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윤모닝 Jan 28. 2024

4-4. 허물어지는 나의 영역 속에서 떨고 있는 아이.

든든한 울타리 하나 없이, 스스로를 지켜야 할 수밖에 없었던 날들.







나의 것이 없는 나.



 어느 날 형제가 내 방에 있는 스테이플러를 가져가서 쓰고는 다시 돌려주지 않았다. 나는 형제에게 달라고 했지만 내가 매번 빌려줄 때마다 다시 제자리로 돌려놓는 법이 없었다. 그래서 나는 항상 화를 냈고 그럴 때마다 가족들은 형제를 혼내기보다 그런 걸로 목소리를 높이냐며, 네 것이 가족의 것이 아니냐라며 도리어 나를 혼내었다. 이런 일이 반복되자 나는 더 이상 형제에게 물건을 빌려주고 싶지 않아서 빌려주지 않았다. 그러자 이번에는 내 물건을 허락도 없이 가져가는 것이 아닌가. 내가 아무리 내 물건을 내 허락 없이 가져가지 말라고 해도 역시나 형제는 내 말을 귀뚱으로도 듣지도 않고 자기 하고 싶은 대로 다 했고, 부모님은 그런 형제를 그저 바라보고만 있었다.


 초등학교 1학년때쯤 엄마와 함께 시장에 장을 보러 간 적이 있었다. 시장길을 지나다가 가판대에 뜨끈뜨끈하게 김을 내뿜으며 익어있는 김치만두 꾸러미가 보이길래 맛있어 보여서 엄마를 조르고 졸라 만두를 샀다. 평소 같으면 내가 갖고 싶은 것을 말할 때마다 ‘안 돼’라고 칼같이 끊어내는 엄마인데, 이 날따라 만두가 먹고 싶다고 한두 번 조르니 엄마가 사주어서 지금도 생생히 기억할 정도로 너무 기분이 좋았다. 그렇게 소중하게 만두를 품에 안고서 집에 왔는데 이날 배가 고프지 않아서 냉장고에 넣어두고 혹시 누가 훔쳐먹을까 봐 다음날 학교 다녀와서 먹을 거라며 ‘이건 내 거!’라고 엄마에게 계속 강조하며 각인시켰다. 그렇게 다음날 학교를 마치고 집에 오자마자 냉장고 문을 열었는데, 냉장고에 고이 모셔둔 만두가 사라지고 없는 것이 아닌가. 나는 충격에 빠져서 엄마에게 울면서 물어봤다.


“엄마 누가 내 만두 먹었어?”


“그거 아까 오빠가 먹는 것 같던데?”


“왜 내 거 먹었어!! 내가 학교 갔다 와서 먹을 거라고 했잖아, 저거 내 거라고 했잖아!!”


“오빠가 좀 먹으면 어때, 배고파서 먹었겠지. 넌 가족끼리 그런 걸로 화를 내니?”


 그런가 하면 어느 날은 학교 수업을 마치고 돌아왔는데 엄마가 나에게 온 우편물과 택배 상자들을 다 뜯어보고 다시 테이프로 덮어놓은 것을 발견했다. 나는 머리끝까지 화가 나서 왜 남의 것을 함부로 훔쳐보냐며 화를 냈지만 엄마는 “엄마가 딸내미 거 보는 게 그렇게 잘못이니? 나중에 엄마 늙으면 엄청 뭐라 하겠다.”, “네가 관심 좀 가져달라며? 그런데 관심 가져주니까 이렇게 화를 내는데 내가 어떻게 너한테 관심을 가지니?”라며 도리어 죄책감을 던져주었다. (이건 엄연히 관심이 아니라 불필요한 간섭이었음에도 엄마는 끊임없이 나를 향한 관심이라고 지금도 그렇게 믿고 있다.) 그러면서 다시는 그러지 않겠지라며 생각했지만 엄마는 내가 없을 때마다 내 방에 몰래 들어가 내 일기를 읽어보고 내게 써준 친구들의 롤링페이퍼들을 몰래 훔쳐 읽었다. 이를 알아챈 나는 다시는 그런 행동하지 말라고 나를 존중해 달라고 엄마에게 엄포를 놓았던 기억이 난다. 지금 생각해도 너무 화가 나는 행동이었다.


