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요하면 다른 누군가에게 도움을 청해도, 도움을 받아도 괜찮아.
“선생님 저는 선생님이 없다고 생각하고 일할게요.”
2년 만에 퇴사했던 직장에 다시 재입사하게 된 나는 다시 처음부터 신규교육을 받게 되었다. 신규교육과정 동안 내가 모르는 것, 부족한 것을 가르쳐주고 도와주는 사수, 일명 프리셉터가 6주 동안 함께하게 되는데 나는 나의 프리셉터에게 당당하게 저렇게 말했다. 왜냐하면 이전에 일했던 직장이라 돌아가는 시스템도 잘 알고 있었을뿐더러 이미 한번 같은 곳에서 일해봤던 사람이니 신규처럼 도움을 청하고 의지하는 것도 마땅하지 않다고 생각했고 한번 의지하게 되면 나중에 더더욱 프리셉터를 의지하게 될까 봐 그러면 안 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얼른 한 사람의 몫을 해내서 인정을 받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당연히 나의 사수도 이렇게 당돌하게 말할 정도로 자신감 넘치는 프리셉티가 있으면 좋아할 줄 알았다. 그러나 나의 예상과는 다르게 내가 저렇게 말할 때마다 프리셉터의 표정은 좋아 보이지 않았다.
“의지하면 안 된다고 말하는 거 자체가 의지하고 싶은 마음이 크기 때문이에요. 정말 의지하지 않아도 되는 사람은 의지하지 않아야 한다는 강박적인 생각을 하지 않죠. 그리고 그런 사람은 잠깐 다른 사람의 도움을 얻거나 의지하는 순간이 있더라도 금방 다시 자신의 힘으로 서게 되어있어요. 그 잠시 도움을 얻는 것도 두려워하지 않죠.”
상담선생님의 이 말을 듣고서 나는 충격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내가 혼자 해내려고 하는 노력을 하고 있지만 내 안에는 정말 의지를 하고 싶어 하는 약한 사람이었다는 걸 발견했기 때문이다. 그러고 보니 나는 지금껏 살아오면서 나 혼자 해결하기 힘든 일이 앞에 있으면 힘들어도 나 혼자 어떻게든 해나가려고만 했지 다른 사람의 도움이나 의견을 구하는 일을 하지 않았다. 나는 과연 언제부터 이렇게 주변 사람들에게 자연스럽게 도움을 청하는 것이 부자연스럽게 되었을까?
아직도 기억이 난다. 내가 초등학교를 다닐 시절에는 학교에서 가정통신문이라는 종이를 나눠줬는데, 그 종이에는 다음 날 수업을 위해 가져와야 할 준비물이나 가정에서 해와야 할 숙제가 적혀있는 종이였다. 어느 날은 학교 책상에 떨어진 지우개 가루를 쓸기 위한 청소도구와 실내화, 참고서를 사 오라는 종이를 받았는데 학교에서 돌아와 집에 있는 엄마에게 가정통신문을 전해주니 엄마는 관심을 가지지도 않고 초등학교 저학년이었던 내 손에 돈을 쥐어주며 알아서 사라고 했다. 그런가 하면 1년에 한두 번씩 있었던 수업참관이 있는 날에는 다른 부모님들은 다 와있었지만 우리 부모님은 특별한 일이 없었음에도 당연히 못 가는 날이라며 나의 일상에서 일어나는 이벤트들에 별로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괜히 이런 날에 교실에서 서로 아는 척하고 있는 다른 가족들을 보면 아무도 곁에 없는 나는 그렇게 쓸쓸하게 느껴졌다.
최근에는 육아프로그램이나 가족 리얼리티 프로그램들을 보면 학교에서 돌아온 아이들에게 ‘오늘 뭐 배웠어? 새로 사귄 친구는 있어? 좋아하는 친구도 있니? 오늘 배운 춤 엄마에게 보여줘’라는 자연스러운 대화를 하고 있는 부모들이 많이 나온다. 물론 상대적으로 풍요로운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요즘의 부모세대와 우리 세대의 부모님들과 비교하면 안 되겠지만 그래도 자식들이 학교에서 배우고 성장하는 과정들에 어느 정도 부모의 적절한 관심을 받았던 세대였다고 생각한다. 내 주변에 친구들을 보면 하나같이 부모님들이 먼저 나서서 친구들 학원을 알아본다거나 준비물이 필요하진 않은지 물어봤고, 심지어 담임 선생님께 자신들의 자녀들은 학교에서 어떻게 생활하고 있는지 직접 묻고 상담하곤 했다.
