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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귀하다 Nov 21. 2022

서로의 다름을 알면 어울림이 된다

S성에서 온 스쿠버다이버, F성에서 온 프리다이버

"스쿠버다이빙은 어디서 해요?”      


내가 많이 받는 질문 top 10중 하나다. 국내에선 주로 동해와 제주, 코로나 19 이전엔 필리핀에서 오래 산 경험이 있는 남편 덕분에 세부에도 종종 갔었다고 대답한다. 스쿠버다이빙은 전 세계 바다에서 할 수 있고, 나도 꽤 많은 곳을 다녔다. 그런데 스쿠버다이빙을 잘 모르는 사람이 건넨 질문에 연례행사처럼 큰맘 먹고 다녀오던 머나먼 바다를 이야기하면, 왠지 다이빙이란 스포츠에 거리감이 느껴질 것 같아서 정해진 내 대답의 루틴이다.      


그런데 내 대답이 질문의 의도를 벗어난 경우도 종종 있다. 바다가 아닌 평상시 훈련을 어디서 하는지를 묻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스쿠버다이빙이 여행을 떠나서 한 해에 한두 번 즐기는 여가에 한정되지 않고, 평소에도 훈련하는 스포츠로 인식하는 사람이 많아지는 것은 나에겐 기쁜 일이다.    

  

스쿠버 다이빙의 많은 교육 과정들은 ‘제한수역’(Confined Water)과 ‘개방수역’(Open Water)으로 나누어져 있는데 이 중 제한수역은 수영장처럼 날씨와 바람, 조류 등 주변 환경의 영향을 받지 않는 통제된 환경을 뜻한다. 제한수역 교육 과정에는 ‘얕은 수심’과 ‘설 수 없는 깊은 수심’이라는 표현이 등장하기 때문에 일반적인 깊이의 성인 키보다 얕은 수영장에서는 스쿠버다이빙 교육을 하기 어렵다. 그리고 교육에 필수인 기체 탱크와 다이빙 장비 대여 시스템이 갖춰져 있어야 해서 ‘다이빙풀’, ‘잠수풀’ 등의 이름으로 불리는 보통 수심 3m 이상, (평균적으로는 5m)의 다이버를 위한 전용 수영장들이 전국 곳곳에 자리하고 있다.   

   

나는 처음 스쿠버다이빙을 배우기 시작했던 2012년부터 강사가 되기까지 주로 잠실 종합운동장 제2수영장에서 교육받고 훈련했다. 가끔은 수원 월드컵 경기장 내에 있는 다이빙풀도 찾았다. 올림픽 공원 내에도 잠수풀이 있어서 이 세 곳이 그 당시엔 수도권에서 가장 대중적인 잠수풀이었다. 2017년 가평에 아시아에서 가장 깊은 잠수풀인 최대 수심 26m의 [K26]이 개관하면서 그곳 역시 많은 다이버들이 찾는 잠수풀이 되었다. (올해 최대 수심 36m의 Deep station이 용인에 개관하면서, K26은 ‘아시아 최대 수심 수영장’ 타이틀을 넘겨주게 되었다.) 수중 촬영 전문 스튜디오로 유명한 [수작 코리아]는 2016년 고양시에 개관했는데 전문 촬영 일정이 잡혀있지 않은 날엔 일반 다이버들에게도 오픈되어 있다.      

가평 K26. 원통형 구간으로 내려가면 최대 수심 26m 깊이다.

위에 언급한 잠수풀들은(Deep Station 제외) 내가 적어도 5회 이상 방문했던 곳이다. 많게는 100회를 훌쩍 넘긴 곳도 있다. 코로나 전에는 각 행정구역 별 잠수풀을 방문하면서 소개하는 영상 콘텐츠를 만들 계획도 있었는데, 아쉽게도 실행에 옮기지 못했다. 다이빙에 관심이 없는 사람들에게는 정말 생소한 이야기일 수도 있지만, 열정적인 다이버에게 잠수풀의 개관, 휴관, 평판이나 작은 이슈는 중요한 소식이다.  

