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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귀하다 Nov 28. 2022

꿈★은 이루어진다

꿈꾸며 살고 싶다

남편이 생겨 좋은 점 중 하나는 아침에 일어나 지난밤 서로의 꿈 이야기를 기억이 생생할 때 나눌 수 있다는 점이다. 혼자 살던 때는 화들짝 놀라 일어날 만큼 섬뜩하거나, 정말 재밌고 창의적인 스토리라 꼭 기억해야지 했던 이야기도 아침이라는 분주함에 움직이다 보면 흐릿해져 버린 적이 많았었다. 매일 기억나는 꿈을 간직하고 아침을 맞이하는 것은 아니지만, 가끔 의미를 부여하고 싶은 꿈에 좋은 해몽을 찾아 서로에게 에너지를 더해주거나, 불안한 심리를 읽고 다독여주는 일도 우리 삶의 일부가 되었다.


꿈에 대한 연구와 해석은 정말 많다. 그만큼 많은 사람들이 관심 있는 주제라는 의미일 것이다. 수면 상태에서 펼쳐지는 이야기미래에 이루어지길 원하는 희망이나 이상을 뜻하는 단어가 '꿈(dream)'이라는 같은 단어로 쓰이고 있으니, 아마 인간은 아주 오래전부터 꿈을 무의식과 욕망의 반영으로 생각했는지도 모르겠다.


영화 '인셉션' 덕분에 꿈을 자각하고 통제하는 루시드 드림(Lucid Dream)이란 개념을 처음 알게 되었고, 그것이 영화 속 상상이 아니라 실제 과학적 연구가 꽤 오래전부터 진행되어 온 영역이란 것이 놀라웠다. 그러고 보니 나도 가끔 꿈속에서 '이건 꿈이야.'라고 인지했던 기억이 있다. 그렇지만 자각하는 단계를 넘어서 '이런 꿈을 꿔야지'라고 마음먹은 대로 꿈에서 원하는 세상을 만나고, 그 세상에서 내가 원하는 대로 행동하는 날은 아마 오지 않겠지. 거기까지는 꽤나 반복적인 훈련이 필요한 듯 보인다.


그런데 지난 시간을 돌이켜보면, 꿈속 황당한 전개와는 별개로, 등장인물이나 배경이 그 당시 내가 집중적으로 많이 생각했던 것이 반영된 적은 종종 있었던 것 같다. 대학시절 캐나다에서 어학연수를 할 때, 같이 공부하던 친구들 사이에선 꿈에서 영어로 말하는 자신을 보면 영어가 완성된 것이라는 농담이 있었는데, 몇 개월 후 꿈속에서 영어 대화를 하는 나를 발견해 정말 기분이 좋았었다. 한국에 돌아오니 영어를 하나도 못 알아듣는 나를 꿈속에서 마주해야 했지만.


짧은 회사 생활이었지만 1년 차 의무 지방근무 시절, 새벽 뉴스를 담당했던 때의 심리적 압박이 제법 심했던 모양이다. 군대를 다녀온 남성들이 꽤나 오랜 시간 동안 군 재입대의 악몽을 꾼다고 들었는데, 나도 퇴사 후 몇 년 동안은 새벽 뉴스에 헐레벌떡 늦어 달려갔는데 목소리가 나오지 않는 악몽을 꿨었다.

한 번도 서 본 적 없는 연극무대에서 머릿속이 하얘지며 대사가 하나도 기억이 나지 않아 당황하는 장면도 잊을만하면 꿈속에 등장한다. 웬만해선 대사 NG가 없는 나인데, 연극이나 롱테이크 씬을 볼 때면, '아 저 배우 고생했겠구나.' 생각하는 나의 무의식이 생각보다 짙은 농도였던 것일까. 어쩌면 대사 NG를 내면 안 된다는 내 강박이 반영된 결과인지도 모르겠다.


당구에 빠진 사람들은 밤에 누우면 천장이 당구대로 보인다고 하더라. 스쿠버다이빙에 미쳐 있던 초보자 시절, 나도 누워서 천장을 보면 파란색으로 벽지를 바꿀까 고민했었다. 불을 다 껐는데도 무슨 생각을 한 건지. 그래서인지 내 꿈속에는 다이빙과 해양생물들이 자주 등장했는데, 참 신기하게도 순수하게 바다에서 정상적인 다이빙을 하는 꿈은 거의 없었다. 가장 많이 반복되는 꿈은 내가 살고 있는 집에 고래와 상어 등 내 해양 친구들이 같이 살고 있는 꿈이었다. 당연히 이곳은 물로 가득 차있는데, 나는 장비도 없이 숨을 잘만 쉰다. 아, 정말 그게 제일 좋았다. 줄어드는 기체를 걱정할 필요도, 수심의 변화에 따라 귀에 압착을 풀어줄 필요도 없다. 그런데 어느 집기 하나 물에 떠있지 않았다. 전자 기기들도 다 방수인가. 방수를 떠나, 바닷물은 염분기가 있어서 제대로 된 하우징이 있어야 하는데.


