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와 같은 사람을 만났다

우울증의 가장 날카로운 가시

 우울증 속에서 외로움이 가장 치명적이다.

 사람들은 우울증 환자가 급증했다고, 수많은 사람들이 고통을 받고 있다고 하지만 현실의 삶 속에선 어디서도 나처럼 우울증을 겪는 사람을 찾기 어렵다. 당장 우울증에 시달리고 있는 나조차도 이렇게 글로 겨우 쓰고 있을 뿐 주변인들, 특히 가족과 친구처럼 가까운 사람들에게 알리기는 턱없이 힘들었으니 그럴 만도 하다.

분명 우울증은 감기처럼 언제든 찾아올 수 있는 질병이라는데, 기침이나 콧물처럼 겉으로 드러나지 않고 속으로만 앓는 병이다 보니 아무리 구체적인 검사지를 체크하고 항우울제를 복용한다 한들 어쩌다 걸릴 수 있다고 생각되는 감기와는 달리, 내 정신이 약해 빠져서, 남들은 멀쩡하게 잘 지내는데 내가 덜 성실하거나 끈기가 없어서 이런 꼴이라는 생각이 도통 떨치질 않는다. 그리고 평소 하는 것처럼 괜찮아 보이려고 조금만 노력하면 평소처럼 아무렇지도 않게 지낼 수 있으니 이를 드러내는 건 더욱 자신의 나약함을 보이는 것처럼 느껴진다.

 그런 와중에 '나처럼 우울증에 시달리고 있는 사람'을 주변에서 알게 된다면 애석하지만 얼마나 반가운 일일까?

죽은 듯한 눈빛, 어두워진 낯빛 지친 듯한 표정이 지독한 감기라도 걸린 줄 알았다. 나도 한 때 똑같은 모습을 하고 있었을 때가 있었는데, 거울같은건 쳐다볼 정신이 없었기에 알아보지 모했던 걸까. 한참 나아지지 않는 모습을 보며 걱정의 말을 전하자, 우울증이라는 말을 들었다. 그런데 웃기는 건, 그게 얼마나 힘들고 지독한지 직접 몸서리쳐가며 느껴보았으면서도 그 말에 떠오른 감정은 안타까움이나 동정이 아닌 기쁨이었다.

 비로소 내가 보고 느끼는 현실에 나를 이해할 수 있고 내가 이해해 줄 수 있는 사람이 생겼다는 사실이 도덕성이나 예의 따위를 모두 제치고 기뻤다. 담담하게 약을 먹고 일 더미에 깔려 지내며 버티고 있었지만 나도 모르는 새에 외로워져 있었다는 사실을 그제야 깨달았다.

 원래는 불면증 때문에 정신과를 다니며 수면제만 처방받고 있다고 말하는데, 처음 겪은 상황에 신이 났는지 불안장애부터 시작해서 우울증에다가 그간 글이라고 보기 어려울 정도로 휘갈긴 우울증 에세이까지 모두 알려줘 버렸다.(신나서 정신병 모두를 오픈하고 한참 이야기한 뒤, 나중에야 괜스레 너무 신났던 게 아닌가 부끄러웠다.).

나는 우울증을 소재로 글을 쓰는 이유가 소재 자체로도 꽤 자극적이라는 것도 있지만 가장 큰 이유는 내가 우울한 글들을 읽으며 얻었던 것들 덕분에 이 글을 계속 써야만 한다. 내가 직접 앓으면서 느꼈던 이야기들은 또 다른 누군가도 똑같이 겪고 느꼈던 덕분에 평범한 일이 되고, 내가 써 내린 이야기들이 누군가에게는 오히려 기대고 의지할 수 있는 존재가 되어준다는 걸 느꼈던 경험 덕분이다.

 그 사람에게 내 글과 이야기가 도움이 되었을지는 모르겠다. 그냥 헛소리나 진부한 말, 따분한 소리였을지도 모르겠다. 그렇다고 해서 내가 당신에게 떨었던 오지랖이 후회되진 않는다. 옛날의 나였다면, 그리고 미래에 다시 자빠져 있을 나라면 지금 내가 하는 것들을 가장 필요로 할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