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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데비 Jul 08. 2022

우리 둘 뿐인 이곳 그리고 삶의 쉼표

2022년 3월,  포닥 남편을 따라 보스턴에 온 지도 이제 5개월 차가 되어간다.


사실 보스턴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2010년, 학부 1학년을 마치고 캐나다 밴쿠버에서 6개월, 보스턴에서 3개월가량 어학연수 기간을 보냈다. 20살이었던 내가 처음 보스턴의 찰스강을 마주했던 순간은 여전히 선명하다. 동시에 당시 어학원 수업에서 만난 나보다 8살 많았던 언니가 생각난다 (잘 들어가진 않지만 언니는 여전히 페이스북 구로 남아있다). 언니의 남편분은 당시 포닥 과정 중이었다. 그런데 12년이 지난 지금 내가 포닥 남편을 따라 다시 보스턴에 오다니 기분이 하다.


스무 살의 나는 다시 한국에 돌아와서도 나는 한동안 보스턴을 잊을 수 없었다. 특히 내게 보스턴은 언제라도 다시 가고 싶은 도시였다. 아름다운 찰스강과 멋진 야경, 스타일리시한 카페와 서점, 온갖 이국적인 레스토랑들은 갓 스무 살이 된 여대생에게 무척이나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그때부터 막연히 외국 생활에 대한 동경이 생긴 것 같다. 그때 즈음 친오빠가 독일로 유학을 떠나게 되었고 나 역시 언젠가는 미국이나 유럽에서 살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2013년 12월, 졸업식도 치르지 않고 학부 기말고사를 마치자마자 나는 독일 프랑크푸르트로 떠났다. 그곳에서 1년간 독일어를 공부하고 이후에는 어떻게든 취업을 하여 본격적인 유럽 라이프를 즐길 작정이었다. 치열하게 1년간 독일어를 공부하고 취업의 문을 두드린 끝에 나는 굉장히 빠른 시간 안에 독일어 C1 시험을 합격했고 그토록 바라던 취업에 성공할 수 있었다. 하지만 외국에서 사회 초년생으로 회사 생활을 버텨내기란 쉽지 않았다. 이민은 여행이나 어학연수와는 너무도 달랐다. 특히나 가족도 없이(당시 오빠는 독일 의대생 신분으로 도서관에 살다시피 했기에 당시 나는 가족이 없었다고 봐도 무방 할듯하다) 싱글로 외국에서 생존하기란 매우 지치는 일이었다. 당시 나는 시시때때로 향수병에 시달리며 한시도 집에 혼자 있지 못했다. 외로움을 잊기 위해 늘 밖에서 사람들을 만나기 바빴다. 하지만 짧은 휴식과 사람들과의 만남도 나의 근본적인 향수병과 정신적인 고갈을 채워주지는 못했다. 나는 그렇게 독일 생활을 버티지 못하고 정확히 3년 반 만에 도망치듯 다시 한국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다시는 여행이면 몰라도 외국에서 '살지는' 않으리라 다짐했다.    


그랬던 내가 다시 이렇게 미국에 와서 살고 있다니 정말 사람 일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그런데 참 이상한 점이 있다.


지금 나는 이곳 보스턴에서 삶이 만족도가 굉장히 크다는 것이다. 심지어 한국에서 느끼지 못했던 안정감과 편안함마저 누리고 있다. 곰곰이 왜일까 생각해 보았다.


일단 남편이라는 존재가 결정적이었다. 외국에서 살아갈 때, 모국어로 일상을 나눌 수 있는 대상이 있다는 사실은 심리적으로 큰 안정감을 주는 것 같다. 더군다나 남편과는 코드가 잘 맞는 편이라 둘만 있어도 나름대로 재미가 있다. 깨끗하게 청소된 집에서 함께 커피를 내려 마시고 시시콜콜한 대화를 나누는 것이 나와 남편에게는 즐거움이자 힐링이다. 심지어 남편이 있기 때문에 새로운 사람을 사귀어야 할 필요성조차도 느끼지 못한다. 물론 이곳에도 잘 알고 지내는 지인들이 있기는 하다. 하지만 만약 이곳에서 내가 아는 사람이 남편뿐이었다 할지라도 나쁘지 않았을 것이란 생각도 든다.


외출하지 않는 이상 영어를 쓸 일은 거의 없기에 여전히 가장 많이 쓰는 언어는 여전히 모국어인 한국어다. 우리에게  이곳 보스턴은 한국도 아닌, 그렇다고 미국도 아닌, 나와 남편에게만 존재하는 유일한 세계다. 남편과 나, 오직 우리 두 사람이 향유하는 자그마하고 아늑한 세계.    


이렇게 정서적인 안정감을 주는 대상이 있다는 것이 첫 번째 이유라면, 두 번째는 타인의 불필요한 관심과 간섭에서 벗어났다는 사실인 듯하다.


눈에서 멀어지면 마음에서 멀어진다는 말처럼 나는 점점 주변인들에게 잊혀지고 있고, 이것이 생각보다 섭섭하지 않고 오히려 편하게 느껴진다. 주변인들의 불필요한 관심 (때로는 간섭)으로 부터 벗어나 오롯이 나에게 집중하는 시간을 얻게 된 것 같다. 그들이 보고 싶을 때는 내가 먼저 연락을 하면 되는 것뿐이었다. 그동안 관계에서 오는 피로도가 생각보다 컸나 보다. 지금은 본의 아니게 사람들과 거리 두기(?)를 하게 되어 나름대로 충분히 혼자만의 시간을 갖으며 휴식을 누리고 있다.


남편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미국으로 떠나오며 통번역대학원을 휴학하게 되어 아쉬운 마음이 컸지만 사실 이곳에서 더 값진 것을 얻고 있다. 인생의 쉼표를 갖고 삶을 돌아보며 가치를 재정립하고 나만의 시간을 가지며 나라는 사람을 알아가고 있다. 동시에 남편과의 시간을 통해 서로를 알아가고 우리는 서로의 둘도 없는 베스트 프렌드가 되어가고 있다.


아직은 남편의 포닥 과정이 얼마나 걸릴지, 언제 한국으로 돌아갈지 아무것도 장담할 수 없다. 그래서 여러 가지로 참... 애매하다. 그런데 이 애매한 상태를 즐기기로 했다. 물론 미래를 준비하고 계획해야 하는 것도 틀림없는 사실이다.


하지만... 일단은 한 템포 늦추어 조금 더 마음의 여유를 갖기로 했다.


끊임없이 내 머리와 마음을 분주하게 만드는 생각과 잡념들을 비우고

한국도 미국도 아닌 여기 이 자그마한 세계에 조금만 더 머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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