    

잠수풀을 이용하는 사람들은 누가 있을까? 스쿠버 다이버만 있는 것은 아니다. 프리다이버를 비롯해서 일부 시설이 갖춰진 곳에는 플랫폼 & 스프링보드 다이버, 싱크로나이즈드 다이버 등 다양한 스포츠 종목의 다이버들이 공존한다. 그리고 각종 교육을 위해 단체가 방문하기도 하고, 소방관이나 특수임무의 공무원들이 잠수풀을 찾기도 한다.

그렇지만 내가 처음 다이빙을 시작하던 무렵에는 잠수풀을 이용하는 사람들의 비율은 스쿠버 다이버가 압도적으로 많았다. 특히 플랫폼 & 스프링보드 다이빙은 높은 곳에서 점프해서 하강하기 때문에 물속에 있는 사람과 충돌할 위험이 있어서 이 종목이 진행이 되는 날은 철저하게 잠수풀 구역이 나뉘어 있었고 가끔 서로 구역을 침범하게 되면 누구의 잘못인지 책임소재를 파악하기도, 사과를 하는 것도 쉬운 일이었다. 싱크로나이즈드 다이빙 역시 단체 교육으로 보통 주기적으로 일정한 날에 교육이 진행되었고, 스쿠버 다이버와 충돌이 전혀 일어나지 않도록 구역이 정확하게 나뉘어 있었다. 다른 종목의 사람들이 함께 잠수풀을 사용하게 되는 날은 구역도 좁아지고 탈의실이 붐비는 불편함은 있었지만, 출퇴근길 교통체증 정도의 길 막힘이었다고 비유해도 괜찮을 것 같다.      


그런데 내가 강사가 된 2015년 이후부터 프리다이빙이 국내에 급속도로 인기가 높아지면서 프리다이버의 인구가 눈에 띄게 증가하기 시작했다. 무거운 탱크와 이것저것 비싼 장비가 필요한 스쿠버 다이빙에 비해 마스크와 스노클, 핀만 있으면 시작할 수 있는 프리다이빙은 젊은 세대들에게 훨씬 진입장벽이 낮게 느껴졌고 깊이와 거리, 숨 참는 시간 등 자신의 기록이 숫자로 확인되기에, 성장하고 있는 스스로에 대한 명확한 성취감 역시 확실한 매력 포인트 중 하나였을 것 같다. 프리다이빙은 압축공기를 사용하지 않기 때문에 반복 다이빙 후 일정 시간 동안 비행금지가 권장되는 스쿠버다이빙보다 여행 시간을 더 효율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것도 장점이다.


물론 내가 프리다이버의 수가 눈에 띄게 증가하기 시작했다고 체감하는 2015년 이전에도 프리다이버는 많이 있었지만, 압도적으로 많은 스쿠버다이버 속에서 그들이 눈에 띄는 정도였다면, 현재는 스쿠버다이버 반, 프리다이버 반, 혹은 지역과 시간대에 따라서는 프리다이버가 훨씬 더 많은 잠수풀도 볼 수 있게 되었다.

수면 위의 수많은 핀들은 프리다이버, 바닥 쪽은 스쿠버다이버다. K26, 2020


많은 사람들이 스쿠버 다이빙과 프리다이빙이 비슷한 스포츠라고 생각하지만, 두 스포츠는 이해해야 하는 지식의 범주에 교집합이 있으면서도 정말 많이 다른 종목이다. 그래서인지 같은 다이버라는 범주 안의 서로 다른 두 종목의 애호가들은 서로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채 같은 공간에서 과밀되기 시작하면서 종종 충돌하게 되었다. 단순한 교통체증이 아니라 교통사고가 일어나기 시작한 것이다. 사고가 일어나지 않는 것이 최우선이지만, 수많은 다이버를 수용하기에 잠수풀이 턱없이 부족한 것이 사실이다. 그리고 대부분의 직장인들은 평일 근무에 여가시간을 내기 쉽지 않기에, 잠수풀은 주말에 사람들이 몰리게 된다. 허가부터 관리와 유지가 절대 만만치 않은 잠수풀을 주말 평균 수요에 맞게 더 만드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다.    

