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알코올 중독자의 아내

내가 이혼한 10가지 이유_중독

by 꿈꾸는 냥이

선택받은 자식


나르시시스트의 피해자는 두 가지 선택 앞에 놓인다. 손절할 것인가 혹은 복종할 것인가이다. 다시 안 볼 사이라면 차단을 하거나 서서히 멀어지는 방법이 있다. 하지만 엄마가 나르시시트라면 관계를 끊는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나르시시스트 엄마는 이미 모든 수단을 동원해 부모를 절대 버릴 수 없도록 죄의식을 심어 놓았을 것이다.


어린 자식에게 부모는 하나의 세계와 같고, 옳음의 기준이 된다. 그들은 부모의 생활양식을 배우고 그들의 가치관을 따르며 성장한다. 건강한 가정에서 자란 아이들은 자신의 생각을 키워 하나의 가치관을 형성하는 것에 제약이 없다. 그들은 부모에게서 받은 사랑과 지지의 경험으로 자신만의 가치관을 정립하고 성숙한 어른으로 자란다.


나르시시스트 엄마는 자녀가 여럿일 경우 차별을 한다. 이때 차별의 기준은 '자기 마음'이라는 점도 흥미롭다. 근거 따윈 필요 없는 자기 믿음은 자기애의 끝을 보여준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은 내 새끼'(=Golden Chilld 골든차일드)는 자신의 못 이룬 꿈을 대신 이뤄줄 자식일 수도 있고, 그냥 '아들'이라서 선택받을 수도 있다.


전남편은 선택받은 아들이었다. 어머닌 자신의 아들을 '하나 아들'이라고 했다. 하나뿐인 아들이라는 뜻이다. 남자 형제가 없는 그 사람을 굳이 하나뿐인 아들이라고 부른 건, 자식 중 가장 소중하다는 의미였다.


'하나 아들'은 소중한 아들을 상징하는 말이었고, 아들을 부를 땐 이름을 불렀다. 그런데 아버님이 돌아가신 후엔 더 이상 아들 이름을 부르지 않았다. 어머닌 이름 대신 "아들~~"이라고 부르셨는데, 들을수록 어색했다. 이런 호칭의 이유에 대해 알게 되면 이 글에 추가해야겠다.




중독


중독

1.
명사] 생체가 음식물이나 약물의 독성에 의하여 기능 장애를 일으키는 일.
2.
명사] 술이나 마약 따위를 지나치게 복용한 결과, 그것 없이는 견디지 못하는 병적 상태
3.
명사] 어떤 사상이나 사물에 젖어 버려 정상적으로 사물을 판단할 수 없는 상태

[출처: 네이버 사전 검색]



나르시시스트가 유전된다는 보고는 없지만, 나르시시스트 엄마와 그의 아들은 닮은 구석이 많았다. 그들은 자신이 잘하는 점을 한 가지라도 더 말하려고 애썼다. 그들은 요리를 잘하거나, 게임을 잘하는 것, 낚시를 잘하는 것 등을 자랑했다. 그리고 잘하는 것과 자랑할 만한 것들에 중독되어 있었다.


중독은 나르시시스트에게 흔히 나타나는 특징 중 하나이다. 술,, 게임, 쇼핑뿐 아니라 공부에 중독되기도 한다. 중독에 쉽게 빠지는 이유는 그 안에서 자신의 빼어남을 증명할 수 있기 때문이다. 자신을 돋보이게 할 수 있는 것들에 (비록 남들은 다른 평가를 할지라도) 시간과 노력을 기울인다.


알코올 의존도가 높았던 시아버지를 원망하고 비난했던 시어머니는 모임에서 뿐 아니라 집에서도 술을 마셨다. 자신은 술을 안 좋아하고 잘 못 마시기 때문에 막걸리에 사이다를 타야만 마실 수 있다는 레퍼토리는 잊지 않으셨다.


쇼핑은 부를 드러내는 가장 좋은 수단이다. 어머닌 백화점이나 쇼핑몰뿐 아니라, 티브이 홈쇼핑이나 쇼핑몰에서 제공하는 카탈로그를 통해 많은 것들을 주문하셨다. 집엔 택배 박스가 늘 쌓여 있었다. 어떤 것들은 오랫동안 열리지 않은 채 그 자리를 지키기도 했다.


