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다이빙 강사는 한때 다이빙 초보였다.
낯선 환경에서 무언가를 새로 시작할 때, 정말 초보자가 맞나 싶을 만큼 빨리 배우고 그 세계의 문화와 방식을 금세 흡수하는 사람이 있다. 반면에 낯섦이 주는 부담과 긴장감이 크고,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기까지의 시간이 상대적으로 오래 필요한 사람도 있다. 무언가를 보고 배우는 센스가 있고 낯선 환경에 대한 적응이 빠른 사람들은 무슨 일을 하든, 어디에 가든 잘 적응할 것 같아 보이지만 누구나 취약한 분야는 있기 마련이다. 그래서 누구나 늘 숙련된 듯한 초보자일 수 없고 누구나 늘 뒤처지는 경험자도 아니며, 우리는 삶 속에서 두 가지 상황 모두를 겪어간다.
나는 새로운 것을 접하고 배우는 것을 아주 좋아한다. 누군가는 거창하게 ‘도전’이라고도 표현하지만 그냥 어떤 분야에 관심이 생기거나, 이 일을 남한테 맡기기는 조심스러워서 내가 직접 해야겠단 필요에 의해 시작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나는 어떤 것을 새롭게 시작하면 사랑에 빠진 사람처럼 온통 그것에 정신을 뺏겨서, 다른 사람들보다 빨리 익숙해지고 더 많이 흡수했던 것처럼 보였을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절대적인 시간을 비교해본다면 ‘빨리’가 아니다. 남들은 열흘에 1시간씩 할 것을 나는 하루에 10시간을 매달리는 성격이다. 일과 중 밥 먹는 시간과 잠을 줄이면서까지 상대적으로 투자하는 시간이 엄청나게 증가하기 때문에 일정 단계까지 가는 데 걸리는 기간이 짧게 느껴질 뿐이다.
사실 무언가를 배우고 익히는 것에 내 성공률이 높아 보이는 이유는 관심이 가지 않거나 잘할 수 없을 것 같다 생각한 분야는 아예 시작할 마음을 먹지 않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인생에서 하고 싶은 일만 하며 살 수는 없기에, 나도 100% 자발적인 마음으로 참여한 것이 아닌 새로운 상황에 종종 놓인다. 이럴 때 나의 시작은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어쩌면 완벽주의적 성향 때문에 훨씬 더 강력한 스트레스를 동반한다. 가장 큰 스트레스 상황은 내가 초보자이기 때문에 내가 속한 집단에서 나만 부족한 경우다. ‘나 때문에’라고 인지하게 되는 상황은 아마 정말 많은 이가 생각하고 싶지 않은 두려운 순간일 거다. 피해를 주는 내가 되어서는 안 되고 타인의 잘못 때문에 피해를 받는 내가 되고 싶지도 않은 마음이 많은 상처와 갈등을 만들어낸다.
사람은 어떤 현상을 받아들이고 감정을 느낄 때 자신의 경험에서 많은 영향을 받는다. 그래서 서툰 초보자를 앞에 둔 상황에서
‘나는 안 저랬는데 저 사람은 왜 저러는 거야?’
‘나도 저랬었는데 저 사람도 지금 힘들겠구나.’
이렇게 상반된 시각이 있을 수 있다. 좀 더 공감의 폭이 넓거나 마음의 여유가 있는 사람이라면
‘나는 저러지 않았었지만 지금 이 상황은 저 사람에게 힘들겠구나.’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
그런데 정말 능숙한 초보자라는 존재가 있는 걸까? 경험치에 비해 잘하는 것처럼 보였을지 몰라도 그 기준을 어디에 두느냐에 따라 그 역시도 누군가에게는 부족한 서툰 사람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나는 ‘모든 다이빙 강사는 한때 오픈워터 다이버였다’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이 참 좋다. ‘모든 어른은 한때 아기였다.’처럼 반드시 성립하는 명제이기 때문이다. 모든 사장님이 반드시 그 회사의 신입사원부터 시작하진 않는다. 모든 아이가 자라서 부모가 되진 않는다. 학교나 군대처럼 다수가 경험하지만 ‘국민’이라는 집단 속의 모든 구성원이 전부 다 경험하지 않는 일들은 참 많다. 본인이 직접 경험해보지 못한 타인의 상황에 대해 공감을 기대하는 건 어쩌면 너무 큰 욕심일지도 모르겠다. 그렇지만 모든 다이빙 강사는 무조건 처음 다이빙을 접한 순간이 있다. 프로의 자격을 가졌거나, 아마추어라도 스스로 내가 다이빙 좀 잘한다고 생각하는 그 누구라도 초보자의 경험을 하지 않은 사람은 없다는 뜻이다. 판타지 소설처럼 “어느 날 갑자기 잠에서 깨니 나에게 다이빙을 잘하는 능력이 생겼다.” 가 아닌 이상 모든 다이버는 다이빙 신생아기를 지나왔다.
