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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두부새 Dec 11. 2021

비 내리는 날 야외 결혼식

모든 예비신부의 악몽

예비신부라면 한번 쯤은 야외 결혼식에 대한 로망을 가진다고한다. 특히 요즘처럼 스몰웨딩을 선호하는 분위기에선 더욱 그렇다. 하지만 인터넷에 올라오는 예비 신부들의  많은 식장 고르기 후기를 보면 처음엔 야외 결혼식을 생각했다가도, "여름엔 덥고 봄가을엔 추운게 야외 결혼식," "바람불면 머리 망가지고 드레스 망가지고.." "음식에 먼지 들어감", "어른들이 싫어하심"  같은 이유로 처참히 후보에도 들지 못하더라.


나도 막연히 야외에서 하고 싶단 생각은 했었는데, 내 경우엔 조금 더 그 선호가 강했다. 워낙 야외 활동을 좋아했고 야외에서 느낄 수 있는 햇살, 바람, 공기도 모두 그 날의 추억이 되다보니 만약 결혼식을 한다면 야외에서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다 생각지 못하게 갑자기 혼인신고를 하게 됐다. 남편과 내 성격상 결혼식에 대한 큰 로망도 없고, 어차피 코로나가 기승이었기 때문에 "코로나 끝나면 그 때 하지뭐,"라며 결혼식에 대한 계획은 하나도 없는, 그저 통통한 1년차 신혼부부가 되었다.


그렇게 2년차가 되던 달, 더 이상 미룰 수 없어 식장을 예약했다. 내 경우엔 남편 직장에서 제공하는 결혼식 패키지가 있었다. 직장 내 웨딩홀로 쓸 수 있는 회관과 야외 결혼식이 가능한 정원, 그리고 3가지 청담동 스드메 업체. 이렇게 오래된 웨딩홀 그리고 야외 두가지 옵션이 주어지다보니 당연히 선택은 야외였다.


날짜도 남아있는 날짜 중 하나 골랐다. 여름은 너무 덥고, 봄은 식장에 꽃나무가 별로 없어서 휑하다는 이유로 가을을 골랐다. 원래 내가 가장 좋아하는 계절이기도 했다. 높고 청명한 가을 하늘과 단풍을 가장 좋아하니까. 가을 하늘 아래 야외 결혼식은 생각만해도 너무 멋졌다. 가을은 건조하니까 비도 잘 안오고, 걱정할 것도 없겠네!


우리 결혼식 날짜는 10월 10일이었는데, 남편은 한글날 다음날 결혼한단 사실만 가지고도 들떠있었다. 언어학자로서 최고의 날짜가 아니겠냐며... 하지만 나는 한글날로 월요일이 대체 공휴일로 지정된 와중에 일요일 결혼식이 얼마나 민폐라고 생각했는지 모른다. 게다가 결혼식장도 서울 시내에서 오려면 대중교통 두번은 갈아타야하는, 경기도와 다름 없는 곳이다.


이렇게 황금연휴에, 접근성도 떨어지는 곳인데 게다가 당시에는 거리두기로 하객을 49명으로 제한하던 때였다. 시아버지는 오남매, 우리엄마는 육남매로 49명 맞추려면 각 가정당 대표 선수 1분씩만 참석해야하는 상황이다. 상황을 이해해줄 정말 친한 친구들에게는 "인원 제한 풀리면 알려줄게 ㅠㅠ" 했지만 그 외 친구들이나 회사 동료들에겐 말도 못하고 끙끙 앓았다.


그러다 한가지 기적이 일어났다. 결혼식을 7일 앞두고 새 거리두기 정책이 발표되면서 하객수가 기존 49명 + 백신완료 50명으로 최대 99명까지 늘어났다. 하지만 이미 가족, 어른들에게서는 참석 명단을 받은 상황이라 이제 와서 더 늘리지는 못했다. 대신 친구들과 회사 동료들은 임박한 일정에도 불구하고 너무 기뻐하며 "꼭 갈게!!"라고 말했고 나는 "그럼 전화번호랑 백신 2차 접종 후 2주 경과 여부 좀 알려줘.."라고 답했다.