하지만 나는 엄마나 아빠에게서 학교생활에 대한 사소한 질문조차 받아본 적이 없다. 내가 학교에서 수업시간에 무엇을 배웠는지, 어떤 모습인지, 제일 친한 친구는 누구인지, 제일 좋아하는 과목은 무엇인지 나에게 물어본 적이 단 한 번도 없다. 궁금해한 적도 없다. 오히려 내가 엄마에게 이런 것들을 쫑알쫑알 따라다니며 말하면 엄마는 “엄마는 말하는 거 귀찮아. 그러니까 네가 좋아하는 아빠한테 가서나 해. 엄마 귀찮아.” 또는 “엄마 지금 빨래 널어야 돼 바빠. 용건만 말해. 짧게 용건만”이라는 말만 했다. 그렇다고 아빠에게 가서 말하면 아빠는 컴퓨터로 바둑을 둔다고 내 이야기에 관심을 가지지 않거나 집 밖에 나가서 아빠 친구들을 만나기 바빴다. 내가 학교에서 칭찬을 받거나 상장을 받아서 신나 있어도, 학교에서 억울하거나 슬픈 일을 당해도 우리 가족 중에 내 이야기를 들어줄 사람은 슬프게도 아무도 없었다. 공부에 필요한 참고서를 사는 일도, 학습지나 학원을 알아보는 일도, 가족과 함께 하는 방학숙제를 하는 일도 전부 혼자 해야 했고 학교를 다니면서 학교생활을 하면서 내가 혼자 해낼 수 없을 것만 같은 일이 있어도 옆에서 나를 지지해 주는 지원군 없이 늘 혼자서 용기를 내는 법부터 터득해야 했다.
“너는 이해력이 느리고 고지식해서 안 돼.”
“너는 ~해서 안 돼.”
”에게게 니 까짓게 뭘 할 줄 안다고? “
“네 말은 별로 안 중요해. 이미 우리가 다 정했거든.”
우리 가족이 나에게 많이 했었던 말이다. 말로는 우리 막내, 막둥이, 사랑하는 딸이라고 하지만 그런 말속에 진심이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가족들은 가장 약하고 어린 나를 보호하고 예뻐해주지도 못할 망정 많이 무시했었다. 마치 하인 부리듯이 공부하고 있는데 커피나 물을 떠 오라고 한다던지, 냉장고에서 음식 좀 꺼내와 달라던지, 각종 잔심부름은 물론이고 집에 들어와 공부를 열심히 하고 있는 나에게 이기적이며 고지식하다는 지적을 하거나 내가 가진 재능을 부모에게 자랑할 때마다 별거 아니라는 듯이 깎아내릴 정도로 정말 나를 숨 막히게 만들었다. 특히, 그중에서도 나를 비판하며 가장 힘들게 했던 사람은 아빠였다 (본 책 10화 ‘내 속에 끊임없이 지적하는 사람이 살아요’ 참고).
이전 글들에서도 많이 다루었듯이 내가 그저 있는 존재 만으로도 거침없이 비판하고 지적을 하던 사람이 아빠였는데, 오죽하면 아빠의 잔소리나 지적을 듣고 싶지 않아서 내 방에 문을 잠그고 이불을 뒤집어쓰고 있어도 내방의 벽을 타고 내흉을 보고 있는 아빠의 목소리가 다 들릴 정도였다. 물론 그런 아빠를 느끼기 전 아주 어렸을 때는 대문에 턱이 찢어져도 달려갈 만큼 아빠를 좋아했던 어린 시절도 있었지만 점점 그런 부정적인 말들을 많이 듣고 자라다 보니 내 속에는 아빠를 향한 사랑은 없고 분노만 자리 잡아가고 있었다.
“그렇게 무시를 하는 말을 많이 듣고 자라면 자신의 약한 모습을 드러내는 것을 꺼려하게 될 수밖에 없어요. 수치심이라고 하죠. 자신과 가장 가까운 가족에게서 이런 말들을 들으며 수치심을 많이 느끼고 자랐으니 다른 사람에게 적절히 의지해도 된다는 것을 느끼는 경험도 못할뿐더러 도움을 청하는 것조차 어려울 수밖에 없답니다.”
수치심. 상담선생님의 이 말씀을 듣고서 내 머릿속에 나도 모르게 그런 아빠의 비판과 지적에 몸을 웅크리고 있는 수치스러워하는 나를 가둬두고 아빠를 향한 분노에 이를 갈며 아빠보다 더 나은 사람이 되겠다고 다짐하고 또 다짐했었던 지난날들이 떠올랐다. 그래서 가족들과 함께 살아도 홀로 외롭게 이 싸움을 견뎌내고 있었다. 이런 수치심을 심겨준 배경에서 자란 나는 사회에 나와서도 가족을 물론이고 다른 사람에게 도움을 청한다는 것 자체가 나의 약점을 그대로 드러내는 자살행위나 다름없다고 생각했었던 것 같다.
