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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귀하다 Nov 26. 2022

고래의 언어

진심이 있어야 상대가 보이지 않겠습니까.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 나를 좋아하는 기적. 이것은 남녀 간에만 해당하는 말이 아니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는 에너지가 존재하고, 그 에너지의 방향과 크기의 합이 잘 맞아야 서로에게 좋은 관계가 될 수 있다. 인간관계는 반드시 서로를 싫어할 때만 불편한 게 아니다. 서로를 아끼고 좋아하더라도 그 마음의 크기가 다르고, 표현 방법이 맞지 않을 때 관계는 불편해진다. 그래서 인간관계는 어렵다.

'이렇게 하면 상대가 부담을 느끼지 않을까?'

좋은 마음을 표현할 때도 고민해야 하고, 고민을 거쳐 표현했지만 서로에게 상처뿐인 결과로 끝나기도 하며, 부담 주지 않으려고 표현하지 않아 오해가 쌓이기도 하니까.


그런데 그런 큰 고민의 시간을 거치지 않고 내 있는 그대로를 자연스럽게 표현해도 서로 좋은 관계를 만나는 천운이 삶에서 가끔 찾아온다. 가벼운 관계를 넘어서 이 사람이 인생에 오랜 친구로 남게 될 거라는 확신이 오는 귀한 순간을 맞게 되면, 다른 많은 일이 어려운 시기에도 마음이 힘을 낼 수 있다.


요즘 우리 부부에게는 그런 귀한 관계가 있다. 인연의 시작은 바다였지만, 다이빙과 바다 외에도 삶의 많은 부분을 함께 나누고 있는 커플이다. 남편의 교육생인 두 사람은 사회에서 너무나 멋진 커리어를 쌓아가는 성인들이지만, 바다와 다이빙에 관련된 이야기를 나눌 때 보이는 아이 같은 순수함이 참 예쁘다. 어제는 우리와 같이 보고 싶어서 아껴두었다는 OTT 서비스의 다큐멘터리를 같이 봤다. 고래의 소리를 연구한 다큐멘터리라고 해서 바다를 사랑하는 네 사람은 밤 열 시가 넘었는데도 반짝거리는 눈으로 TV 앞에 모여 앉았다.


2018년부터 수중 영상을 촬영하고, 혼자 편집을 하기 시작한 나는 수중 다큐를 만들고 싶은 꿈을 키워오고 있는데, 언제나 아쉬운 점은 육상 촬영팀이 없다는 점이다. 재정적인 지원 없이 우리끼리의 투어에서 촬영하는 영상은 기술적인 면에서도, 의지 면에서도 늘 부족하다. 수중에서의 촬영은 험한 바다 상황이 아닌 경우 계속할 수 있지만, 물 밖에 나왔을 때까지 카메라를 설치하고 영상을 촬영하는 일은 정말 대단한 체력과 의지가 필요한 일이다. 그래서 나는 수중 다큐를 볼 때 전문 촬영팀이 물 밖 상황을 팔로우해주는 것이 제일 부러웠다.


그에 못지않게 부러운 것은 역시나 어마어마한 장비들이다. 물속은 수심이 깊어질수록 빛이 사라진다. 색감도 사라진다. 아름다운 바다, 해양생물 본연의 색감을 표현하기 위해서는 좋은 수중 조명, 카메라가 필요하다. 장기간 한 곳에 고정 카메라를 설치해서 얻어낼 수 있는 결과물을 보면 그것 역시 부럽다. 장시간의 전원 공급이 가능한 장치, 그리고 그 장치를 누군가 건드리지 않을 수 있도록 보호받을 수 있는 시스템.


어제의 다큐멘터리는 날 것의 느낌보다는 좋은 렌즈로 촬영한 원본에 진득한 필름 감성의 컬러톤을 입힌 화면으로 시작되었다. 내가 부러워하는 육상팀의 촬영 장면이다. 다큐멘터리에는 고래의 소리를 연구한 학자 두 명이 등장했는데 한 명은 알래스카, 한 명은 프렌치 폴리네시아로 각자의 팀과 함께 연구를 위해 떠났다.


프렌치 폴리네시아의 모레아는 내가 혹등고래를 만났던 소중한 추억이 있는 곳이다. 화면 속에서 낯익은 환경이 보이자 마음이 벅차올랐다. 함께 다큐를 보던 사람들 중 혹등고래와 같이 바닷속에서 호흡한 사람은 나뿐이어서 뭔가 나만 아는 내용이 나오면 한껏 내용을 보태려고 준비 중이었다.


