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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남실남실 Jun 30. 2024

오리들

정치적으로 올바른 학자금 대출 상환 분투기 


케이트 비턴의 <오리들>을 도서관에서 빌려 하루 묵혔다가 주말에 다 읽었다. 


도서관에서 빌린 책들을 어쩌다 겉표지가 없는 게 대부분이라 겉표지를 보게 되면 또 책에 대한 감상이 조금은 변하게 되는 걸 느낀다. 


회고록의 성격이 짙은 책이다. 그래픽 노블 특성상 주인공의 담담한 표정에서 많은 것을 읽어낼 수 있는 그런 책이다. 


22살 주인공 케이트 비턴은 대학 졸업 후 학자금 대출이라는 굴레에서 벗어나기 위해 일자리가 없는 캐나다 동부 연안의 고향을 떠나 서부 앨버타 주로 향한다. 그곳에서 오일샌드를 채취하는 산업 현장의 공구실에서 비교적 간단한 노동 강도의 직업을 구한다. 고향에서는 대출 상환할 정도의 높은 보수의 일자리를 얻기 힘들기 때문. 


아무런 낭만도 현실감도 없이 도착한 그곳에서 케이트가 바라본 현장은 역시 그녀와 마찬가지로 일거리를 찾아서 건너온 대부분 외지인 위주의 남성 노동자들의 거친 외롭고 고독하고 완고한 공기들 뿐이다. 산업은 대규모 환경파괴를 불러일으키고 케이트는 낯선 환경에서 사내들의 성적 농담과 시선에 억지로 익숙해지며 하루하루 학자금 대출 상환을 목표로 버티고 버틴다. 


건조한 리얼리즘 다큐를 보는 듯한 구성으로 주인공은 강한 감정들은 최대한 자제한 체, 부조리하면서도 지극히 핍진하며 때로는 비극적인 상황 자체를 보여주려고 노력한다. 주인공 주변의 인물들을 강하게 끌어들여 인물 간의 관계망에 스토리를 밀어 넣는 것이 아니라, 절대 융화되지 않는 분절된 주변인과 산업 현장에서 서서히 인간성을 상실해 가는 폐해들을 석유 폐기물에 덮여 죽어가는 오리들에 비유해 보여주고 있다. 


전체적으로 구성도 만족스럽고 이야기들의 세부와 현실감, 잔잔한 감정을 일으키며 공감의 형태를 띠는 작법들에서 탄탄한 실력이 느껴지는 이야기다. 하지만 한편으론 좀체 사그라들지 않는 어떤 비정함도 맴돌고 있다. 그것은 사회 구조의 비정함이며 구조적인 문제들을 들춰냈지만 그 봉합이란 꽤나 완강한 반발을 낳을 것 같다는 자조적인 뒷맛이 강하기 때문이다. 


이 2년에 걸친 그녀의 경험담을 통해서 독자는 여러 가지를 대신 알게 될 것이며 비슷한 남성위주 집단에서 일어나기 마련인 정서적-감정적 학대에 대해 공감할 수 있을 것이다. 형태만 달리 한 차별들 여성에 대한 성적인 편향적인 시선들과 그걸 용인해 주고 있는 듯한 변하지 않을 듯한 공연한 관료주의의 딱딱한 공기들. 


한편 케이트를 비롯한 처지에 놓인 대학생들에게 학자금 대출이란 사회적 원죄를 씌우는 형태로 느껴지기에 가혹한 자본주의 일면을 보는 듯하다. 사회에 첫발을 내디뎌야 하는 단계에서 이들은 빠른 상환을 위해 억지로 오일샌드와 같은 산업에 뛰어들게 되는 것처럼 보이는데, 다른 대안은 없어 보인다. 앨버타에서 2년은 다른 지역에서는 5년, 10년의 굴레를 짊어지게 만들 수도 있을 것이다. 


때문에 같은 이야기라도 만약 남성을 주인공으로 <오리들>을 그려냈다면 이야기의 톤과 정서는 180도 달라진 형태로 써질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케이트는 오일샌드에서 많은 것을 잃었고 또 목표한 바는 이룬 것 같지만 결코 이전과는 같은 사람으로 남기 힘든 성장을 이뤄냈다. 때문에 <오리들>은 성장 스토리이지만 그것이 올바른 방향에서 사려 깊은 접근법을 택했다고 보이긴 어렵지만 작가는 이러한 강요된 성장기를 집요하고 밀도 높게 그려내서 보편적이며 인상적인 이야기를 만들어냈다. 


산업이 추구하는 방향, 노동자들이 그것을 버티는 방식, 남성 노동자들 사이에서 여성 노동자들의 불평등과 구조들, 그리고 스쳐 지나가는 사람들과 나눈 대화들 그들의 이력들. 담담하게 펼쳐진 2년간의 경험들은 사회의 여러 가치와 구조적 문제점을 들춰내면서 시대의 분위기와 공감을 자아내는데 성공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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