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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랑 Feb 09. 2022

영원으로의 도피_2

환상을 깨부순 이성이 주는 자유

‘모든 것을 너에게 맞추면(너의 마음에 들게 내가 행동하면) 너는 나를 혼자 두지(떠나지) 않을 것이다’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오래도록 내 언행의 기준이 되었던 신념이 무너진 것은 불과 몇 년 전의 어느 날이었다. 이 전제가 사실이 아니라는, 그래서 충분히 깨질 만한 다양한 관계를 체험했음에도—나보다 너를 우선시하여 너에게 맞추는 나의 갖은 노력에도 불구하고 이런저런 이유로 관계는 결국 끊어지곤 했으므로— 이 전제가 내게 유효했던 것은 내가 늘 나의 신념 안에 나를 가두었기 때문이다. 더 정확히 말하면 누군가가 나의 갖은 노력에도 불구하고 나를 떠나는 상황을 내가 통제할 수 있다고 믿고 싶었기 때문이다. 네가 나를 떠난 이유를 ‘내가 너에게 충분히 맞추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해석하면, 네가 나를 떠나지 않게 하기 위해서는 더 엄격하게, 더 철저하게 내가 너에게 맞추어야 한다는 결과만이 도출되었다.


“경험이란 <무엇이 일어났느냐>가 아니라 <일어난 일로 인해 그가 무엇을 하느냐>이다”라고 헉슬리는 말했다.


경험이란 일어난 일 자체가 아니라 그 일을 해석하고 그를 기반으로 도출한 결론에 따라 다음에 나아갈 방향을 결정하는 과정이라는 말이다.


나는 너에게 맞추어 행동했다. 네가 떠났다.

일어난  가지 사실은 이것이다.  사실을 ‘너에게 맞추어 행동했다 ‘네가 떠났다사이에 <내가 너에게  맞추지 못해서>라는 해석을 덧붙임으로서 나의 부족함으로 결론을 도출하고, 앞으로는 ‘ 철저하게 너에게 맞추겠다 방향을 설정한 것이 나의 경험이었다.


해석이 달라진다면 어떨까?

나는 너에게 맞추어 행동했다. 네가 떠났다.

이 두 가지 사실 사이에 어떤 상관관계가 없다고 해석한다면? 내가 너에게 맞추느냐 아니냐에 상관없이 네가 떠났다면? 떠나는 주체인 너를 통제할 수 있는 힘은 내게 없다. 내가 아무리 너에게 맞추어도 너는 떠난다. 그럴 수 있다. 그것은 너의 마음이다. 나는 너를 어떻게 할 수 없다.


네가  곁을 떠남으로 느끼는 감정분리감, 혼자 남음으로 느끼는 외로움 나는 겪고 싶지 않다. 나는 그것을 피하고 싶다. 그래서 나는 어떻게든 그것을 피할  있다고, 그것을 피할  있는 힘이 나에게 있다고 믿고 싶다. 그러기 위해서 내가 써내려 온 시나리오는 순간이 아닌 영원으로 이어져야 하고 이때 나의 사고는 이성적으로 따져볼 기회도 내게 주지 않은  비합리적이고 견고한 신념 속에 나를 가둔다.

‘나를 떠났다’는 너의 결정에 대해 아무것도 내가 할 수 없다는, 통제감을 잃은 불안을 견디는 것은 쉽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너의 결정의 원인이 나에게 있을 것이라고, 그러므로 너의 결정을 내가 통제할 수 있을 것이라고 믿고 싶은 것이다. 순간을 영원으로 묶어버리는 비합리가 일어나는 찰나. 하지만 이럴 때일수록 빨리 통제감을 느껴 편안함을 얻으려는 나의 습관적 향수로부터 나의 정신을 돌려세워야 한다. 이성의 날을 갈아 논리의 단두대에 나의 사고의 흐름을 세워두고 면밀히 살펴야 한다. 모든 것은 순간이다. 한 번 일어난 일이 반드시 다시 일어나리란 법은 없다. 한 사람과 겪은 일이 반드시 모두에게 똑같이 일어나리란 법도.


새로운 해석이 가져오는 결과는 실로 놀라운 것이다.

내가 너에게 맞춘다는 사실과 네가 나를 떠난다는 사실 사이에 상관관계가 없다면 나는 너에게 맞출 수도 있지만 맞추지 않을 수도 있다. 나에게는 선택권이 생긴다.


선택할 수 있다는 것은 곧 자유다.

자유가 없음은 감옥이 있다는 자체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감옥 안에 머무르는  외에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는 것이다. 감옥이 있어도  안에 있을지 밖으로 나갈지를 내가 선택할  있다면 나는 자유롭다. 그렇게 된다면 감옥은  기능을 잃을 것이다. 내가 지금 고수하고 있는 신념 외에 다른 가능성에 선택지를 주지 않는다면 나는 신념 안에 갇힌 수인囚人이다. 덮쳐오는 불안 앞에서 지금까지 좇아온 신념으로의 향수에 빠지지 않고 다른 가능성을 모색하여 걸음의 방향을 바꾸면  앞에는 다양한 길들이 펼쳐진다.

나는 더 이상 내가 써온 시나리오의 감옥 안에 수인이 아닌 자유인이다.


너에게 맞추기 위해 나를 숨기는 것이 아니라

너에게 나를 드러내는 길이 열린다.


그렇게 나를 드러낼 때 어떤 일들이 생길까?

이때 관계의 끊어짐으로 이는 고통은 어떻게 될까?

그것은 나에게 어떤 영향을 줄까?



_다음 글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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