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시절의 기억이 어른의 삶과 관계에 미치는 영향
자율적 개인과 열린 공동체를 그리며
저자 김희경
출판 동아시아
이상한 정상 가족은 한국 사회가 아이들을 다루는 방식에 대해 다루고 있다. 특히 가족 안에서 아이들에게 가해지는 다양한 유형의 폭력을 알림으로써 가족 내에서 가장 취약한 사람인 ‘아이’를 중심에 놓고 가족주의가 불러오는 문제들을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 화두를 던진다.
책을 읽으며 나의 양육 태도와 아이들을 체벌한 후 느꼈던 감정에 대해 정리할 수 있었다. 어린 시절 부모님과 선생님의 체벌은 당시의 사회 분위기 속에서 ‘사랑의 매’로 미화되었지만, ‘사랑의 매’는 결국 아이들에 대한 어른 사람의 폭력일 뿐이다.
체벌에 노출된 성장기를 보낸 사람들은 언젠가 폭력을 행사할 수 있다는 생각을 무의식 속에 품고 살아간다고 한다. 나 역시 부모의 훈육을 위한 체벌은 가능하다고 생각했다. 생각했다고 하기엔 그냥 그렇게 알았다가 더 자연스럽다. 그 문제에 대해 어떠한 체벌도 안 된 다는 생각을 하지 못했던 것 같다.
비교적 조용한 사춘기를 보낸 첫째를 훈육이라는 명목으로 때린 적이 있다. 부직포를 끼워 쓰는 밀대로 엉덩이 열 대를 때렸다. 부모를 대하는 태도가 불손하다는 게 이유였다. 체벌 전에 여러 번 태도에 대한 지적 했고, 개선되지 않으면 맞게 된다는 것에 대한 사전 합의가 있었다.
그런데도 그 기억은 오랫동안 가슴에 남아 있다. 우리가 했던 합의라는 건 힘의 불균형 아래에서 강제 체결된 약속일뿐이다. 나약한 존재인 자식에게 내가 했던 훈육은 ‘폭력’이었다.
올여름 조유나 가족의 실종을 지켜보면서, ‘설마 아이와 함께 자살을 한 건 아니겠지’라는 걱정으로 며칠을 보냈다. 결국, 유나의 가족은 주검으로 발견되었다. 경제적 어려움을 고민한 부모들은 유자를 살해한 후 동반 자살했다. 부모가 자식과 함께 사망한 경우 부모와 자식 모두의 죽음을 하나의 사건으로 보고 ‘가족 동반 자살’이라고 사건을 해석하는 경우가 많다.
서양에선 사용하지 않는다는 ‘가족 동반 자살’이라는 용어는 자식의 앞날을 걱정하는 부모의 사랑을 암시한다. 자식을 부모의 소유물로 보고 언제든 생명을 중단시킬 수 있는 살해가 가능함을 미화한다. 그동안 이들 가족처럼 부모가 자식을 죽인 후 자살하는 사건은 우리나라에만 있는 건 아니었지만, 사건을 바라보는 태도는 달랐다. 부모의 사망에 자식이 함께 사망하는 경우 서양은 이를 ‘아동 살해’ 혹은 ‘자녀 살해’로 보았다. (p.90)
조유나 가족 사망 사건을 다룬 기사 중 ‘동반 자살’이 아닌 ‘극단적 아동 살인’으로 표현한 머리기사가 인상적이었다.
‘조유나 가족의 죽음을 부모의 살인으로 보다니 우리나라도 많이 달라졌구나’
그렇다면, 가정 안에서의 훈육과 체벌에 대한 인식에도 변화가 있었을까? 사망에 이르지 않는 비교적 가벼운 체벌은 훈육이라 할 수 있을까?
5학년 때까지 아빠에게 맞거나 벌서는 경우가 많았다. 아빠에게 매를 맞은 가장 오래된 기억은 4살이나 5살 정도였던 것 같다. 기억 속에 작고 어린 나는 언제 끝날지 모르는 매질에 제자리에서 발을 동동 구른다. 너무 아프고 무섭지만 다른 곳으로 갈 수 없다. 아이는 매를 맞으며 울다 바지에 오줌을 싼다. 오줌을 싸고 나서야 엄마가 아빠를 중단시킨다.