어머니 중독의 마지막은 SNS였다. 카톡으로 좋은 글을 복사하여 보내는 일은 마치 어머니의 직업이 된 것 같았다. 일명 '팬'들을 위해 카카오 스토리 뮤직을 사모으기 시작했다. 아이들을 데리러 가면 오늘 사야 할 음악 목록이 가득 적힌 종이를 내미셨다.


어머닌 팬들에게 답장을 하고 이야기를 업로드해야 아이들이 놀러 가도 방에서 잘 나오지 않으셨다. 6시면 도착하는 '오늘의 좋은 말씀'에 고마워하지 않는 친구를 비난했다. 그즈음부터 난 알람을 꺼두었다. 매일 도착하는 몇 편의 글은 바쁜 며느리에겐 스팸일 뿐이었다.


어머닌 카카오톡이나 카카오스토리를 하면서 궁금한 점 등을 종종 물으셨다. 난 퇴근 후에 이런저런 기능 등을 알려드렸는데, 친척 모임에서 "우리 며느리는 한 번도 알려준 적이 없다."라고 하셨다. 아들이 한 번씩 알려주었고 모든 건 독학으로 배웠다고 하셨다. 그 후로 난 어머님이 도움을 청하시면 바쁜 척을 했다.


나도 참 못됐다.




게임, 낚시, 야동 그리고 술



전남편은 게임이 진심인 사람이었다. 공부라면 전생에서부터 친하지 않았던 것 같은 그 사람이 100페이지가 넘는 게임 매뉴얼을 파고드는 모습은 입시생을 고시생을 연상시킬 정도였다. 졸업 후 일 년 동안 취업을 못했던 (실은 안 했다가 해졌다가 그만둔) 그 사람은 게임을 위해 밤을 불태웠고, 오후 늦게야 일어났다.


취업할 의지가 보이지 않는 남자 친구는 게임 순위를 자랑했다. 한심하고 부끄러웠다. 무슨 일이든 항상 열심히 해서 성과를 내야 했던 나와는 다른 생활과 그것을 허락한 그의 부모가 신기했다. 이렇게 살아도 우리 집보다 여유로워 보이는 그들을 보면, 열심히 산다고 잘 사는 것도 아닌 것 같았다.


당시 남자 친구였던 그 사람은 낚시가 취미라고 했다. 낚시가 얼마나 돈이 많이 드는 부자들의 취미인지 설명하며, 장비의 가격을 줄줄이 늘어놓았다. '굳이 가격까지 말해야 할까?' 불편했다. 갯바위 낚시에 빠져 있던 그를 따라 함께 낚시를 가기도 했다. 배 위에서 보았던 아름다운 바다는 여전히 좋은 기억으로 남아 있다.


그 사람의 낚시 사랑은 게임을 살짝 넘어선다. 하루는 영화 데이트를 나가는 길에 임산복을 사게 되었다. 쇼핑을 하고 나니 몸이 피곤해져서 영화는 디비디를 빌려 집에서 보기로 했다. 전화를 받은 건 돌아오는 차에서 야식 메뉴를 고르고 있던 중이었다.


함께 낚시를 가자는 제안에 망설이는 남편이 서운했다. 원래 영화를 보려던 시간이니 원래 계획대로 같이 집에서 쉬자고 했다. 남편은 마지못해 알았다고 하고 함께 집으로 돌아왔다. 담배를 피우러 마당에 나간 남편이 그 길로 낚시하러 가 버렸다는 걸 30분을 기다린 후에야 알았다.


내가 실수한 건 게임이나 낚시 중독을 가볍게 생각했던거다. 중독에 취약한 사람은 다른 것에도 중독되기 쉽다. 게임, 낚시, 그다음은 야동이었다. 유재석도 야동을 본다는 데 남자라면 당연한 거 아니냐던 논리를 인정할 수 없던 건 그것을 본다 안 본다의 문제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내가 가장 불편했던 점은, 윈도 창 위에 남아있는 검색 기록과 드라이브 용량을 가득 채운 파일들이었다. 혹시나 아이들이 보게 될까 걱정이 되어 불안증이 나아지지 않았다. 일주일에 한 번 정도 모든 파일을 삭제해도 다음 주엔 수백 개의 파일이 새로 들어가 있었다. 개미지옥 같았다.




