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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꿈꾸는 냥이 Nov 10. 2023

남편이 죽었다고 생각하기로 했다.

첫번째 이유, 알코올 중독자의 아내로 죽을 순 없잖아요?

먼 친척 한 명 없던 이곳에서 20년을 살다 보니 친구 사귀기가 쉽지 않았다. 둘째 아이가 초등학교에 입학 할 무렵 잠시 일을 쉬면서 학부모 친구들이 생겼다. 그 전까진 일을 하며 마음 맞는 사람들 몇 명과 연락하고 일 년에 한 두번 만나는 게 전부였다. 친한 친구, 동생, 그리고 언니들이 생겼다. 


관계가 가까워지면서 사람들은 부부가 함께 만나면 좋겠다며 모임을 제안했다. 나는 그 말에 쉽게 '오케이'하지 못했다. 술을 마시면 발음이 어눌해지고, 아무에게나 시비를 거는 남편과 어디에도 함께 가고 싶지 않았다. '알코올 중독자의 아내'라는 걸 들킬게 뻔했다. 창피했다. 술에 취하면 바보 같아 지는 남편을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싶지 않았다.


전남편은 연애할 때부터 술을 좋아했다. 술을 마시면 연락이 안되고, 다음날에야 전화가 오던 사람이었다. 그래도 결혼이 그 사람들 변화시킬거라 믿었다.  아이가 생기면, 나이가 들면 달라지는 게 당연하다 생각했다. 내가 정말 싫다고 하면 남편은 술을 줄일 거라고 생각했다. 


사람 고쳐쓰는 거 아니라고 했던가. 내 습관 하나 고치는 것도 쉽지 않은데, 다른 사람을 고칠 수 있다는 생각 자체가 지나친 자신감이었다. 그 사람은 20년이 지나도록 달라지지 않았다. 오히려 나이가 들면서 술에 약해지고, 말과 행동에 일관성을 잃어갔다. 상황은 점점 더 나빠졌다.


어느 날 술에 취해 들어온 남편이 사라졌다. 분명 안방으로 들어갔는데 사람이 보이지 않았다. 화장실로 아이들 방으로 사람을 찾아 다녔지만 보이지 않았다. 대체 무슨 일이지? 집을 다섯 바퀴 즘 돌고 나서야 베란다에서 자고 있는 남편을 발견했다. 처음 웃음이 나왔고, 잠시 뒤 나는 쪼그려 앉아 울고 있었다. 놀라서 찾아다닌 내가 한심했다. 


나는 남은 내 삶을 떠올렸다. 앞으로 40년을 이렇게 살 수 있을까. 10년 뒤 나는 어떤 모습으로 살고 있을까. 나는 왜 이렇게 살아야 하지. 눈물이 났다. 


   마지막 순간까지 '알코올 중독자의 아내'로 사는 거야?

   마음이 대답했다.


                                   싫어!



  

22살에 남편을 만났다. 20년을 함께 해 온 사람을 삶에서 빼버린다면 나는 어떻게 될까. 베란다 바닥에 앉아 있는 남편 옆에 벗어놓은 양말이 보였다. 냄새 나는 양말이 짜증스러웠다. 내 삶을 보는 것 같았다.  나는 생각하고 또 각했다. 혼자 잘 살 수 있을지까. 살면 되지.  아이들은 아빠 없이 살수 있을까. 나는 나의 아이들을 책임질 수 있을까. 


끝없이 이어지는 질문에 머리가 아팠다. 몇 차례 어깨를 흔들어 보던 나는 조용히 불을 끄고 방 문을 닫았다. 그날 밤 식탁에 앉아 밤새 답을 찾았다. 가장 두려운 게 뭘까. 경제적인 어려움? 저 사람과 함께 살면 경제적인 문제가 없을까? 매일 싸우는 부모와 사는 아이들은 행복할까? 혼자 사는 사람들은 모두 외롭고 쓸쓸할까?그리고 마지막 질문이 떠올랐다.


"만약 남편을 사고로 잃게 된다면, 나는 나와 아이들의 삶을 포기할 것인가?"


"아니! 힘들겠지만 아이들과 행복하게 잘 살아낼 거야!"


그날 밤, 나는 남편이 죽었다고 생각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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