그래서 다이버는 누구나 서툰 다이빙의 경험이 있고, 그렇기에 그 경험을 바탕으로 초보자의 마음에 공감하고 관대할 수 있기를 기대해본다. 초보자도 당시에는 알아채지 못한 본인의 과오를 시간이 지난 어느 날에라도 돌아볼 수 있으면 좋겠다. 스쿠버다이빙은 취미의 영역에서 즐긴다고 하더라도 타인의 영향을 정말 많이 받는 활동이기 때문이다.
다이빙이 인생과 닮아있는 점 중의 하나는 아무리 계획해도 예상할 수 없는 변수가 등장한다는 것이다. 인간이 통제할 수 없는 자연, 날씨에 크게 영향을 받고, 내가 알지 못하는 사람들과 한배에 탈 확률이 매우 높다. 내가 알지 못하는 사람들이란 다이빙 실력이나 문화는 물론이고 성격이나 직업, 신체적 특수성 등 정보를 전혀 알지 못하는 그야말로 ‘처음 보는 사람’을 뜻한다. 통신 수단이 잘 작동되지 않는 바다 한가운데에 함께 배를 타고 바닷속 여행을 다녀올 사람들이라고 생각하면 그 중요도가 정말 높은데, 그들과 겪게 될 수 있는 여러 상황에 대비할 수 있는 정보가 참 부족하다.
물론 이런 변수를 줄이기 위해서 한 척의 배를 빌려 전체 인원을 ‘아는 사람’으로 구성하는 투어를 가기도 하고, 소수의 그룹이라도 돈을 더 내고 내가 아는 사람끼리만 투어를 진행할 수 있도록 조율하기도 한다. 그렇지만 다이빙 샵에서 진행하는 다이빙은 그날 같은 시간에 일정을 잡은 다수의 모르는 사람이 한배에 타고 바다에 나가는 경우가 일반적이다.
한 배에 많은 인원이 타고 있다면 바닷속에서는 보통 5-6명 정도로 그룹을 나누어 각 그룹의 인솔자와 다니게 된다. 만약 내가 친구와 단둘이 투어를 갔다면 우리는 가이드를 제외하고 처음 보는 2-3명의 사람과 한 그룹이 되어 바다 여행을 하게 될 확률이 높아진다.
일반적인 펀다이빙은 한 개의 기체 탱크로 한 번의 다이빙을 하는데, 초보자들은 실력자들에 비해 기체 관리에 능숙하지 못하다. 긴장도가 높아서 효율적으로 호흡하지 못하기도 하고, 수심을 잘 유지하며 다닐 만큼 부력 조절에 능숙하지 않아서 부력 기구에 사용하는 기체량도 상대적으로 많다. 물론 실력의 차이와 관계없이 체구가 크고 호흡량이 많아서 기체 소모가 빠른 경우도 있다.
같은 그룹 내의 누군가가 기체를 빨리 사용해서 다이빙을 끝내야 할 상황이 된다면 ‘내 기체는 아직 많이 남았으니까 더 놀다 갈래’는 허용되지 않는다. 내가 아무리 실력자라도 그 바다를 매일 드나드는 사람이 아니라면, 현지 가이드가 안내해주지 않는 바닷길은 위험할 수 있고, 만약 각자 다 다른 위치에서 다이빙을 마치고 수면에 떴을 경우 어떤 지점은 배가 접근하기 어려운 장소일 수도 있다. 그래서 특수한 상황이 아닌 경우, 그룹 내 한 사람이 기체를 일정량 이상 소비하면 그룹 인솔자는 그룹 전체의 다이빙을 종료하게 된다.
