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심도 Apr 13. 2023

퇴사는 차라리 쉽다, 버티는 것에 비하면

퇴사를 응원하는 세상에서

그만두겠습니다.


단 한마디면 된다.


그리고 놀랍게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세상이 무너지지도 않고 어마어마한 해방감이 몰려오지도 않는다. 그냥 지나가는 과정 중 하나일 뿐이다. 퇴사라는 건.


세상이 온통 퇴사를 응원한다. 직장인은 왜 퇴사를 생각하는지, 왜 퇴사할 수밖에 없는지에서부터 퇴사는 어떻게 준비해야 하며, 퇴사 이후의 삶은 무엇이 달라지는지에 대한 책들이 서점에 가득하고 때때로 SNS와 유튜브에는 온통 퇴사자만 존재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퇴사에 대한 조명이 뜨거울수록 나는 우리나라 사회가 얼마나 조직 중심적인지에 대해 다시 한번 깨닫게 된다. 당장 토익시험만 보러 가도 소속된 집단을 체크해야 하지 않나. 다들 나이에 맞춰 어린이집에 가고, 유치원에 간다. 초등학교에서 중학교, 고등학교를 거쳐 대학에 가고 직장에 들어간다. 살면서 대부분의 시간을 어딘가에 소속되어 살아왔다. 조직의 구성원이 아닌 한 개인으로 독립하는 일은 생각보다 쉽지 않다. 학교를 다니지 않는 학교 밖 청소년에 대해 우리가 느끼는 바를 떠올려 보자. 가치 판단을 떠나서 상당히 어색하고 예외적인 일처럼 느껴진다. 퇴사자도 그런 존재다. 이직이 아니라 퇴사를 결정하는 건 소속이 없는 삶을 받아들이겠다는 결심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퇴사는 간단하다. 그냥 멈추기로 하면 되는 것이다. 조직과 나의 연결고리를 끊기로 결정하는 행위일 뿐이다. 5번의 퇴사에서 가장 어려웠던 건 처음뿐이었다. 조직을 이탈하는 것도 경험이 쌓이면 수월해진다. 


하지만 퇴사할 수 있는 자유도 결국은 특권이다.


만일 내게 거액의 빚이 있었다면? 가족 중에 아픈 사람이라도 있었다면? 내게 부양가족이 있고, 책임져야 할 무엇 혹은 상황이 있었다면 나는 자신만을 위해 퇴사를 결심할 수나 있었을까?


나가는 사람에게 저마다 다른 이유가 있듯이, 남은 사람에게도 수많은 사정이 있다. 퇴사가 용기라면, 그만두고 싶은 마음을 이겨내고 매일 출근을 하고 일을 마치는 것은 인내이며 책임이다. 그 무게가 과연 용기보다 가볍다고 할 수 있을까? 수십 년간 직장이라는 전장에서 버텨온 시간들의 가치가 퇴색되어야만 하는 걸까? 




우리는 그저 저마다의 싸움터에서 살아남기 위해 투쟁하는 인간일 뿐이다.


그 방법으로 누군가는 직장을 선택했고, 누군가는 홀로서기를 선택한 것뿐이다. 퇴사는 결국 삶의 방식 중 하나일 뿐, 모두가 그 길을 따라야 하는 것도 아니고 그 길을 가지 않는다고 뒤처진 것도 아니다. 

단지 퇴사만으로는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는다. 


삶의 방식에 대해 치열하게 고민하지 않으면, 그저 똑같은 나날이 반복될 뿐이다. 내 미래에 대해 어떤 그림을 그릴지, 매일 어떻게 행동하고 무엇을 변화시킬지, 세상을 어떻게 바라볼지, 나에게 무엇이 중요한지를 충분히 생각해야 한다. 


당신이 지금 어떤 자리에 있고 무엇을 선택했든지.

매거진의 이전글 당신들의 MZ는 없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