사랑하는 반려견 레오와 다이빙하는 꿈은 꼭 한 번 꾸고 싶다. 2022 그림


왜 내가 바다로 가지 않고 해양생물들을 집으로 불러들인 것일까. 시간을 들여 가끔만 만날 수 있는 게 아쉬웠던 모양이다. 매일매일 보고 싶었던 마음이겠지. 엄청 친한 사이가 되고 싶었던 것인지도 모르겠다. 무겁고, 그때까지만 해도 다루기 버거웠던 장비들 없이 영화 '아쿠아맨'에 등장하는 슈퍼히어로들처럼 물에서도 육지에서도 숨 쉬고 싶었던 나의 소망이 반영되었던 것 같다.


그런데 다이빙과 관련된 또 다른 반복된 꿈이 있었다. 물도, 해양생물도 나오지 않는 꿈.

다이빙 장비 중에는 BCD라는 부력조절기구가 있다. 다이빙 탱크를 부착하는 조끼, 또는 배낭 형태의 어깨끈이 달린 형식으로 입는 장비인데, 호스로 탱크와 연결해서 기체를 넣고 뺄 수 있다. 이 장비로 다이버는 물속에서 가라앉고 뜨는 것을 조절한다. 수중에서 다이버는 물의 저항을 가장 적게 받는 자세인 '트림(trim)'을 유지하는 데, 어깨부터 무릎이 수평을 이루는 엎드린 자세다.


BCD 백플레이트형. 2022 그림.
트림 자세. K26 다이빙풀, 2020


나는 꿈속에서 BCD를 장착하고 땅 위에서 트림을 잡고 있다. BCD에 기체를 넣는 인플레이터 버튼을 꾹꾹 누른다. BCD의 윙이 부풀어 오르더니 내 몸이 공기 중으로 떠오른다. 호흡기를 입에 문 것은 아니지만 무거운 탱크와 송현은 하늘을 멋진 트림 자세로 날고 있다. 시원한 바람, 아름다운 하늘, 나는 그렇게 안전한 비행을 마치고 땅으로 착륙한다.


사람들은 기분이 아주 좋을 때 '하늘을 나는 기분'이라는 표현을 사용한다. 아무도 하늘을 날아보지 않았지만 그렇게 말한다. '바닷속을 떠다니는 기분'이란 표현은 사용하지 않는다. 그건 어쩌면 '물이 무서워요'를 열에 아홉은 이야기하는 한국 사람들에게 공포감을 주는 표현일지도 모르겠다. 그래서일까. '나는 바닷속을 유영하는 기분이 하늘을 나는 것처럼 좋아요'라고 꿈속에서 말하고 있었던 걸까. 실제로 나는 약간의 고소공포를 갖고 있다. 아파트 고층에 올라가 밑을 바라보면 아찔함을 느끼고, 해외에서 번지점프대에 올라갔다가 포기하고 내려온 적도 있었다. 그런데 다이빙 장비로 하늘을 나는 꿈이라니. 한 번도 아니고 반복적으로.


바다에 너무도 가고 싶은 날, 바다와 닮은 하늘을 보면서 마음을 달래던 수많은 날들이 있다. 파란 하늘이 투명한 바다를, 흰 구름이 파도와 물결을, 때론 구름의 모양에서 해양생물들과 산호를 찾아내며 바다를 그렸다. 그렇게 그리웠던 바다에 가면 실제로 하늘과 바다는 어디가 경계인지 알 수 없게 하나로 이어져 있었다.

'날개'는 아름다운 의미다. 천사와 새가 가지고 있는 것. 조금 더 원하는 것에 가까워질 수 있는 열쇠에 '날개를 단다'는 표현을 사용한다. 탱크와 BCD로 대표되는 다이빙이 나에게 그런 아름다운 날개였던 모양이다.


더는 BCD로 하늘을 나는 꿈을 꾸게 되지 않게 되었던 날, 예능 프로그램에서 실내 스카이다이빙 체험을 하게 되었다. 스포츠는 노력으로 겨우 따라가는 편이지 별로 몸으로 하는 것에 소질이 없는 나인데, 수년간 훈련해온 트림 자세가 이렇게나 도움이 될 줄이야! 강사님들께 격하게 칭찬을 받으며 최우수 교육생으로 선정되었다. 꿈속에서 살랑이던 바람과는 다르게 바람의 세기가 어마어마해서 볼이 격하게 떨리긴 했지만, 몇 년 전 꿈속에서 시뮬레이션했던 것과 비슷한 장면에 혼자 미소가 지어졌다.   


실내스카이다이빙. 플라이스테이션, 2020.


2002년 한일월드컵 4강전. 독일과의 경기에서 붉은악마의 카드섹션 응원 문구는 '꿈★은 이루어진다'였다. 나는 거기서 ★중 하나를 들고 있었다. 벌써 20년이 흘렀다. 이젠 3, 4위전이 끝난 대구 경기장에서 우리 팀이 경기에 진 것 때문이 아니라 월드컵이란 축제가 끝난다는 것이 허망하고 슬퍼서 한 시간이 넘게 서서 엉엉 울던 젊음도 열정도 사그라들었지만, 여전히 꿈은 이루어진다는 말이 아름답다고 생각하며 살고 있다. 4년마다 돌아오는 월드컵이 그 시절의 격한 감동과 꿈을 기억하게 해 주어서 고맙다. 오늘 밤, 우리에게 새로운 꿈을 꿀 수 있는 선물이 주어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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