  

그렇다면 다른 종목들이 함께 잠수풀을 사용할 때처럼 스쿠버다이버와 프리다이버가 사용하는 영역을 나누면 되지 않을까? 생각해볼 수 있지만, 간단한 접촉사고를 막기 위해 아예 구역을 나누기엔 잠수풀의 운영자, 이용자 모두에게 비효율적이다. 수용할 수 있는 인원수에 적절한 통제만 있다면, 둘 사이엔 배려를 통한 공간 공유가 가능하다. 사고를 막기 위한 시설 확충이 빠른 시일 내에 불가능하다면, 우선 사고를 최소화할 수 있는 안전교육, 그리고 사고가 일어나는 이유와 과실을 따질 수 있는 기준, 잘못에 대한 사과의 방식 등을 알아야 두 집단의 갈등이 심화되는 것을 막을 수 있을 것이다.


사실 많이 다르다고 했지만 물을 좋아하고, 바닷속 해양생물을 사랑하고, 무언가에 도전하고 성장해가고 싶어 한다는 점에서 스쿠버다이버와 프리다이버는 비슷한 부분도 많다. 단지 서로를 잘 모르기 때문에 발생한 사고를 고의적인 사고였다고 오해해서 서로에 대한 적개심이 커지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나는 ‘화성에서 온 남자, 금성에서 온 여자’처럼, ‘S성에서 온 스쿠버다이버, F성에서 온 프리다이버’라고 이름 붙여 서로를 이해하는 시간을 가져보고 싶다. 실제로 내가 유튜브 콘텐츠로 제작했던 주제다. 내 채널 구독자 중에는 S성 시민, F성 시민, 이중국적자 모두 있다. 내 영상을 보고 많은 사람이 몰랐던 상대의 입장을 이해하게 되었다고 말해주어서 나름 뿌듯했던 기억이다.      


나는 스쿠버다이버는 프로이지만, 프리다이버는 어린이 수준이다. 정식으로 교육을 받았지만 스쿠버다이빙과 다른 압력 평형 방식에 어려움을 겪어 보다 상급 단계로 나아가는 것이 멈춰진 상태다. 그래서 나는 프리다이빙에 대한 깊은 지식은 강사만큼 갖고 있지 못하고, 수중 스포츠를 시작한 나의 뿌리가 S성에 있기에 마음이 그쪽에 조금 더 기울어져 있는 것이 사실이라고 양심 고백한다. 그렇지만 최대한 양쪽을 배려하고 초보자도 이해할 수 있는 선에서 스쿠버다이버와 프리다이버의 차이를 쉽고 간단하게 이야기해보려 한다.      


같은 집에 살지만 반려동물에게 “왜 넌 빨래나 설거지를 하지 않는 거야?”라고 불만을 토로하는 사람은 없듯이, 서로의 다름이 서로를 몰랐을 때는 틀림이었지만 서로를 알고, 다름을 인정하면 어울림이 될 수 있다는 그 멋진 삶의 진리가 얼마나 내 마음을 평안하게 만드는지 같이 느낄 수 있으면 좋겠다. 이후부터는 편의상 스쿠버다이버를 S인, 프리다이버를 F인이라고 칭하겠다.     


S인과 F인의 가장 큰 차이는 호흡에 있다. 두 인종 모두 물속에서 자력으로 숨 쉴 수 없다는 사실은 마찬가지다. 그래서 S인은 물속에서도 편하게 숨 쉴 수 있는 기체와 장비들을 가지고 수중세계에 들어가고 F인은 자신의 한 호흡이 허락하는 동안만 물속 세계를 경험한다. 여기서부터 서로에 대한 날 선 비판이 시작된다.

S인의 생각이다.

“아니 고작 몇 분, 그것도 다시 수면으로 올라갈 호흡 남겨서 잠깐 둘러보는 F인들이 바다에 대해 뭘 알아? 그저 자기 기록 세우기를 하는 것이지. 바다를 느끼려는 우리와 달라”


그러면 F인들은 반박한다.

“주렁주렁 거추장스럽게 장비에 의존해서 인공적으로 바다에 들어가면서 어떻게 자연과 하나가 된다고 할 수 있지? 우리는 계속되는 훈련을 통해 한계를 극복해가며 진정 바다생물들과 소통하는 존재야.”

라고 말이다.


