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아'라고 말할 때, '아'라고 알아듣는 사람이 정말 있었어.
오늘부터 난 원가족에게서 나와,
나라는 새로운 가정에 옮겨 심겼음을 외친다.
그토록 내가 원하던 따뜻함,
유대감이 가득한 그런 가정.
내 감정에 대해 온전히 수용받는
그런 따뜻한 가정으로 옮겨져 왔다는 걸.
- 2022. 01. 22 일기 -
누구보다 가족의 화해를 꿈꿔왔던 나는 평범한 대화조차 이루어지지 않는 가정에서 다시 화목해질 수 있다는 희망을 잃어버린 채 입을 다물고 귀고 닫아버렸다. 부정적인 감정을 포함해 그 어떠한 감정조차 가지지 않는 것이 나를 위한 길이라 생각했고 한 집에 같이 살면서도 눈을 마주치거나 같이 앉아 밥을 먹거나 하지 않았고 갈등의 시작이 될 만한 빌미를 제공하지 않았다. 그렇게 2-3년의 시간이 지났을 무렵, 그 모습이 답답했던 아버지는 나에게 대화 좀 하자며 내 방 문을 두드렸다. 나는 더 이상 대화하기 싫다고 말한 뒤, 문을 잠가버리고 다시 자신의 할 일에 집중했다. 그러자 갑자기 문고리를 따는 소리가 들렸다. 따그닥 딸가닥.
분명 대화하기 싫다는 의견을 표시했음에도 물리적인 힘으로 문을 따고 들어오려는 아버지에게서 나는 충격과 공포를 느꼈다. 그리고 필사적으로 방문을 다시 걸어 잠그려고 애썼다. 잠금고리가 풀리면 온 힘을 다해 방문을 밀어서 들어올 수 없도록 안간힘을 썼다.
“대화 좀 하자니까! 네가 이런 식으로 하니까 아버지는 네가 뭐 때문에 이러는지 몰라서 답답해 미치겠다!”
방문을 따고 들어오려는 아버지의 노력에도 쉽게 방문이 열리지 않자, 이번엔 어머니가 나선다.
“얘야 아빠가 오죽 미치겠으면 이러겠니? 이 엄마를 봐서라도 문을 열고 대화 좀 하자. 엄마도 답답해서 이런 거 보기가 힘들다. 응?”
물리적인 위협에 대해 이제 자신의 유일한 울타리였던 방마저 안전하지 못하다는 걸 느끼자, 공포감과 분노에 휩싸인 나는 안간힘을 쓰며 부모에게 외친다.
“내가 분명 대화하기 싫다고 말했는데, 왜 자꾸 내 말 무시하고 들어와요?
그럴 거면 처음부터 내 의견은 왜 필요했던 건데요?
이런 게 나를 존중하지 않는 건데 이런 걸 아무리 말해도 못 알아듣잖아요!
그러니까 나랑 대화하려면 가족상담사를 데려오라고요!
그 사람 통해서 말하는 거 아니면 난 이 가족들 중 그 어느 누구와도 대화하지 않을 테니까요!”
딸각 탁. 그 말이 끝나자마자 문고리에서 잠금역할을 하던 나사가 빠지더니 방문이 쾅하고 열린다. 아버지는 내 방에 터벅터벅 들어오더니 두 손으로 내 어깨를 잡고 온 힘을 실어 의자에 눌러 앉힌다. 물리적으로 제압당했던 상황 속에서 나는 마땅히 가장 보호받아야 할 나의 영역을 가족이 무참히 침범해도 되냐는 생각과 함께 분노에 휩싸였고 자신을 지키기 위해 손과 발을 휘두르며 말 그대로 필사적으로 발악했다. 이 모습을 보자 이성을 잃어버린 아버지는 이미 성인이 되고도 남은 딸에게 뺨을 비롯한 온몸을 주먹으로 때리고 발로 찼고 나는 바닥에 내동댕이 쳐졌다. 옆에서 이 모든 것을 지켜보던 어머니는 어쩔 줄을 몰라하며 발을 동동 구른 채 자신의 남편을 말리지 못했고 맞고 있는 나를 그저 보고 있었다.
착. 나는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작정하고 달려드는 아버지의 손을 힘으로 맞잡으며 뿌리치고 대항하던 중에 아버지를 쳤다. 이 광경을 본 형제는 곧장 나를 향해 달려와 들이받았고 나는 침대로 쓰러졌다. 그리고 90kg가 넘는 거대한 자신의 몸으로 나를 짓누른 채, 내 목을 두 손으로 있는 힘껏 졸랐다. 시뻘게진 나의 얼굴. 나는 내 귀에서 들리는 이명과 두근대는 심장소리, 그리고 멍해지는 나의 정신.. 그 상황 속에서 자신의 목을 얼굴이 뻘게질 만큼 온 힘을 다해 짓누르고 있는 형제의 얼굴을 본다. 그리고 그 양옆에서 말린다고 말리지만 물리적으로 가장 힘이 센 형제를 어떻게 할 줄 모르는, 가장 연약한 딸을 지켜주지 못하는 그들을 본다. 그리고 나는 생각했다.
‘이대로 조금만 더 있다가는 정말 죽겠다. 정말 나 자신을 지키는 건 그 누구도 없는 거구나. 나 밖엔..'