 나를 존중해 준다는 것은 나의 영역을 인정하는 것을 포함하는 말이다. 나는 나의 영역 안에 있는 것이 물건이든, 공간이든, 사람이든 나를 존중한다면 나와 관련되어 있는 것들을 존중해 준다는 것과 같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엄마는 항상 내가 나의 것을 주장할 때마다 가족이라는 명분하에 모든 것을 무산시켰다. 처음에는 나도 내 물건을 주장하는 것이 이상한 것인가라며 내가 이상한 줄로만 알았다. 이것이 나중에 있을 큰 사건의 도화선이 된 줄도 모른 채 말이다. 이렇게 나는 어렸을 때부터 다른 사람에게 호의를 베푸는 것보다 누가 내 것을 훔쳐가지 않을까 경계하며 내 것을 내가 지키는 법을 더 먼저 배워야 했다.







안전한 보호막 없이 노출되어 있던 나.




 나를 어릴 적부터 봐왔던 사촌이 며칠 전 집에 놀러 와 이야기를 하며 나에게 이런 말을 했다.

“내가 기억하는 너는 항상 OO이가 놀려서 울고 있는 모습이야. 그럴 때 숙모가 동생을 괴롭히지 말라고 단단히 잡았어야 했는데 그런 게 없었던 거 같다.”


 나는 유독 형제의 놀림을 많이 받았다. 동생에게 사랑을 표현하는 방법이 그런 거였겠지만 그럴 때마다 부모님이 동생을 괴롭히는 것이 아니라 동생을 소중히 대하는 법을 일찍 가르쳐줬었더라면, 여동생은 괴롭히는 것이 아니라 아껴주고 보호해줘야 하는 동생이라고 단단히 일러줬다면 그 이후로의 상황이 달라지지 않았을까 하며 지금 생각하면 안타까운 한숨만 나온다. 남자 형제일수록 동생에게 해도 되는 것과 하지 말아야 할 것을 확실하게 선을 그어줬어야 했는데 우리 부모님은 그저 동생을 괴롭히지 말라며 상황만 모면할 뿐 혈기왕성한 아들을 통제하고 훈육하는 역할을 아무도 하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형제에게서 놀림과 괴롭힘을 받을 때마다 울면서 엄마를 찾았고 엄마는 처음에는 말리다가 이런 일이 반복되자 점점 지쳐서 그려려니 하며 넘기기 시작했다.


 이건 내가 기억 못 하는 아주 어렸을 때의 일인데, 엄마가 나에게 이야기해 준 것이다. 동네에 친하게 지내는 슈퍼아저씨가 있었는데 내가 태어나고 1-2년 정도가 되었을 무렵, 함께 있던 3-4살쯤 되는 형제를 놀리고자 엄마와 슈퍼아저씨의 암묵적인 동의하에 형제가 보는 앞에서 나를 트럭에 태워 납치하는 것처럼 연기를 했다. 그런데 나를 납치해 가는 트럭을 향해 뒤따라오면서 그 나이에 온갖 쌍욕을 하면서 ‘내 동생 내놔 이 XX 놈아!’ 라며 소리쳤다고 한다. 이 일화를 엄마는 매우 자랑스럽게 여기면서 장난기가 많은 형제를 늘 감싸주곤 했다. 그리고 매일 여러 번 반복되는 형제의 놀림에 울면서 힘들어하는 나에게 매번 면죄부처럼 이 이야기를 꺼내며 나이가 심지어 더 어린 나에게 ‘네가 이해하라’며 설득했다.


 하지만 이건 끝이 아니었다. 고등학생이 되어서까지 엄마의 면죄부는 계속되었고 이는 형제를 더욱 활개 치게 만들었으며 상대적으로 힘이 센 형제가 의자를 집어던지고 문을 부숴도, 나를 때려도 아무 일 없었던 것처럼 넘어갔다. 지금껏 이런 사태 방관하고 있었던 아빠도 형제가 성인으로 자라 갈수록 같은 남자로서 힘으로 제압하지 못함을 깨닫고 점점 통제하지 못했다. 어느 날은 형제가 장난이라며 온 힘을 다해 내 배를 가격했고 나는 순간 숨을 쉴 수가 없을 정도로 그 자리에 주저앉아 통증을 호소했다. 그런데 부모님은 이를 보더니 “동생을 그렇게 때리면 어떡하니? 그렇게 놀지 마~”라는 한마디를 던지며 이를 크게 받아들이지 않았고 형제를 방으로 조용히 불러 다그치고는 그것으로 이 사건이 끝났다. 처음 겪어보는 공포에 두려웠을 나를 위로해 주거나 감싸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런 나에게 함부로 하는 형제에 대해서 단호하게 처벌하는 사람도 아무도 없었다. 그저 해프닝이었던 것이다.


