의 시신조차 믿어주고 아껴주는 마음. 나의 죽음을 사건화 하지 않는 마음. 나의 삶이 사건화 되어 기억 저편에 사장되지 않게끔 붙잡으려는 시도. 조금은 더 그 몸을 더듬으려는 집착과 사랑. 죽음이 단절이 아니라고 믿는 일. 내 죽음이 끝이 아니라는 믿음. 삶에서는 비렁길을 5갈래로 나누고 마을들을 사건화 했지만, 힘들고 괴로운 시간은 사건화 하여 기억의 저편으로 밀어 넣어야 하는 운명을 가졌지만, 단수를 믿을 수 없어서 복수를 만들고 끝이 없는 것을 끝이 있으리라 믿고 싶었지만, 나는 죽어서 다시 돌아간다. 삶은 한정받은 시간을 버텨내는 일. 다시 또 돌고 돌아간다. 크나큰 시간 안에 존재하는 미약한 존재이지만 내 죽음이야 말로 1번 코스와 2번 코스를 이어 금오도를 한 바퀴 삥 두를 수 있다. 


금오도에 들어가서는 비렁길에 숫자를 붙여 읽었지만, 늙은 배를 타고 섬에서 나올 때는 금오도를 금오도라 부르고 있다. 금오도를 금오도라고 부르지만 지도를 피면 다도해의 부분이며, 지구의 부분이고 우주의 부분으로 또다시 합쳐진다. 힘들기도 하지만 행복하기도 하다. 혐오하고 있지만 사랑하고 있다. 죽고 싶지만 살고 싶다. 어느 하나 맞아 보이는 게 없었지만 죽음은 옳았다. 살아있는 동안 버텨내면 그만이다. 그 안에 붙여진 숫자들도 결국엔 이어질 것들이라서 예쁘고 아름답다. 억울한 게 많지만,,,,,, ㅠㅠ 내게는 초분이 있다.  


줌인 줌아웃의 능력을 가졌지만 제 때 줌인을 하지 못하고 제 때 줌아웃을 못하는 인생을 산다. 너무 몰입하면 너무 많은 숫자가 보이고 너무 많은 가능성을 본다. 눈을 감고 초분 속에서 좀 오래 쉬고 싶을 때도 있다. 어차피 다 하나다. 


선조들의 당연한 이야기를 내 나름의 식으로 또 길게 길게 남겨야만 했다. 초분에서 느낀 감동을 나 혼자 간직하기가 싫었다. 궤변 같기도 하고 너무 감성적이지만, 가끔은 이런 나의 글도 자랑되어지길 바란다. 금오도로 놀러 가신다면 1번 코스는 두 번 돌아보길 추천한다. 한 번은 샛길로 새서 돌아오고 다른 한 번은 2번 코스를 향해서. 화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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