둘 다 경험해 본 나의 생각은? 사실 양쪽의 주장은 모두 맞다. 다만, 그래서 ‘우리가 진짜야.’라는 주장만 뺀다면. 내가 프렌치 폴리네시아에서 혹등고래를 만났을 때, 멕시코 바흐 캘리포니아에서 마코 샤크를 만났을 때, 라파즈 섬에서 물개와 시간을 보냈을 때, 하와이에서 돌고래들과 함께 시간을 보냈던 그 시간에 나는 F인이었다. 숨이 차고 정신없이 체력을 다해 앞으로 나아갈 때면 때때로 수면 너울에 스노클을 통해 들어오는 바닷물을 마시기도 하고, 모자란 숨을 채우러 상승과 하강을 반복하는 일이 쉽지 않았지만, 어떤 장비에도 의존하지 않던 그 자유로움과 그래서 자연스레 벅찬 호흡이 왠지 진짜 그들과 하나가 되었다는 느낌을 받았던 것을 인정해야 했다.     

거북이와 프리다이버 송현. 하와이, 2018

반면에 바다는 시시각각 변화한다. 항상 같은 자리에 입수해도 단 한 번도 같은 모습인 적이 없었다. 한 곳에 가만히 머물며 몇 분이고 한 생물을 관찰하면, 그 친구가 식사하는 모습, 화장실 가는 모습, 가족들과 함께하는 모습, 사냥하는 모습 등 정말 다양한 모습을 볼 기회가 많아진다. 안정적이고 여유 있는 호흡을 통해 부력을 자유자재로 조절하면서 위치를 잡을 수 있는 S인에게 만약 바다에 대한 경험이 비슷한 F인과 똑같은 시간과 장소가 주어진다면, 아마 그보다 훨씬 많은 것을 관찰하고 기록해올 수 있을 거다.     

 

스쿠버다이버 송현. 제주, 2019


F인들은 기록 경쟁 대회가 있다. 얼마나 깊이, 얼마나 멀리 갈 수 있는가. 얼마나 오래 숨을 참을 수 있는가. 아주 큰 범위로 나누면 그렇다. 그래서 면밀히 말하면 S인에 비해서 훈련하는 과정이 훨씬 더 분 단위로 세세하게 나눠져 있다. 그렇지만 S인은 기록경기를 하는 사람들이 아니다. 개인적인 도전으로 더 깊은 수심을 계획할 수는 있지만, 그것은 기체 혼합, 장비 세팅, 팀워크 등 내 몸 안이 아닌 장비와 나와의 조화, 팀원과의 화합 등 체외 훈련이 더 많이 필요한 과정이다. 하지만 F인은 좋은 기록을 내기 위해서 늘 스스로와 싸워야 하며, 내부의 힘이 길러져야 하기 때문에, 정확한 타이머로 시간을 재며 훈련하는 과정이 있다.


예를 들면 50m를 무호흡으로 간 후 처음엔 30초를 휴식하고 다시 50m를 간다. 이번에는 20초만 쉬고 다시 출발한다. 그다음엔 10초만 쉬고 출발, 마지막엔 단 한 호흡만 크게 들이쉬고 마지막 50m를 간다. 프리다이빙을 위해 필요한 내부의 힘을 키우는 훈련 방식 중 하나다. 그렇게 몇 세트를 반복하기도 한다. 나도 해봤지만 정말 매우 힘든 훈련이다.      


만약 F인이 이 훈련을 진행하는 중인데 진로에 갑자기 S인이 나타났다고 가정해볼까. F인은 그를 피해서 돌아갈 힘도 호흡도 부족하다. 부딪힌다면 당연히 멈춰서 미안하다는 잠깐의 손짓을 하기 어렵다. 부딪힌 자체로 이미 훈련에 큰 흔들림이 생겼을 거다.


그러나 이런 과정을 모르는 S인은

‘아니 사람이 오는데 좀 피해 가지 굳이 와서 부딪히고 쳐다도 안 보고 자기 갈 길 가는 건 뭐야?’

라고 생각할 수 있다. 왜냐하면 수영장에 와서 훈련하는 S인 중에는 아직 장비 사용이 익숙지 않아서 방향 전환이나 수심의 높낮이를 자기가 원하는 대로 잘 컨트롤할 수 없는 사람이 많기 때문이다. 그들에겐 아무 장비가 없는 F인이 훨씬 움직임이 자유로워 보인다.