꼭 기체 소모만이 문제는 아니다. 보통 그룹 인솔자는 가장 선두에 서고 가장 실력이 부족한 초보자를 자신의 바로 뒤에 위치하게 한다. 상대적으로 다이빙 스킬이 좋은 다이버들은 그룹의 뒤쪽에 위치하게 된다. 그런데 초보자가 제대로 부력 조절을 하지 못해서 흙먼지를 일으키며 지나간다면 뒤에 줄줄이 따라오는 그룹의 팀원들은 아름다운 바다를 감상할 기회를 놓치게 된다. 부유물이 가라앉을 때까지 시간과 조건이 허락되지 않는 상황이라면, 카메라를 들고 있는 나 같은 사람에게는 속상한 일이다.
물속은 대기 중보다 압력의 차이가 크다. 우리 몸은 대부분 고체와 액체로 구성되어 있어서 압력의 변화에 큰 영향을 받지 않지만, 귀처럼 기체가 들어있는 공간은 수심이 낮아질 때마다 압력을 받아 통증을 느끼게 된다. 간단하게 설명하면, 부풀려 놓은 풍선을 손으로 눌러서 찌그러뜨리는 것과 같다. 그래서 수심 1미터를 내려갈 때마다 귀가 먹먹해지면 통증을 느끼기 전에 압력 평형을 하게 되는데, 초보자들 중에는 이 압력 평형이 잘 안 돼서 고생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가장 흔하게 사용되는 압력 평형의 방법은 코를 엄지와 검지로 잡아 코 쪽으로 기체가 새어 나가는 것을 막고 입을 다문 채 숨을 불어 내쉬는 ‘발살바’(valsalva)라는 방법이다. 불어 낸 기체가 귀로 이동해서 수압으로 눌린 기체 공간을 펴주는 원리다. 발살바는 크게 기술이 필요한 어려운 방법이 아니라서 수영장에서 천천히 연습하면 대부분 첫날부터 수업 진행에 큰 무리가 없다.
그렇지만 초보자가 아니더라도 다이빙 전날 충분한 수면을 못 했거나 음주나 가벼운 감기 증상 등으로 컨디션이 안 좋은 경우, 평소엔 무리가 없었던 압력 평형이 잘 안 되는 경우가 있다. 수영장에서 문제없었던 초보자 중에는 바다에 가면 긴장해서 몸이 경직되거나, 통증이 오기 전에 시도해야 하는 압력 평형의 적절한 타이밍을 잘 잡지 못해서 어려움을 겪는 경우가 종종 있다. 그럴 때는 통증이 느껴지지 않는 수심으로 조금 상승했다가 다시 압력 평형을 시도하며 하강해야 한다. 만약 압력 평형이 되지 않았는데 억지로 하강을 시도하면 귀가 크게 다칠 수 있다.
다양한 레벨의 사람들이 한 배에 타서 다이빙을 하다 보면, 다 같이 하강하라는 신호를 보고 내려와 나는 이미 바닥에 도착했는데, 아직도 수면에서 압력 평형이 잘 안 돼서 인솔자와 고군분투하는 초보 다이버를 하염없이 바라보며 기체를 낭비하는 다이빙을 경험할 때가 있다. 수심 깊은 곳에 있을수록 몸에 질소가 빨리 쌓이기 때문에 미리 내려와서 기다리면 그만큼 물속에 머물 수 있는 시간은 줄어들게 된다. 물속에서의 1-2분은 마치 농구 경기의 마지막 30초처럼 때론 아주 긴 시간이기에 이런 상황에서 다이버들은 서로 예민해질 수 있다. 사실 그저 일반적인 대양에서의 다이빙이라면 바닥 수심에서 얼마든지 감상하고 즐길 거리는 많아서 여유롭게 팀원들의 하강을 기다리면 별문제가 없다. 그런데 특수 다이빙의 경우에는 심각한 민폐로 이어지는 일도 있다. 내가 필리핀 팔라완으로 난파선 다이빙 투어를 갔을 때의 경험이다.