혹등고래 엄마와 새끼, 생물학적으로는 아빠가 아닌 수컷 에스코트. 프렌치 폴리네시아, 2017


그런데 시간이 갈수록 다큐멘터리가 산만해지기 시작했다. 연구팀   팀은 고래가 내는 소리를 특정 패턴으로 분류하고 그중 하나의 소리를 추출해서 가공한 샘플을 만들었다. 고래를 만나면 수중에 오디오 장치를 내려서  소리를 재생하고,  소리를 들은 고래가 어떻게 반응하는지 관찰하겠다는 것이 그들의 연구방법이었다.


그런데 그들은  위에서 중구난방으로 이쪽저쪽에서 올라오는 고래들을 보며 방위각  ,  미터 거리에 고래가 올라왔다는 말을 내뱉고 그것을 종이 노트에 받아 적는 행동을 하기 시작했다. 노트에 받아 적는 연구원은 때때로  알아 들었다며 거리와 각도를 되물었고, 말을 했던 연구자는 잊어버렸다며 기록을  지워버리고 지금부터 다시 적으라고 했다. 내가 학자였다면, 지우고 싶을 만큼 신뢰도가 하락하는 기이한 연구방법의  장면이었다.  


다큐멘터리 앞부분의 그들은 고래와 1:1로 대화를 시도하려고 했던 모양이다. 한 고래를 타깃으로 해서 준비해 간 소리를 재생했는데, 여기저기서 올라오는 고래들을 보며 '저건 우리 고래가 아냐, 저건 우리 고래가 맞아' 이렇게 고래 식별을 하는 데 시간을 허비했다. 혹등고래는 꼬리에 지문처럼 고유의 무늬가 있어서 개체를 식별할 수 있다. 그렇지만 배에서 아주 먼 거리에서 찰나의 순간 물과 함께 들어왔다 나갔다 하는 꼬리를 보며 우리 고래니 아니니 하는 식으로 순간적인 판단을 하고 있는 연구팀을 보고 있자니 갑자기 허탈해졌다.


'정말, 20년간 고래를 연구한 사람이 맞을까?'


마치, 다큐멘터리 촬영을 위해 정말 고래가 살고 있는 바다에는 처음 나온 사람들의 모습처럼 보였다. 실제로 혹등고래를 만나 본 내 눈에는 그렇게 보였다. 그녀는 어쩌면 정말 책으로만 고래를 배우고 실내에서 고래의 소리만 들어왔던 사람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자 다큐를 바라보는 나의 마음, 우리의 마음은 실망과 불만으로 메워졌다.

고유한 무늬와 반점이 있는 혹등고래 꼬리. 프렌치 폴리네시아, 2017

연구팀은 1:1 소통으로 포커스를 맞췄던 연구목표를 바꿔서 1: 다수의 소통으로 생각을 변화하자며 똑같은 방식인데 '우리 고래'를 찾지 않는 합리화를 선택한다. 그리고는 연구팀이 재생한 사운드에 혹등고래가 같은 사운드로 대답했다며 "안녕"이라고 사람이 인사하듯이 그들이 "안녕"이라고 대답했다고 말했다.


누가, 고래의 언어를 통역한 거지? 나라면, 저렇게 쉽게 이야기 못할 것 같은데.


프렌치 폴리네시아에서 혹등고래 투어를 진행했던 4일 동안, 나는 수십 마리의 혹등고래를 봤다. 물론 혹등고래는 다가가면 바다 저 밑으로 내려가버리거나 수면에서 거리를 벌리며 멀어져 버려서 내가 아주 가까이서 관찰한 건 10마리 안쪽이었다. 그렇지만 혹등고래는 공포심을 느낄 만큼 정말 거대했고, 수 킬로미터를 넘어 전달된다는 그들의 소리가 내 귀에 안 들릴 만큼 작진 않을 것이다. 어쨌든 나는 그 투어에서 고래의 소리를 한 번도 듣지 못했다. 그래서 나는 고래가 "안녕"과 같은 인사로 소리를 낸다고 말하려면 더 정교한 연구방법과 논리적 근거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위대하고 아름다운 혹등고래. 꼭 다시 수중에서 만나고 싶다.
모레아, 프렌치 폴리네시아. 2017


다큐를 보며 가장 놀라웠던 점은 끝까지 수중 씬이 단 한 장면도 나오지 않았다는 점이었다. 고래 이야기를 하면서 고래가 살고 있는 물속이 나오지 않다니. 고래가 소리를 듣고 어떻게 소통하는지 연구한다면서 고래의 물속 움직임을 관찰하지 않다니. 놀라움을 넘어서 실망으로 이어졌다.

