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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이유 JOYU Jan 20. 2023

당신이 내 승객으로 탄 이상

- 말 한마디 안 통하는 국적 불문의 노동자 일지라도.


비행을 하다보면 워낙 다양한 국적의 사람들이 많이 타기 때문에 서로 언어가 불통하는 경우는 아주 익숙한 일이다. 유럽, 동남아 가릴 것 없이 언어가 통하지 않을 때가 많아 처음에는 진땀을 흘리고는 했었다. 하지만 어연 승무원 바닥에서 몇년 구르니 생존방법을 터득하게 되었다.


기본적으로 치킨, 소고기, 생선 등을 5개국어 이상 설명은 기본으로 하며, 꼬끼오 부터 음메~ 하며 머리에 뿔을 만드는 구연동화 설명을 다 동원하다보면 정성이 갸륵한지 한개 정도는 이해해주시는 상황이 온다.


회사의 지침에는 영어로만 설명해주면 되기에 대충 넘겨도 되지만 음식에 진심인 민족에서 태어났는데 어디 그럴 수 있냐며 늘 마음을 다하게 된다.


크게 다른 사람의 일에 상관 하지 말자 주의지만 비행기에 손님으로 탑승했는데 옆에 승객이 외국인 승무원하고 대화를 못한다 싶으면,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서 물어본다.


"혹시 제가 설명을 해드려도 괜찮을까요?"


어르신들을 보면 다 우리 엄마 아빠 같아서 자꾸만 눈이 가는 것을 참을 수 없다. 



어느날 GDP가 낮은, 소위 못사는 나라라고 불리는 한  나라로 비행을 가게 되었다. 대부분 외국에서 노동자로 일하면서 일년에 한번씩 본국으로 휴가를 가는 승객들인데 영어를 할 수 있는 사람이 거의 없는 비행으로도 유명하다


그래서 일부 승무원 중에는 어차피 대화도 안통하는데 아무런 음식이나 꺼내서 주고, 그냥 대충 콜라나 주스 잡히는 대로 따라주면 되는 쉬는 비행이라고 말한다. 내가 초창기에 이 비행 때 열심히 손짓 발짓하면서 셜명하다가 다른 연차가 오래된 승무원한테 혼난 적도 있다. 


"그렇게 느리게 해서 언제 서비스 끝내고 쉴래? 어차피 못알아 듣는다고 그냥 대충 주고 오라고 했잖아."



브리핑 (비행 시작 전 회의)때 이 날 기장님은 마침 오늘 도착하는 나라 출신이었다. 회의 때도 엄청 나이스 하셨는데, 본인 나라 사람들이 영어를 잘 못하니 혹시 통역이 필요하거든 언제든 기장실로 방문해달라고 했다. 


의례하는 이야기라고 생각했는데, 정말 기장님은 보딩 떄부터 비즈니스를 돌아다니며 승객들하고 대화를 나누는 아주 보기 드문 사람이었다. 


이 바닥에서 어느 정도 굴러서 그런지 말하지 않아도 그 사람의 직업이 보일 때가 있는데, 정황과 티켓분류를 봤을 때 어느 집에서 집안일을 해주는 사람 같았다. 보통 그럴 경우 가족들은 비즈니스를 타고 일하시는 분은 이코노미를 타는 경우가 많은데, 이코노미 좌석이 오히려 더 구하기 힘든 노선이서 인지, 업그레이드가 된건지 비즈니스로 올라와 계셨다.


이코노미 때도 '몸으로 설명해요'로 최선을 다하던 내가 비즈니스 승무원이 되었다고 달라질 것은 없었다. 여우주연상을 받겠다는 굳은 심지로 겁먹은 채 긴장한 눈을 꿈뻑이기만 한 히잡을 쓴 그녀에게 다가섰다. 


"손님 뭐 드시겠...?"


"꼬삐!!!!! 꼬삐!!!!!!! 꼬삐!!!!!!!!!!!!!!!!!!"


내 말이 끝나기도 전에 냅다 소리를 질러서 뒤로 나자파 질뻔 했다. 아무리 설명을 해도 그녀는 같은 말만 반복할 뿐 도통 그녀가 먹고 싶은 음식을 알아 낼 수 가 없었다. 


시간이 흐를 수록 일곱시간을 넘기는 이 비행에 그 약간의 다과만 먹은 손님이 잠도 안자고 다른 사람들 밥 먹는 거만 쳐다보고 있으니 얼마나 배가 고플까 마음이 쓰였다.


솔직히 말하면 나는 그렇게 대단히 친절한 승무원은 아니다. 승객들하고 한참을 이런 저런 수다를 나누는 편도 아니고, 엄청난 열정이 있어서 나를 이 비행에 바치리라 하는 스타일은 더더욱 아니다. 하지만 먹보로 태어나 이렇게 손님을 굶겨서 내보낼 수는 없었다.


아무래도 안되겠다 싶어서 다시 대화를 시도 했지만 성과는 없었다. 비즈니스에서 소위 제일 인기 많은 메뉴를 냅다 가져다 줘봤지만 물만 마시고 트레이는 그대로 다시 반납 되었다. 이렇게는 안되겠다 싶어서 결국 기장실을 찾아기로 했다.


비즈니스에서 일하면 조종실을 수시로 드나들게 되는데, 개인적으로 들어가는 것을 선호하지는 않는다. 누가 불편하게 하는 것은 아닌데, 딱히 할말도 없고 다른 사람 옷을 입은 듯 빨리 나가고 싶은 기분이 든다. 그렇게 어려워 하는 조종실로 큰맘 먹고 들어서는 데 기장이 농담스럽게 말을 건넸다.


"아니, 그렇게 오라고 해도 안오더니 드디어 오는구만."


기장님의 장난스런 핀잔에 냅다 본론 부터 말했다.


"안 바쁘면 나 좀 도와줘."


"당연하지, 무슨 일이야?"


자초지총을 들은 기장은 알겠다며 나를 곧장 따라 나섰다. 그러더니 그 손님과 눈 높이를 맞춰가며 한참을 이야기 한 끝에 돌아왔다.


"스테이크 샌드위치랑 주스 마시고 싶대."


기장의 말에 답답함이 해소 되면서 양팔을 들며 폴짝 뛰었다. 내가 환호하면서 음식을 오븐에 넣자 기장은 저 승무원은 비행 내내 에너지가 넘친다고 지치지도 않는다며 다시 조종실로 들어섰다.



그 뒤로 즐겁게 비행을 마무리하고 승무원 버스에 올랐다. 앞자리에 앉은 기장님에게 습관 처럼 땡큐하고 지나치는데 기장님이 목소리를 높였다.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최선을 다해줘서 고마워. 평소에 너네가 얼마나 바쁘게 일하는지 잘 아는데, 영어를 못해도 끝까지 말해보려고 하는 자세가 멋있더라. 


포기하지 않고 계속 뭘 원하는지 묻고, 찾으려고 노력해줘서 고마워.


그 사람도 너에게 많이 감사했을거야. 너는 진짜 좋은 승무원이야."


갑자기 치켜세워주는 기장님에 머쓱해서 그저호탕하게 웃어버리고 말았다. 별 대수롭지 않은 일에 너무 과분한 칭찬을 받아 목덜미가 뜨거웠지만 누군가는 오늘 행복했으려나 하고 웃음이 입가에 스쳤다. 



영어를 한마디 못해도 괜찮다. 


당신이 내 승객으로 탄 이상 반드시 배부르고 등 따숩게 내리게 해드릴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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