흐라발이 유독 한국에서 인기 있는 이유?!

보후밀 흐라발, <이야기꾼들>

by 사장님의 세계문학


오래전에 본 흑백영화를 컬러영화로 다시 본 느낌이다


보후밀 흐라발이라는 천재적인 작가의 실력을 느낄 수 있는 최고의 작품 "엄중히 감시받는 열차" 그리고 기존에는 본 적 없는 "이야기꾼들", "장례식", "이온토포레시스", "다이아몬드 눈" 등 단편이 실려 있고, 예전에는 혼자서 "간이주점의 세계"라고 알았던 작품 제목이 "간이주점 '세계'" 였음을 알게 되었다.


술집 이름이 '세계'이고 그 세계는 희극과 비극, 애인의 죽음과 또 다른 애인의 발견이 동시에 있으며, 비극적인 운명이 또 반복될 것을 알지만 누군가의 불행이란 간이주점 밖의 행인들에겐 또 하나의 유흥거리일 수 있으며, 모든 것이 환하고 북적이는 간이주점에서는 용인되는 것이란 것, 그 안에서 맥주를 들이켜는 사람들 모두의 공통된 삶의 세부이며 체코 민중을 뛰어넘은 인간의 속성임을 보여준다.


Bohumil_Hrabal_1985_český_spisovatel_foto_Hana_Hamplová.jpg


리드미컬한 산문에서 반복되는 보조선율격의 문장들이 메아리처럼 돌아오면서 메인 스토리의 비극성 또는 희극성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이어지고 있다. 탁월하다.


흐라발 같은 작가의 책을 읽고 나면 그다음에 읽을 작가가 늘 안쓰럽게 마련이다. 마법 같은 이야기들이 펼쳐지는 그 짧은 안에서 최대의 호사를 느낀다.


예전에 중앙일보사에서 발매한 동구권 문학 선집에서 "엄밀히 감시받는 열차"로 번역되었고, 원작을 바탕으로 한 영화 제목이 영어로 "Closely Watched Train"이었기 때문에, 이리 멘젤 감독의 영화의 국역 제목이 "가까이서 본 기차"로 소개되었던 기억이 있다. 가까이서 본 기차와 엄중히 감시받는 열차 사이에는 흐라발 원작을 읽은 사람이라면 느낄 수밖에 없는 위트가 1도 없는 무지와 비문학적 비애의 간극이 크다.


"엄중히 감시받는 열차"라는 표현은 독일 치하 체코 보헤미아의 한 간이역에서 독일군의 군수물자나 화약, 병기 또는 군인들을 태운, 모든 열차들 중에서 가장 우선순위에 있으며 그래서 신호가 항상 열려있어야 하는, 때문에 독일 치하 조그만 간이역의 세계에서 가장 중요한 주제에 속한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흐라발에겐 첫째도 사람이고 둘째도 사람이다. 인간을 묘사하는 방법을 택하는 것이 그에겐 최우선이다.


9788937456565.jpg


이 소설은 주인공 밀로시의 성장소설이면서 또 동시에 반전소설이며 또한 체코 레지스탕스의 영웅적 행위를 묘사한다고 볼 수도 있지만 이 모든 것이 결국 격조 높은 풍자로 결부된다. 시대에 따라 고전의 감상 포인트가 바뀌듯이 카멜레온 같은 이 작품의 마법 같은 구조를 계속 의식하며 읽게 한다


이는 "이야기꾼들"이라는 르포형식의 단편에서도 관찰된다. 도대체 이게 무슨 일인지? 비정상적인 정상의 삶을 살고 있는 민중의 우악스러움을 최선의 형식으로 포착해서 그 지난한 삶의 결을 한 점 한 점 밝히게 만드는 기법이란... 한편 다른 단편들도 굉장히 모던해서 요즘 읽는 작품들과 비교해도 그 리듬과 표현이 빛이 난다.


카프카와 맞짱 떠도 될 만큼의 농밀한 묘사들이 군데군데 밟힌다. 쿤데라의 단편에서도 보였지만 에로틱한 감정과 숨 막히는 긴장감을 표현하는 묘사는 흐라발이 한 수 위 같다.


흐라발의 책이 한국에서 유독 인기 있는 이유는 다분히 그 정서의 유사성과 함께 민중의 관점에서 보통 사람들의 관점에서 쓰인 낮은 시선의 이야기가 한 몫하며 거기에 덧붙여 희극과 비극을 버무리는 작가의 유머와 단정하고 아름다운 문장 스타일 때문인 것 같다. 한편 대사들은 상당히 영화적이며 상징적이다. 인물을 묘사할 때 편향되지 않아서 독자가 스스로 판단 가능하며 인물의 얽힘에서 자아내는 부조리나 비애의 예감이 한국의 ’한 ‘의 정서와 매우 유사해서 이들 이야기의 비애감에 특히 더 공감하는 것은 아닐까?


모두가 행복하고 문제가 없다고 하지만 이들이 행복하지 않고 문제 투성이었던 삶을 여태 포용하며 버티고 굽히지 않고 살아왔기 때문에 지금 그 상태를 받아들일 수 있었던 것이다 풍자의 깊이와 그 저변에는 이러한 숨겨진 삶의 모호함과 차마 발설하지 못한 경탄과 아쉬움이 가려져있었을 뿐이다.








매거진의 이전글오리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