정말 절벽 끝에 서있는 것 같았던 그 순간, 나는 남아있는 모든 힘을 다해 나를 짓누르고 있는 형제의 몸을 향해 돌진했고 그렇게 겉옷과 차키, 핸드폰을 가지고 재빠르게 집을 탈출했다. 정신없이 차를 타고 집 주변을 벗어났고 난 그렇게 목적지가 없는 방황을 해야만 했다. 집에서 멀어지면 멀어질수록 안심이 되었던 동시에, 화산처럼 터질 것 같은 감정에 북받쳐 올랐다. 그러고는 이름 모를 한 건물의 주차장에 차를 대고 핸들을 부여잡은 채 걷잡을 수 없는 눈물을 하염없이 흘렸다.
“어떻게 나한테 그럴 수가 있어, 어떻게!! 내가 교회도 열심히 다니고 하나님도 열심히 믿었는데..
나는 내 삶을 열심히 잘 살아가고 있는데 내가 뭘 잘못했길래 이런 가정에서 태어나서 남들은 겪지도 않아도 되는 이런 비극을 겪고 있는 거냐고! 그것도 가장 가까운 가족에게서..!”
나의 목숨이 절벽 끝에 서있었던 그날, 나는 나이트 근무를 위해 직장에 출근했다. 목에 버젓이 손가락 자국이 새겨진 채, 갈가리 찢겨있는 마음을 추스르지도 못하고 자신이 맡은 환자들의 상태를 살핀다.
“환자분, 어디 불편한 곳 있으세요?”
이렇게 물어보는 자신이 스스로도 너무 애처롭고 안쓰럽기도 하고 마음이 많이 아파서 금세 눈시울이 붉어졌지만, 여기는 직장이라며 마음을 이내 다 잡고 애써 사회적인 미소로 환자들을 대한다.
그 사건 이후로 형제는 나의 말대로 어느 한 심리상담소에 가족상담을 신청했다. 그리고 가족상담을 하기로 한 그날 당일. 나를 제외한 3명의 가족들은 먼저 상담사와 대화를 하고 있었다. 근무를 마치고 뒤늦게 도착해 비에 젖은 우산을 급하게 접으며 상담소의 문을 두들기는 나. 똑똑.
문을 열고 들어가니 상담사의 맞은편에 부모님이 나란히 앉아있었고 뒤쪽 소파에 형제가 양쪽 팔을 걸친 채 다리를 꼬고 앉아있었다. 자신은 상담할 필요가 없으니 부모와 나만 상담하면 된다며 마치 제삼자처럼 상담을 바라보는 형제. 나는 그런 형제와 부모를 향해 시선을 주지 않은 채 최대한 먼 쪽에 있는 의자를 골라 앉은 다음, 그들 쪽 시야를 손으로 가리며 남은 시야로 상담사를 마주했다. 이미 내가 오기 전부터 가족들로부터 이 아이가 어떤 아이인지에 대한 생각들을 들었던 상담사는 이미 내가 오기 전에 어떤 마음일지, 어떤 상태일지 예측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아니나 다를까 내가 오자마자 자신이 예상했던 대로 상황이 펼쳐졌다.
“자기소개해 줄 수 있어요?”
상담사는 나에게 물었다. 하지만 처음 보는 사람에게 짓는 미소도, 말하는 사회적인 목소리도 가족 앞에서 보이고 싶지 않은 마음에 가족을 향해 가리고 있던 자신의 손 뒤로 고개를 떨구며 책상만 하염없이 바라보고 있었다. 그러자 상담사는 가족들에게 잠시 바깥으로 나가서 기다려달라며 양해를 구하고 상담실 밖으로 내보냈다. 문이 스르륵 닫히는 것을 확인한 나는 떨구던 고개를 들고서 크게 심호흡했다. 그리고는 처음으로 상담사의 얼굴을 마주했다.
“이제는 자기소개해 줄 수 있겠어요?”
“네. 근데, 어떻게 아셨어요? 제가 이렇게 하길 원한다는 걸..”
“이미 형제가 상담을 신청할 때, 그 상황을 듣고 가계도가 그려지더니 본인 상황이 어떨지 눈에 선하더라고요.”
그동안 내가 ‘아’라고 말해도 아무도 '아'라고 알아들을 거라고 생각하지 못했다. 내 마음의 소리를 알아들으려는 관심조차 없던 환경 속에서만 살다가 처음으로 '아'라고 정확하게 알아듣는 사람을 찾았다고 느끼고 속으로 깜짝 놀라는 동시에 감동을 받았다. 마치 오랫동안 깊은 심해에 잠겨서 표면 위로 흐릿하게 보이던 빛줄기를 보며 하염없이 바라만 보며 기다리다가 드디어 실제로 눈앞에 만난 느낌이었다. 그때부터 안심이 되더니 눈을 크게 뜨고 상담사에게 당돌하게 말하기 시작했다.
“제가 있는 그대로 솔직하게 말해야 저에 대해서 이해하시는 게 빠르겠죠? 그냥 필터링 없이 다 말할게요.”
그렇게 20분 동안의 짧은 독대가 끝나고 다음 가족상담을 위해 예약을 하려는데, 상담실 바깥에 있던 세 사람은
“저희는 필요 없어요. 저 얘만 문제가 있으니 쟤만 상담하면 됩니다. 얼른 문제를 밝혀주세요. 그것만 해결되면 우리 가족은 평화로울 거 같거든요.”
라고 말한다. 상담사는 알겠다며 나와 다음 상담일정을 예약한 뒤, 다음에 보자며 배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