매를 맞아 아픈 것보다 더 무서운 건 언제 이런 일이 다시 생길지 절대로 알 수 없다는 것이다. 아빠는 나를 ‘뒤끝 없는 아이’로 기억하셨다. 심하게 혼을 내거나 매를 든 다음 날 아빠는 웃기는 표정으로 나를 웃게 만드셨다. 체벌에 대한 사과나 설명은 없었다.
5살 어린아이는 친구 집에서 5분 늦게 돌아오면 신발을 신은 채로 맞았다. 넘어져 무릎이 깨지면 침착하지 못하다고 맞았다. 아빠가 웃고 있어도 항상 무섭고, 긴장되었다. 아빠가 예쁘다고 엉덩이를 토닥거려도 눈물이 났다. 이유 없이 운다고 혼나서 또 눈물이 났다.
아빠는 과보호적 통제도 심했다. 위험하다는 이유로 금지한 활동이 많았다. 수영, 자전거, 스케이팅 등 조금이라도 다칠 수 있는 어떤 것도 할 수 없었다. 작가는 아동기에 부모와의 관계에서 과보호적 통제를 많이 경험한 대학생일수록 일상생활에서 우울을 더 많이 경험한다는 보고를 언급했다.
대학 입학 후 경험했던 감정의 홍수를 나는 그저 사춘기를 친구들보다 조금 늦게 경험하는 정도로 생각했었다. 부모에게서 독립하고 싶은 욕구와 부모를 벗어나는 것을 두려워하는 마음 사이에서 ‘안전한 독립’의 방법으로 결혼을 선택했다.
청소년기에 자율성과 독립성을 발달시키지 못한 채 탈출의 도구로 선택한 결혼으로 준비 없이 부모가 되어버렸다. 그리고 그렇게 닮고 싶지 않았던 양육 태도는 대물림되었다. 아이들에게 엄마의 규칙을 강요하고, 지키지 못하면 윽박지르거나 매를 들었다.
학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는 일을 시작할 무렵, 학원 내의 체벌은 공공연했다. 아이들의 손바닥이나 엉덩이를 때리고 나면 교육을 했다는 느낌은 전혀 들지 않았다. 심지어 체벌을 통해 근본적인 변화는 일어나지 않았다. 아무 의미 없는 폭력을 멈추기로 했다. 그런데 남의 아이에 대한 체벌을 멈춘 후에도 가르친다는 명목으로 내 아이들에 대한 체벌을 이어왔다. 가정 내 훈육에 대한 사회적 태도는 곧 나의 태도이기도 했다.
나의 아이들이 다녔던 유치원과 어린이집은 교사의 아동 학대 사건으로 이유로 문을 닫아야 했다. 급식을 억지로 입에 밀어 넣거나, 아이의 손을 발로 밟고 서 있는 교사의 모습이 방송되었다. 사회는 분노했고, 학교와 교육기관의 체벌이 전면 금지되었다.
하지만 가족 안에서 아동 학대에 대한 인식은 여전히 ‘사랑의 매’의 방어막을 거둬내지 못하고 있다. 우리 사회의 폭력, 특히 ‘정상 가족’ 내에서 체벌을 허용하는 사고방식은 오래전과 다르지 않다.
2021년 ‘정인이 사건’으로 알려진 양천 아동 학대 사망 사건은 여전한 사회의 선입견과 안일함을 보여준다. 이 사건에 대한 민간조사 보고서엔 어린이집 교사가 지속적 학대 기록을 모아 신고했음에도 학대로 판정하지 않았다. 교사뿐 아니라 아이의 몸 상태를 확인한 의사도 아동 학대로 신고했지만, 입양 부모와 알고 지내던 다른 의사가 학대가 아니라고 하자 더는 조사하지 않았다. (p.266)
사건 조사 기록의 내용은 2017년 대구, 포천 입양아동 학대 사망 사건을 조사한 <은비 보고서>와 2014년 울주 아동 학대 사망 사건의 진상을 조사해 펴낸 <이서현 보고서>에서 같은 형태로 남아 있다고 한다. 성인 간의 폭력과는 다르게 가정 내 아동 인권 침해에 대한 인식 변화가 지나치게 더디다는 바로 보여준다.(p.267)
몇 년 전부터 초등학교와 중학교에서 인권 교육이 강화되고 있다. 아이들은 인성 교육과 학교 폭력 예방 교육을 통해 공동체 안에서의 ‘존중’과 ‘폭력’에 대해 배운다. 아이들은 이러한 교육을 통해 타인과 함께 살아가는 방법을 배우고, 자신을 ‘인권 침해’로부터 보호하는 방법을 생각한다. 그런데 아이들에게 가정 내 체벌이나 학대에 대한 기준을 교육하는 경우는 흔치 않다. 가정 내 발생하는 일들은 ‘학대’의 모습을 할지라도 매우 사적인 것으로 간주하는 사회적 분위기의 영향이 큰 것으로 보인다.
