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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데비 Apr 25. 2023

미국에서 집밥 먹는 일상_네 번째

분주한 일상 속에서 어디를 향하고 있을까

다시 월요일 


눈을 떴을 때는 이미 오전 9시.

옆에서 여전히 잠에 취해있는 남편.

지난 주말 동안 특히 무리한 탓인지 둘 다 몸이 무겁다. 

남편은 재택근무가 자유로운 편이라 일부러 그를 깨우진 않았다. 


오늘은 오전 10시 30분에 은행 일정을 잡아둔 날이라 나는 서둘러 욕실로 향했다.

머리만 대충 말린 후 나와보니 남편은 졸린 눈으로 책상에 앉아 일을 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

나는 한 손으로는 머리를 빗고 다른 한 손으로는 요구르트를 떠먹으며 곧 외출할 준비를 완료했다.

남편은 그런 나를 보며 순식간에 준비했다며 놀라워했다.


걸어서 15분 거리인 은행을 향해 뛰었다가 걷기를 반복했다.

다행히 정시에 도착했을 때 호리호리한 아프리카계 여직원이 이미 프런트 앞에서 나를 마중 나와 기다리고 있었다.


오늘 은행을 찾은 이유는 작년 '노동허가서'를 취득한 후 부여된 사회보장번호(Social Security number)를 은행에 등록된 나의 개인정보에 추가해 주기 위해서다. 비교적 간단한 작업일 거라 예상했는데 역시 30분 내로 마무리가 되었다. 


은행 바로 옆 마트에서 간단히 장을 보았다. 

오늘 식사준비를 위한 청경채와 시금치부터 찾아 집었다.

이어서 오이, 토마토, 땅콩, 우유도 장바구니에 넣었다.

다 합쳐 대략 12불 정도 나왔다.


집에 들어서니 남편이 내린 커피 향이 가득했다.

오전을 분주하게 보낸 나는 당이 떨어져 자그마한 라즈베리 파이 하나를 입에 물고 점심식사를 준비한다.


점심은 콩국수와 겉절이

2023/04/24 점심_콩국수, 청경채 겉절이, 사과 


방금 사 온 싱싱한 청경채로 만든 겉절이가 아삭하니 식욕을 돋워주었다.

콩국수도 고소하니 맛있었지만,

매콤 새콤 향긋한 겉절이를 먹기 위해 열심히 콩국수를 먹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식사 후 간단히 청소를 마치고 나서 

오늘 미처 하지 못한 성경묵상을 했다.

그리고 이번 주 해야 일들과 계획 등을 정리하는 시간을 가졌다. 


주말부터 계속 쉴틈이 없었던 탓이었을까,

오후 내내 피로감이 몰려왔다.

남편이 만들어준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마시고 나서도 계속 기운이 없어

침대에 누워 휴식을 취할 수밖에 없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곧 저녁식사 시간이 되었다. 

밥을 먹으면 조금 기운이 나지 않을까 싶어 주방으로 향했다. 


2023/04/24 저녁_잡곡밥/ 시금치 된장국/ 돼지고기 양배추 볶음/ 감자볶음/ 계란찜/ 토마토 올리브유 샐러드/ 김


사실 시금치 된장국에 두부를 넣을까 말까 상당히 고민했다.

내가 본 레시피 댓글란에 시금치와 두부의 궁합에 대해 꽤 논쟁이 있는 것 같았다. 

시금치에 들어있는 수산(옥살산)이 두부에 있는 칼슘과 만나면 수산화칼슘을 만드는데,

이것이 체내 결석을 유발한다고 한다.

하지만 관련 정보를 찾아보니 일상생활에서 걱정할 정도는 아닌 것 같아 과감하게 두부를 넣었다.

이 세상에 시금치와 두부 조합보다 더 해로운 음식은 차고 넘친다.  


돼지고기 목살에 비게가 많아 다소 기름져 김치가 있었으면 했지만,

그래도 남편은 오늘도 맛있다며 잘 먹어주었다. 



아침부터 분주하게 할 일을 하고,

정성 들여 식사를 준비하여 밥도 잘 먹고,

어느 정도 휴식도 취했지만

무엇인가 정신적으로는 채워지지 않는 듯한 하루였다. 


사실 밥 먹는 일상에 대한 글을 쓰고 있긴 하지만,

먹기 위해 사는 것이 아니듯이,

꼭 한상 제대로 차려 먹을 필요는 없다.


다만 나의 경우는 미국에 와서 시간적 여유가 생겼기에

가능하면 주부로서 역할에 충실하고 싶은 것일 뿐이다.

그저 하루하루 최선을 다해 살고 싶은 몸부림의 극히 작은 일부일 뿐이다. 


바쁜 일상 속 김밥 한 줄을 사 먹더라도

오늘 하루 마음을 다해 살았으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다만 나의 신체를 위해서

보다 건강한 식단으로 먹는 것이 조금 더 바람직할 뿐이다. 


매일 나태해지지 않으려,

몸과 마음에 유익한 활동에 분주해지려 노력한다.

하지만 분주한 일상 속에서 문득 자문하게 된다.

'올바른 방향으로 가고 있는 것일까?'


자기 전 샤워를 마친 후 욕실 거울 옆에 붙여놓은 성경구절을 천천히 들여다보았다.

시편 23편.

욕실에서 머리를 말리거나 양치를 하면서 이미 다 암송해 버렸지만,

오늘 다시 새롭게 내 눈에 들어왔다.

Psalm 23
1 The LORD is my shepherd, I lack nothing.
2 He makes me lie down in green pastures,
he leads me beside quiet waters,
3 he refreshes my soul.
He guides me along the right paths,
for his name's sake.


"beside quiet waters"


"he refreshes my soul"


"along the right paths"


내 마음 깊은 곳에 닿았다.


불안한 생각으로 마음이 시끄러운 이 밤에,

나는 남편이 일찍 잠이 들어버린 사이 

홀로 앉아 조용히 기도했다. 

그리고 알았다.

여전히 옳은 길로 가고 있음을.


21주 이틀을 지나고 있는 뱃속 생명 '이레'도 함께 깨어있는지

발로 툭툭 내 배를 건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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