왜 그들은 구명조끼를 입고 물에 빠질 위험이 있다는 것을 인지하고 있는 배 위에서 귀한 연구자료를 다루면서 물에 젖는 종이에 펜으로 기록을 하는 것일까. 물속에서도 쓸 수 있는 웻노트의 존재를 설마 모르는 걸까. 아니면 글을 쓰는 시간을 줄이기 위해 녹음 기능이 있는 기기를 방수 케이스에 넣고 그냥 음성을 녹음해서 기록할 생각은 못했을까?


해양생물을 수십 년간 연구했다는 연구팀이, 이런 많은 예산을 들여 다큐멘터리 전문 촬영팀과 함께 먼길에 나선 사람들이 바다에 대해 경험이 너무 없다는 것이 보일 때 나는 슬프다. 바다에 대한 관심으로 프로그램을 재생했던 잠재적인 바다 수호자들을 실망감으로 떠나보낼지도 모르는 순간이기 때문이다.


또 다른 한 팀은 배 위에서 고래의 소리를 녹음하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었는데, 이어폰을 손가락으로 꾹 막으며 외부의 다른 소음과 고래의 소리를 분리해서 들으려 애쓰는 모습이 이해가 가지 않았다. 소리를 연구하는 사람인데 왜 헤드폰을 쓰지 않는 걸까. 야외 촬영 현장에서 모니터를 하는 드라마 감독님과 스크립터에게 헤드폰은 필수품이다. 오디오 감독님이야 말할 것도 없이 당연하다. 이제는 이 사람들이 바다를 잘 모르는 걸 떠나 소리를 연구하는 건 맞나까지 의구심이 들었다.


연구에 별다른 성과가 없었음이 다큐멘터리 여기저기에 여실히 드러난다. 갑자기 연구원들끼리 서로의 머리를 잘라주고, 2세 계획을 묻고, 고래와 상관없는 이야기들로 러닝타임이 채워진다. 처음부터 해양생물학자들이 연구 과정에서 겪는 어려움이 다큐멘터리의 주제였다면 충분히 필요한 씬이 될 수 있었겠지만, 여기선 맥락 없는 장면이다. 86분의 다큐멘터리를 다 보고 난 내 소감은 출연진도, 다큐멘터리 감독도 바다와 고래를 잘 모르는 사람이었다는 것이다. 다큐의 결론이 이 학자들의 이번 연구 덕분에 고래가 소리로 서로 간에 소통한다는 유의미한 결과를 얻어낼 수 있었다는 자막으로 끝나 소름이 돋았다.


영상물이 제작되고 방영되기까지는 참 많은 사람과 단체, 기관이 관여하게 된다. 아마도 가장 중요한 힘을 갖는 것은 자본의 원천일 것이다. OTT 서비스가 활발해지면서 다양한 나라에서 제작된 수중 다큐멘터리를 접할 수 있게 되어서 좋은 만큼, 씁쓸한 현실도 자주 마주한다. 저 정도의 장면, 저 장소에서 저 기간 동안 있으려면 어느 정도의 예산이 필요한지, 촬영팀과 후반 작업에 소요되는 인건비와 CG 비용을 제외하면 대략적인 예상이 가능하다. 바다에 대한 애정도, 지식도 없는 사람들이 '바다와 환경'이라는 타이틀이 좋아 기획안만 그럴듯하게 만들어 구색을 맞출 수 있는 사람들을 섭외하고, 누군가로부터 어마어마한 지원을 받아 만든 겉만 번지르르한 다큐를 볼 때면 마음이 많이 쓰리다. 저 돈을 정말 바다를 잘 아는 사람들과 그걸 더 잘 표현할 수 있는 사람에게 지원했으면 더 많은 사람에게 닿을 수 있는 이야기를 만들었을 텐데.



몇 년 전 공중파의 신규 예능 프로그램 메인 작가라며 통화를 원하는 메일이 왔다. 혹등고래 촬영을 하러 프렌치 폴리네시아에 가려고 하는데 아무리 자료를 찾아봐도 국내에 다녀온 자료가 내 블로그뿐이라고 했다. 출국까지 한 달 정도 남은 팀이라고 하기엔 묻는 질문이 너무도 준비가 덜 되어 있는 수준이었다.


"저도 데려가세요."


웃으면서 얘기했는데, 이미 연예인 섭외는 끝나서 안된다고 했다. 이건 무슨 상황이지? 국내에 자료가 없던 상태에서 나는 그럼 어떻게 그곳에 다녀왔을까. 해외 사이트를 뒤지고 여러 샵에 메일을 보내 상황을 체크하고, 그렇게 경험을 통해 알아낸 지식들을 왜 이 사람들은 공짜로 얻어내려고 하는 걸까.