2021년 10월 기준 가정 내 체벌을 포함하여 아이들에 대한 모든 종류의 체벌을 명백히 폭력으로 규정하고 법으로 전면 금지한 나라는 전 세계 63개에 달한다. 법으로 가정 내 체벌을 금지하고 사법체계가 어린이의 입장에 서겠다는 의지를 보이는 것은 어린이에 대한 이해, 자녀와 부모 사이의 의무와 책임에 관한 생각이 변화하고 있다는 증거다.
한 사회가 아동에 대한 체벌을 폭력으로 보고 법으로 보호한다면, 그 사회에 속한 개개인의 생각 변화를 가져온다. ‘아이를 대하는 태도가 그 사회를 말해준다.’라는 말은 사회의 개별 구성원들의 태도가 모여 사회를 이룬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작가는 정부의 노력과 부모의 사고 변화가 함께 이루어져야 한다고 말한다. 정부는 비폭력적으로 아이를 키우는 게 가능한 환경을 만들어주고, 어른은 폭력이나 협박, 위협에 기대지 않고도 문제를 해결할 방법이 있음을 아이들에게 가르칠 의무가 있다. 그러기 위해 정부는 체벌을 금지하는 법과 함께 부모가 필요로 하는 지원을 제공해야 하고, 정부와 사회가 합심하여 부모가 아이들에게 좋은 역할 모델이 될 수 있도록 필요한 시간과 에너지를 확보할 수 있는 환경을 체계적으로 조성해야 한다는 것이다.
정부의 노력을 보여주는 예로 스웨덴의 사례를 제시했다. 스웨덴은 1979년, 부모의 체벌을 포함한 모든 종류의 체벌을 법으로 전면 금지했다. <유엔 아동권리협약> 발표되기 10년 전이다.(p.219) 스웨덴 정부가 법으로 부모의 체벌을 금지하며 목표로 했던 것은 신체적 온전성에 대한 아이들의 권리를 보호하고 명시적으로 인정하는 것이었다.
한국에서 아이들의 권리를 보장하는 사회적 분위기를 만들기 위해 스웨덴의 선례를 따라 변화를 이루어 나가길 바란다. 먼저, ‘정상 가족’과 ‘비정상 가족(예를 들어 미혼모나 미혼부의 가정)’에 대한 차별의 시선을 거둘 필요가 있다. 또한, 오래전 부모 훈육의 방식으로서 ‘체벌’을 허용하는 방식을 더는 수용하지 않는 인식의 변화가 시급하다.
<아동복지법> 제5조 제2항에는 “아동의 보호자는 아동에게 신체적 고통이나 폭언 등의 정신적 고통을 가하여서는 아니 된다.”라는 내용이 들어가 있다, 하지만 이 조항 어디에도 ‘체벌’이라는 단어를 찾아볼 수 없다는 점에서 가정 내 차별금지법으로 보기 어렵다는 게 글로벌 이니셔티브의 평가다. 다행히 “친권자는 자녀를 보호 또는 교양하는 데 필요한 징계를 할 수 있다 ‘고 정하고 있던 <민법>이 일부 개선된 점은 긍정적인 변화라고 할 수 있겠다.
인권을 교육하는 사회이다. 부모의 위치에 서 있는 사람과 가족을 둘러싼 주변의 사회 구성원들의 ‘가정 내 체벌 ’에 대해 바르게 인식하고, 가정 내 체벌을 학대와 폭력으로 바라보아야 한다, 그 어떤 작은 면죄부도 허용하지 않는 사회 분위기가 정립되면, 자식이라는 이유로 부모의 소유물로 취급받는 아이들은 더 생기지 않을 것이다. 가정 내 체벌의 위험에 아이들을 버려두지 않는 사회를 만들어 가기 위해 아이들에 대한 훈육과 체벌을 분리하여 인식하고, 어떤 경우에도 체벌을 금지하는 사회가 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