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이혼한 10가지 이유_ 소통
우리 아이들은 7일 중 5일은 약속이 있던 아빠와 저녁 먹을 시간이 없었다. 내일은 함께 쇼핑을 하고 밥을 먹자는 말도, 그 시간이 되어야 확실했다. 가족을 위해 갑자기 생기는 약속을 거절하지 않는 사람이었다. 가족 외출이 잡힌 날 누군가 만나자고 연락을 해 오면, 일단 오케이하고 우리와의 시간을 조정했다.
예를 들면, 아이들 옷을 사러 나갔다가 급히 쇼핑을 끝내고 우리를 집에 태워주는 식이었다. 그 점에 대해 미안한 마음은 별로 없어 보였다. 나르시시스트의 논리대로라면 미안할 부분이 없다. 하기로 한 쇼핑을 했으니 약속을 지켰다. 비록 아빠 없는 저녁 식사지만, 식사 비용을 주는 것으로 마음의 짐을 싹 지워버리면 그만이었다. 간단하다.
(가 이런 뜻은 아닌데...)
지나치게 심플한 라이프 스타일을 추구하는 그 사람을 위해 나는 온 가족이 저녁을 먹어야 하는 이틀을 정해 주었다. 화요일과 목요일은 우리 집 '화,목한 날'이었다. 어떻게 사랑해야 하는지 몰라서 허둥 대긴 했지만, 아이들에게 아주 못하는 사람도 아니었다. 화요일과 목요일 두 번을 모두 지키진 않았지만, 적어도 하루는 모두 모여 식사할 수 있었다.
나의 불안은 아빠를 닮았다. 아빠는 집을 사고도 이사를 못했다. 자식이 눈에 보이지 않으면 불안해 일을 할 수 없던 아빠 덕에 내가 중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우리는 가게 뒷방에 살아야 했다. 자연스럽게 주말 대청소도, 하루 세 끼 밥도 늘 함께였다.
일요일 오전은 어김없이 온 가족이 청소하는 날이었다. 간단히 아침을 먹고 나면 청소가 시작되었다. 우리는 물건을 정리하고, 손이 닿는 곳을 걸레질했다. 점심은 다 함께 칼국수나 수제비를 함께 만들었다. 엄마가 반죽을 만들어 주면, 아빠가 받아서 오래 치대고 밀대로 밀었다. 엄마는 얇게 밀은 반죽을 찹찹 접어 가지런히 썰었다.
함께 만든 칼국수는 세상에서 가장 맛있었다. 그리고 우리를 연결해 주는 함께 기억하는 소중한 추억이다. 화목한 날까지 정하며 아이들과의 시간을 만들려고 노력했던 건 가족이 공유한 시간의 소중함을 잘 알았기 때문이다.
오래전 인스타그램을 보다 먹먹해진 순간이 있었다. 오래전 둘째의 장기자랑 영상들을 보며 지금과 다른 귀여운 모습에 그 시간 속으로 들어갔다. 둘째는 지역 어린이 합창단 활동을 했다. 어린이날은 물론 각종 지역 행사의 오프닝은 아이들 몫이었다. 주말을 반납한 워킹맘과 동생을 사랑한 언니는 영상에 보이진 않지만 그 안에 있다.
오래전부터 딸 둘과 나는 언제나 한 세트처럼 함께였다. 아이들 아빠는 주말에도 일을 해야 했다. 주말 오전은 엄마와 함께 하는 시간이었다. 오후에도 아빠는 낚시, 골프, 술 약속이 있었다. 아이들은 엄마하고 보내는 시간이 많았다.
자주 만나지 않으니 아이들과 아빠는 소통이 힘들었다. '메갈'이니 '똥 팸'이니 하는 여성 혐오 표현을 쓰는 아빠에게 화가 난 딸은 아빠와 나눈 대화를 얘기하며 울었다. 공감도 배려도 없는 모습이 답답하면서도 대체 어떻게 자란 건지 안쓰럽기도 했다.
칭찬을 제대로 받아본 적 없는 아빠는 아이들이 상장을 받아와도 제대로 기뻐하지 못했다.
"잘했네! 아빠도 너무 좋다!"
분명 이 말을 하고 싶었을 거다. 하지만 그 사람은 "에에~ 네가 웬일이야~ 이거 아무나 다 받는 거 아니야?"라고 말하고 있었다.
숙려기간 동안은 마지막으로 최선을 다해 노력하는 시간으로 보내자고 했다. 술을 줄여서 밖에서 자는 날을 줄여보자는 말에 동의했었다. 하지만 이번에도 계획과 현실은 많이 달랐다. 이혼이 확실해지면 부부는 살 궁리를 하기 마련이다. 우리는 재산분할 문제로 예민했고, 양쪽 모두 물러나지 않았다. 결국 전남편은 숙려기간을 시작하고 열흘 즘 지난 어느 날 집을 얻어 나갔다.
그날 이후로 집의 분위기가 달라졌다. 거의 매일 밤 술 취한 아빠는 엄마에게 시비를 걸고, 싸움으로 이어지곤 했었다. 이제 새벽 3시에 야식을 시켜 가족을 깨우는 사람도 없었다. 밤은 고요했고, 평온했다. 사는 것 같았다.