필리핀 팔라완은 2차 세계대전 당시 침몰한 일본의 군함이나 수송선들이 많이 있는 지역이다. 배가 빠져있는 수심으로 가야 하기 때문에 일반적인 펀다이빙에 비해선 꽤 깊은 수심이다. 그때 그 다이빙 샵에서 만난 팀원 중에 초보자인 외국인 여성 다이버가 있었는데, 감기에 걸렸다가 컨디션이 조금 나아진 듯해서 이틀 휴식 후 그날부터 다시 다이빙을 하기로 결정한 상황이었다.
그날 우리가 가려던 배는 수심 40m 부근에 엔진룸이 있어서 아주 빠르게 하강을 하고 10분 내로 엔진룸을 둘러보고 상승해야 하는 다이빙 계획이었다. 난파선은 빛이 없고 천장이 막혀 있는 공간이라서 현지 가이드 없이는 난파선 내부 진입이 불가능한 제약이 많은 코스다. 난파선 주위의 시야가 좋은 편도 아니어서 내부로 진입해서 수중 라이트를 켜고 보기 전까진 배 밖에서 딱히 볼 만한 것도 없는 포인트다.
그런데 총알처럼 내려와 엔진룸 입구에서 대기하던 나는 기체와 우리가 수중에서 머물 수 있는 시간이 줄어드는 안타까운 상황에 수면 위에서 팔랑거리는 그녀를 바라봐야 했다. 결국, 그녀는 압력 평형에 실패했고, 우리는 밖으로 나오는 통로가 명확한 곳만 스윽 둘러보고 상승을 시작해야 했다.
팔라완에는 많은 난파선이 있지만, 그 포인트는 유독 내가 기대했던 곳이어서 제대로 보지 못하고 다이빙을 끝내야 했음에 속상했다. 배 위에 올라왔는데 사과 한마디 없이 하강이 잘 안 되어서 뾰로통한 모습의 그녀를 발견하고는 다이빙 샵에 원망스러운 마음도 들었다. 그 다이버는 이번 다이빙에서 자신을 제외한 다른 사람들은 다 잘 구경하고 왔다고 생각할 만큼 초보자인 것 같아 보였다. 가이드가 배에 탑승한 다른 팀원들의 분위기를 살핀 후 결심을 하고 그 다이버에게 오늘은 다이빙을 더 이상 하지 말고 휴식하길 권고했고, 그녀는 더욱 기분이 상한 것처럼 보였다.
‘누가 저렇게 가르쳤을까. 왜 다들 참고 있는데 본인이 기분 나쁜 티를 내는 걸까. 난파선은 어려운 코스인데 저 실력으로 왜 팔라완에 왔을까.’
수많은 의문과 짜증이 순간적으로 내면에서 서로 튀어나가겠다고 일어섰다. 그렇지만 꾹 참고 다이빙을 마치고 돌아와 샤워하는 동안 마음속의 삐쭉삐쭉한 감정들이 천천히 깎아내 지며 초보자 송현 시절의 기억이 소환되었다.
초보자 송현은 발살바가 바다에서 종종 작동하지 않아 압력 평형에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 다이버였다. 특히나 수면 시간이 부족한 다음 날은 더 어려움을 겪었는데, 주책맞게도 다이빙 전날은 설레고 긴장되어서 잠이 더 오질 않았다. 그래도 민폐 다이버가 되면 안 된다는 생각에 하강을 시작한 후 귀에 무리가 올 때면 혼자 꼬물꼬물 조금 상승했다가 배에 온 힘을 다해 귀로 기체를 불어내며 조급한 마음으로 불안해했다. 시야가 좋아서 내 밑으로 점점 하강 중인 다이버들이 눈에 들어왔지만, 더 멀어져서 안 보이게 되면 어쩌지 겁이 덜컥 나기도 했었다. 그래서 다이빙 투어를 가면 늘
“저 이퀄라이징(=압력 평형)이 되다 안되다 그래요.”