반면 F인은 숨도 편하게 쉬는 S인들이 굳이  직선으로 훈련하고 있는  진로에 난입하는지 이해가  된다. 하지만 제자리에 가만히 있을  있는 것이 S인에게 초고수의 난이도라는 것을 F인도 이해해주어야 한다. 주체할  없는 몸이  방향으로 향한 것이지, 일부러 당신을 방해하려고 뛰어든 나쁜 사람은 아니었을 거다.      


가장 많은 접촉사고는 F인이 덕다이빙을 하며 하강하다가 지나가는 S인과 충돌하는 경우다. 덕다이빙이란 수면에서 머리부터 물속으로 일직선으로 발이 제일 나중에 들어가는 입수 모양이다. 자신의 한 호흡으로 다이빙을 해야 하는 F인들에겐 준비 호흡이 아주 중요하다. 수면에서 보통 부이를 잡고 마음속으로 카운트를 세며 호흡을 하다가, 입수할 준비가 되면 스노클을 입에서 빼고 덕다이빙을 시작한다. 그런데, 준비 호흡을 하는 동안은 수면에 상체가 엎드린 상태이기 때문에 수영장 아래쪽에 사람들이 다니는 모습이 보인다. 당연히 누군가가 지나간다면 하강을 시작하지 않는다. 아무도 없는 것을 확인하고 덕다이빙을 시작했는데 꼭 그 순간 지나가는 S인이 있다.    

  

일단 F인의 입장에서 덕다이빙을 하며 하강하는 동안은 부이에 달려 있는 하강 라인을 보면서 내려가는 경우가 많은데 최대한 기체 손실을 막기 위해 S인보다 용적률이 작은 마스크를 쓰는 데다가 하강 라인에 집중하고 있어서 시야가 정말 좁다. 입수 전에 분명히 확인했는데, 그 사이에 누군가 나타나서 충돌이 생긴 것이니 억울할 수 있다.

‘아니 거꾸로 내려가고 있는 사람보다 멀쩡하게 앞을 보고 오던 사람이 좀 비켜주지.’

라는 생각이 든다. S인은 덕다이빙 중인 F인이 하강할 때는 주변을 살피는 것이 쉽지 않다는 것을 인지하고 사람이 많은 날은 조금 더 주위를 잘 살피면 좋겠다.


F인도 알아주었으면 하는 점이 있다. 등에 기체 탱크를 달고 있는 S인들은 사실 목이 별로 자유롭지 않다. 고개를 들면 뒤통수가 탱크에 닿아 불편하다. 그래서 내 위치보다 높은 곳을 보려면 상체를 일으켜야 하는데, 숙련되지 않은 다이버의 경우 상체의 위치가 조금 변하는 것만으로도 갑자기 수면으로 상승할 수 있어서 위쪽을 살피는 일은 아래를 쳐다보는 것보다 좀 더 어려운 일이다.  

    


우리 바다에서 실수하지 않기 위해 훈련이 더 필요해서 수영장에 오는 거잖아요. 그래서 아직 미숙할 수 있고 당신을 봤는데도 부딪히려 직진한 게 아니라 정말 위에서 내려오는 당신을 미처 인식하지 못해서 충돌이 일어났을 확률이 높아요. 그러니 서로 이해해주면 참 좋겠어요.      



이번엔 충돌이 일어난 후의 상황에 대한 오해다. 사실 S인들끼리 부딪히는 경우엔 둘 중 누구도 급하지 않기 때문에 바로 돌아서서 손을 모으거나 고개를 숙이며 죄송하다고 사과의 표시를 할 수 있다. 정말 도에 어긋나는 심한 무례가 아니었다면 대부분 사과받은 그 순간 쿨하게 괜찮다고 하고 넘어가게 된다. 만약 교육 중이어서 케어해야 할 학생들이 있었다거나, 바로 사과할 수 없는 어떤 상황이 있었더라도 물속에서 머물 수 있는 시간이 길다 보니 상대의 마스크나 핀 등을 기억했다가 나중에라도 사과를 할 기회가 그래도 주어지는 편이다.

 

아니 그런데 F인들이 많아진 이후로 교통사고도 이렇게나 많아졌는데, 왜 그쪽 사람들은 사과를 안 하는 거야? S인들은 F인들의 인성문제를 지적하기 시작했다.      


