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 <8월에 만나요>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라는 이름을 참 오랜만에 적어본다.
<내 슬픈 창녀들의 추억>을 끝으로 20년이 다 되어가도록 마르케스의 책을 못 봤던 것 같다. 나도 한때는 마르케스의 팬이었던 시절이 있었다. 하지만 점차 마르케스라는 이름이 가지고 있는 거대한 상징성과 그 '마술적 사실주의'라는 마법의 레테르 덕분에 마르케스라는 텍스트와는 엄청 거리감이 느껴졌다고나 할까. 살아있는 그의 책을 읽지 못했던 것 같다.
작가 사후 10년이 지나 우여곡절 끝에 만난 이 짧은 소설 <8월에 만나요>는 그래서인지, <내 슬픈...>의 여운 끝에서 시작되는 느낌이다. 기대와는 다른 소품이라는 느낌, 소박한 노년, 그리고 사랑과 나이듦에 관한 성찰 등등...
구체적으로 들어가 보면, 이 소설의 1장은 내가 올해 읽었던 책들 중 가장 흡입력 있는, 가장 설득력 있는 그런 전개로 읽혔다, 물 흘러 나가듯 전개되는 내내 이 여성의 나이와 직업 그리고 성격 그리고 어쩔 수 없이 몸매등을 떠올리면서 어떤 흥미로운 사건들이 그녀 앞에 있을 것인지를 감탄하며 읽어 내려갔던 것이다.
탐미적이면서 동시에 남아메리카 어느 곳의 기후, 질척이는 것 같은 새벽 공기, 때론 시원하면서도 몸을 뒤척이게 하는 뜨겁고도 온화한 분위기들이 자연스레 피어났던 것.
그리하여 그녀의 8월의 모험은 계속된다. 그 과정을 통해 달라진 자신과 달라진 남편에 대한 생각들이 이어지면서 미묘한 변화들은 다시 그녀를 8월의 장소로 이끌고 그녀와 8월은 어머니의 관 속에서 깜짝 놀랄만한 발견을 하게 된다.
담백하고 충분히 사려 깊은 문장들, 감각적인 하룻밤들의 장면과 6-70년대 흥행한 흑백 영화에서 튀어나왔을 법한 인상적인 대사와 카메라의 클로즈업, 그리고 흥겹고 진지하지만 로컬적인 음악들이 뒤섞이며 그 분위기를 이끌어나간다.
여주인공이 이 무더운 8월의 여행에 동반하는 소설들의 이름조차 이런 기시감을 더한다. <트리피드의 날>이나 <드라큘라>, <화성연대기> 기타 소설들은 왠지 모르게 나의 20대를 생각나게 하면서 이 빈티지 스토리를 더 생생하게 만들어주는 감초 역할을 한다.
이런 소설을 들고 다닌다면 말을 걸 수밖에 없을 것 같은 용기를 주는 표시 같다고 할까?
한편, 이 노작가가 늙어서도 관심을 가지고 표현하고자 하는 마지막 주제가 '사랑'과 '열정'에 관한 이야기였다는 점은 많은 부분 숙연함을 느끼게 한다. 우리는 과연 충분히 사랑하고 살고 있는가? 사랑과 모험, 사랑의 모험에 자신의 많은 시간을 충분히 쏟아내었나? 하는 물음을 하게 한다.
여튼 짧은 소설이라 아쉬움도 있었지만 그것보다 놀란 것은
민음사에서 나온 이 책의 내지 디자인인데...
80년대 유행했던 하릴없는 사랑시집의 느낌을 의도적으로 한 것인지, 너무 유치 찬란해서
빈티지 포스트잇 디자인 같다고나 할까,
책장을 넘기는 내내 토 나올 것 같은 힘듦을 견디었다고 할까... 하여튼 소설에서도 관 이야기가 나오지만 누군가 관을 열고 뛰쳐나올 것 같아서 좀 많이 부끄러웠다고 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