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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데비 Apr 24. 2023

미국에서 집밥 먹는 일상_세 번째

파스타 40인분을 위한 충전

토요일 오전,

눈을 떴을 때 이미 오전 11시가 넘어있었다.

지난밤 나와 남편 둘 다 피곤함으로 기절한 기억한 어렴풋이 떠올랐다.

제대로 늦잠을 자서 그런지 몸은 개운했다.


곧 점심 먹을 시간이라 간단히 요거트만 먹고 나서는 바로 식사를 준비했다.


오늘은 잘 먹고 체력을 비축해둬야 하는 날이다.

다음 날인 일요일에 교회에서 점심식사를 대접해야 하기 때문이다.

대략 40명 정도가 먹을 음식을 준비할 생각을 하니 어쩐지 머리가 하얘졌다.

지난번 식사당번 순서에는 마파두부를 했더니 온 집안에 두반장 냄새가 빠지질 않아 고생한 기억이 났다.

이번에는 비교적 간단하고 향도 무난한 편인 토마토 파스타를 하기로 했다. 볶은 고기에 토마토소스를 넣고 면만 삶으면 되는 과정이긴 하다. 하지만 그렇다고 40인분이라는 압박감이 절대 줄어드는 것은 아니다.


어찌 되었든, 다른 이들을 배불리 먹이는 미션을 완수하는 것이 주말 동안의 목표다.

이를 위해서는 일단 잘 먹고 에너지를 충전해야 한다.


조금 남아있는 김치를 처분하고 임신한 몸으로 고기도 섭취도 하기 위해 선택한 메뉴는 돼지고기 김치찌개다.


2023/04/22 점심_ 현미와 퀴노아, 치아시드를 넣은 잡곡밥/ 돼지고기 김치찌개/ 감자볶음/ 계란찜/ 김/ 토마토 양배추 샐러드

입덧이 한창 심할 때는 김치 냄새만 맡아도 구역질이 나와 화장실로 달려갔고,

과일과 야채만 조금 입에 댔을 뿐 고기는 꿈도 꾸지 못했다.

그 당시 남편에게 파스타 같은 밀가루 요리만 주야장천 해주다가 최근에서야 김치와 고기를 내오고 있다.

그래서인지 요즘 남편은 내가 한식상을 차릴 때마다 입에 침이 마르도록 맛있다고 칭찬을 해준다.

남편의 다소 과한 칭찬에 그동안 얼마나 얼큰한 맛과 고기, 밥이 그리웠나 싶어 안쓰러운 마음이 들었다.

(앞으로는 열심히 한식 밥 해줄게...)


각자 그릇에 담긴 찌개 양이 상당했지만 어쩐지 남편도 나도 찌개를 깨끗하게 비웠다.

다소 과식을 한 탓에 우리는 한동안 계속 식탁에 앉아 소화를 시켜야 했다.  





이후 대망의 파스타 40인분 준비를 시작하기 전에 잠시 커피타임을 가졌다.


대형 냄비에 두 세 차례 부지런히 로티니 파스타 면을 삶았다.

하루 냉장 보관을 한 후 다음 날 교회에 가져가야 했기에 일일이 소분하는 과정도 빼놓지 않았다.

이후  대량의 고기 다짐육을 볶은 시판 파스타 소스 15개를 넣어 소스를 만들었다.


과정을 비교적 간단하게 서술했다.

하지만 무려 40인분이라는 양을 삶고, 볶고, 끓이는 과정을 마친 후

나와 남편은 기진맥진해서 잠시 넋이 나갔었다...


육체적으로 매우 지치는 일이었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은근한 보람과 기쁨을 느꼈다.

황금 같은 주말 시간을 다른 이들을 배불리 하는 일에 할애할 수 있다는 사실이 감사했다.


뜨거운 열을 쐐며 국자를 열심히 저은 남편은 나보다 더 지쳐 보였다.

주방 보조 역할을 착실히 수행해 준 남편이 기특해 아이스 말차라테를 만들어주었다.


파스타 40인분 완성 후 마시는 아이스 말차라테

남편은 사 먹는 것처럼 맛있다며 또 열심히 칭찬을 해주었다.

다음에 혼자서 해 먹으려는 건지 제조법까지 자세히 캐묻는 모습에 웃음이 새어 나왔다.

내가 만들어 주는 것마다 '맛있다', '최고다' 항상 칭찬을 빼놓지 않는 남편은 참 귀엽고 사랑스럽다.



어느덧 저녁 시간이 다가왔다.

저녁을 준비할 기운이 없는 우리는 전에 남긴 피자와 치킨을 오븐에 데워먹었다.

시장이 반찬인 데다 실패할 수 없는 피자와 치킨 조합이다.


지친 상태에서도 식탁에서 시시콜콜 즐거운 대화는 빼놓지 않는다.

미국에서 재미있는 에피소드가 하나 더 생겼다는 듯이  

파스타 40인분을 만드는 과정에서 있었던 크고 작은 실수들을 서로 조잘조잘 이야기한다.


저녁식사를 마친 후 피로감 가득한 몸을 이끌고

다음 날 교회에서 식사 후 먹을 디저트를 사기 위해 마트로 향했다.

과일과 베이커리 사이에서 한참을 고민하다

할인 중인 사과 파이와 라즈베리 파이를 골랐다.


서로 좋은 선택이었다는 말을 건네며 마트가방을 손에 하나씩 챙겨 들고 의기양양하게 집으로 향한다.


지친 몸이지만,

내일을 기대하는 대화를 나누며 서로의 두 손을 꼭 잡고 집을 향해 걸어간다.


마치 오늘처럼

하루하루가 몸과 영혼이 풍요로워지는 날들이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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