 이렇게 부모님이 아무런 안전기지로서의 역할을 못하자 나는 이전 4화에서 언급했듯이 형제는 나의 목을 온 힘을 다해 눌리며 죽이려고 했다. 여전히 부모는 그 형제가 그럴 수밖에 없었을 거라며 형제의 편을 들뿐 내 편은 아무도 없었다. 간신히 도망쳐 나와 5년이 지난 지금에서야 생각해 보면 형제가 이렇게 자랄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 일련의 사건들과 이어지면서 이해되기 시작했다. 어쩌면 나를 놀렸을 아주 어렸을 때부터 이미 이런 일은 예견되었는지도 모른다. 슬프게도 그럴 때마다 부모가 내 옆에 있음에도 바로 잡아주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기에 그 씨앗이 이렇게 나의 목숨까지 위협하는 괴물로 커버린 것이다.  그 속에서 나는 내가 마음속에 느껴지는 공포라는 감정과 무서움을 비롯해 만감이 교차하는 감정의 소용돌이를 스스로도 알아차리거나 위로해주지 못했고 부모가 씌운 가스라이팅처럼 그런 감정을 느끼는 내가 이상한 거라고 생각했다.


 이런 사건들 이후로 나는 내 목숨을 지킬 수 있는 사람은 나밖에 없다고 지금도 굳게 믿고 있다. 아빠라는 울타리가 주는 안전함을 겪어보지 못한 채, 어렸을 때부터 안전기지 없이 노출되어 있던 나를, 가족들 중에 가장 약한 존재였을 나를 지킬 수 있는 건 처음부터 그 누구도 아닌 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가장 밑바닥에 있는 진실을 마주했던 순간.




 지금까지의 이야기들을 상담선생님과 나누면서, 나는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가족 내에서 가장 보호해줘야 할 여동생을 그렇게 함부로 하는데도 왜 가족은 아무도 단호하게 바로잡지 못했을까. 엄마는 같은 여자로서 왜 여동생을 함부로 하는 아들을 뭐라 하지 못할 망정 감싸주기만 했을까. 왜 항상 가족이라는 명분하에 내 경계를 무너뜨리고 자꾸 넘어오고 간섭하려고 하는 걸까. 선생님께 온갖 질문을 쏟아냈다.


“그건 엄마가 딸을 의지하고 있었기 때문이에요. 딸이 아주 어렸을 때부터 이미 엄마는 그 아이보다 더 어린 아기로서 이제 막 자라고 있는 딸을 의지하고 있었어요.”


“정…. 정말요..? 어떻게 그렇게 되는 거죠?”


“엄마라는 명분으로 자식의 모든 것을 받아주는 것처럼, 본인의 엄마도 딸이 자신에게 그런 역할을 해주길 바란 거예요. 자신을 그저 한없이 받아주는 엄마의 역할을.. 그래서 매번 ‘가족이니까’라는 명분으로 그 영역을 침범한 거죠.”


“그럼 형제의 침범은 어떻게 설명이 되는 거죠?”


“엄마가 자존감이 낮은 한없이 약한 사람이기 때문도 있지만, 자신이 해야 할 엄마라는 역할을 자기가 못하기 때문에 고스란히 딸이 당하고 있어도 어떻게 못한 거예요. 자기 하나 지키기에도 버거울 만큼 힘이 없는 사람이기 때문에 딸을 보호해주지 못한 거죠. 딸이 자기 대신 엄마의 역할을 하길 바랐는지도 모르죠. 참.. 어떻게 이럴 수가 있는지..”