'술'을 많이 마실 수 있다는 건 그 남자의 자랑거리였다. 어떤 날은 허세로 주량 이상을 마시기도 했다. 유독 알코올에 관대한 한국문화에서 남자가 술을 잘 마시는 건 흠으로 보이지 않았다.


첫째가 태어나도 집에 혼자 있는 시간이 길어졌다. 하루에 열 번 다녀가시는 시어머니를 상대하다 보면 편히 쉴 수도 없었다. 남편은 아이가 태어나도 생활에 변화가 없었다. 여전히 밤새 게임을 하고, 매주 1-2번은 낚시를 갔다. 주말엔 남편 없이 아이와 둘이 밤을 보내야 했다. 무서웠다.


오늘만 사는 사람에게 매일의 고민은 하나였다. 퇴근 후 '누구'와 '어디'서 술을 마시면 좋을까.


잠이 부족한 아내를 위해 퇴근하면 일찍 집에 가야겠다는 생각을 못하는 남편을 보며, 철이 없는 걸까 아니면 사랑이 없는 걸까 늘 궁금했다. 우리 집으로 돌아가고 싶었다. 답답함이 가득 차고 내 선택을 후회했다. 눈물이 나왔다. 남편 때문은 아니었다. 잘못된 선택을 한 내가 바보 같았다. 후회의 화살은 나를 향해 있었고 가슴 깊이 박혔다.


17년 후, 술을 좋아하던 젊은 남자는 50을 앞두고 있었다. 여전히 술을 좋아했지만 정신도 신체도 시간을 거스를 수 없었다. 오랫동안 술을 마신 뇌는 중독되어 있었고, 혈관엔 지방이 가득했다. 당뇨가 생기고, 혈압이 치솟았다. 중독이 무서운 건 위험 신호를 보아도 어찌할 수 없다는 것이다.


가득 취해 거실에 앉아 몸을 좌우로 흔들며 자고 있는 남편을 보고 있으면 머릿속이 아득해졌다. 어느 날 분명히 들어왔던 남편이 안방에 보이질 않았다. 방에서 나온 걸 보지 못했는데 이상한 일이었다. 그때 어디선가 코 고는 소리가 들렸다. 안방 베란다에 양말을 벗어놓고 앉아서 자고 있는 남편을 발견했다.


아주 많이 취한 날은 그래도 나았다. 그냥 잠들어 버렸기 때문이다. 한 잔이 부족한 날은 싸움을 걸어왔다. 아이들이 있으니 내일 얘기하자는 말도 소용없다. 남편은 내가 울거나, 차로 도망갈 때까지 집요하게 공격했다. 큰 딸은 말려보려 했지만, 소리 지르는 아빠를 감당할 수 없었다.




술 때문에 싸우는 날이 늘어났다. 거의 매일 술을 마시니 매일 싸워야 했다. 차에 앉아 핸드폰을 만지작 거리고 있으면 딸에게 문자가 왔다. 아빠가 잠들었다는 내용이었다. 조용히 집에 들어가 침대 끝에 조심히 눕는다. 엄마 생각에 눈물 났다. '나쁜 새끼..' 욕이 일상이 되었다.


매일 다툼이 심해지는 우리를 보며 아빠는 많이 우셨다. 잠시 따로 살아보면 어떻겠냐고 제안을 하셨고, 별거를 고민했다. 1년이면 달라질까? 1년 후의 우리 모습이 그려지지 않았다. 10년 후 나는 어떻게 살고 있을까. 알코올 중독자의 아내라는 타이틀을 버릴 수 있을까.


술을 마신 날은 싸우게 되는데, 아이들에게 좋지 않으니 그날은 다른 곳에서 잤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처음으로 밖에서 자게 된 날 남편은 근처 모텔로 갔다. 사무실에서 자려나 걱정되고 조금 미안한 생각이 들어 전화를 걸었다. 그때 남편은 누구의 전화라고 생각했던 걸까.


전화를 받자마자 모텔 이름을 말해주던 그 사람의 목소리는 즐거웠다.


"머가 그렇게 즐거워?"