미접종 49 + 접종 완료 50명 공식을 맞추기 위해서는 철저한 조사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이 명단을 제출한 다음에 결혼식 당일에 입구에서 입장객을 명단과 대조해야했고 백신 접종 증명서도 확인해야했다. 당시에는 미접종 인원이 더 많았기 때문에 백신 접종 완료로 명단을 제출한 누군가가 접종 증명을 하지 못한다면 미접종 인원 중 누군가는 입장이 불가한게 규칙이었다. 혹은 명단에 없는 누군가가 입장해버리면 늦게 도착한 누군가는 인원 제한 때문에 들어가지 못한다. 황금 연휴에, 그렇게 먼 거리를 왔는데 결혼식장 입구에서 입뺀 당할 수도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 일은 악몽처럼 실제로 일어났다.


이 뿐만이 아니었다. 결혼식 1주일 전부터 본격적으로 기상예보를 히스테릭하게 쳐다보기 시작했는데, 그 맑던 가을 날씨가 결혼식 몇일 전부터 구름 가득으로 바뀌고 결혼식이 있는 주말엔 대놓고 번개를 동반한 비가 내린다고 되어있었다. 너무 극적인 전개라 기상청에 대한 근거없는 비난을 시작했다.


"기상청 맨날 틀리잖아."

"기상청 워크샵날에도 비온다며"

"비 안올수도 있어."

"비 온다고 했다가 안온날 안온다고 했다가 온날보다 더 많지 않아? 그치?"


얼마 전에 유퀴즈에서 기상청 예보관 인터뷰를 보면서 인간적인 공감을 느꼈고, 다들 틀린다고 하지만 실제로 따져보면 정확도는 꽤 높다는 얘기를 인상 깊게 들었으면서도 막상 내 일이 되니 아닐거야 아닐거야 기상청은 틀렸어 자기암시에 매진했다.


결혼식 당일 아침이었다. 안개가 자욱했고 하늘은 먹구름으로 가득했다. 새벽 1시까지 결혼식 준비하고 새벽 4시에 일어났는데, 이마엔 왕 여드름이 났다.


결혼식 20분 전, 야외 정원 한켠에 마련된 신부 대기실에 앉아있는데 갑자기 비가 쏟아진다. 빗방울은 가볍지만 세찼다. 가끔 여름에 쏴-하고 샤워기를 튼 것처럼 내리는 비였다. 무방비로 모든 비를 맞았다. 그 때 다행히 드레스 스튜디오 원장님이 차에서 얼른 우산을 가져와서 씌워주셨지만 비바람에 액자가 쓰러졌고, 동영상 작가님은 비오면 동영상 중단해야한다고 미리 말씀해주셨고, 멀리서 식장 스탭 분들의 "이렇게 비오면 실내에 세팅해야하는거 아니에요?" 말소리가 들렸다. 우리 고양이는 비온다고 내 드레스 밑으로 들어가는 등 난리통이었다. 진짜 악몽인가?


도우미 이모께서 안심시켜주시는 동안 비는 그쳤고, 신랑신부 동시 입장을 했고, 어머님들께서 아버님이 써주신 시를 읽어주셨고, 아버님은 축가를 불러주셨다. 신랑신부 행진과 풍선 날리기 이벤트가 끝나고 가족 사진을 찍자마자 엄청난 비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2부 전 식사시간이었고 하객 자리에는 테이블마다 파라솔이 있어서 다행이었지만 음식을 담아서 이동할땐 우산을 쓰거나 접시를 손으로 가리고 이동해야했다. 2부가 시작되어도 비는 멎지 않았다. 축배 제의를 하고, 남편이 노래부르고 덕담 카드 읽기 이벤트를 하는 동안 비는 더욱 거세게 내렸고 빗소리가 정원을 가득 채웠다.


