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연두민 Nov 05. 2021

달고나 할머니는 어떻게 1n년을 버텼는가

나는 어떻게 버티고 있나 - (1)


다들 한의대도 6년 제라는 사실을 알고 있을까? 난 몰랐다. 그리고 알고 싶지 않았다.



고등학생 시절, 시험이 끝난 후 친구들과 텅텅 비어있는 압구정 로데오 거리를 걸으면서 여기는 어쩌다 이렇게 되었나 생각하곤 했다. 압구정 날라리라는 말이 무색했다. 지금은 믿을 수 없겠지만 날라리는 무슨, 그 부근 골목마다 사람이 거의 없었다. 그나마 케이팝 성지라고 불리는 '카피오카'와 피어싱 가게인 '나나'를 찾아온 케이팝 덕후들과 고등학생들이 있을 뿐이었다. (sm엔터의 본사 위치가 그 부근이라 연예인을 마주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희망을 가진 고등학생들이 많이 왔다. 그중 나도 한 명이었다.) 그리고 ‘나나’ 부근에는 길거리 한 모퉁이를 차지하고 플라스틱 통과 간이 달고나 기계를 두고 장사하시던 할머니가 계셨다. 왠지 사람이 없는 거리가 죄송한 마음에 그 앞에서 서성이며 먹을까 말까 고민하기도 했다. 그러다가 결국 귀걸이를 고르는 친구들을 기다리며 두어 번 사 먹었던 기억이 있다.




그리고 요즘, 그 당시의 기억 때문에 방심하고 대충 아무거나 걸치고 압구정 로데오 거리에 나가보면 당황스럽다. 나 빼고 모두가 중요한 데이트가 있는 게 분명한 차림이다. 저번 달에 분명히 임대문의가 붙어있던 건물 1층에는 유명한 카페 브랜드가 들어와 있고 코로나는 종식된 것 마냥 사람들이 술집에 모여있다. 고등학교 동창인 친구와 그 부근에 가면 그 얘기뿐이다. '와 여기 정말 살아났네. 우리 때는 말이야… 귀 뚫으러 왔다가 노래방 들르는 게 다였어…”




여전히 달고나 할머니는 그 똑같은 자리를 고집 중이시다. 피어싱 가게 맞은편 모퉁이. 그리고 근래에는 넷플릭스 시리즈, '오징어 게임'에서 달고나가 꽤 비중 있는 오브젝트로 나오면서 달고나는 선풍적인 때 아닌 인기를 끌고 있는 중이다. 그것도 전 세계적으로. 오늘 그 앞을 지날 때도 외국인 몇 명이 그 앞에서 재잘거리며 달고나를 주문 중이었다. 즉, 달고나 할머니는 몇십 년을 버텨, 지금 케이팝의 중심지에 앉아 k-컬처 열풍의 상징인 달고나로 수익을 올리고 계신 것이다. 세상에, 이렇게 얘기하니까 '존-버'란 대체 무엇인가 하는 생각이 든다.




그렇게 서울 강남구 압구정동에서의 중고등학생 시절을 기억을 회상하는 나는 지금, 시골에 있는 대학에서 6년째 존-버중이다. (사실 원뜻은 비속어에서 파생된 말이기 때문에 여기서는 존중하며 버티기로 얘기하도록 하자) 그것도 시내가 아닌, 뻐꾸기 소리에 잠을 설치는, 거름 냄새 때문에 창문을 닫아야 하는 변두리에 자취방을 두고 10분거리에 있는 학교에 통학한다. 입학식에 나를 데려다 주신 아버지는 '그래 산 좋고 물 좋고 공기 좋은 곳에서 공부 하기 딱 좋겠다' 하셨다. 나는 기가 찼다. 본인은 신촌 중심지로 도시 냄새 맡으면서 등교했으면서! 당연히 나도 아버지 어머니처럼 신촌에 있는 학교에 다닐 줄 알았다가 이렇게 별이 잘 보이는 곳에서 학교를 다니게 될 줄은 상상도 못 했다. 심지어 나는 의과대학에 진학하고 싶었다. 그런데 웬걸, 지금은 시골에 있는 한의과대학에 재학 중이게 되었다. 한 의대생이 되려다가 한의대생이 되어버린 것은 단순히 띄어쓰기 틀린 수준의 차이가 아니었다.




실패는 다양한 모습으로 온다. 심지어 성공의 모습으로 다가온 실패도 있었다. 나에게는 재수 후에 한의과대학 합격 통보를 받은 것이 그랬다. 어린 시절의 꿈을 이루는 것이 노력하면 다 마법처럼 이루어지는, 모두에게 일어나는 일이 아니라는 사실을 하필 입시를 통해 배우게 되었다. 꽤나 고통스러운 과정이었다. 예과 2학년에는 자퇴에 대한 스트레스로 온몸에 두드러기가 나서 한동안 대인기피증까지 왔었으니.




다만, 나를 존중하며 버티는 방법을 터득했다. 내가 진실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성찰하고 방향성을 정하는 데에 6년을 쏟아부었다고 봐도 무방하다. 나에게는 학과 공부보다 그게 더 값졌다. (그렇다고 해서 턱걸이 성적이 설명되는 것은 아니지만)




버티기는 성공한다 - 라는 반쯤 자조적인 말, 사실 그 말 끝에는 '성공할 때까지 버티기 때문이다'라는 핵심이 숨어있다고 생각한다. 내가 실패라고 생각했던 6년간의 시골 한의대 생활에는 어떤 버팀목이 있었기에 강남 키드가 닭 우는 소리에도 상쾌하게 기상할 수 있게 되었는지, 이야기하고 싶다. 아직은 내가 생각하는 완벽한 성공에 다다르지 못했기 때문에 나도 버티기 중에 들어가 있다. 달고나 할머니, 저에게 힘을 주세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