네 식구가 세명이 되고, 한 달이 지날 무렵 자려고 누웠을 때였다. 문득 침대가 너무 크게 느껴졌다. '우린 정말 헤어지는구나' 하는 생각이 스쳤다. 이혼을 후회하거나, 미련이 남아서는 아니었다. 연애기간을 더하면 20년을 함께 한 사람이 내 인생에서 사라지는 중이었다. 상실은 이유가 어떻든 간에 아프다.
한 달 만에 처음으로 나를 돌아보았다. 그 사람도 나랑 산다고 힘들었겠다는 생각을 했다. 인연이 끝나는 기분을 다시 느끼게 될 줄은 몰랐는데... 더 슬픈 건 가족의 한 사람이 더 이상 집에 돌아오지 않는데, 크게 달라진 점이 없다는 사실이었다. 원래 셋이었던 우리는 여전히 셋 일뿐이었다.
마지막 3개월을 보내며 자주 울었다. 엄마가 보고 싶어서 울었고, 아이들에게 준 상처가 미안해서 울었다. 하지만 20년을 함께한 우리를 위한 눈물 없었다. 이미 너무 많이 울었나 보다.
선물은 누구를 위한 것일까?
감사 인사를 받고 싶어서 or 그 사람이 행복하길 바라서?
선물은 받는 사람도 주는 사람도 함께 행복하게 만든다. 선물을 고를 땐 기억할 것이 있다. 선물 받는 사람에게 필요한 것과 그 사람이 원하는 것 중 반드시 '원하는 것'을 선택해야 한다. 필요한 걸 주는 게 합리적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그런 선물은 주는 사람의 자기만족을 위한 선택일 뿐이다.
20년 전 생일, 나는 벤자민 나무를 선물 받았다. 식물을 잘 돌보지 못했던 나는 화분을 절대로 사지 않았다. 다른 어딘가에서 잘 살 수 있는 꽃들이 나를 만나 죽어가는 걸 원치 않았기 때문이다. 어머닌 그런 나를 위해, 벤자민을 선택했고 비싸고 좋은 화분을 골랐다고 하셨다.
나는 식물을 잘 키우는 사람이 아니다. 20년 전엔 더 그랬다. 물론 식물을 가까이 두고 살면 정서적으로 매우 좋다. 그건 나도 안다. 중요한 건 나는 생일선물로 벤자민 화분을 원한 적이 한 번도 없다는 것이다. 대체 그 선물은 누구를 위한 건지 모르겠다.
좋은 선물을 하기 위해 필요한 것은, 관심과 경청이다. 평소 무엇을 좋아하고, 원하고 있는지는 관심을 갖고 관찰하면 보인다. 그 사람이 하는 말을 잘 들으면 그 안에서 답을 찾을 수 있다. 필요한 걸 주면 좋아할 것 같지만, 고마워할 뿐이다. 나는 어머님이 선물을 주셔서 정말 감사했다. 하지만 꽃을 키우게 되어 행복하진 않았다. 차라리 현금 오만 원이 훨씬 더 좋았겠다.
처음 이혼 얘기가 나왔을 때, 남편은 절대 이혼할 수 없다고 했다. 그리고 술도 줄일 수 없다고 했다. 그리고 청소와 설거지를 열심히 하기 시작했다. 만삭이 되어도, 아기를 낳으러 가던 그날까지도 설거지는 못하겠다던 사람이었다. (사람이 갑자기 변하면 안 된다던데. 내심 걱정이 되기도 했다.)
그 사람은 매일 청소와 설거지를 했고, 매일 술을 마셨다. 술 취해 돌아와 싸움을 걸어오는 그 시간이 힘들었다. 내가 싫다는 걸 계속하면서도 대체 왜 나와 살고 싶은지 물었다.
"사랑하니까!"라는 대답에 웃음이 났다.
"하... 사랑? 지랄하네!!"
그 사람이 노력하는 마음을 모르는 건 아니었다. 자기 딴엔 최선을 다하고 있던 게 보였다. 처음 보는 아빠의 모습에 아이들은 어색해하면서도 좋아했다. 나도 좋았고 고마웠다. 하지만, 청소와 설거지는 내가 원하는 것이 아니었다. 깨끗한 집에서 매일 싸우며 살 순 없다.
나는 술을 줄이고, 가족과 함께하는 시간을 충분히 가질 수 있는 남편을 원했고, 그 사람은 나를 위해 청소를 했다. 살림을 잘 못하는 나를 위한 그의 선물은 오래전 '벤자민 나무' 같았다. 나에게 좋았지만, 내가 원한 것은 다른 것이었다.
부부가 함께 참석하는 모임을 당일 아침에야 할게 되는 일이 종종 있었다. 동생은 이런 우리를 보고 '소통이 안 되는 부부'라고 놀리곤 했다. 하하호호 같이 웃었지만 인정했다. 소통이 안된다는 건 맞는 말이었다.
늘 소통이 안 되던 우리는 마지막 순간에도 서로 다른 곳을 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