나의 엄마는 통제가 강했던 아빠의 말에 항상 휘둘렸다. 자신이 하고 싶은 머리스타일도 아빠가 원하지 않으면 바꿨었고, 자신이 입고 싶은 옷도 아빠가 별로라고 하면 바로 갈아입었다. 가족들 생활비는 아끼지 않으면서 자신이 사고 싶은 것은 그렇게 아꼈다. 한 번은 내가 엄마에게 용돈을 주면서 하고 싶은 거나 갖고 싶은 거 사라고 해도 그 돈을 모아 생활비로 썼다. 그렇게 가정에 헌신적이었던 엄마를 아빠는 결코 존중하지 않았다.(지금생각하면 자존감이 없었던 엄마의 문제이지만) 엄마가 아파서 누워있어도 택배가 오면 거실에 있는 아빠 대신 엄마가 택배를 받아오게 했고, 시장이나 마트에서 장을 두 손 가득 보고 오면 엄마의 두 손에 든 짐을 들어줄 생각조차 하지 않고 집에서 가만히 TV를 보고 앉아있는 아빠였다. 어느 날은 엄마가 힘들게 집안일을 하는데 도와줄 생각도 하지 않는 아빠에게 너무 화가 나서 어떻게 여자인 엄마가 이렇게 힘들게 일하고 있는데 도와주지 않냐며 화를 냈지만 아빠는 “그럼 네가 하면 되잖아. 아빠는 그런 거 힘들어서 못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항상 자신은 완벽한 아빠이며 가족의 가훈은 사랑이라고 말하는 아빠를 볼 때마다 내가 얼른 자라서 아빠에게서 고통받고 있는 엄마를 보호해야겠다는 생각을 많이 하며 자랐다. 그리고 그런 아빠보다 더 훌륭히 자라서 절대 아빠를 닮지 않는 좋은 어른이 되겠다는 생각을 많이 했었다. 그래서 공부도 더 열심히 했고 내 앞가림은 내가 잘해야겠다는 생각이 강했었다. (물론 이는 내 입장에서 정의롭지 못한 일들이 벌어질 때 남들보다 더 흥분하는 원인이 되기도 했다.)
적절한 관심을 받고 자라지 못하고 가족들 속에서 웅크리며 나를 보호하기 바빴던 나에게 다른 사람이 내민 손은 따뜻한 도움의 손길이라기보다 나를 아프게 찌르고 평가하는 것이라고 생각해 왔다. 그런데 내가 왜 그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었는지 나 혼자만의 시간을 가지며, 또는 상담을 통해 더욱 명확하게 마음속에 그려지자, 나는 마음속에서 두려움에 떨고 있던 약한 나를 안아주었다. 그리고 늘 혼자서 파도 앞에 맞서야 했던 지난날의 어린 나를 되돌아보면서 그 작은 어깨에 손을 얹고 이야기해 주었다. 이제는 혼자 외롭게 세상을 살아가지 않아도 된다고. 이젠 내가 나에게 든든한 지원군이 되어줄 거고 따뜻한 관심을 가져주는 가족이 되어줄 거라고. 약하고 서툰 모습을 보여도 언제든 환영이라고. 그 마음이 진심이 되어 스스로에게 와닿는 순간 웅크리고 있었던 내 안의 어린아이는 더 이상 그 기억을 슬프고 쓸쓸하게 기억하지 않았다.
그리고 다른 사람들에게 도움을 청하고 받는 것에 익숙해지기 위해서 일부러 내가 일을 하면서도 혼자 하다가 어려운 일이 있으면 주변의 도움을 청하는 연습도 했다. 그런데 신기한 것은 그렇게 도움을 청하는 연습을 할 때보다 내가 다른 사람에게 도움을 주고 싶은 마음이 들 때가 더 나에게 효과가 있었다. 내가 힘들어하는 사람에게 도움을 주고 싶을 때의 그 마음을 유심히 들여다보니 이건 간섭이나 평가가 아니라 상대를 아끼는 마음과 그 사람을 향한 사랑의 마음, 즉 관심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렇게 생각하고 나니,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는 것이 수치스럽거나 부끄럽게 느껴지지 않았고 편안하게 다가왔다. 나는 이를 마음속 깊이 깨닫고 나서 며칠 뒤 나에게 도움을 주려고 관심을 가지던 프리셉터에게 본의 아니게 도움의 손길을 오해하고 뿌리쳤다며 진심으로 미안하다고 사과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