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내려가볼까요?] 작가 최송현입니다.
삶은 다채롭다. 더 이상 달라질 것 없다고 생각했던 시간을 겪어낸 후, 하루하루 내 인생을 채워가는 반복적인 일상에도 적응해갈 때쯤이면 또다시 예상하지 못했던 새로운 경험이 나를 찾아오곤 했다.
[이제 내려가볼까요?] 나의 첫 책을 출간한 지 열흘이 지난 어제, 나에게 내 책의 독자들과 직접 만나는 인생 첫 북콘서트라는 귀한 선물이 찾아왔다. 19년째 카메라와 대중 앞에서 말하는 것이 직업인 나는 그동안 수많은 스피치를 해왔고 이제는 일에 집중하기 위한 적절한 텐션 이상을 느끼는 '말하기'가 그리 많지 않은데도, 내 책의 북콘서트를 준비하는 동안 나는 많이 설레고 또 긴장됐다.
큰 결정에 오히려 대범하고 남들에겐 작은 일로 여겨질 소소한 과제에 이런저런 변수를 생각하며 긴장하는 나는 걱정이 시작될 때면 손에 땀이 난다. 남편은 그런 나를 잘 알고 있어서 내 손에 땀이 나는 걸 알아채면 귀엽게 봐주며 심리적 안정을 더해주곤 한다. 그런데 인생 첫 북콘서트의 의미가 그에게도 다가와서일까. 이번에는 땀나는 내 손을 잡으며 그도 나만큼 떨린다고 했다.
빔 프로젝터로 보여드릴 pdf 파일을 완성하고 주어진 시간 60분에 맞게 독자들께 들려드릴 이야기를 준비했다. 하고 싶은 이야기가 많고도 많아서 타이머를 작동시켜 시간 분배를 했지만, 연습할 때마다 60분을 살짝 넘어섰다. 어떤 부분을 빼야 할까. 지루해하시진 않을까. 고민 속에 북콘서트가 시작되었다.
최인아 책방 GFC 점에서 진행된 북콘서트는 사전 참가 신청을 받았고 감사하게도 일찍 마감되었다. 이 추운 겨울 평일 저녁에 누군가와의 만남에 시간을 내어준다는 것은 정말 쉽지 않은 일임을 잘 알기에, 한 분 한 분이 소중했다. 떨리는 마음으로 평소에 하던 것처럼 차근차근 내가 준비한 것들을 이야기했다고 생각했는데 마지막 슬라이드와 함께 내 마지막 인사를 전하고 벽에 걸린 시계를 바라봤는데, 불과 40여분 밖에 지나지 않았다는 것을 알게 됐다. 정말 많이 떨리긴 했나 보다. 스크립트 없이 진행하긴 했지만, 내가 20여분의 이야기를 자체 삭제했다는 것이 신기했다. 다행히 현장에서도, 온라인 라이브에서도 독자들께서 질문을 많이 해주셔서 결국 강연 + 질의응답 시간으로 정해져 있던 90분을 꽉 채우게 됐다. 혼자 길게 얘기한 것보다 독자들께서 궁금해하시는 이야기들에 답할 수 있는 시간이 더 길었던 것이 지나고 보니 잘된 일이었다.
나는 책을 쓰면서 종종 눈물을 흘렸고, 어떤 꼭지는 쓴 글을 퇴고하다가 펑펑 울기도 했다. 밝고 긍정적으로 살아가고 싶었지만 인생에는 그늘진 서러움이 곳곳에 남아있었다. 여전히 일희일비하는 나는 누군가에게 조언을 전할 수 있는 입장은 전혀 아니지만, '나도 그랬어요.'라고 전하는 공감과 위로가 누군가의 마음에 닿을 수 있기를 소망했다. 질문자 분 중 한 분이 그렁그렁한 눈으로 많이 힘든 시기에 위로가 되었다고 이야기를 전했다. 만나서 나누는 대화가 좋은 이유는 말과 글로 다 담지 못하는 수많은 감성과 에너지를 표정과 행동으로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진심으로 쓴 나의 책을 찾아 준 독자들이 진심을 담은 얼굴과 상기된 목소리로 전하는 이야기는 나의 나약한 마음에 따뜻한 온기가 되었다.
얼마 전, 존경하는 선배님의 유튜브 채널에 출연해 책과 나의 이야기를 말씀드렸다. 촬영이 끝나고
"선배님, 저 20대 때는 왜 그렇게 어려웠는지 모르겠어요. 지금은 이렇게 안기기도 하고 애교도 부리는데 그땐 그게 참 힘들었어요." 라며 오히려 신입사원이던 20여 년 전보다 더 애처럼 굴었다. 선배님은 그 따뜻하고 자애로운 목소리와 표정으로 말씀하셨다.
"송현아, 나이 든다는 거. 참 좋은 거다. 이렇게 젊었을 때는 어려웠던 거 할 수 있잖아. 나이 든다는 거. 좋은 거야."
퇴사 후 신인 여자 연기자에 비해 늦은 나이인 27살에 연기를 시작하게 된 나는 오디션 자리에서 나이 공격을 많이 받았다. 처음에는 크게 상처가 되진 않았다. 열심히 공부했고 대학을 다녔고, 회사 생활을 했기 때문에 내 젊음이 의미 없이 날아간 것은 아니었다고 생각했다. 그렇지만 굳이 다른 이유도 많은데, 나를 거절하는 이유에 나이를 강조하는 것이 심정적으로 기분이 좋을 수는 없었다. 부족한 여러 부분은 노력으로 채워갈 수 있지만 나이를 되돌리는 건 불가능하기 때문이었다. 30대가 되면서 일찍 결혼했다면 아이가 있을 나이이지만, 아직 미혼이었던 시기에 아역 배우와 함께 '엄마'가 되는 것이 처음엔 낯설었다. 좀 더 말랑말랑한 스토리의 경쾌한 캐릭터를 연기해보고 싶었던 마음에 더 일찍 연기를 시작하지 못한 것이 속상한 날도 많았다. 그런데 그 애매한 미련의 시기가 지나고 나자 선배님께서 말씀하신 나이 들어감이 좋다는 것을 공감하는 삶이 시작됐다.
십 대 때부터 꼭 책을 출간하고 싶다는 소망을 품었지만, 나의 첫 책이 지금이라서 좋다. 내 책을 들고 사인을 받으러 다가와 준 독자들에게 나눌 이야기가 그만큼 많아진 지금.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흘러가버린 것 같았던 지난 나의 시간들이 각각의 자리에서 내 삶이 무너지지 않게 쌓아져 가고 있었다는 것을 느끼는 요즘이다.
오늘 아침, 남은 재고가 얼마 없어 재쇄가 결정되었다는 반가운 소식이 들려왔다. 매일매일 인터넷 서점 판매순위를 확인하며 숫자의 변화에 이리저리 흔들리던 내 감정이 오늘은 '기쁨'으로 고정되었다. 여전히 하루에도 몇 번씩 감정의 동요 속에 상승과 하강을 반복하고 있지만, 내가 이런 모습임을 스스로 인정하고 받아들이며 전보다 나를 더 들여다보게 된 이야기를 더 많은 독자들과 나눌 수 있기를 소망한다.
내 인생 첫 북콘서트. 함께 해주신 모든 분들 고마웠어요.
우리 또 만나서 이야기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