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연 이러한 삶에서 벗어나 편하게 숨 쉴 수 있을까?
따뜻함을 갈망했다. 내가 원했던 건 바로 그 따뜻한 '사랑'이었다. 처음부터 주어진 게 아니라면 직접 나서서라도 따뜻한 가정으로 만들고 싶었다. 그래서 내가 할 수 있는 방법을 다 동원했다. 기도면 기도, 통곡이면 통곡, 희생이면 희생. 덜 이해받고 덜 사랑받아도 나 한 사람이라도 노력하면 우리도 여느 가정처럼 따뜻해지겠지, 조금이라도 달라지겠지라며 지푸라기를 잡는 심정으로 편지도 써보았다. 그러나 10년 가까운 그 오랜 시간 동안 아무리 노력해도 우리 가족은 따뜻해지지 않았다.
나는 평범한 회사원 가정의 1남 1녀 중 막내로 태어났다. 바람구멍 하나 드나들 틈이 없을 만큼 단단한 벽 같았던 아버지, 그늘 없는 그 벽을 뛰어넘지 못하고 그저 웅크리며 기대어 살아온 어머니 그리고 마음만 먹으면 자신의 힘으로 벽을 넘어서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는 형제. 이런 가족 분위기 속에서 나는 사랑받고 싶어 강아지처럼 꼬리를 살랑거리는 막내였다. 목마른 분위기 속에서도 작은 손으로 브이를 그리며 해맑게 웃어 보일 줄 아는 아이였다.
하지만 그런 순수함도 잠시, 나의 존재를 비롯해 감정과 생각이 받아들여지지 않는 환경에서 자라오면서 나도 모르게 마음 깊은 곳에서 우울함이 쌓여갔다. 그저 태어난 것만으로도 감사한 평범한 축복마저 남의 이야기처럼 느껴졌으며 내가 느끼는 생각과 감정은 스스로도 믿지 못했다. 온전한 사랑을 받아 본 적이 없음에도 가족에게 사랑을 줘야 했고, 어쩌다 통제되지 않는 모습을 보이면 어김없이 죄책감의 덫을 씌워버리는 분위기 속에서 사랑받고 싶어서 꼬리를 흔들었던 꼬마는 웃음조차 잊어버렸다. 그렇게 이유도 모른 채 숨을 쉴 수 없는 답답함과 억울한 마음을 가슴에 묻고서 18여 년의 시간이 지났다. 세상은 원래 이렇게 살기 힘든 곳일까. 그렇게 짊어지지 않아도 될 짐과 기댈 곳 하나 없는 외로움을 안고서 나는 청소년이 되었고 이 깊은 바닷속에 가라앉은 것 같은 나의 삶은 결코 바뀌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다가 고등학교 3학년 시절 교회를 다니게 되었고 그곳에서 사람들을 통해 접한 따뜻한 사랑에 흠뻑 젖어버렸다. 사랑의 맛을 경험하고 달라지는 게 나 한 사람만 놓고 봐도 이렇게도 많은데 이 좋은 걸 나만 누릴 수 없다는 생각에, 날마다 기도제목엔 가족을 빠뜨리지 않았고 어쩌면 우리 가족도 이런 사랑을 접하면 달라질 거라는 희망을 가지게 되었다. 하지만 이런 희망을 품고 여러 차례 대화를 시도했으나 소통조차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고 결국 화를 내거나 물리적인 폭력이 오가기 일쑤였기에 가족과 화목해질 수 있을 거라는 희망을 가지고 있던 나는 어느샌가 입을 굳게 닫아버렸다.
그렇다고 나는 함께 살고 있는 가족과 떨어져서 살 용기가 나지 않았다. 단 한 번도 가족 밖에서의 생활을 해본 적이 없다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앞서, 세상을 혼자 살아갈 용기가 선뜻 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마음 한편엔 아무리 나에게 나쁘게 해도 가족인데, 이렇게 무참히 떠나도 되는 것인가에 대한 죄의식도 남아있다. 그런 내가 유일하게 집안에서 의지할 곳은 나의 방 한 칸과 자동차 안의 작은 공간뿐이었다. 가족의 숨소리와 발걸음 소리, 기침소리, 나를 흉보는 소리에 치를 떨 정도로 내 마음속은 가족에 대한 분노로 가득한 채, 방문을 걸어 잠그고 귀를 막고 이불속에 파묻힌다. 그리고 나는 생각한다.
‘과연 나는 이러한 삶에서 벗어나 편하게 숨 쉴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