그런데요 S인 여러분. 편하게 호흡하는 것이 아닌 F인들은 충돌 자체에 이미 호흡이 막혀 바로 수면으로 직행해야 할 수도 있다. 보통 숨을 얼마나 길게 참을 수 있는가를 측정할 때는 발이 닿는 얕은 수심에서 가만히 움직임이 없는 편한 상태로 기록을 잰다. 그 종목을 스테틱(Static)이라 부르는 데, 내 수영장 스테틱 기록은 3분 30초이지만, 바다에서 해양생물들 만나서 신나고 흥분하면 수중에서 4-50초를 견디기도 힘들다. 평안한 마음과 부동의 자세일 때와 마음이 흔들리고 움직임이 생겼을 때의 호흡은 완전히 달라진다는 것이다.


수영장을 찾는 S인이 모두 실력자가 아니듯이 수영장에 오는 F인들도 훈련 중이고, 아직 놀라고 경험이 부족할 수 있다. 더구나 S인은 굉장히 단단한 물건을 많이 가지고 다니니까 엄청 아프게 부딪혔을지도 모른다. 순간 놀라서 수면으로 튀어 올라갔을 수도 있고, 사과하고 싶었는데 다 똑같은 사람처럼 보여서 나중에라도 사과하려 했지만 몰라서 못했을 수 있다. 하지만 S인은 부딪혀놓고 사과 없이 줄행랑치는 듯한 F인을 똑똑히 봤기 때문에 물 밖에서도 계속 찌릿한 눈빛을 보내며 혼자 불쾌해했을지도 모른다.    

  

이제는 이해할 수 있겠지? 아, 많이 놀랐겠구나. 안 다쳤는지 모르겠다. 마음에 담아두고 불편해하지 않으면 좋겠다. 그런 따뜻한 마음 서로 가지면 참 아름다울 거다.


언제나 잊지 말아야  것은 우린 누구나 완벽하지 않고, 고의로 상대를 해칠 마음이 없으며, 물을 사랑하는 동료들이 이렇게나 많기에 충돌이 일어나는 상황에 살고 있다.라고 생각하는 마음이다.

그러나 교통사고를  운전자가 초보라서 몰랐다고 용서받을 수는 없듯이, 나의 무지함이 원만한 합의가 불가한 위협이   있음을 기억하고, 즐기려는 자유만큼이나 책임지려는 마음, 그러기 위한 배움과 연습이 필요하다는 것을 마음에  담고 있으면 좋겠다.      


물속에서 안정을 찾는 다이버인데, 해외 길은 막혀버렸고, 인원 제한 때문에 수영장마저도 이용이 쉽지 않아 졌던 코로나 19의 처참한 상황. 성격 나빠질 만큼 시간이 길어진 거 맞다. 더 넓은 바다로 떠날 수 있었던, 우리가 감사한 줄 모르고 누리던 그 예전의 평범한 날들이 다시 돌아오길 간절히 바라면서, 그래도 우리 화낼 대상을 찾기보단


‘당신도 힘들군요.’


공감하면 좀 더 나을 거라 믿는다.      


코로나 이전만 해도 세부나 보홀에서   살며 프리다이빙 강사에도 도전하고 싶었었는데, 지금은 늘어난 체중과 약해진 체력 탓에  모르겠다. 모두  그런 것은 아니지만, F 중에는 다이빙할  속에 부담되지 않게 절제된 식사를 하는 선수들이 많다. 집중력이 매우 중요한 F인들은 요가, 명상, 호흡법 등이 마인드 컨트롤과 본인의 실력 향상에 좋은 영향을 주기 때문에 S인보다 다이빙 이후 일정이  개인적이고 조용한 경우가 많다고 느꼈었다.


코로나 블루를 이겨내고 다시 체력도 키우고 마음 근육도 더 단단해지면 또 생각이 바뀔까? 혼자 명상보다는 짝꿍과의 꽁냥 거림이 너무 좋아 아직은 자신이 없지만, 아무튼 나는 아직 이중국적을 계속 유지할 생각이고, 프로 F인이 되는 것도 완전히 포기하진 않았다.      

평일 낮의 여유로운 종합운동장 다이빙풀. F인 송현, 2017


형제의 별 S성, F성. 서로 사랑하고 아끼길 소망한다. 아직 어느 별에도 속해있지 않은 지구별 독자 여러분께도 즐거운 시간이었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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