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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귀하다 Nov 17. 2022

인생 마지막 다이빙

이별도 때로는 대단한 축복이다.

결혼 전에는 하루 중 가장 좋아하는 시간이 아침인 적이 없었는데, 요즘은 커피 한 잔과 빵을 먹으며 남편과 TV를 보는 아침 시간이 최애 시간으로 자리했다. 더 이상 거대해지고 싶지 않다면 빵을 끊어야 한다는 비만관리 전문의 친구의 반복된 조언에도, 모닝커피 + 빵 + TV의 조합은 아직까지 끊어내기 어려운 달콤한 행복이다.


어제 아침의 행복으로는 요즘 골프에 진심인 남편이 선택한 유튜브 알고리즘의 흐름 속 박세리 감독님의 영상이 재생되었다. 이런저런 감독님의 명장면, 인생사를 듣다가 다음 영상으로 연결되었는데, 2016년 은퇴 경기였다. 선수라는 이름으로는 마지막 샷이었던 퍼팅을 하고 공이 홀로 들어가는 순간, 박세리 감독님은 눈물을 쏟아냈다. 어떤 기분일까? 세계 정상에 수없이 오른 전설적인 선수가 이제 더 이상 선수로서 이 무대에 서지 않는다고 선언한다는 것은.


감독님의 눈물에는 감히 내가 상상할 수 없는 수많은 사연과 감정이 있겠지만, 원래 타인의 감정에 잘 젖어드는 나는 그저 먹먹한 마음으로 눈물 고여 화면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때 남편이 나지막이 말했다.


"나도 인생 마지막 다이빙할 수 있을까?"  


"마지막 다이빙? 그런 기분이구나..."


마지막 다이빙이라는 단어를  마무리하지 못하고  입에서 울음이 터져 나왔다. 이러이러해서 슬프다는 사고의 흐름에 의한 감정이 아니라, 그냥 슬프기부터 하고 내가  슬픈지 생각한 경험이  오랜만이었다. 다이빙과의 안녕은 정말 사랑하는 사람과의 이별처럼, 감당하기 어려울  같은 슬픔이었다.


조금 감정을 추스르고 나니 '인생 마지막 다이빙'에는 보다 많은 의미가 담겨있었다. 기체 탱크와 호흡기 없이 자신의 한 호흡만으로 잠수하는 프리다이빙은 수심, 잠수 시간, 잠수 거리 등을 경쟁하는 종목이 있다. 하지만 스쿠버 다이빙은 기록 경쟁 스포츠가 아니다. 그래서 프로 선수의 개념이 존재하지 않는다. 따라서 공식 은퇴라는 개념 역시 없다.

물론 특정 분야에 큰 영향을 미친 선구자 개념의 유명 다이버들은 존재하고, 그들이 어떤 이유로 더 이상 다이빙을 하지 않기로 했다는 결정을 발표하는 일은 있다. 포괄적인 개념으로는 사회적인 은퇴가 맞지만, 그것이 선수로서의 은퇴는 아니었고, 은퇴 선언 후 '마지막 다이빙'을 한 것이 아니라 다이빙 후에 건강상의 문제로 앞으로는 다이빙을 못하게 되었다는 발표를 하게 된 경우였다.


그 누구도 선수가 아닌 스쿠버 다이버가 '인생 마지막 다이빙'을 한다는 것은 어쩌면 엄청난 축복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바다를 지극히 사랑해서 '마지막 다이빙'이라는 말을 끝내지도 못할 만큼, 바다에 못 들어간다고 생각하면 눈물이 터져 나오는 나 같은 수많은 사람들이 여러 이유로 그때가 내 마지막 다이빙이었다는 것을 모르고 인생과 안녕하게 될 것이다.


'오늘 다이빙이 내 인생 마지막 다이빙입니다.'라고 선언하고 다이빙을 할 수 있으려면 어때야 할까.

충분히 오래 살았고, 아직도 다이빙할 수 있을 만큼 건강하고, 이제 더 이상 다이빙하지 않아도 될 만큼 다른 즐거움이 있어야 하고, 그렇게 사랑했던 바다에게 마지막 인사를 할 수 있는 대단한 용기도 필요하다.


마지막 다이빙이라고 선언하고 들어간 바다에서의 약 4-50분은 어떨까. 상상해봤다. 그때도 나는 울보겠지. 마스크 안에 눈물이 가득해서 앞이 안 보일 것 같기도 하다. 여전히 내 옆을 지키는 버디는 남편이었으면 좋겠어. 숨을 내쉴 때마다 뿜어져 나오는 버블 한 알 한 알이 참 예쁘고 소중하겠지. 만나는 해양생물마다 인사할 거다. 참 고마웠다고. 다음 세상이 있다면 또 만나고 싶다고.

출수해서 올라온 배 위에서 장비를 풀고 나면 목놓아 울 것 같다. 그렇지만 그것이 꼭 슬픔의 눈물은 아닐 것 같아. 내 삶의 큰 부분을 함께 해준 바다가 이런 귀한 마지막까지 선물해줘서 정말 고마운 마음, 그동안 바다와 해양생물, 그리고 함께 했던 사람들과의 추억이 더해진 눈물일 거다.    


2세 계획이 없는 우리는 서로에게 먼저 떠나지 말라는 말을 자주 하는데, 같이 떠나면 장례를 치러줄 사람도 없고 살아있을 때 장례식을 하고 싶다는 말을 남편이 했다. 건강하게 살아서 삶에 고마웠던 사람들을 초대해서 밥 한 끼 대접할 수 있을 때 인사하고 싶다고. 남편이 처음 그 말을 했을 때는 좋을 것 같단 생각은 했지만 크게 마음에 와닿진 않았었는데, 인생 마지막 다이빙을 떠올려보니 그것이 얼마나 귀하고 멋진 소망인지 알 것만 같다.


언젠가, 어디엔가, 내가 '오늘 남편과 함께 제 인생 마지막 다이빙을 했습니다.'라는 기록을 남길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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