말하고 제일 먼저 입수해서 하강 줄을 잡고 혼자 압력 평형을 시도해보곤 했다.
나보다 더 초보자 동생을 데리고 떠났던 투에서 일주일 정도가 지났을 때였다. 그때 나는 다이빙 횟수가 50회를 갓 넘긴 초보였다. 머물고 있던 다이빙 샵이 비치 다이빙(배를 타지 않고 샵 앞바다에서 하는 다이빙) 무제한 공짜 서비스를 진행 중이었는데, 다이빙에 대한 열정도 체력도 넘칠 때라 3번의 보트 다이빙 후에 또 비치 다이빙을 나섰다. 예쁘고 아기자기한 생물들이 많아서 정신을 놓고 한참을 놀다가 굉장히 긴 시간 동안 한 번도 압력 평형을 시도하지 않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아, 여기 아주 낮은 수심이구나.’
컴퓨터를 확인했는데 수심이 15미터인 것을 보고 깜짝 놀랐다. 나는 그날 갑자기 비티비(BTV)라는 압력 평형 방법을 본능적으로 시작하게 되었는데, 코를 잡지 않고 연구개와 구개범장근을 사용하여 이관을 열어주는 압력 평형 기술이다. 알려져 있기로는 선천적으로 타고나야 하는 것이라고 하며, 이비인후과 전문의에게 물었더니 이를 실행할 수 있는 사람은 전체 인구의 10%가 채 안된다고 했다. 그래서 나도 정확한 방법을 설명하긴 어렵지만, 그냥 ‘압력 평형을 해야지.’ 생각하면 알아서 귀 안쪽 근육이 움직이면서 귀의 먹먹함이 뻥 뚫리는 마법이다. 친구들 중에는 본인의 의지로 귀를 움직일 줄 아는 능력을 가진 사람이 있다. 우와 진짜 신기하다면서 어떻게 하냐고 물어보고 아무리 시도해봐도 내겐 불가능한 영역이다. 그런데 보이지도 않는 귀 안쪽 근육을 내가 원할 때 움직일 수 있다니. 지금 생각해도 참 미스터리 하다.
이건 본인의 다이빙 실력이나 노력과는 무관한 것이므로 그냥 감사한 선물인데, 암튼 그날 이후로 나는 압력 평형 때 코를 손으로 잡을 필요가 없어서 두 손이 자유로운, 촬영을 하기에도 최적의 조건을 갖게 되었다. 지금의 나는 압력 평형의 스트레스에서 완전히 해방되었다.
그래. 신이 주신 선물을 감사하는 마음도 잠시였고, 나는 내가 가진 기술을 원래 처음부터 사용했던 것처럼 내 지난 힘든 시간을 잊어버린 채 현재 내 눈앞의 초보자를 원망하는 마음이 들었던 것이다. 심지어 그 기술은 내 실력과 노력에 의해 얻어진 것도 아니었는데. 내 기억 속엔 남아 있지 않지만 아마 나도 어떤 날, 압력 평형 문제로 다른 다이버의 속을 타들어 가게 했던 서툰 다이버였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자 뾰족 거리던 내 마음이 뭉그러지며 잦아들었다.
당시에 나는 팔라완 난파선 투어를 찾는 한국 손님들이 많이 머무는 지역이 아닌 외딴섬의 해외 리조트에 머물고 있었다. 주변에 아무것도 없는 곳이라 리조트에서 정해진 시간에 삼시 세끼를 먹었고, 손님 대부분이 미국이나 유럽에서 장기 여행을 온 분들이라서 같이 머무는 손님들끼리 정을 주고 대화할 시간과 분위기가 형성되는 조금 색다른 투어였다.
그날 저녁 압력 평형에 어려움을 겪었던 다이버에게 다가가 먼저 말을 걸었다.
"몸은 좀 어떠니, 여행 왔는데 감기 걸려서 속상하고 힘들었겠네."
