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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귀하다 Dec 15. 2022

엘크혼금, 소탈한 숲의 왕

horn에는 혼(魂)이 담겨 있다

마리아금에 이어 소개할 두 번째 주인공은 엘크혼금이다. 나와 처음 가족이 된 금다육이는 엘크혼금이었다. 금다육이를 판매하는 유튜브 채널들을 구독하며 그 아름다움에 빠져 구경하던 중, 정말 앙증맞고 귀여운데 자기주장을 확실히 하고 있는 또렷한 아이를 보고 심쿵했다. 용기를 내어 화면 상단의 전화번호로 주문 가능한지 문자를 보내보았고, 그렇게 나는 금다육 세계에 발을 들이게 되었다.


나의 첫 엘크혼금 5월(좌)/ 12월(우)


엘크는 '무스'라는 이름으로 더 친숙한 말코손바닥사슴의 유럽 이름이다. 몸길이가 3m, 몸무게가 800kg에 달하며 현존하는 사슴 중에서 가장 크다. 엘크의 수컷은 편평한 손바닥 모양의 뿔이 있는데 뿔의 좌우 끝에서 끝까지의 너비가 1.5m나 된다고 한다. 노르웨이와 스웨덴에서는 엘크를 '숲의 왕'이라고 부른다.


출처 [네이버 지식백과]


'엘크혼' 이라는 금다육이의 이름은 '숲의 왕'이라고 불리는 이 말코손바닥 사슴의 뿔의 모양을 닮아 붙여진 이름일 것이다. 내가 엘크혼금을 보면서 항상 상승하는 에너지, 강건한 자존감이 느껴졌던 이유가 여기 있었구나. 둥글게 벌어진 사슴의 뿔이 사납지 않고 온화한 권위를 상징하는 왕관처럼 보인다.


엘크혼금은 잎이 수평으로 넓게 펼쳐지기보다는 위로 상향하며 감싸 안는 형태를 보인다. 색상의 특징도 다른 금다육이와 차이가 있어 찾아내는 것이 그리 어렵지 않다.

마리아금이 전체적으로 빈티지한 그린 컬러에 테두리 부분이 흰색으로 복륜금이 든 형태라면, 엘크혼금은 전체적으로 밝은 베이스 컬러에 잎 중앙을 가로지르는 진하고 두터운 녹색라인이 있다. 그 녹색은 빈티지한 녹빛이 아니라 싱그러운 옐로 그린 톤에 가깝다. 마리아금이 청초, 단아, 우아한 느낌이 강하다면, 엘크혼금은 강건하고 진취적이며 생기가 넘친다.

엘크혼금을 측면에서 보면 잎이 위로 상향하는 모습이다.
마리아금(좌)/ 엘크혼금(우). 중앙을 가로지르는 녹색 라인이 특징이다.


빅마리 여사처럼 내게는 엘크혼금의 대장 금다육이도 있다. 혼나쌤. 그 크기와 상향하는 잎장의 기운에 왜 인지 모르게 잘못하면 혼이 날 것 같아 혼나쌤이라고 이름 지어드렸다. 그런데 혼나쌤은 하우스에서 예전보다 지내기 편안하셨던지 피부도 깨끗해지고 라인의 빛깔이 부드러워지면서 흥나쌤으로 변해가고 계셨다.


5월의 혼나쌤
8월의 혼나쌤. 어느 피부과 다녀오셨는지 맑고 투명해진 얼굴을 마음껏 뽐내고 계신다.


그런데, 처음 겪어보는 다육이들과의 여름은 내게도 혹독했다. 처음 치고는 정말 잘 버텨냈다는 것을 주변을 둘러보며 알게 되었지만, 수를 써볼 수 없게 물러서 하루아침에 떠나는 아이들을 보고 마음이 아픈 날이 내게도 있었다. 해충의 공격은 약을 써서 상황을 지켜볼 수 있지만, '무름병'이라고 불리는 뿌리부터 타고 올라와 잎장이 까맣게 물러 버리는 현상은 이미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넌 상태다.


만약 빨리 발견한다면 무른 곳을 잘라내고 새 뿌리가 나길 기대해볼 수 있다. 처음엔 아이에게 손을 대는 것이 겁이 나서 망설이다가 증상을 빨리 발견했는데도 조치를 취하지 못해서 결국 다육이를 떠나보냈다. 조금이라도 더 살리고 싶어 과감하게 잘라내지 못했다가 남아있던 균이 번지면서 전체를 잃기도 했다. 몇 번의 마음 아픈 경험을 통해 이제는 과감하고 빠른 결단을 내리기 시작했다.


밝고 건강하게 지내고 계신 줄 알았던 혼나쌤에게 병이 찾아왔다. 잎장이 홍시처럼 물러지고 색이 아주 안 좋은 까만색으로 변했을 때, 그게 하나의 잎일 경우엔 그 잎만 떼내면 되지만 여럿일 경우 고민의 시간이다. 뿌리를 자르고 새 뿌리가 나길 기다리면 아이는 몸살을 한다. 더운 여름인 경우 그 모든 과정이 어긋날 수도 있다. 이름을 붙였다는 것은 그만큼 내가 애정을 가졌다는 의미여서 혼나쌤에게 칼을 대는 것은 어려운 일이었다. 당장 응급수술을 할 정도로 다급한 상황도 아니었지만, 또 망설이고 아무 조치를 하고 돌아갔다가 다음에 다시 와서 전체가 까맣게 변해버린 혼나쌤을 본다면 너무 후회할 것 같았다.


혼나쌤의 잎이 물렀던 여름. 화분에서 뽑아 두꺼운 저 줄기를 잘라낼까 고민했다.
수술을 마친 혼나쌤


결국 혼나쌤은 뿌리와 줄기를 잘라내고 병원에 입원했다. 보통 다육이들이 다시 새 뿌리를 내리기까지는 한 달 여의 시간이 필요한데, 혼나쌤은 아주 오랜 시간이 걸렸다. 두 달 넘는 시간이 필요했다. 조마조마했고, 그 시간 동안 물도 못 먹고 흙에도 안착할 수 없는 혼나쌤은 많이 늙었다. 다행히 지난달 뿌리를 내린 혼나쌤을 퇴원시켜 새 집으로 모셨다. 사뭇 달라진 모습이지만, 한차례 어려움을 겪었으니 다시 예전의 위엄을 되찾으실 거라 믿으며 정성스레 보살피려고 한다.

12월의 혼나쌤



왕관을 쓰고 있지만, 대중적이고 친숙한 부드러운 카리스마를 가진 엘크혼금. 보고 있으면 밝고 긍정적인 up 에너지가 생기는 금다육이. 보통 밝은 컬러의 '금' 부분이 많으면 햇빛에 약해 잘 탄다고 걱정하지만 엘크혼금의 밝은 베이스 컬러는 그 안에 연한 녹을 품고 있어 햇빛에 탈 우려도 없다.


영혼의 '혼'이 뿔을 뜻하는 'horn'과 발음이 같은 것이 괜히 동서양의 기운이 합쳐져 하늘로 상향하는 에너지가 몸에 차오르는 듯한 기분 좋은 아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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