 나는 드디어 대물림의 고리 가장 밑바닥에 있는 진실을 깨닫고 너무나도 큰 충격에 빠져 실제로 몇 달간 혼자 있을 때면 무거운 마음에 할 말을 잃었다. 어떻게 엄마가 보호해줘야 할 어린 딸에게 엄마가 의지할 생각을 하고 있었던 건지.. 나는 무의식적으로 엄마는 내가 의지할 수 없는 사람이라는 것을 느꼈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엄마가 집을 나갔을 9살 무렵, 엄마에게 집으로 돌아오라며 울고불고 난리 쳐도 남았을 텐데 돌아오라고 쉽게 말을 못 했던 것이다. 얼마나 불운하고 개탄스러운 인생인가. 떼를 쓰며 엄마를 의지해도 모자랄 나이에 다크지도 않은 어린 딸이 약한 엄마를 먼저 생각하고 있었다니.


 그래서 그 나이에 피워야 할 어리광을 다 피우지 못하고 빨리 어른이 되어야만 했던 거구나. 도움이 필요하면 다른 사람에게 충분히 의지해도 되는데 그 방법을 몰랐던 거구나. 그동안 울고 싶은 순간이 많았을 텐데 그럴 때마다 의지할 곳이 없어서 혼자 울음을 삼켜야만 했구나. 기대고 싶은 순간도 많았을 텐데 그때마다 힘없는 엄마만 바라보며 희망을 가졌던 거구나…


 수없이 요동치는 감정의 소용돌이. 엄마에게 우울함과 불안함, 자존감 없는 삶을 물려받은 것도 모자라, 어린 딸에게조차 자신을 맡기며 짐을 지우게 만들었다니.. 난 정말 이 충격으로 엄마라는 존재에 대해서 좋게 생각할 여지를, 그나마 남아있던 일말의 희망조차 끊어버렸다. 그리고 한없이 이 충격받은 마음을 애써 추스르려고 하지 않고 흐트러져 있는 모습 그대로 받아들였다. 애써 빨리 일어나려고 애쓰고 싶지 않았다.


“그동안 이 사실을 모르고 지금까지 주어진 상황 속에서 열심히 상담을 받으면서 잘 살아보겠다고 살아왔는데 이 진실을 마주하니까 그나마 내가 더 나은 사람이 될 수 있을 거라는 희망도 없어지는 거 같아.”


“그런데 그 상황에서 네가 이만큼 살아온 것만 해도 기적 아니가? 나는 네가 이만큼 온 것만 해도 대견하다고 말하고 싶다. 그 상황에서는 그 누구도 너한테 잘못 살았다고 말할 수 없어. 나 같아도 니만큼 못살았을 거 같아. 그러니까 어쩔 수 없었던 그 상황에서의 너를 그저 받아주면 안 되겠니? 그런 엄마 밑에서 그렇게 자랄 수밖에 없었던 그 시간의 너를 그냥 그럴 수밖에 없었다고 받아주면 안 되겠나? 나는 너를 좋아하고 정말 소중히 아끼는 친구로서 네가 이걸로 그만 아파했으면 좋겠다.”


 어느 날, 충격에 빠져서 허우적대던 나에게 한 오랜 친구가 해준 말이었다. 나는 이 말을 듣고서 태어날 때부터 내가 바꿀 수 없었던 대물림의 고리로부터 영향을 받았다는 걸 천천히 인정하고 받아들였다. 너무 안타깝고 개탄스럽게 살아온 나 스스로에게 처음부터 잘못된 단추를 끼어온 인생을 이마만큼이라도 살아와서 참 감사하다는 마음이 들었다. 상담선생님도 나에게 자주 하시던 말씀이 있었다.


“그래도 이런 삶을 살고도 지금까지 이렇게 살아있는 것은 참 대단한 거예요. 그것만으로도 참 대단한 건데 이렇게 자신의 삶을 직면하며 대물림을 끊어내려고 하는 것을 보면 정말 놀라운 거죠.”


 지난날의 과거를 되돌릴 수도, 나의 연을 바꿀 수도 없다. 하지만 나는 지금 현재에 살고 있고 연을 이어받아도 내가 다르게 살면 된다. 나는 지금껏 이렇게 살아온 나의 내면아이를 꼭 안아주면서 그동안 애썼다고, 이제는 더 애쓰려고 하지 않아도 된다고, 너의 잘못이 아니라고, 지금까지도 충분히 잘 살아왔다고 토닥여주었고 그 아픈 시간이 무사히 지나기를 함께 기다려주었다.







이전 23화 4-3. 기댈 곳이 없이 홀로 서있는 외로운 아이.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