프로그램의 취지는 출연자들이 혹등고래를 직접 촬영하고 기록하는 다큐를 만드는 것인데, 정작 떠날 연예인 섭외는 끝났지만 촬영할 혹등고래에 대해서는 아는 게 없다니. 나는 내가 아는 것을 알려주고 싶은 마음이 사라졌다. 그래서 다 알려주지 않았다. 정확히는 더 맑은 시야에서 더 혹등고래를 잘 관찰할 수 있는 확률이 높은 지역을 알려주지 않았다.  



십 년이 넘는 연예계 생활 후에 더 이상 드라마나 영화에서 거절당하는 것은 내게 큰 상처를 남기지 못했지만, 내가 다이빙 강사가 된 이후에 바다가 등장하는 프로그램에 출연자 후보군이 되었다가 밀려나는 여러 상황은 또 다른 상처의 시작이 되었다. 바다를 모르는 사람들이 바다를 잘못된 방향으로 설정해 콘텐츠로 소비하는 것도 불편했고, 나의 진정성이나 실력, 경험과는 별개로 이 세계의 평가 기준에 발목 잡혀있는 듯한 내 처지가 참 서러웠다.


그렇지만 바다와 다이빙 관련 프로그램을  몇 번 촬영해보니, 제작진과의 의견 충돌이 그 어떤 때보다 크다는 것을 경험했고, 이젠 정말 진정성 있게 바다를 대하는 제작진, 나를 전문가로서 존중해줄 수 있는 환경이 아니라면 바다 관련 프로그램은 차라리 안 하는 게 좋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자극적으로 보일 수 있는 장면과 스토리. 방송이 원하는 모습과 내가 표현하고 싶은 바다와 다이빙은 너무도 거리가 멀었다.


'사람들은 자극적인 걸 좋아해. 자본은 대중이 원하는 곳을 쫓아. 그래서 내 이야기는 세상에 전달되기 쉽지 않을 거야.'


이런 나에게 큰 용기와 감동을 준 다큐멘터리가 넷플릭스 '나의 문어 선생님'이었다.  칼리하리 사막에서 20여 년 동안 다큐멘터리를 촬영했던 크레이그 포스터는 삶의 쉼이 필요해져 남아프리카 공화국에 머물며 바다를 매일 만나게 된다. 수온이 10도까지도 내려가는 차가운 바다에서 크레이그는 슈트도 입지 않고, 기체 탱크도 없이 자연의 일부가 되어 바다를 만난다. 그러다 우연히 마주한 작은 문어가 적들로부터 자신을 보호하는 모습을 보고, 그 후로 매일 문어를 찾아다니며 촬영을 하게 된다.


'나의 문어 선생님'은 크레이그와 문어, 그리고 바다만 등장한다. 영상은 프리다이빙을 하는 크레이그의 손에 들린 카메라 한 대로 촬영한 모습이 대부분이다. 화려한 앵글도, 편집도, 컴퓨터 그래픽도 없다. 그렇지만 바다와 문어를 진심으로 대한 그의 마음, 한결같이 매일 바다를 찾은 그의 꾸준함, 그런 그에게 곁을 내어준 문어까지. 다큐멘터리는 진한 여운을 남긴다.


2021년 아카데미 다큐멘터리 부문 최우수상을 수상한 이 작품은 작품으로서 전문가들에게 인정받았음은 물론이고, 바다를 잘 모르는 사람들마저도 한 동안은 문어를 못 먹을 것 같다는 후기를 양산해내며 큰 호평을 얻었다. '나의 문어 선생님은' 거대한 자본이 투입되지 않아도, 화려한 장비와 기술이 없어도, 대중적인 유명인이 등장하지 않더라도 진심을 담은 이야기는 사람들에게 전달된다는 희망과 감동이다. 그리고 진정 대상을 사랑하는 사람의 눈에는 겉핥기만 하는 사람에게는 보이지 않는 다른 것이 보인다는 것을 증명해준 고마운 작품이다.


함께 보고 싶어 아껴두었던 다큐를 드디어 같이 만나 보게 되었는데, 원하는 이야기를 듣지 못한 네 사람은 허탈했지만, 그 감정을 공유하고 나눌 수 있는 서로가 있어 좋은 밤이었다. 언젠가 우리가 진심을 담은 바다 이야기를 다큐멘터리로 담아내는 여정을 함께하며 이 시간을 회상하는 날이 온다면 그날은 더 좋은 날이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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