2부를 시작하며 비 맞으며 남편이 노래부르기 직전, 진행 담당자분께서 그 큰 파라솔을 들고 뛰어와서 씌워주셨다. 스냅, 동영상 작가님은 끝까지 순간을 담아주시려고 테이블 냅킨을 카메라 렌즈 주변에 두르고 우산으로 비를 막으면서 가리면서 촬영해주셨다. 하객분들은 한분도 자리를 뜨지 않고 모두 한마음으로 응원하고 축하해주셨다. 결혼식이 끝난 후에는 스탭분들이 우산도 쓰지 않고 뛰어다니면서 식사 그릇, 꽃 장식 등을 정리하셨는데 너무 힘들고 짜증날법한 상황에서도 모두 눈 마주칠때마다 웃는 얼굴로 오히려 축하한다고 인사해주셨다. 정리하는 스탭 중 대부분은 대학생정도 되는 알바 같았는데, 존경스러울정도였다.


누구에겐 최악의 결혼식이었을 수 있었던 날이, 도와주신 많은 분들 덕분에 최고의 추억이 되었다. 코로나 덕분에 진심으로 축하해줄 가족, 친구, 동료들만 참석할 수 있었고, 그래서 더 좋았다. 99명의 모든 하객이 예식에 집중했고, 고심 끝에 고른 음악을 귀기울여 들어줬고, 준비한 행사에 참여해줬고, 덕담을 남겨줬다.


당연히 내 결혼식이니까 나는 좋겠지. 하지만 나는 결혼식을 준비할 때 "하객도 즐거운 결혼식이었으면 좋겠어"라고 했다. 코로나에, 황금 연휴에, 특별히 먼 길을 백신 접종 여부까지 밝혀가며 오신 분들이 밥만 먹고 가는게 아니라, 최대한 같이 참여할 수 있고,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말이었다. 그래서 아래 6가지를 준비했다.

1. 결혼식 시작 전부터 입장, 행진, 식사, 피로연까지 40곡에 달하는 플레이리스트. 우리가 좋아하고, 누구에게나 익숙한 미국 클래식 팝으로 구성했다. 예를 들어 "슈가슈가" "오 허니 허니, 유알 마이 캔디걸" "알!러!뷰! 베이베" 요런 우리 엄마도 흥얼거리는 노래들. 플레이리스트도 프린트해서 테이블에 비치했다.

2. 신랑 신부 입장곡, 어머님들 낭독 시, 시아버님 축가, 남편 노래 가사를 프린트한 가사집. 사실 남의 축제인데 귀에 안들어오는게 당연하다. 그래서 눈으로 보면서 따라갈 수 있는 자료를 준비했고 영어 노래는 직접 번역도 했다. 가사집을 본 덕분에 몰입도가 좋았고, 그래서 감동받았던 분들도 많았다.

3. 식순지. 공들여서 직접 디자인하고 비싼 종이로 프린트했는데, 막상 테이블마다 놓이지 않아서 많은 분들이 보진 못했다.

4. 풍선 날리기. 야외에서만 할 수 있는 풍선 날리기! 특히 어린이 손님들이 좋아했다.

5. 덕담 카드와 경품 추첨. 적어주신 덕담 카드를 뽑아서 읽어드리고 경품을 드렸다.

6. 스냅 촬영. 지인 원판은 찍지 않고 테이블마다 스냅을 촬영했다. 모르는 사람이랑 다같이 서서 찍는 사진보다 이렇게 그룹별로 같이 찍는 사진이 하객에게는 더 의미있을 것 같았다.
덕담카드 작성 중
가사집


결혼식이 끝나고 가장 많이 들은 말은 "오늘 너무 예뻤어"가 아니라, "오늘 너무 즐거웠어"였기 때문에 기뻤다. “가장 기억에 남는 결혼식"일 것 같다는 말도 여러번 들었으니, 이 정도면 하객도 즐거운 결혼식이었다고 기억해도 괜찮겠지?


어쨌든 하고 싶은 말은, 대부분 말리는 야외 결혼식에 비까지 내렸지만 그래서 더 특별했다는거다. 결혼식 전날까지 “야외결혼식 비”를 검색하며 걱정했던 나처럼 야외 결혼식을 준비하는 누군가가 이 글을 보고 조금이라도 마음을 놓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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