내 목소리에 당황한 듯 한 그 사람은 애써 침착한 척했다. 자기가 자는 곳의 주소 정도는 확인해야 하지 않겠냐고 했다. 나는 어딘지 묻기도 전이었는데 무슨 소린지 알 수 없었다. 누군가 부르는가 보다 생각했다. 사무실로 가지 않아 잘했다는 말을 남기고 전화를 끊었다.


그날을 시작으로 술을 마신 날은 다른 곳에서 잤다. 어떤 때는 삼일 만에 집에 오기도 하고, 오일만에 돌아오기도 했다. 집에서 싸우는 소리가 사라졌다. 조용한 집이 좋았다. 드디어 집에서 쉴 수 있게 되었다.


사랑이 남아있지 않다는 건 의외의 순간 알게 된다. 그날 밤 모텔에서 즐거워 보이던 남편이 누구와 함께 있던 상관이 없었다. 아이들 아빠니까 안전하기만 바랐을 뿐이다. 그즈음 남편은 어느 횟집에 자주 가곤 했다. 횟집 사장 여동생과 친하게 지내는 것 같았다. 모른 채 했다.


고백하자면, 내심 바람이라도 나길 바라고 있었다. 빨리 정리할 수 있을 테니까. 아쉽게도 별 일이 일어나지 않았다. 야간 시간에 문자가 오지 않도록 금지 모드를 켜 둔 걸 알고 있었다. 워치를 이용해 모든 문자를 지우느라 애쓰는 것도 다 보였다.


뻔히 보이는 거짓말이 재수 없었지만 질투는 나지 않았다. 사랑도 의리도 없는 우리의 현실이 보였다. 아이들을 배려하지 않는 남자를 아이들 아빠라는 이유로 참아 주고 싶지 않았다.






알코올 중독자의 아내



먼 친척 한 명 없던 이곳에서 20년을 살다 보니, 친구들이 생겼다. 일을 하며 마음 맞는 사람들과 친구가 되기도 했고, 아이들이 학교에 들어가고 생긴 학부모 모임에서 좋은 사람들을 만났다.


관계가 가까워지면서 사람들은 부부가 함께 보기를 제안했다. 나는 그 말에 쉽게 '오케이'하지 못했다. 모임에 남편과 함께 가게 되면 내가 '알코올 중독자의 아내'라는 걸 들킬게 뻔했다.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싶지 않았다.


아이가 생기면, 나이가 들면, 내가 정말 싫다고 표현하면 남편은 술을 줄일 거라고 생각했다. 20년을 보내기 전에, 정말 싫다고 표현했어야 했다. 나이가 더 들기 전에 확실히 말해야 했다. 아이가 생기기 전에 사람을 바로 보았어야 했다.


어쩌면 나 말고 다른 사람과 살았더라면, 이 남자도 건강한 삶을 살았을지 모른다. 생각과 감정을 다른 식으로 표현하는 사람을 만났더라면 말이 통했을지 모른다. 좀 더 사랑받고 살았더라면 자신의 삶을 소중하게 생각하고 돌봤을지도 모른다.


베란다에서 자고 있는 남편을 내려다보던 그날, 나는 남은 내 삶을 떠올렸다. 앞으로 40년을 더 살 수 있을까. 그 시간을 어떤 모습으로 살게 될까. 나에게 물었다.


마지막 순간까지 '알코올 중독자의 아내'로 사는 거야?

마음이 대답했다.


싫어!




성인이 된 후 남편을 만났고, 마흔이 넘도록 함께 살았다. 혼자 잘 살 수 있을지, 아이들을 책임질 수 있을지 두려웠다. 다들 힘든 결혼생활을 쉽게 그만두지 않는 건 그만한 이유가 있는 것 같았다. 내 선택을 후회하게 될까 걱정되었다.


가장 두려운 게 뭘까 생각해 보았다. 경제적인 어려움이 가장 큰 문제였다. '그럼 함께 있으면 돈걱정이 없을까?' '결혼하지 않은 여자들은 모두 힘들까?' 끝없는 질문이 이어졌다.


"만약 이혼이 아니라 남편을 사고로 잃었다면, 나는 좌절하고 삶을 포기하게 될까?"


"아니! 힘들겠지만 아이들과 잘 살아낼 거야!"




나는 나를 믿어보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