이런저런 인사말을 건네자 그녀의 표정이 아주 환해졌다. 배에서 표현하지는 않았지만 내심 우리에게 미안한 마음을 가지고 있었던 것 같았다. 다이빙은 초보지만 바다를 사랑하고 여행을 자주 다니는 그녀와는 어렵지 않게 대화를 이어갈 수 있었다. 마티니 한 잔씩을 마시며 이야기를 나누고 나니 오늘 제대로 하지 못한 다이빙에 대한 아쉬움도 우리의 웃음과 함께 허공으로 흩어졌다. 내가 강사라는 것을 알고 나니 그녀는 이런저런 질문도 했고, 기분 나쁘게 받아들이지 않을 수 있는 따뜻한 언어로 컨디션이 안 좋을 때 이런 깊은 수심 다이빙은 시도하지 않는 게 좋다는 나름의 조언도 건넬 수 있었다.
그곳은 주변에 정말 예쁜 산호들로 가득한 얕은 수심 포인트들이 많이 있는 리조트였다. 내가 머물렀던 4박 5일의 짧은 일정 중에 딱 한 번 난파선이 아닌 포인트에서 다이빙을 했는데, 만약 나도 더 휴가가 더 길었다면 난파선 말고 산호 구경을 다니고 싶을 만큼 사람 손이 많이 닿지 않은 건강한 바다였다. 나는 어둡고 깊은 난파선보다는 밝고 알록달록하고 맑은 시야의 바다가 지금의 그녀를 더 기쁘게 해 줄 거라 생각했다. 대화 후 표정이 밝아진 그녀를 보면서, 진작 배에서 먼저 괜찮냐고 안부를 묻지 못했던 나 스스로를 많이 반성했다.
많은 초보 다이버는 본인이 다른 사람들에게 민폐가 될까 봐 걱정한다. 그건 나도 늘 그랬기 때문에 걱정하지 말라고는 못하겠다. 다만, 그 마음이 너무 부담이 되어 다이버이길 포기할 정도까지 커져버리지 않게 경력자가 배려해주면 좋겠다. 때론 날카로운 지적과 가르침이 도움이 되는 상황도 있을지 모르겠지만, 상대가 예상하지 못한 따뜻한 다독임이 오히려 서툰 이를 더 단단하게 만들어주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
마흔 살이 되어보니, 나를 끔찍하게도 괴롭혔던 사람들에 대한 기억은 가끔 날카로운 창이 되어 나를 아프게 하지만, 다수가 나를 고장 난 사람 취급할 때 따뜻하게 다독여 주었던 사람에 대한 기억은 세월이 지날수록 더 강력하고 선명해지며 여전히 온기를 전한다. 그리고 그것이 나도 좋은 사람으로 살고 싶다는 의지와 소망을 꺼지지 않게 만들어준다.
서툰 사람은 약자인 경우가 많다. 다른 분야에선 높은 지위를 가진 사람일지라도 처음 시작하는 낯선 분야에서는 온전히 그의 가치를 처음부터 인정받긴 어렵다. 태도가 잘못된 것이 아닌, 단지 경험이 부족해서 서툰 약자를 비난하고 궁지로 모는 것은 어린아이를 ‘훈육’이라는 단어로 포장해서 학대하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미운 마음이 들 수 있다. 짜증이 나고 화가 날 수도 있다. 그냥 마음이 그렇다고 하는 것이기에 어떤 대상에게 부정적인 감정을 갖는 자체를 못났다거나 나쁘다고 생각할 필요는 없겠지. 마음은 통제의 대상이 아니니까.
그렇지만 서툰 약자는 시간이 필요하다. 혼내고 다그쳐서 빨리 숙련될 거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어차피 같은 시간이 필요하다면 나는 서로가 따뜻한 사람으로 그 시간을 보내길 소망한다. 서툰 이에게 전해진 그 온기는 시간이 지나면 또 다른 서툰 이에게 용기와 희망으로 이어질 테니까. 차가운 바람의 강한 힘으로 외투를 벗기는 것보다는 따뜻한 햇살을 비춰 스스로 겉옷을 내려놓을 수 있게 만드는, 서툰 이에게 좀 더 너그러운 세상이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